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 내동성당(논산지구)
본당 설립:2004.1.8/주보성인:성가정
+ 마태오 복음 11,2-11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그때에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그들이 떠나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 자들은 왕궁에 있다.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내가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말씀의 향기>
천국에 대한 희망 -구본국 베난시오 태평동 주임
예수님의 시대에 세례자요한은 보통 사람이 생각할 수 없는 대단한 분이십니다. 그런데도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이라도 요한보다 크다.'는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천국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찼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그 나라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인가를 예수님께 물으며 그 나라를 얻기 위해 노력하고 들어가고자 기도했을 것입니다.
더구나 나라를 잃은 백성들에게 새로운 하늘에 대한 열망은 그 어느 때보다도 컸을 것입니다.(어쩌면 그 나라를 잃은 사람들에게 천국에 대한 열망을 주시려고 이스라엘에 오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날마다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복음을 듣고 하늘나라를 논하고 그 나라를 꿈꾸며 함께 행복해 하고 감사하며 그 나라를 살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 시대의 그 사람들은 천국에서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엄청난 천국의 모습에 놀라고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천국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그러한 천국을 바라보며 놓쳐 버린 천국에 대한 아쉬움과 후회로 날마다 가슴을 치며 통곡하고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지금 천국과 지옥을 앞에 두고 사는 여정에 놓여 있니다. 그러나 우리 천주교 신앙인들은 지고이 아니라 천국에 대한 희망 하나로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그 어떤 좋은 것이라도 우리가 장차 얻게 될 천국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믿음으로 세상의 유혹을 이기고도 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을 얻는 일이라면 무조건 동참하고 노력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천국을 얻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하냐고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천국을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성화 은총의 상태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게 해 주는 것이 바로 성사생활입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너무나 어려워 몇몇 사람만 들어간다면 예수님의 수과 헛된 것이고 너무 쉬워 아무나 간다면 천국은 의미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적당한 수준의 삶을 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으신 것이 바로 성사생활입니다. 세례로 원죄를 씻고, 견진으로 성령칠은을 받고, 고백성사로 본죄를 씻고, 혼인으로 창조사업을 계승하고, 성품성사로 교회를 유지하며, 성체성사로 하느님나라를 확장하고, 병자성사로 천국을 맞이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성사생활만으로도 충분히 성화 연장 선상이 바로 천구임을 명심하여 성사생활을 충실히 해나갈 수 있도록 노력합시다.
특히 지금은 대림절 판공성사 기간입니다. 우리 모두가 천국에 들어가기에 걸림돌이 되는 죄를 깨끗이 씻고 거룩한 마음으로 성탄을 맞이하도록 노력합시다. 깨끗한 마음으로 성탄과 부활을 맞이하는 습관을 들이다 보면 어느새 천국에 있는 나 자신을 바라보제 될 날이 반드시 오고야 말 것입니다. 눈으로 본 적도, 귀로 들은 적도, 마음에 떠오른 적도 없는 엄청난 곳에 들어가는 순간 우리는 기쁨에 넘쳐 이렇게 외칠 것입니다.
"아! 좋다, 진작에 올 걸! 괜히 늦게 왔다! 더 늦게 왔으면 큰일 날 뻔했다!"라고 말입니다. 아멘.
via의 시선(현장 속에서) -임상교 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의 한 주간의 글-
"내가 먼저 웃고 인사합시다" 대전광역시 시민행복위원회가 준 명함에 새겨진 글입니다. 참 좋은 글입니다. 그래서 제게 명함을 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하는 기대로 갤러리아 백화점 방향으로 걸어갔습니다. 오늘 한국사회의 현실 속에서 명함에 새겨진 다른 글귀를 기대하면서 걸어갔습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글은 아니더라도, 현 한국사회에서 국민으로서의 주권을 어떻게 행사해야 하는지에 대한 글이 새겨진 명함을 받기를 기대했습니다.
"내가 먼저 웃고 인사합시다."가 실천되고 있는 현장 속에 있었습니다. 내 옆에 있는 그(그녀)를 알지 못합니다. 처음 만난 사람들, 그러나 함께 있음이 불편하지 않습니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사람들과 함께 있어서 힘이 빠지는 경험을 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처음 보는 사람들과 함께 있는데도 힘이 납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 눈을 마주치면 미소로 인사를 전합니다. 이 순간 감내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나눌 수 있어서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누군지, 어디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럼에도 지금 여기에서 함께 있다는 사실이 반갑습니다.
다시 명함을 봅니다. 그러다 문득 행복하기 위해서 위원회가 필요한 사회, 이런 사회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됩니다. 위원회가 주장하는 행복은 무엇일까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 행복과 비행복을 구분하는 것이 가능한 것일까? 행복에 대한 명확한 기준을 설정하고 이것은 행복이고 저것은 불행이라고 규정하는 현실이 오히려 불행은 아닐까.
명함을 휴지통에 버렸습니다. 그리고 다시 기억을 의식 안으로 불러옵니다. 두터운 옷과 장갑을 끼고, 님들과 함께 걸었던 차디찬 거리, 그곳에서 뜻밖의 행복을 만났습니다. 함께함이 주었던 기쁨, 종이 아니라 주인으로써 외쳤던 소리들 그리고 함께 어우러짐, 주어진 환경은 열악한데 그 속에서의 경험은 오늘을 사는 힘이 됩니다.
오늘의 현장 속에서 발견하고 체험되는 행복, 그래서 오늘 현장 속으로 걸어갑니다.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139)>
진짜 부자의 재산 목록
집의 평수가 넓어질수록, 집 안을 채우는 물건이 늘어날수록, 하루하루 어제보다 더 많은 금전이 통장에 차곡차곡 쌓여 갈수록 우리는 부자의 느낌을 만끽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나 입을 수 없는 비싼 옷을 걸칠수록, 아무나 갈 수 없는 곳에서 아무나 맛볼 수 없는 음식을 먹을수록, 아무나 앉을 수 없는 곳에 앉아 최고의 풍경을 감상할수록 우리는 부자가 되어가는 희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어쩌면 부자의 재산 목록은 우리 모두가 누리고자 하는 물질에 대한 욕망의 총합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야 하는 이유의 총합이 될 수도 있습니다.
더 좋은, 더 비싼, 더 편한, 더 화려한 것들로 텅 비어 있는 목록을 채워가는 일보다 짜릿하고 신나는 경험이 또 있을까요? 하지만, 살다 보면 그 어떤 부자의 재산 목록에도 적힐 수 없을 최고로 값비싼 것을 마주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다음에 이 음식점에 꼭 한번 데려오고 싶은 사람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행복의 자산은 그만큼 늘어납니다.
여행을 가서 눈이 황홀해질 만큼 멋진 풍경을 마주할 때, 꼭 한 번 함께 와서 이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싶은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행복의 영토는 자꾸만 더 확장됩니다.
기쁘거나 슬픈 일이 있을 때, 밤새도록 전화통을 붙잡고 마음의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의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 행복의 통장 잔고는 자꾸만 늘어가기 마련입니다. 그런 행복 자산은 결코 눈송이가 아닙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녹아 사라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 행복 자산은 추억이라는 이자를 덤으로 만들어 줍니다.
달력 한 장밖에 남지 않는 걸 보면서 지금껏 내 재산 목록은 어째서 이렇게 요지부동인가 허탈해진다면 차분히 눈을 감고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영롱한 주님의 선물인지 꼼꼼히 행복 목록에 기록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주님!
뜻대로
새로 나게 하소서.
우리에게 세우신
그 뜻에 따라
우리를
거듭나게 하소서.
글. 그림 이순구 (베네딕도)
교구 시노드 "우리 함께 걸어요!"
천주교 대전교구 시노드 사무국
교구 시노드 (synod)란? "함께 길을 걷는다"(Syn+hodos)는 뜻을 지니며, 교구 전체의 선익을 위하여 교구장 주교가 교구 구성원들(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의 대표자들을 소집하여 개최하는 '대의원 회의'를 말합니다. 시노드를 통해서 교구의 현재를 진단하고, 해결이 필요한 중요한 문제들을 다루며, 이에 따른 교구의 사목 계획이 수립되게 됩니다.
시노드 준비위원회 분과 소식
교구 시노드 준비위원회 분과별 회의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이번 주에는 9개 분과 중에서 성직자, 수도자, 가정 생명, 교회 운영 분과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성직자 분과
여러분은 성직자들이 급변하는 현대사회에 얼마나 잘 대처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또한 본당 신부님들은 다음과 같은 사제의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하고 있다고 보십니까? 예를 들어 기도 및 영성생활 태도, 본당 및 교구 행정 수행능력, 사목자로서의 권위와 위엄, 사회정의를 위한 예언적 실천, 시대를 읽을 줄 하는 자성과 판단력, 소외 계층에 대한 관심, 생명과 환경에 대한 관심, 검소하고 절제력 있는 생활, 신자들에게 겸손한 태도 등 여러분이 알고 있는 신부님은 위에 열거한 역할들을 잘하고 있다고 보시는지요. 성직자 분과는 이처럼 성직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을 준비하면서, 이러한 역할의 점검을 통해 성직자의 쇄신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11/10(목) 제8차 회의/장소 : 법동 성당
수도자 분과
교회 안에서 수도자들의 행복은 본연의 카리스마를 갖고 살아갈 때 드러납니다. 그것은 변방에서 예언자로 살아가는 수도자의 체험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정체성은 제도 교회 안에서 사제들과 대립하는 부분이 있지만, 동시에 사제와 수도자가 사와 협력하는 관계를 맺어야 영성이 흘러넘치는 교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분과는 중요한 논의 주제로 다루고자 합니다. 그 이유는 가톨릭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를 이끌고 지탱하는 데 수도회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유럽 교회는 다 알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또 그 속에서 살아오고 있으나, 그러한 인식이 한국 교회에는 없습니다. 정리해서 말하자면, '수도생활이 교회에서 매우 필요한 부분'이란 사실이며, 분과는 이러한 사실을 인식시키고 알리기 위해 노력하자는 데 동의하였습니다.
11/5(토) 제7차 회의 /장소 : 공주 신관동 성당
가정 생명 분과
분과의 대주제는 8가지입니다. 열거하면 생명, 가정생활, 청소년 자녀 교육, 성(性), 혼인, 신앙생활, 노인, 출산과 자녀관입니다. 이처럼 가정생명 분과의 주제들은 새로운 발견으로부터 비롯되는 게 아니라, 8개의 대주제를 기본틀로 잡고 이를 대전교구의 실정에 접목하는 방식으로 진행하게 됩니다. 즉, 각 대주제 안에 반드시 담아야 할 교회의 가르침을 먼저 정리해서 양식을 만들고, 그 틀 안에서 주제의 내용들을 담겠다는 것입니다. 분과에서는 이처럼 8개의 대주제 분야별 담당자를 정해서 역할을 분담하고, 이를 통해 모인 내용을 정리하여 그 세부내용을 토론하는 방식으로 회의를 진행해 나갈 예정입니다.
10/21(금) 제2차 회의/장소 : 대철회관
교회운영 분과
관계의 99%는 '소통'이라고 합니다. 즉, 삼위일체의 하느님께서 보내신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 안에서 서로의 관계회복을 위한 궁극적 해결방법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소통입니다. 대전 교구의 현실을 돌아보았을 때, 소통을 통한 신뢰와 관계성의 문제를 짚어 보았습니다. 여러 문제들 가운데 특히, '성직자와 평신도 간의 소통 문제'를 주목해 볼 수 있습니다. "대전교구 사목침서 제1장"은 신자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를 이루는 하느님 백성 가운데 절대 다수를 이루는 신자는 세상 구원을 위한 사도직 활동의 주체들임이 분명하다. 특별히 한국 교회의 신자는 이 땅에 복음을 도입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한 주역들이었고, 초기 교회 백 년 동안의 모진 박해 속에서 교회를 지키고 복음을 선포한 주역들이었다. 따라서 한국 교회 안에서 큰 자부심과 긍지를 가져야 하고 응분의 존경을 받아야 한다."
소통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듯 신자들에게는 자부심과 긍지 안에서, 그리고 교회 구성원 서로 존경하고 존중하는 마음 안에서 올바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 교회는 이러한 지침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교회 구성원들 각자가 잘 인지하고 이를 실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교회 운영에 관한 여러 사안들을 볼 때, 교회 운영에 관한 문제는 항상 '관계와 소통'에 대한 문제로 귀결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원인을 살펴보면, 기본과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으며, 시대 변화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부족하고, 교회 구성원들의 하느님 교회에 대한 무관심과 신앙에 대한 고민의 부족 등을 거론할 수 있습니다.
10/27(목) 제10차 회의 /장소 : 만년동 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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