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6년 주보

대림 제4주일 2016년 12월 18일 (가해)

모든 2 2016. 12. 18. 22:30

온양 모종동 성당(아산지구)

본당 설립:2011.1.12/주보성인:성가정

 

+ 마태복음. 1,18-24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 요셉과 약혼한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시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탄생하셨다.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였는데, 그들이 같이 살기 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말미암아 잉태한 사실이 드러났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도 않았으므로, 남모르게 마리아와 파혼하기로 작정하였다.

 

   요셉이 그렇게 하기로 생각을 굳혔을 때, 꿈에 주님의 천사가 나타나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 그 몸에 잉태된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분께서 당신 백성을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주님께서 예언자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려고 이 모든 일이 일어났다. 곧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신 말씀이다. 임마누엘은 번역하면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

잠에서 깨어난 요셉은 주님의 천사가 명령한 대로 아내를 맞아들였다.

 

 

<말씀의 향기>

 

복음의 서막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이제 아기 예수님의 성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백화점이나 상점에서는 성탄에 관한 노래들을 흘러나오고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기쁨이 있습니다. 성당에서도 예술제나 성탄 나무를 장식하며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쁘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 구원을 위한 세상에 오시는 아기 예수님을 맞이하기 위해 합당한 준비는 당연한 일입니다. 복음을 통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묵상해 봅시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에 대해 묵상하시다. 구약성서에서 요셉은 질투로 말미암아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 하느님을 체험했으며, 그의 가족이 새로운 땅에 정착하기 위해 미리 새로운 땅을 준비했던 인물입니다. 유사하게 마리아의 남편 요셉도 아기 예수님의 탄생과 동시에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지는 새로운 땅, 하느님 나라를 준비하는 데 꼭 필요하고 중요한 인물입니다. 구약의 요셉이 외로움 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했던 것처럼, 마리아의 남편 요셉도 의로운 사람으로 남모르는 고통이 있었지만 하느님의 뜻을 묵묵히 수용하고 새로운 길을 걸어갑니다. 요셉은 분명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신앙적으로도 의로운 사람으로서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기 힘든 어려운 요청이었지만, '요셉아 두려워 말고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라.'라는 말씀에 '예'라고 응답함으로써 새로운 구원 역사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또한 복음의 구원 역사에 중요한 인물이며 침묵으로 임마누엘 아기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마리아와 함께 가정을 이루며 생활합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 그리스도인이 아기 예수님의 성탄을 준비하면서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메시지를 전해 줍니다. 세상은 분주하지만 신앙인은 조용히 침묵하면서 주님의 탄생을 기다리고 준비하는 요셉과 같은 자세가 요청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요셉의 선택과 준비가 요구되지만 제1독서의 아하즈 왕은 하느님의 뜻을 거부하고 교만한 태도로 일관합니다. 즉 하느님의 뜻과 인간의 뜻 사이에서 하느님의 섭리와 요청은 오류가 없음을 신앙 안에서 체험하고 믿어야 합니다. 인간의 뜻과 자기중심적인 선택과 길은 자기와 주변 이웃에 희생과 고통을 수반하게 됩니다.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제대 앞에 대림초 4개가 불을 밝히고 있는 것은 기다리던 시간이 다 되었고, 어서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라는 촉구입니다. 이가 예수님의 성탄을 준비하면서 아하즈 왕과 같은 교만한 마음은 말씀의 잉태와 주님의 현존하심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결구 아하즈 왕은 고통과 희생의 문을 열었고, 합리성을 극복한 요셉은 평화와 기쁨으로 새로운 복음의 서막의 문을 열었습니다. 요셉은 지혜로운 선택으로 새 하늘과 새 땅, 창조 신비를 침묵으로 맞이했습니다. 우리도 어리석은 선택일 수 있지만 지성의 합리성을 뛰어넘어 임마누엘의 탄생을 믿고 침묵하면서 말씀으로 살아 계신 주님을 마음의 마굿간에 모셔야 하겠습니다. 말씀의 육화, 그리스도의 탄생이 내 안에서 기쁨의 원천으로 활동하실 수 있도록 어서 준비합시다.

 

-김춘오 힐라리오/교구 사무처장-

 

 

via의 시선(오늘...) -임상교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한 주간의 글-

 

매일 반복되는 아침, 눈을 뜨면 습관적으로 시계를 찾습니다. 이른 아침.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입니다.

이른 아침의 경험이 반복될수록 오늘 경험해야 하는 삶의 시계는 빨라집니다. 그리고 남아있는 시간의 넓이도 좁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하느님 창조물이 옷을 바꿔 입을 때, 존재를 흔드는 외로움을 경험합니다. 이른 아침 일어나 문득 혼자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하지요.

하느님 안에 머물며 하느님 충만함 속에 머물러야 한다고 가르치면서도, 하느님이 부재한 나를 발견합니다. 그럴 때, 가슴을 쓰다듬으며 말합니다.

"너 외롭구나!"

 

외로움의 길을 통해서 고독을 만나야 하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홀로 있음을 통해서 공동체 속에 머무는 삶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가슴 깊은 곳에서 존재를 흔드는 내적 공허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던 일을 멈추고 의도적으로 육체와 정신을 취하게 만들어서 원초적인 인간의 나약함을 경험하기도 합니다.

 

감정을 느끼는 나를 관찰하는 나로서 살아가는 삶 속에서 포기된 원초적인 나를 보듬어 줍니다.

스캇 백은 이렇게 말합니다. "기도는 하느님을 의식하면서 생각하는 것이다."쉽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의식하면서 생각하는 것은 나의 의식을 관찰하는 나,

제삼자처럼 객관화된 내가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스캇 백은 "늘 깨어 있는 나"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기가 어렵고 힘듭니다. 다만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을 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불안정성과 동시에 온전함을 인식해야 하는 소명을 지닙니다. 사람은 힘을 사용하면서도 자신의 약점을 인정해야 하고, 개별적임과 동시에 상호의존적이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부정하는 개인주의자는 인간성의 한 면을 수용하기 위해서 다른 면을 부정함으로써 인간 사이의 관계망을 파괴시킵니다. 외로움을 느끼는 나, 늘 깨어있지 못하는 나를 받아들이는 선택은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나에 대한 받아들임이 이웃을 만나는 힘의 원천이 된다는 것입니다.

 

"불안정한 내가 경험하는 충만함의 역설"사람살이의 해석은 어렵습니다. 오늘 행복하소서.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140)>

 

편지와 성적표

  세상에는 서로 잘 어울리는 것들이 있는가 하면, 전혀 어울려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습니다. 라면은 양은 냄비에 끓여야 훨씬 더 맛이 나는 것 같고, 신사 구두에 흰 양말은 이상하게 촌스러워 보이기도 합니다.

 

  성적표는 어떨까요? 소수의 능력자를 제외하면 누구라도 받아 보기에 반갑지 않은 성적표.. 냉정하게 적혀 있는 숫자들이 풍기는 씁쓸한 맛 때문인지 웬만하면 성적표는 그 어떤 것과도 잘 어울려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 영국 북아일랜드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뜻밖의 성적표를 보낸 선생님들이 있어서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선생님들은 성적표와 함께 본인들이 직접 손으로 쓴 편지 한 통을 동봉했습니다. 성적표를 열어 보기 전에 편지 먼저 읽어 보길 바란다는 제목의 편지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의 편지글들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건 단지 한 시험의 결과일 뿐이다. 이것으로는 네가 얼마나 놀라운 사람인지 측정할 수 없다. 그러니 성적표를 확인한 후에도, 너는 자신을 찬양해야 한다."


   "네가 기다리던 성적이 바라던 결과가 아닐 수도 있지만 실망하지 않기를 바란다. 인생은 때때로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흘러갈 수 없다. 또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조금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다."


   성적표로 위축 될지도 모를 제자들의 마음이 걱정되어 한 자 한 자 정성 들여 쓴 편지 한 통.. 받기 두려운 성적표와 이보다 더 잘 어울릴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요?


   눈만 뜨면 우리도 매일 성적표를 받습니다. 이런저런 평가와 빠르게 정해지는 등수의 틀 안에 갇혀서 정신없는 하루를 보냅니다. 이런 우리에게 하느님의 말씀은 편지가 되어 줍니다. 어떤 성적표에도 흔들리지 않게 매일매일 우리에게 당신의 사랑을 담아 보내 주십니다. 성적표보다 하느님이 보내 주신 편지를 먼저 읽을 줄 아는 마음으로 이번 성탄절을 맞이해 보렵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늘 한 줌인 내 영혼

활짝 열린 그날

텅 빈 그곳에

가득 채워지는 것은

사랑과 사랑

그리고 또 사랑

 

그것은

주님이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시노드 준비위원회 분과 소식

교구 시노드 준비위원회 분과별 회의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이번 주에는 9개 분과 중에서 수도자, 평신도, 신심 활동, 본당 사목 분과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교구 시노드 (synod)란? "함께 길을 걷는다"(Syn+hodos)는 뜻을 지니며, 교구 전체의 선익을 위하여 교구장 주교가 교구 구성원들(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의 대표자들을 소집하여 개최하는 '대의원 회의'를 말합니다. 시노드를 통해서 교구의 현재를 진단하고, 해결이 필요한 중요한 문제들을 다루며, 이에 따른 교구의 사목 계획이 수립되게 됩니다.

 

 

시노드 준비위원회 분과 소식

교구 시노드 준비위원회 분과별 회의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이번 주에는 9개 분과 중에서 평신도, 전례, 사회복음화 분과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평신도 분과

시노드 '본당 한마당'행사가 여러 분당에서 매우 다양하게 진행되었다고 합니다. 분과에서 직접 참여도 해 보고 또 주변 신자들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통해서 본당 한마당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본당 한마당에서 나왔던 다양한 의견들을 통해서 오늘날 우리 교회의 모습에 대한 여러 우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고, 본당 한마당이라고 하는 특별한 만남의 장을 통해서 긍정적인 면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본당 한마당에 참여한 신자들은 교회가 평신도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한다는 것에 놀라워 했고, 변화와 쇄신을 위한 시노드 여정 안에 함께 동참하는 마음으로 각자 소중한 의견을 내도록 애썼다고 합니다. 본당 한마당은 이번에 우리의 모습을 진단하는 데 효과적인 방법이었으며 당장의 결과가 아닌 추후의 결과가 더욱 기대됩니다.

11/25(금)/장소 : 복수동 성당

 

전례 분과

2016년도 사제 회의 중 실시한 전례 분과의 사제 설문에 대한 분석결과를 검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 중에서 주목할 것은 '현재 신부님께서 사목하시는 본당에서 부활 대축일 즈음 세례식을 거행해야 한다면, 부활 성야에 세례예식을 거행하고 계십니까?'에 대한 결과였습니다. 과반수의 사제들이 부활 대축일 즈음의 세례식을 거해하지 않는다고 응답을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분과의 위원들은 이런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부활 성야미사의 전례가 길고 많은 이들이 참례하기에 시간이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새 영세자들이 참여하게 되면, 영원한 생명을 체험적으로 가장 잘 이해하는 순간이 될 것이며, 많은 신자들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받는 중요한 친교의 순간이 될 것이므로 중요성이 다시 강조되기를 바란다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특히 이는 새로이 신자가 된 많은 예비신자들이 냉담에 빠지지 않도록 해 주는 긍정적 영향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설문의 기타 결과로, 부활 성야 미사 전에 세례식을 거행한다는 응답에 대해서는, 예수님의 부재를 드러내는 중에 거행되는 세례성사는 잘못된 교리교육이 될 수 있기에 큰 우리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11/24(목)/장소 : 교구청 회의실

 

사회복음화 분과

분과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복음의 기쁨'과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통해 드러난 공동의 집인 지구의 생태환경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천주교 주교회의가 2016년 춘계 정기총회에서 주교회의 생태환경위원회를 신설한 것처럼 생명과 지구를 살리는 일은 천주교의 중요한 역할임 분명히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이와 관련하여 피부에 와 닿는 어려움을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이들은 바로 '가난한 이들'이란 점에 모두가 공감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유기농이나 친환경 식품 등을 구입해서 먹을 수가 있지만, 상대적으로 가난한 이들은 조작된 음식 등을 통해서 꾸준히 피해를 입는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이 시대의 폐단은 모두 냉장고에 응축되어 있다는 한철 학자의 칼럼 '인간다운 삶을 가로막는 괴물, 냉장고'라는 글도 함께 읽었습니다. "행복한 공동체를 원하는가? 재래시장을 살리고 싶은가? 생태문제를 해결하고 싶은가? 가족들의 몸을 건강하게 만들 수 있는 안전하고 싱싱한 식품을 원하는가? 그럼 냉장고를 없애라! 당장 냉장고가 없다고 해 보자, 우리 삶은 급격하게 변할 수밖에 없다." 이것이 칼럼에서 말하는 것입니다. 거대자본이 만들고 유통시키는 냉장고와 대형마트의 공생관계 속에서 대량 생산되어 유통기한을 인위적으로 늘린 식품들을 우리들이 구매하는 한 가혹한 생육 방법과 유전자 조작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그것이 바로 생태환경을 위태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11/18(금)/장소 : 한끼 100원나눔 운동 본부

...........................................................................................................................사무국 행정지원단 홍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