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성당(논산지구)
본당 설립:1972.12.9 / 주보성인:성모 성심
+ 루카 복음. 9,11-17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말씀해 주시고 필요한 이들에게는 병을 고쳐 주셨다.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열두 제자가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마을이나 촌락으로 가서 잠자리와 음식을 구하게 하십시오. 우리가 있는 이곳은 황량한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시니 제자들은 "저희가 가서 이 모든 백성을 위하여 양식을 사 오지 않는 한, 저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사실 장정만도 오천명 가량이나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대충 쉰 명씩 떼를 지어 자리를 잡게 하여라." 제자들이 그렇게 하여 모두 자리를 잡았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그것들은 축복하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군중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
<말씀의 향기>
오천명의 굶주린 영혼 앞에서 주님을 바라봅니다. - 박진홍 요셉 청소년 사목국 국장
어느 날 운전 중에 틀어 놓은 라디오세서,패널로 등장한 경제 전문가의 이야기가 저를 놀라게 한 적이 있었습니다. 내용은 VR(가상현실 : virtual rdality)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단순히 게임 도구로만 생각했던 VR이 오늘날 우리 산업에 있어서 교육, 의료, 건설, 관광, 훈련 등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 경제 전문가는 여러 가지 사례를 들어가며 각 산업 현장에서 가상현실이 어디에 어떻게 쓰일 것인지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백화점에 가서 옷을 사는 것이 아니라 미리 가상현실 안으로 들어가 직접 옷을 골라 입어 보고, 색상 디자인, 사이즈 등을 확인한 다음 주문할 수 있다는 것! 관광지를 직접 자기 않더라도 가상현실로 현장과 똑같이 둘러볼 수 있다는 등의 이야기였습니다. 다 아시는 이야기지요. 하지만 제가 무섭게 생각했던 것은 이것이 여과 없이 부정적인 모습으로 우리 청소년들과 만날지도 모르겠다는 두려움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두려움은 그로부터 불과 이틀 후, 바로 뉴스에서 만나게 되었습니다. 경기도 안양시 A고교 2학년 교실에서 점심시간에 VR 헤드셋을 이용해 가상현실 안에서 음란물을 시청하던 학생이 교사에게 적발되었다는 뉴스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이제 시작에 불과한 이야기일 겁니다.
이런 상상을 해 봅니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에 사는 a라는 친구와 캐나다에 사는 b라는 친구와 한국의 c라는 친구가 가상현실로 접속하여, 함께 프랑스의 에펠탑을 구경하러 가는 장면 말입니다. 그 안에서 서로 대화를 나누는데, 동시통역의 발달로 각자 자기 나라 말을 하면서도 대화에 전혀 어려움이 없는 가상현실의 세계, 참 편리하고 멋진 세상이 펼쳐질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세상에서 만약 가치관이 무너져 있다고 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미 우리는 사랑과 나눔보다는 돈과 명예가 더 우선되는 가치를 가진 세상에 살고 있으니 이 무서움은 더 실감이 납니다. 우리 청소년들이 무너질 대로 무너진 가치관이 지배하는 가상현실의 세계 안에서 우리 신앙이 이야기하는 가르침과 전혀 다른 가르침을 온몸으로 습득하게 된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습득하게 된다면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무서운 현실이 불과 몇 년 뒤의 우리를 향해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청소년들에게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저는 오늘 복음을 묵사하며,굶주린 영혼으로 울며 서 있는 5천 명의 청소년 앞에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달랑 들고, 황당한 표정으로 예수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이 유난히 크게 보입니다. 그리고 그 제자들에게서 제 얼굴을 봅니다. 주님, 우리 청소년들이 만나든 세상에서 저희가 하느님 나라를 이야기할 수 있게 해 주소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발표한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 사목교서 연재(2)
병인순교 150주년 기념 사목교서
사랑의 최고 증거인 순교 열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인류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셨습니다. 순교자들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으면서까지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 보입니다. 순교자들의 삶과 죽음은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그리고 가장 분명하게 드러내 줍니다. "제자가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죽음을 자유로이 받아들이신 스승을 본받고 피를 흘려 스승과 동화되는 순교는 교회에서 최상의 은혜로 또 사랑의 최고 증거로 여겨집니다."(교회 헌장, 42항)
우리는 순교자들의 모범을 따라 풍성한 구원의 열매를 맺기를 희망합니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인들의 씨앗"(「호교론」 50,13)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암울한 박해 시기에 신자들은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지금의 교회가 있을 수 있도록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희생하였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나모,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약 만여 명 순교자들이 밀알이 되어 백 배, 오백 배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우리도 순교자들의 모범을 따라 또 다른 밀알이 되어 인류의 구원을 위한 도구로 사용되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믿음이 겨자씨처럼 작지만 하느님께서는 더욱 크게 만들어 당신의 구원 사업의 도구로 쓰실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애덕 실천
박해 시기의 한국 천주교회는 주님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비록 제한적이지만 고아와 과부 그리고 가난한 이를 돌보는 활동에 동참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각 교구마다 사회복지시설과 단체들이 하느님의 사랑을 가난한 이웃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통은 우리 신앙 선조들의 애덕 실천을 물려받은 결과입니다.
"우리가 언제나 복음의 아름다움을 적절히 드러낼 수는 없다 하더라도 없어서는 안 될 하나의 표지가 있습니다. 곧 가장 작은이 들을 위한 선택, 사회가 저버린 이들을 위한 선택입니다.(「복음의 기쁨」,195항) 우리는 우리와 더불어 살아가는 가난한 이들을 존중하고 그들이 선의와 경험을 소중하게 여겨야 합니다. 이러한 자세가 없다면 우리의 복음선포는 모래 위에 짓는 셈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선포하셨으며(루카 4,18 참조), '하느님 나라는 그들의 것이다'라고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루카 6,20 참조)
자비로운 공동체 형성
2015년 12월 8일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자비의 특별 희년을 개막하셨습니다. 2016년 한국 천주교회가 병인순교 150주년을 맞이하면서 자비의 특별 희년을 지내고 있는 것은 그 의미가 깊습니다. 순교자들은 박해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용서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죽음 앞에서도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의 섭리를 깊이 체험하였습니다.
우리는 순교자들을 본받아 하느님의 선하심과 온유하심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자비의 도구로 살아갈 것을 결심해야 하겠습니다. 올 한 해 동안 하느님의 자비가 우리들의 삶을 비추고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길로 이끄시도록 의탁해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특별히 주님의 자비에 주의를 기울여 우리 자신이 자비를 베푸시는 아버지의 뚜렷한 표지가 되도록 부름"(「자비의 얼굴」,3항)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께서 너에게 해 주신 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 일을 모두 알려라."(마르 5,19)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자비로운 사랑의 눈길로 보고 계십니다. 연민과 자비로 끝까지 용서하시는 하느님 아버지를 본받아 우리가 미워하는 사람들, 원수까지도 용서할 것을 다짐합시다. 우리는 하느님을 떠나 방황하고 있는 사람들이 하느님과 화해하고 용서와 만남의 기쁨을 얻을 수 있도록 봉사하는 역할에 성실할 것을 다짐합시다.
"자비는 교회 활동의 토대입니다. 교회의 모든 사목 활동은 온유함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그 온유함을 신자들에게 보여 주어야 합니다."(「자비의 얼굴」,10항) 신앙인들은 자비로운 삶을 통해 복음의 기쁨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7)
한국 교회의 수호자이신 성모 마리아와 그 배필이신 성 요셉,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한국의 모든 순교 성인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111)>
마음 없는 공간, 텅 빈 헛간
인생은 2인용 우산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귀가하는 길에 제자들과 동행하게 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어차피 혼자 자동차를 몰고 집에 가는데, 같은 방향으로 가는 제자들을 태워 주면 퇴근길이 한결 더 즐겁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연구실에서 이야기를 나눌 때보다, 자동차 안에서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편하게 들려줬습니다. 장소만 살짝 바뀌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마음의 문이 쉽게 열리는지 저는 그게 참 신기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일이었습니다. 그날도 몇몇 제자들을 태우고 퇴근길에 올랐는데 분위기가 참 낯설었습니다. 분명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나올 법도 한데, 제자들 모두는 고개를 숙이고 말없이 휴대폰 버튼을 쉴 새 없이 누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휴대폰에 너무 열중하고 있어 말을 건네기도 부담스러웠고, 설령 말을 걸어도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고 자꾸만 뚝뚝 끊기는 바람에 저마저도 차츰 말수가 적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서로를 더 잘 알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그렇게 사라지는 것이 참으로 속상했습니다.
몸은 한 공간 안에 함께 있어도, 서로의 마음은 그 공간을 초월해 각자 다른 곳에서 다른 사람과 만나고 있는 나의 제자들이 참 외로워 보였습니다. 차창 밖에 펼쳐진 초록의 나무와 파란 하늘을 그대로 흘려보내고 있는 그들의 이 순간이 안타깝게 느껴졌습니다.
휴대폰이 없던 시절엔 불편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외로움은 덜 했던 것 같습니다. 한 공간 안에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것은 완벽하게 그 공간을 현재 그 사람과 공유하고 있음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면 함께 추억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서로 한 자리에 모였어도 추억은 각자 만들 뿐입니다. 예전에는 연인끼리 커피를 마시면 서로 마주 보기에 바빴지만, 지금은 연인끼리 서로 각자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바쁩니다.
비가 내릴 때 홀로 우산을 쓰고 걸어가는 모습보다, 둘이 한 우산을 함께 쓰고 가는 모습이 훨씬 더 따뜻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비록 비를 완벽히 피할 수는 없어도, 서로가 마음의 체온으로 햇살을 기다리는 기쁨을 완성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이충무 바오로/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오래전 묻어둔
소망 하나
환한 믿음으로
활짝 피운 꽃
그 긴 기다림은
우리의 사명.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함께하는 이야기 마당>
성모성월의 향기
공경하올 동정녀
우리들의 어머니 성모님
이 푸른 계절에 저희는 구원역사 속 성모님을
기억하며 찬미합니다.
천사들이 전해 준 그 부르심을 받던 날
얼마나 두려우셨을까요?
저희도 그날의 성모님을 기억하며 부르심의
소명에 두려움 없이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드립니다.
아들의 수난과 고통을 바라보실 때의
성모님의 마음을 떠올리며, 어려움 속에서
성모님과 함께하는 묵주기도는 저희에게
가장 큰 위로입니다.
묵주 알 하나하나에 기쁠 때는 감사의 마음을 담고,
힘들고 괴로울 때에는 고통 속에서
도망치지 않을 용기와 믿음의 인내를 구하며
묵주기도 속 성모님을 만납니다.
고통의 순간순간마다 언제나 묵주기도로
저희를 위로해 주시는 성모님
특히 레지오와 함께하는 묵주기도 속에는
모든 단원들이 같은 지향으로 아픈 이들을 향한
간절한 마음을 담습니다.
묵주기도의 지향이 타인을 향한 사라의 기도가
되루록 저희도 그 안에서 성모님을 닮아가고
온전한 소통을 하며, 성모님의 따뜻한 손길이
더욱 가까이에서 함께 하심을 느낍니다.
레지오 단원이 아니었다면 몰랐을
가장 큰 은총의 선물입니다.
성모님을 깊이 생각하는 5월
주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일에
교만함으로 되묻지 않고
순명의 삶을 살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시길..
또 삶을 살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하시길..
또 삶의 어려운 순간순간마다
은총의 성지이신 성모님을 생각하면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저희를 지켜주소서. 아멘.
-김미순 플로라/노은동 성당-
첫 영성체의 하얀 기쁨 -이해인-
누가 나에게 가장 잊을 수 없는 선물을 받은, 가장 잊을 수 없는 크리스마스가 언제냐고 묻는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가 첫 영성체를 하던 해의 크리스마스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지금도 어쩌다 서울 혜화동 로터리를 지나게 되면 내게 아름다운 추억을 심어 준 혜화동 성당을 정다운 눈길로 바라보곤 합니다.
거의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기억은 생생하고, 아홉 살 먹은 소녀가 처음으로 예수님을 받아 모시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었던 12월의 그날, 유난히 날씨는 추웠지만 마음은 따뜻하게 느껴졌던-성탄절을 잊지 못합니다. 한 장의 빛바랜 사진 속에서 활짝 웃고 있는 어린 모습의 나와 옆의 동무들이 문득 그리워지기도 합니다.
늘 신비하게 보였던 하얀 고깔의 수녀님과 그분의 하얀 미소, 우리가 입었던 하얀 옷과 제 대위의 하얀 초, 신자들이 쓴 하얀 미사보, 성당에서 어린이들에게 끓여 준 하얀 떡국 등등 모든 것 다 하얗게 눈부신 기억으로 살아 있습니다.
그날 가장 큰 사랑의 선물이었던 예수님의 몸(밀떡) 또한 거룩하고 순결한 흰 기쁨으로 나를 압도하였습니다. 첫 영성체의 때의 기도는 무엇이나 들어주신다는 수녀님의 말씀에 난 구체적인 내용은 잊었으나 "앞으로 예수님을 닮은 가장 착하고 올 곧은 삶을 살겠습니다."는 결심을 봉헌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수녀원에서 해마다 성탄절을 지내면서 난 그토록 아름답고 순결했던 첫 영성체 때의 첫 결심을 다시 기억하며 행복해지곤 합니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라는 노래를 듣거나 부를 때면 눈이 오지 않았어도 눈나라에 서 있는 것처럼 하얗게 황홀했던 어린 시절의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며 훗날 주님이 불러 주신 사랑과 희망의 길, 좁은 길로 들어서길 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는 길이 힘겹게 느껴질 때도 그분이 함께 계심을 믿기에 마음 든든한 나는 지금껏 많은 성탄선물을 받았지만 첫 영성체의 선물만큼 아름답고 큰 선물은 다시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해인의 글 모음
<사랑할 땐 별이 되고> 중에서.
'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 > 2016년 주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중 제11주일 2016년 6월 12일(다해) (0) | 2016.06.12 |
---|---|
연중 제10주일 2016년 6월 5일(다해) (0) | 2016.06.05 |
삼위일체 대축일 2016년 5월 22일(다해)"성모 성월" (0) | 2016.05.22 |
성령 강림 대축일 2016년 5월 15일(다해) "성모 성월" (0) | 2016.05.15 |
주님 승천 대축일 홍보 주일 2016년 5월 8일(다해) "성모 성월" (0) | 2016.0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