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6년 주보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2016년 7월 3일(나해)

모든 2 2016. 7. 3. 22:30

신합덕성당(당진지구)

본당 설립 : 1960.11.18 / 주보성인 : 성 김대건 안드레아

 

+ 마태오 복음.10,17-22

 

<너희는 나 때문에 총둑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어떻게 말할까,무엇을 말할까 걱정 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말씀의 향기>

 

"혹 무슨 일이 있을지라도 부디 삼가고 극진히 조심하여 위주광영(爲主光榮하고 조심을 배로 더하고 더하여라."

(성 김대건 신부님의 스물한 번째 편지에서) - 이원호 베네딕토 온양신정동 주임-

 

  성 김대건 신부님의 삶에서 우리에게 신앙의 삶이 무엇인가를 묵상하게 한다. 그분의 삶 안에는 많은 사건들과 과정들 그리고 여러 만남들이 있었고,그 안에서 발생되었던 예기치 못한 여러 상황들과 어려움들과 위험들을 어떻게 받아 들이셨고 헤쳐 나가셨는지 목상하게 된다. 그분께서는 다가오는 어려움과 위험과 도전 앞에서 피한다든가 세상의 흐름과 타협한다든가 편승한다든가 하는 모습이 아니셨다. 철저히 주님을 따른 신앙의 삶이셨다.

 

  그분께서는 하느님과 함께 주어진 상황과 사건들, 특히 그분을 박해하는 사람들과 많은 씨름ㅇ 하셨을 것이고 이를 통해서 그분의 신앙은 한층 더 깊어지고 순수해지셨을 것이다. 그래서 그분의 삶 안에서 아루어진 많은 것들을 하느님의 섭리와 신앙의 통찰 안에서 이해하셨을 것이고, 그렇게 하심으로써 그분의 인격은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더 깊게 강화되고 변화되었고,하느님을 향한 그분의 끊임없는 사랑은 결국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스스로 하느님께 바치심으로 완성하셨음을 본다.

 

  순교가 맹목적인 복종으로 아루어질 수 있는 일이기보다는,주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이해와 그 말씀을 자기의 것으로 삼지 않는 한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아울러 주님의 말씀이 자신의 삶 안에서 늘 새롭게 느껴지지 않고서는 그 힘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신앙의 삶은 지루하고 안이하고 단순한 요령의 길이 아니고 끊임없이 노력을 하지 않는 한 이루어질 수 없고 신앙 자체가 진실함과 순수함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기에,성실과 정직과 진리를 위해 극단의 조심과 온갖 노력이 필요함을 성인께서 가르쳐 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성인의 삶을 통해서 비록 우리의 삶이 힘들고 어렵고 지옥과 같은 부조리로 절망과 불안해지는 상황과 심지어 죽음에서도 신앙으로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게 한다.

 

  성인뿐만 아니라 모든 순교자들의 순교는 우리에게 하나의 커다란 놀람으로 이끈다. 박해로 피멍이 든 얼굴과 만신창이가 된 그분들의 모습에서 숨겨진 위대하고 강한 빛을 드러내고 비추기 때문이다. 이러한 빛은 하느님께 성실하고 경건하신 그분들이 모습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강하게 비추고,그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형언할 수 없는 그분들의 거룩함에 강하게 느끼게 해 주시기 때문이다. 이 놀라움이 비로 빛의 선물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놀람의 은총 안에서 믿음의 힘을 부여받는다. 성인과 순교자들의 순교를 통해 우리에게 드러내 주신 하느님의 현존과 거룩하심과 선하심과 자비하심이 우리 모두에게 다가오는 강한 빛이 되어 믿음의 놀라움으로 깨닫게 되길 기도드린다.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5)

성 금요일의 순교자들

④ 위앵 신부

  조선에 들어와 활동하다가 순교한 프랑스 선교사들 중 가장 짧은 기간을 사신 분이 위앵 신부다. 1865년 19살에 조선에 들어와 9개월을 활동하다가 30살에 순교한 젊은이였다.

 

  위앵은 1836년 프랑스 기용벨에서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본당 신부의 권유로 신학교에 들어갔고,어려서부터 보던 '선교 잡지'에 매료되어 선교사의 길을 가기로 결심했다. 그 길에 장애도 많았다. 위앵이 교구 신부가 되면 식복사를 하려고 독신으로 사는 누나가 기다리고 있었고,화재로 집이 다 타버리자 아버지는 아들이 교구 신부로서 가까이 있어 주기를 원했다. 위앵은 고민 속에 갈등하다가 처음의 결심대로 선교사의 길에 들어갔다.

 

  1864년 6월 그는 조선으로 발령받았다. 당시 조선은 입국하면 살아나올 수 없는 '순교자의 나라'로 알려져 있었는데 그 발령에 위앵 신부는 진심으로 기뻐하며 이렇게 썼다.

 

  이제 되었습니다. 제 미래가 결정되었습니다.! 조선이에요. 조선 만세! 저의 전 생애를 바치고 일을 하라고 제가 곧 보내질 곳이 바로 거기예요. 그리고 만일 좋으신 하느님께서 원하신다면  거룩한 복음의 증인으로서 제 피를 쏟을 수도 있을 곳이 바로 거기예요."

 

  당시 선교사들은 '죽음'을 기뻐한 것이 아니라,단 한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다가'죽음을 맞이하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로 기뻐하였다. 위앵 신부 역시 그 기쁨을 안고 조선에 입국했는데 실제로 단 한 번의 교우촌 방문을 마치고 순교했다.

 

  그는 1865년 5월 충청도 내포지방으로 입국했고, 언어를 배우기 위해 황무실(충남 당진시 합덕읍 석우리)교우촌으로 보내졌다. 거기서 교우들과 함께 지내며 7개월 정도 말을 배운 후 1866년 2월 말 처음으로 주변 교우촌들을 방문했다. 방문이 다 끝나기도 전에 병인박해가 일어나 3월 11일에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고는 3월 30일 성 금요일에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하였다. 조선에 들어온 지 9개월이 채 안 된 상태였다.

 

  이날 갈매못에서 다섯 분이 순교하셨는데 그 모습이 대조적이었다. 다블뤼 주교와 황석두 루카 복사는 사형수들에게 주는 마지막 음식을 웃으며 드셨다. 오메트르 신부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고, 장주기 요셉 회장은 자세한 묘사가 없다. 반면 위앵 신부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이에 대해 위앵 신부의 전기 작가는,"이러한 것들이 우리에겐 더 매력적일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들과 더 가깝기 때문이다."라며 친근감 있게 받아들였다. 해석은 누구나 자유롭게 할 수있겠으나 그 눈물의 진짜 이유는 본인과 하느님만이 아신다. 그럼에도 변함없는 사실은,위앵 신부는 전 생애를 바치기 위해 조선에 왔고,그 기간이 길든 짧든 소원대로 되었다는 점이다. 참 부러운 삶이다.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

 

 

<이충무의 행복나침반(116)>

 

나 말고 다음 사람부터

 

  새 직장에 취업한 지 한 달쯤 지난 어느 날 '만철'씨는 초등학교 동창 '용진'씨와 만나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마음 편한 친구이다 보니 만철 씨는 그동안 회사생활을 하면서 힘들었던 일들을 용진 씨에게 털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용진 : 어때? 회사 생활은 재미있나?

만철 : 다 좋은데'신고식'때문에 힘들어!

용진 : 신고식? 신입사원 길들이기?

만철 : 말도 마! 매일 밤 선배들과 술 마셔야 돼.

용진 : 넌 선배가 되면 절대 신고식 같은 거 하지 마라.

만철 : 왜? 내가 당한 게 억울해서 나도 그대로 할 거야.

용진 : 야,그럼 너도 똑같은 사람 되는 건데?

만철 : 나까지만하고 그 다음에 안 하면 되지!

 

   "아니, 왜 나만 당하고 끝나야 돼?" 살다 보면 '만철'씨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내가 힘들었던 다른 사람에게는 그 힘든 일을 행하지 않는 것이 초등학교 시절 배웠던 바른 생활 매뉴얼일텐데, 현실은 늘 그 매뉴얼처럼 살아지지만은 않습니다.

 

   분명히 당하는 입장에서는 이런 일을 도대체 왜 하는지 도무지 납득이 안 갔음에도,입장이 바뀌면 본인도 모르게 그 불합리한 일을 반복합니다. 사람들은 고통을 기억하기보다 고통을 당한 자신의 처지를 더 먼저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처지가 바뀌면 자신이 당한 만큼의 그 고통을 되갚아 주려고 하는 한,현실 속에서 불합리한 관습은 결코 사라지지 않게 됩니다 누군가 그 관습을 언젠가 없애야 하긴 하지만,그게 바로 나 자신부터여야 하는 걸 억울해 한다면 과연 그 고통이 극복될까요?

 

   사실 억울할 수 있습니다. 당한 아픔이 너무 커서,상처가 너무 깊어서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아픔이 계속되는 걸 지켜보는 건 더욱 끔찍한 일은 아닐까요? 나의 이기적인 생각으로 누군가 이 순간 그 고통이 대물림 된다면 과연 그게 보상과 위로가 되는 일일까요?

 

   예수님은 자신이 그 불합리한 모순과 고통의 마지막 사람이 되시길 원하셨고,그 선택으로 우리의 어리석음은 용서받았습니다. 이제 우리가 불합리한 모순의 마지막 종결자여야 합니다. 그것이 예수님의 사람에 답하는 우리의 아름다운 용기입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내 마음과 귀와 눈이 멀어지면

나무와 같이 뿌리를 내리고

입마저 닫고

맑은 향기를 맡으며

눈부신 여름의 꽃처럼

피어나겠습니다.

그렇게 한 자리에 오래도록

서 있겠습니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하느님이 네 아버지시다 -카를로 케레토 "보이지 않는 춤"중에서-

 

   믿는다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솔직히 말해 사랑이신 하느님에게서 문제의 해결책을 얻지 못한다면 해결할 수 없는 일일 것입니다. 그 해결책은 성령이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이신 성령께서는 '어디서 오시는지 또 오디로 가시는지'를 모르지만 오순절에 예루살렘의 문들을 강타하여 뒤집어 놓은 바람과 같습니다. 또 성령께서는 메마른 땅에 스며들어 비옥하게 만드는 물과 같습니다. 또 얼어붙은 내 사지를 덥혀 생기를 되찾게 하는 태양과 같습니다.

 

  하느님의 사랑,하느님의 풍요성,하느님의 창조력이신 성령께서 나를 찾아오시어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이 네 아버지시다." 처음에는 그 말을 아주 약하게 건네십니다. 다음에는 좀더 세게,그 다음에는 더 세게,이런 식으로 종말까지 계속하십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증인과 같으십니다. 그분은 강하고도 부드럽게 행동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으로서 내게 '형언할 수 없는 탄식'과 더불어 진리의 빛을 가져다 주심으로써,나에게 가장 본질적인 기도-'내 아버지'-를 촉구하시며 아직 무능한 나를 위해 '아버지'께 도움을 청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결코 지치심이 없이 가시고 오시고,또 돌아가셨다 다시 돌아오시는 내안에 현존하는 증거의 영이십니다. 그분은 사랑이시고 그 사랑은 결코 지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그분에게 소리치고 싶으실 것입니다. 하느님이 아버지시라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입니다.

 

  그분은 밖으로 나가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지칠 때까지 저주를 퍼붓도록 내버려 두십니다. 그런 다음 갑자기 비둘기 형상으로 돌아오시어 지칠 대로 지치고 형편없이 무너진 당신 위에 내려앉아 계속해서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은 네 아버지시고 너는 그분의 자녀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관점에서 현실을 바라볼 때 하느님이 아버지시라고 믿기는 어려운 일이나 우리는 그토록 자상한 증인으로 감싸여 살고 있기에 그 사실을 '믿지 않기'는 더 어렵습니다. 머지않아 굴복하게 될 쪽은 우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