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 신방동 성당(천안 서부지구)
본당 설립:1998년. 2.2/주보성인:예수 성심
+ 루카 복음. 7,36-8,3 <또는 7,36-50>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때에 바리사이 가운데 어떤 이가 자기와 함께 음식을 먹자고 예수님을 초청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그 바리사이의 집에 들어가시어 식탁에 앉으셨다. 그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하나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왔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가 그것을 보고,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대는 여자가 누구이며 어떤 사람인지, 곧 죄인인 줄 알 터인데, ' 하고 속으로 말하였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시몬아, 너에게 할 말이 있다."시몬이 "스승님, 말씀하십시오." 하였다.
"어떤 채권자에게 채무자가 둘 있었다.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지고 다른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둘 다 갚을 길이 없으므로 채권자는 그들에게 빚을 탕감해 주었다. 그러면 그들 가운데 누가 그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더 많이 탕감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옳게 판단하였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셨다. "이 여자를 보아라. 내가 네 집에 들어왔을 때 너는 나에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가 들어왔을 때부터 줄곧 내 발에 입을 맞추었다. 너는 내 머리에 기름을 부어 발라 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 여자는 내 발에 향유를 부어 발라 주었다.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그러자 식탁에 함께 앉아 있던 이들이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이르셨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그 뒤에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그 복음을 전하셨다. 열두 제자도 그분과 함께 다녔다.
악령과 병에 시달리다 낫게 된 몇몇 여자도 그들과 함께 있었는데, 일곱 마귀가 떨어져 나간 막달레나라고 하는 마리아, 헤로데의 집사 쿠자스의 아내 요안나, 수산나였다. 그리고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 그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말씀의 향기>
사랑에 무딘 마음아 - 정필국 베드로 유구 주임
5월 성모성월의 끝자락에 어머님이 선종하셨습니다. 기력이 쇠잔해져 혼미한 상태에서도 아들 신부를 기다리느라 눈을 감지 못하고 애타는 심정으로 저를 기다려 주셨던 어머니의 간절하고 절박했던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들 신부의 기도와 성사를 받으시고 사죄의 말씀과 사랑 고백을 받으시고는 길고 고달팠던 인생여정을 마무리하시고 마지막 굵은 눈물 한 방울로 모든 말씀을 대신하시며 고요히 눈감으셨습니다.
제가 어머니의 선종과 일생을 돌이켜보면서, 인간이 아니 제가 얼마나 이기적인 동물이었는지를, 얼마나 사랑에 더디고 둔한 자식이었는지를 새삼스레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아울러 부모님을 여읜 자식을 왜 죄인이라 하는지도 어머니의 사랑과 보살핌을 받으면서도 사목한다는 핑계로 저 좋을 대로만 살았던 이기적인 사랑과 효성이 그저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아들을 사제로 봉헌하고 지켜주기 위해 분골쇄신, 노심초사하셨던 고달픈 여인의 삶, 어머니로서의 인새역정을 오롯이 하느님께 믿음을 두고 버텨 오셨던 어머니께 그저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할 뿐입니다.
오늘 복음서에서 '죄 많은 여자'라 일컬어지던 여인은 주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았습니다. 크나큰 은혜를 입은 그 여인은 그 후 누구보다 충직한 주님의 제자로서 그분의 뒤를 따랐고, 오늘날까지 회개(悔改)의 모범으로 회자되고 있습니다. '많이 용서(사랑) 받은 만큼 많이 용서(사랑)하게 된다'는 것은 복음의 진리입니다.
이 말씀에 비추어 제 경우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수많은 사람들의 은혜와 도움을, 누구보다도 어머니의 사랑을 그렇게나 극진히 받고서도 어쩜 그리 무디고 더디고 배은 했던지, 그러고 보면 자신이 빚진 존재임을 망각하고, 그저 철딱서니없이 받으려고만 하며 보챘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했던 듯합니다. 바로 내 앞에서, 내 곁에서, 평생을 한 번도 지극한 사랑을 베풀어 주시는데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갚아드리지 못하면서 무슨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나눔과 베풂과 희생과 섬김을 입만 열면 그렇게도 뻔뻔스럽게 떠들어 댔는지 그저 부끄러움뿐입니다.
세상에 올 때부터 빚을 진 존재 이건만 무에 그리 잘났다고 기고만장하고 온갖 갑질을 해댔었는지 민망할 뿐입니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을, 들리지 않는 그분의 은총을 깨닫는다는 일이 이 아둔한 몸에게는 천만부당한 일일 수밖에요. 어머님은 고요히 눈감으시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들 위해, 자식 위해 다 바치시고 하늘로 오르셨습니다. 더 이상 아들에게 짐이 되어서는 안 되겠다던지 그렇듯 불현듯 조용히, 편안히 떠나셨습니다.
과연 언제쯤에나 자신을 알고, 주제를 파악하고 죄를 살피고 사랑과 용서를 깨달을는지.. 어머니의 용서와 영원한 복락을 앙망하고, 더할 수 없이 많이 받은 사랑과 용서와 은혜를 제가 베풀 때인 듯합니다. 받을 수 있음을, 베풀 수 있음을 기쁨과 은총으로 여기면서 말입니다. 새삼 모든 믿는 이의 통공과 은혜를 느끼며 주님의 살을 본받으려 마음을 추슬러 봅니다.
감사합니다.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2)
성 금요일의 순교자들
① 다블뤼 주교
"찬미 예수 1" 조선 후기 박해시대에도 교우들이 사용하던 인사말이다. 예전에 편지를 쓸 때면 이 글 귀를 첫머리에 쓰고 나서 본론으로 들어가곤 했다. 이런 전통은 어디서 왔을까? 그 연원은 알 수 없으나 조선으로 파견된 선교사들은 늘 이런 형식으로 편지를 썼다. 비록 선교사들마다 선화는 글귀는 달랐지만, 그중에 단연 돋보이는 글귀는 다블뤼 주교님이 사용하던 "예수님을 가진 자가 모든 것을 가진 자다!"이다. 그분은 신학생 때부터 이 글귀를 모든 편지의 첫머리에 썼다. 편지에 이런 말을 쓰는 것과 삶을 그렇게 사는 것은 어찌 보면 별개 일 수도 있겠지만, 다블뤼 주교님은 정말로 그렇게 사셨고 그분의 삶에서는 예수님이 전부였다.
다블뤼 주교님은 1818년 프랑스 아미앵이 신심 깊은 가정에서 태어났다. 예수회 선교사가 되기를 꿈꾸었으나 건강이 나빠 받아들여지지 않아 처음에는 교구 신부로 살아갔다. 그런 가운데에도 선교에 대한 열망이 식지 않아 아시아 선교를 담당하는 파리외방저교회에 입회하였다. 그렇게 선교사가 되어 발령받은 곳이 '순교자의 나라'로 알려진 조선이었다.
건강이 좋지 않다는 우려와 달리 그분은 박해시대 선교사들 중 오랜 기간인 21년 동안이나 활동하였다. 다른 선교사들은 모두 순교하거나 일찍 병으로 선종했기에 짧게는 3개월, 길어야 10년 정도가 활동의 전부였다. 다블뤼 주교님은 오랫동안 전국을 돌며 교우들을 상대로 활동하셨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업적도 남기셨다. 조선 순교자들의 전기와 조선 역사 초고를 작성하여 프랑스로 보내셨는데 우리 교회에 더없이 소중한 자료들이다. 이 자료들이 없었으면 박해시대 우리 교회 역시는 절반 이상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을 것이다.
1866년 뜻하지 않게 큰 박해가 일어났다. 그때 다블뤼 주교님은 내포 신리(충남 당진시 합덕읍)에 있다가 포졸들에게 체포되었다. 서울로 이송되어 문초와 형벌, 그리고 사형선고를 받았다. 마침 고종 임금이 결혼식을 앞두고 있던 터라 서울 인근에서 피를 흘리면 좋지 않다 하여 멀리 갈매못(충남 보령시 오천면 영보리)을 보내졌다. 예정대로라면 다블뤼 주교님은 3월 31일에 처형되어야 했다. 하지만 다블뤼 주교님이 강력히 항의하며 하루를 앞당겨 죽여 달라하니 포졸들이 "곧 죽을 놈이 죽여 달라"고 한다며 비웃었다. 그래도 이 청이 받아들여져 3월 30일 성 금요일에 형이 집행되었다. 그날 다블뤼 주교님은 사형수에게 주는 마지막 음식을 "잡수시며 매우 즐거운 마음이요, 웃으시며 즐거워하니, 보는 사람들이 별일이라"할 정도로 기쁘게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셨다.
선물을 주어도 받는 사람이 싫으면 선물이 아니다. 다블뤼 주교님은 예수님이 주신 선물을 기꺼이 받으셨다. 그래서 그분은 그 글귀 그대로 "모든 것을 가진 자"가 되셨다.
-김정환 신부/내포교회사연구소-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113)>
아재의 기도, 받아 주실 거죠?
살아가면서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얻게 되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애를 쓰지 않고도 손에 쥐었으니 기분이 참 좋아야 하는데, 이것은 거꾸로 하나도 반갑지 않습니다. 바로 '나이'입니다.
어느 순간 갑자기 출석부에 깨알같이 적힌 제자들의 이름들이 침침해 보일 때, 특별히 밤을 새워 일한 것도 아닌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눈 밑 다크서클 때문에 판다곰으로 변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때, 예기치 않던 나이의 무게로 마음은 멍투성이가 됩니다.
노력하지 않고 얻게 된 '나이'의 무게를 벗어버리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며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우리 인생인지도 모릅니다.
염색도 하고, 피부의 주름 좀 펴보기 위해 영양크림도 바르고,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옷도 과감히 입어 보기도 하죠.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나이를 감출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썰렁한 유머감각입니다. 농담 한마디를 해도 최신 감각의 트렌드와는 거리가 먼 구닥다리 스타일이니, 듣는 사람들이 웃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무척이나 당황스러워합니다.
요즘 그런 철 지난 유머를 재미있다고 자꾸 말하면 어느새 그 사람은 '아재'라는 이름표를 가슴에 달게 됩니다. '아재'는 '아저씨'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아줌마 나이가 되었어도 '아줌마'라 불리면 기분 나빠지듯, 아저씨임에도 아재로 불리기를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겁니다.
영락없이 아저씨가 돼버린 저는 그래서 요즘 함부로 누군가에게 웃음을 주려는 시도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재 개그'로 괜히 분위기만 썰렁하게 만들어 제 스스로 아제임을 증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행히 아재에게도 편하게 허락된 웃음의 시간이 있습니다. 기도하는 시간이 바로 그때입니다. 하느님께 기도할 때면 아무런 두려움 없이 어린아이처럼 수다스러워집니다. 기도하다 보면 누군가를 미워하던 마음도 어느새 아재 개그로 승화돼 사라져 버립니다.
기도 시간은 심각한 것만 말씀드리는 무거운 시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마음에 난 상처와 미움을 자신만의 웃음코드로 치유하는 신나는 시간일 수 있습니다. 철 지난 유머감각이라도 한없이 밝은 미소로 받아 주시는 분... 오늘도 이 아재의 기도, 받아 주실 거죠?
-이충무 바오로/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오늘 아침
이 공기와 빛
한 잔의 물
깃들 수 있는 곳과
나갈 수 있는 곳
일상에서 일생으로
이끄시는
주님!
찬미합니다.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함께하는 이야기 마당>
첫 영성체의 설렘
안녕하세요. 저는 이보운 엘리사벳입니다. 오늘은 제 인생에서 아주아주 특별한 날입니다. 바로 빵과 포도주의 모습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처음으로 받아 모시는 날입니다.
첫 영성체를 하기 위해 5주 동안 거의 매일 성당에 와서 교리를 했고, 오래전부터 계획되어 있었던 가족여행도 취소했습니다. 제가 제일 좋아하는 수영도 잠시 쉬고 있습니다. 며칠 전부터 계속 코피가 나서 가족들이 걱정하고 있었지만, 저는 힘들지 않고 재미있기만 했습니다. 심지어 엄마께 "첫 영성체 교리 끝나도 매일 성당에서 놀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요?"하고 물어보았습니다.
첫 영성체 교리를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교리 골든벨이었습니다. 보좌 신부님께서 화면에 문제를 띄워 주셨는데, 그 답이 묵주기도였습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묵주기도요!" 학고 소리쳐 버렸습니다. 그래서 친구들과 선생님들이 깔깔깔 웃었고, 결구 그 문제를 모두 맞출 수 있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것은 친구들과 사제관에 가본 것입니다. 보좌 신부님께서 생활하시는 곳을 직접 가본 것은 특별한 추억이 되었습니다. 늘 웃는 얼굴로 우리와 잘 놀아주시는 신부님께 그런 소박한 곳에서 사신다니 정말 존경스러웠습니다.
세 번째로 기억에 남는 것은 율동 연습이었습니다. 우리는 '야곱의 축복'이라는 곡에 맞춰 율동을 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지금은 다를 재미있게 잘합니다. 어색했던 친구들과 더 친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첫 영성체에 큰 힘을 쏟고 계시는 수녀님과 선생님들, 그리고 맛있는 간식과 음식을 준비해 주신 친구 어머니들께도 감사드리며, 아침저녁으로 기도해 주시는 아빠 엄마께도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일들 덕분에 예수님께서 제 마음에 기쁘게 오실 것 같습니다.
이보운 엘리사벳/노은동 성당
대전 교구 시노드 기도문
+ 지극한 자비로 구원의 역사를 이끌어 가시는 하느님 아버지
저희 선조들이 스스로 신앙의 길을 찾게 이끌어주시고
순교자들의 굳건한 믿음으로 교회를 건설하게 해 주셨으니
감사와 찬미를 드리나이다.
*저희는 주님의 자비와 순교자들의 믿음을 기억하며
주님 뜻에 맞는 교회로 늘 쇄신되기를 원하오니,
교구 설정 70주년을 바라보며 개최한 교구 시노드가
저희 교구민들이 주님의 한가족임을 느끼며
성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은총의 여정이 되게 하소서.
#주님 말씀을 듣고 실천하고 전하는 마음을 북돋아주시며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신 주님을 기억하면서
저희 이웃과 모든 피조물을 사랑하고 돌보는 길을 찾게 하시고
저희가 나누고 행하는 모든 일에서 주님을 찬미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대전교구의 주보이신 루르드의 성모 마리아 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한국의 모든 순교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2015년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
천주교 대전교구장 주교 유흥식 라자로 인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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