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쌍용3동 성당(천안 서부지구)
본당 설립 : 2004년 1월 8일 , 주보성인 : 예수 성심
+ 루카 복음. 9,51-62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 그래서 당신에 앞서 심부름꾼들을 보내셨다.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길을 떠나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그러나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 그분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야고보와 요한 제자가 그것을 보고, "주님,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불러 내려 저들을 불살라 버리기를 원하십니까?"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은 꾸짖어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마을로 갔다. 그들이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하고 말씀하셨다.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말씀의 향기>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 곽승룡 비오 대전가톨릭대학교 학장
라티어 금언에 '먼 길은 질서를 지키며 가고, 가까운 길은 앞사람을 따라간다'는 말이 있습니다. 멀든 가깝든 길은 좋은 사람과 함께 가면 편안합니다.
보통 자녀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가까운 사람의 흉내를 내곤 합니다. 말투며 표정, 여러 가지 행동 등에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말입니다. 좋은 학교는 선생님들이 그저 지켜보는 가운데 학생들이 원하는 대로 좋아서 따라 살게 하는 곳입니다. 스승은 좋은 사람입니다.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루카 9,57)
교회가 바로 그렇게 탄생하였습니다. 사도들은 예수님이 좋아서 따르고 닮아갔습니다. 말씀을 선포하기 위해 세상에 파견되었을 때, 사도들은 채고 지니지 않았고, 신학적 지식과 업적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말씀을 듣고 배우며 본 것을 단순하게 가르쳤습니다 마르코는 복음에서 베드로의 설교를 간단히 요약했고, 바로 눈앞에서 만난 예수님을 구체화하였습니다.
행복은 사는 것처럼 살고 싶어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믿음 생활을 위해 너무 추상적인 교리만을 배우는 것은 크게 중요치 않습니다. 신앙은 이념도 신념도 아닙니다. 믿음은 생명입니다. 서로 좋아하고 가족처럼 지내면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인격을 좋아하게 되고, 그분의 생각과 행동을 만나게 됩니다.
좋아하고 마음에 와 닿는 믿음 생활을 전달하는 것은 윤리적 반성보다 중요합니다. 좋아하는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을 읽는 것과 쓰기, 그리고 그 장면을 상상하고 바라보는 것은 말씀을 찾고 만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 9,62)는 주님의 말씀처럼,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유연하게 자기 생각과 감정을 바꿉니다. 하지만 너무 자주 바꾸는 자는 신뢰를 잃게 됩니다. 좋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를 좋아하면 그의 인격을 좋아하고 믿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좋아하지 않고 믿음을 갖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이미 약을 복용 중이면서 새로운 약을 처방받으면 위험합니다 부작용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중 처방에 마음을 두지 말고 이미 받은 한 가지 처방을 믿고 충실하게 지켜야 합니다. 신뢰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일정하게 받아들이면서 그 반대 의견에도 관심을 갖기보다는, 한 가지를 믿고 좋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스도를 좋아하는 삶은 늘 좋은 예를 선사합니다.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4)
성 금요일의 순교자들
③ 오메트르 신부
어떤 물건을 떠올리면 특정한 사람이 생각나는 경우가 있다. 오늘 소개하는 오메트르 신부는 '나막신'을 떠올리면 저저로 생각하는 인물이다.
우리나라에서 짚신이 가난의 상징이었듯이 프랑스에는 나막신이 그랬다. 오메트르는 1837년 프랑스 에젝에서 5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아주 가난하였고, 아버지는 조그마한 땅에 농사를 지으며 나막신을 만드는 일로 생계를 꾸렸다. 오메트르는 가난으로 인해 공부가 부족하여 당시 신학교에서 기본으로 요구하는 라틴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그래도 인내력이 뛰어난 그였던지라 나막신과 더불어 어려움을 극복했다.
집 근처에는 그에게 라틴어를 가르쳐줄 사람이 없어서 8km 떨어진 마을로 가서 배워야 했다. 그는 아버지가 만들어준 나막신을 신고 매일 걸어 다녔다. 새벽 4시에 일어나 걸어가서 라틴어를 배우고 집으로 돌아와 밤 10시가 넘어서 숙제를 하는 생활이 몇 달간 계속되었다. 이런 열심에 감동한 본당 신부가 그를 특별히 추천하여 마침내 신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일찍부터 선교사가 되기를 꿈꾸었던 오메트르는 묵묵히 준비에 들어갔다. 선교사는 많이 걸어 다녀야 하는 존재였기에 그는 방학 때와 개학 때 일부러 걸어 다녔다. 72km나 되는 거리를 나막신을 신고 이틀에 걸쳐 걸어서 왕복했다. 그의 삶이 이러하니 동료 신학생들도 '오메트르'하면 '나막신'을 떠올렸다. 오메트르는 부제품을 받을 때까지 나막신을 신고 다녔기에, 그가 부제가 되어 새 신발을 마련하자 장난스런 친구들이 오메트르의 나막신을 신학교 나무 아래 묻어주는 장례식을 치러주었다.
오메트르는 26살에 신부가 되어 1863년 조선에 입국하였다. 그러나 3년에 채 안 되어 병인박해가 일어났고 나막신으로 단련된 그이 '걷기'는 빛을 보지 못했다. 그대로 말은 어느 정도 익힌 상태에서 체포되었으므로 포도청에서 한 최후 진술이 남아 있다.
"저는 독자적으로 조선에 입국했습니다. 비록 매를 맞다가 죽을지라도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형벌을 받으면 좋고 좋습니다. 이버에 모질고 잔인한 형벌을 달게 받으면 당연히 뒤 세상에서 덕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어도 다시 아뢸 말씀이 없습니다.
오메트르 신부는 성모신심이 깊어서 성모승천 대축일에 죽기를 희망했었다. 비록 그 소원대로는 아니지만 성 금요일인 1866년 3월 30일 갈매못에서 순교하여 더 큰 영광을 받았다. "아버지께서야 당신께 청하는 이들에게 좋은 것을 얼마나 더 많이 주시겠느냐?"(마태 7,11)는 말씀이 저절로 생각난다.
-김정환 신부. 내포교회사 연구소-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115)>
아름다운 가보
남편인 '에드 쿼크'와 부인인 '조안 쿼크'는 미국 코네티컷 주에서 조용히 노년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우체국 직원으로부터 엽서 한 장을 전달받게 됩니다.
그 엽서는 고모님께서 보내신 것이었습니다. 바다로 놀로 갔던 고모님이 이들의 안부를 묻는 일상적 내용이었죠.
"바다에 잘 도착했으니 열려하지 말고 졸업식 잘해."라는 짤막한 사연이 적힌 평범한 엽서 한 장..
이 엽서에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이 엽서가 53년이 지나서야 부부에게 전달되었다는 것입니다.
1963년 소인이 찍힌 이 엽서가 어떻게 2016년이 되어서야 수신인에게 배달되었을까요?
어느 날 우체국에 근무하던 한 직원이 53년이 지나도록 배달되지 않은 엽서 한 장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미 한참 세월이 지났으니 무심코 폐기 처분될 수도 있었을 이 엽서를 이 직원은 수신인에게 전해 주기로 결심합니다. 53년 전 엽서에 적힌 수신인이 지금은 어디에 살고 있는지 백방으로 알아보던 끝에 결국 코네티컷 주에 살고 있는 쿼크 씨 부부를 찾아낸 이 직원.. 그런데 이 직원은 엽서만 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본인의 잘못도 아닌데, 우체국에서 이런 실수를 한 것에 대해 마음 깊이 사과드린다는 내용의 편지를 이 부부에게 전했던 것입니다. 우체국 직원의 진심 어린 노력과 편지에 쿼크씨 부부는 감동을 받고, 53년 만에 받게 된 이엽서를 집안의 가보로 남기기로 결정합니다. 이런 사연이 담긴 엽서라면 충분히 가보가 되고도 남을 가치가 있지 않을까요?
얼마 전 해외 화제가 되었던 이 사연을 읽으면서 이 엽서는 쿼크씨만의 가보가 아니라 어쩌면 지금의 우리가 후손들에게 남겨 줘야 할 가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크고 화려한 것만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받는 사회, 명백한 잘못을 하고도 아무도 결코 사과하지 않는 우리 사회에서 절실한 것은 엽서 한 장에 담긴 선명한 책임감과 성실함입니다.
비록 엽서에 찍힌 소인은 시간과 함께 희미하게 사라져도, 우리 마음에 찍힌 '진실'소인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또렷하게 남아 우리 사회의 아름다운 가보로 남길 기도해봅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마음은 하늘에 두고
몸은
이 땅을 일구어
내가 먼저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함께하는 이야기 마당>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도원로 41에 둥지를 튼 도원 성당, 아직 주춧돌도 자리 잡지 못한 창고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 뵌다. 어설픈 집이라 하느님께 죄송하지만 하느님이 이곳으로 자리 잡아 주셔서 새로운 성전을 짓고 나래를 펴려 한다.
전에는 복숭아꽃이 단지를 이룬 때도 있었는데, 지금은 배꽃으로 바뀐 곳도 있다. 하지만 도원이라는 말을 많이 쓰고 있는 걸 보면 그래도 복숭아꽃이 이기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성당도 도원성당으로 불리고 있다.
자녀가 결혼을 하면 분가를 시키듯 전부터 조치원 성당도 분당한다는 말이 있었는데,막상 딴살림을 차리고 보니 처음에는 허탈한 생각도 들고 자꾸만 조치원성당 생각이 났다.
도원성당은 과일 창고를 자리 잡고 사무실, 성물방, 회합실 모두 비닐하우스에 차려져 교회 살림을 한다. 다른 성당도 새로 새로 시작하면 우리 성당과 마찬가지겠지라는 생각을 해 본다.
조치원 성당에 어느 성전 건립이 다하면서 물품을 팔며 도움을 청하러 오는 성당이 더러 있었다. 막상 우리 도원 성당이 그런 상황이 되고 보니 그때 도움을 청했던 그 성당 교우님들 생각이 났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다. 황소걸음이지만 꾸준히 쉬지 않고 걸으면 언젠가는 성전 건축공사가 완성되는 날이 오겠지라는 생각으로 부푼 희망을 가져 본다.
군인들과 함께 생활하시다 처음으로 도원 성당에 발령받아 오신 주님 신부님, 우리 교우들한테 성전건립비 내라는 소리를 차마 못하시고, "많은 협조 부탁합니다." 하며 씨익 웃으시는 표정이 안쓰러울 때가 많다.
우리 교우들은 한 푼이라도 모아 건립비를 만들려고 성당 옆 조그만 텃밭에 고구마, 파, 상추, 등을 가꾸고 있다. 대건회에서는 남의 매실밭을 빌려 가꾸어 수확하고 있다.
신부님과 우리 교우 모두는 똑같은 마음으로 하루 속히 성전이 건립되어 세종시 연서면 도원성당 하면 누구나 다 찾아올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있다.
성전이 순조롭게 완성되어 서로 간에 신앙심을 북돋우고 친교하며 성전을 내 집처럼 생각하고 함께 기도드릴 수 있는 그날이 올 때까지 돌보아 주시고 보살펴 주시기를 하느님께 청해 본다.
-남옥순 도미니카/세종 도원 성당 -
李白(이백) 시 모음 중
山中問答(산중문답)
왜 산에 사느냐
問余何事栖璧山(문여하사서벽산)
왜 산에 사느냐 묻길래
笑而不答心自閑(소이부답심자한)
웃기만 하고 아무 대답 아니했지.
桃花流水杳然去(도화유수묘연거)
복사꽃잎 아득히 물에 떠 가는 곳
別有天地非人間(별유천지비인간)
여기는 별천지라
인간 세상 아니라네
望廬山瀑布(망여산폭포)
여산폭포 바라보며
日照香爐生紫煙(일조향로생자연)
향로봉에 햇살 들어
붉그레 안개 피어는데
遙看瀑布掛長川(요간폭포괘장천)
멀리 폭포 바라보니
어허 냇물이 걸려 있네.
飛流直下三千尺(비류직하삼천척)
날아 흘러 곧바로
삼천 척을 떨어지니
疑是銀河落九天(의시은하락구천)
구만리 하늘에서
은하수가 쏟아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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