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산성당(논산지구)
본당 설립:1960.4.8 / 주보성인:예수 성심
+ 루카 복음. 7,36-8,3 <또는 7,36-50>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그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다가와,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대답하셨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
<말씀의 향기>
일흔일곱 번의 용서 - 김기범 본시아노 광천 주임
오늘은 우리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입니다. 한 영성가가 전한 이야기로 시작하려 합니다.
한 사업가가 술집에 들어가 자리에 앉으니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있는 사람이 눈에 거슬린다. 왜냐하면 그는 귀에다 바나나를 꽂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업가는 생각했다. "저 사람에게 사실을 말해 줄까? 아니야, 내가 관여할 바가 아니지."그러나 그 생각이 자꾸 그를 괴롭힌다. 그래서 한두 잔 마신 후에 말을 건다. '실례합니다. 저, 귀에 바나나가 꽂혀 있군요." "뭐라고요?" "당신 귀에 바나나가 꽂혔다고요." "뭐라고요?" 사업가는 소리친다. "당신은 귀에다 바나나를 꽂고 있어요." "더 크게 말씀하세요. 난 귀에 바나나를 꽂고 있거든요."
바나나로 귀를 막힌 걸 압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말이 잘 안 들린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그걸 안 뽑습니다. 왜일까요? 듣지 않기로 작정했으니까요. 들으면 변하거든요. 그게 싫은 겁니다. 그게 두려운 겁니다. 그 두려움으로 우리 민족은 아직도 분다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한반도에는 크나큰 아픔이 있었습니다. 상당한 기간 동안 서로에게 총을 겨눈 일인데, 과거에 있었던 일이지만 지금도 그 아픔이, 활화산처럼 살아있는 이들이 수다합니다.
전장은 거친 말과 총기로 서로 위협하고,첨단이 무기들이 건물을 파괴하며, 살림집을 폐허로 만들고, 공들여 쌓아 온 터전이 무너지며, 가족과 공동체가 무너지는 참상을 겪습니다. 아픔이, 원수가 늘어납니다. 이렇듯 전쟁은 일상을 심술처럼 흩어놓습니다. 가족들은 헤어지고, 아이들은 배를 곯고, 장정들은 심하게 부상을 당하고, 시도 때도 없이 목숨을 잃습니다. 우리가 그토록 평화를 간절히 원하는 이유입니다.
함무라비 법전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합니다. "다른 사람의 눈을 멀게 하면 자신의 눈알도 빼야 한다. 다른 사람의 뼈를 부러뜨리면 자신의 뼈도 부러뜨려야 한다. 부모를 구타한 자식은 손목을 자른다."
예수께서도 이것을 알고 계셨습니다.(마태 5,38) 그러나 예수께서는 "오히려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다른 뺨마저 돌려 대어라. 도 너를 재판에 걸어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마태 5,40)하셨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는 형제가 죄를 지으면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신념으로,남북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지성이면 감천의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이 참으로 엄중하고 경건한 이유입니다.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3)
성 금요일의 순교자들
② 황석두 루카 복사
황석두 루카 복사는 지난주에 소개한 다블뤼 주교와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는 분이다. 이 부은 복사(복사, servant)라는 직무에 충실하여 자신이 돕던 선교사들과 생의 끝까지 몸과 마음을 함께하였다. 학문적 소양이 뛰어났던 황석두는 병인박해가 일어나기 전까지 다블뤼 주교 곁에서 한글 교리서들을 편찬하는 일을 도우며 신리(충남 당진시 합덕읍)에 살고 있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신리에 온 포졸들은 프랑스 선교사 3명 만을 체포하고는 다른 신자들은 내버려 두었다. 그때 황석두가 자진하여 나서면 함께 체포되기를 청하였는데 그 기록은 다음과 같다.
병인년 2월에 다블뤼 주교와 두 신부가 잡히자,루카가 함께 또 따라갔다. 서울 포교의 말이 '우리는 주교와 신부만 잡으니, 다른 사람은 오지 말라.' 하였다. 루카가 말하기를 '내가 우리 스승과 열두 해를 동거하였는데 어찌 버리고 가리오? 죽더라도 함께 가리라.'하니 포교의 말이 '정말 그러하면 가자.' 하였다."
짧지만 상황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기록이다. 황석두는 자신이 말한 대로 스승인 다블뤼 주교와 죽기까지 함께하여 보령 갈매못에서 같은 날 순교하였다. 이렇게 평범하지 않게 삶을 마무리한 황석두는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처음 순간에도 그러하였다.
그는 본래 관직에 나가기 위해 과거를 공부하는 전형적인 조선시대 양반이었다. 그러다가 스승님의 인도로 천주교를 알게 된 그는 과거를 보러 서울로 올라가던 중 돌연 집으로 돌아왔다. 자신은 이미 '천당가는 과거'에 급제하였으니 이 세상의 과거는 필요치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과거 급제를 간절히 바라던 아버지는 대단히 분노하여 작두를 가지고 와서는 천주교를 버리지 않으려거든 거기에 목을 대라고 하였다. 그때부터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그래도 황석두는 뜻을 굽히지 않고 1년이 넘게 벙어리 행세를 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며 살았다. 결국 온 집안이 항복하여 부인과 어머니, 나중에는 아버지까지 세례를 받았다.
황석두의 삶은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갈라지게 될 것이다."(루카 12,51-53)라는 말씀의 뒷이야기를 보는 듯하다. 한 사람이 세상에 나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뱃속에 있는 수정란의 세포들이 거듭거듭 분열해야 한다. 그 분열들이 혼란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하나가 되는 이유는 생명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황석두 성인은 영원한 생명을 향해 분열하고 분열하여 가족들과 더불어 마침내 그곳에 이르셨다.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114)>
뒤끝은 없어도 뒷맛은 남는다
가끔 사람들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갈 때가 있습니다.
특히 서로 친한 친구들끼리 자주 있는 일입니다.
친구 A : 넌 그게 단점이야!
친구 B : 뭐가?
친구 A : 나니까 말해 주는 건데..
친구 B : 무슨 소릴 하려는 건데?
친구 A : 넌 너무 말이 많아.
친구 B : 내가 뭐가 말이 많아?
친구 A : 만나서 계속 니 얘기만 하고 있잖아!
친구 B : 그야 내가 속상한 일이 있으니까..
친구 A : 그래도 너무 심하지 않냐?
친구 B : 친구라면 이해해 줄 수도 있잖아.
친구 A : 친구니까 솔직히 말해 주는 거야.
난 원래 뒤끝 없는 사람이거든..
물론 뒤에서 쑥덕거리는 것보다 당사자 앞에서 진솔하게 말하는 사람이 더 좋은 친구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내 보이는 것은 혹시 '정직'에 가까운 것이 아니라 '무례함'에 가까운 건 아닐까요?
할 말 다하고 돌아서는 사람의 뒷모습은 깨끗하다기보다 차가워 보입니다. 자기 자신의 마음에는 구름이 사라졌을지 모르지만, 그 구름은 고스란히 그 사람의 등 뒤에 서 있는 사람의 마음으로 자리를 옮겼을 뿐이니까요.
타인에게 던진 게 돌이라면, 등 뒤에서건 면전에서건 돌은 돌일 뿐입니다. 가까운 사람일수록 충고는 봄날의 햇살과 같아야 하고, 칭찬은 밀려오는 파도와 같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이미 잠재적으로 자기 스스로에게 충분히 돌을 던지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멋진 사람은 자기 스스로에게 '뒤끝'을 남기지 않기 위해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씁쓸한 뒷맛을 남기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아닐까요? 내 마음이 깨끗하다고 자랑하기보다, 나로 인해 다른 누군가의 마음이 맑아진 것에 기뻐할 줄 아는 사람.. 그 사람이 진정 하느님의 어린양이 될 자격을 얻게 됩니다.
-이충무 바오로 /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느린 마음의
사랑은
참
오래갑니다.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사랑의 건망증 - 앤소니 드 멜로 -
남편: "어째서 자꾸만 지난 일을 들먹이는 거요?
난 당신이 용서하고 잊어버린 줄로 생각했는데.."
아내: "그럼요, 용서하고 잊어버렸어요. 하지만 내가 용서하고 잊어버렸다는
그걸 당신이 잊지 말라고 다짐하고 싶단 말예요."
다른 대화 한 토막:
제자: 주님, 저의 죄를 기억지 마소서."
주님: "죄라니? 무슨 죄 말이냐? 네가 내 기억을 좀 되살려 줘야겠구나.
난 벌써 여러 해 전에 잊어버렸단다."
사랑은 범죄록을 보관하지 않는다.
<종교 박람회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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