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6년 주보

성령 강림 대축일 2016년 5월 15일(다해) "성모 성월"

모든 2 2016. 5. 15. 22:00

도고성당(아산지구)

본당 설립:1974.10.01/주보성인:성안드레아

 

+ 요한복음. 20,19-23 <또는 14,15-16.23-26>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말씀의 향기>

 

매일, 매 순간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며 기도하십시오! - 박성준 세례자요한 성령쇄신 봉사회 전담

 

  예수님께서는 지상생활 동안 성령으로 충만하신 분이셨고 성령과 함께 아버지 하느님의 일을 하셨습니다. 3년간의 공생활을 마치시고 이 세상을 떠나실 때가 되자 당신께서 성령을 제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바로 오늘이 약속하신 성령을 제자들이 받은 '성령 강림 대축일'입니다. 또한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후 예수님의 복음을 사람들에게 선포하기 시작하였고 예수님을 믿는 신도가 생겨났기에 오늘은 '교회의 탄생일'이기도 합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시다.' 할 수 없습니다."(1 코린 12,3)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분명 우리 교회의 원천이 누구인가를 깨닫게 하는 말씀이며 동시에 우리 신앙의 근본적인 주체가 누구인가를 다시금 확인시켜 주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참 신앙의 뿌리는 나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달려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는 우리 교회와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 자신들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몫이 있다면 그것은 분명 성령이신 하느님께 우리 자신들을 온전히 내어 드리는 삶이 신앙생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성령의 인도대로 살도록 불리움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의 절대적인 도움으로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진정 참 신앙의 길이며 참 행복의 길입니다.

 

  성령께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기고 인도하심에 따라 살아갈 때, 우리는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했던 제자들처럼 성령이 임하여 체험하고 변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의 깊은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그분의 죽음 앞에서 스승을 버려두고 도망을 갔으며, 죽음의 두려움으로 인해 다락방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후에는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게 주님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제자들은 성령 안에서 서로 다른 언어들로 말하게 됨으로써 모든 이가 하느님의 구원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성령이 계십니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이들에게 복음 선포를 할 수 있도록 변화시켜 주시고, 지역, 문화, 언어의 벽을 깨고 모든 이를 연결시키며 서로 하나가 되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우리는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통해 성령을 이미 받았습니다. 우리도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성령을 모시고 그분의 인도하심에 따라 좋은 변화의 삶을 살아가야 하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변화를 주시는 분도 성령이시며, 이끌어 주시는 분도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매일, 매 순간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며 기도하십시오.

  "오소서 성령님, 오시어서 저를 온전히 차지하소서!"

 

 

2016년 요한복음의 해

요한복음 이해하기(5)

 

  요한복음과 공관복음들의 관계에 관하여 여러 가지 연구 이론들이 있는데 오늘날 설득력을 얻고 있는 연구는 요한복음의 저자가 공관복음서의 자료들을 참조했지만 그 자료들을 사용하는 데 있어서 자신만의 방식을 취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독자적인 전승 자료들과 묵상들을 첨가하면서 새롭게 편집했다는 것이다.

 

  요한복음의 저자는 그러한 자료들을 다른 복음서의 저자들보다 더 큰 자신감을 갖고 자유롭게 서술한다. 이 자신감과 자유로움이란 예수님에게 이루어지는 구원 사건들을 일어난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들의 중요성을 파악하고 그것의 영적 의미까지도 깊이 있게 표현해 내는 것이다.

 

  요한복음의 신학

 

  요한복음의 저자는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조건이 그리스도를 알고 그분과 통교를 이루는 것임을 강조하면서 구원을 가져다주는 사건들의 깊은 의미를 설명하고자 한다. 그래서 저자의 관심은 오직 그리스도께만 집중된다. 그럼에도 요한복음의 독자들은 복음 안에서 다양한 신학적 주제들을 발견할 수 있다.

 

  ① 그리스도론

  구약시대부터 예고된 메시아로서의 '그리스도'는 요한복음에서 신앙 고백의 형식으로 여러 번 언급된다. 또한 바오로 서간처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의 고유한 호칭으로 언급되기도 하는가 하면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메시아라는 의미의 호칭 '하느님의 아들''아드님'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이로써 요한복음의 저자는 예수님이야말로 오시기로 약속된 구세주 시라는 것을 선포하면서 그분 안에서 구약의 약속이 실현되었음을 드러내고자 한다.

 

  ② 구원론

  요한복음 집필의 최대 관심인 '그리스도론'은 '구원론'과 직결된다. 요한복음에서 '세상'은 죽음, 어둠, 육(肉) 등의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며, 구원되어야 할 상태를 가리킨다. 예수님께서 파견되어 오심으로써 인간은 비로소 비 구원의 상태인 세상으로부터 구원된다. 인간은 이 세상에 속하지만, 그분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③ 종말론

  "지금이 바로 그때다."(요한 4,23:5,25)라는 말은 종말의 현재성이 강조된 말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의 종말론을 두고 '현재적 종말론'또는 '실현적 종말론'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동시에 미래에 이루어질 구원을 배제하지 않는다. 이러한 요한복음 특유의 종말론은 라자로의 죽음을 슬퍼하는 마르타에게 하신 말씀 안에 요약되어 나타난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5-26) 안에서 '현재'와 '미래'를 연결하는 것은 '믿음'이다.

 

  그분을 믿고 그분과 함께 살아간다면 현재의 삶에서도 부활과 생명을 살 수 있다. 그러나 그 삶은 그리스 도의 재림을 향한 미래지향적인 것이기 때문에 미완성의 지평 위에 놓여 있다.

-대전교구 사목 기획국-

그동안 「요한복음 이해하기」를 집필해주신 대전교구 사목 기획국에 감사드립니다.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109)>

 

'품격'이 그리운 날

 

 

  지난 4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시리아 난민 캠프가 있는 그리스 '레스보스'섬을 방문하셨습니다.

교황님은 그리스로 출발하기 전 비행기 안에서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기셨습니다.

 

   "난민들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이다. 각자 얼굴과 이름, 삶의 이야기도 있는 난민들은 인격적으로 대우해야 한다."

 

   캠프에서 난민들을 직접 만나고 로마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교황님은 난민 어린이들이 선물로 준 그림 두 장을 꺼내 보이셨습니다. 바다에 빠진 난민을 보며 울고 있는 태양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그림 한 장을 보시면서 교황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태양이 울 수 있다면 우리도 난민을 위해 눈물을 흘릴 수 있다."

 

   교황님 말씀 한마디 한마디에서 남다른 '품격'이 느껴집니다. 인간의 아름다운 품격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사람을 숫자가 아닌 인격으로 대하는 순간부터, 타인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으로 연결되는 곳에서부터 시작되는 품격..

 

   그 어느 때보다 숫자의 힘이 막강해지고

있는 요즘, 품격을 갖춘 사람들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두려워집니다.

품격이 사라진 자리에는 사람과 사람이 남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갑'과 '을'의 삭막한 관계만 남을 뿐입니다.

 

   그런 관계 속에서 사람들은'격'을 높이려 하기보다 '힘'을 키우려는 노력에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다. 쉽게 드러나지 않는 '격'으로 타인과 관계 맺기보다, 손쉽게 각인되는 '폼'으로 자신을 부각합니다.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살아오면서 제게 있어 최고의 스승님들은 모두 품격 있는 분들이셨습니다. 저를 시험 답안지에 기록된 점수로, 성적표에 적혀 있는 등수로 바라보시지 않고, 늘 소중한 생명으로 받아 주신 그분들이 그리워집니다.

 

   그리고 또 한 분, 우리가 울면 함께 울고, 우리가 웃으면 함께 웃는 태양이 되어 주신 또 한 분의 참스승이 보고 싶어집니다. 우리가 가장 낮은 곳에 있을 때, 우리를 가장 높은 자리로 이끌어 주신 최고의 품격을 지니신 예수님 말입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평화가 너희와 함께"

라고 주신 말씀으로

 

한쪽으로 치우친

우리의 편협을

높은 곳은 낮게 부수고

낮은 곳은 높게 쌓아

구석의 어둡고 좁은 틈새까지

평화로 채우고 서로 염려하는

우리 되게 하소서.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함께하는 이야기 마당>

 

아름다운 이별을 위하여

 

  우리가 살아가는데 만나는 기쁨도 있지만 이별의 아쉬움도 있다. 이별이라고 하면 단순한 이별도 있겠지만 다시는 현세에서 만나지 못하는 죽음이 순간도 포함될 것이다.

 

  며칠 전에 갑작스런 비보에 혼돈스럽고 마음을 가눌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대전가톨릭 문학회 회원이었던 베네딕토씨가 선종하였다는 소식을 접하였던 것이다. 이 형제의 죽음이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그의 인간다움과 물속처럼 깊은 성심으로 대전가톨릭문학회 발전을 위해 모범적인 활동을 하였으며 하느님 나라로 가기에는 너무나 이른 나이라는 인간적인 마음이 우리들에게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몇 년 전 문학회 관련 일들을 베네딕토 형제님과 함께할 때, 잔잔한 미소와 때로는 지그시 눈을 감고 기타의 오선을 조율하며 노래하던 아름다운 한 폭의 이미지를 잊을 수 없다.

 

  그러나 더욱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은 두고 간 가족과의  이별이 아닐까 생각한다. 사랑하는 아내 소피아의 곁을 영원히 떠나는 것은 물론이고, 아직도 보살펴 주어야 할 아들, 딸을 두고 떠나야 하는 그 순간에 영면할 수 있었을까 하는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러나 태초부터 인생이란 만남과 헤어짐의 연속이고 누구에게나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과정이며, 우리 모두는 죽음 앞에서 진지해지고 숙연해지며 나도 언젠가는 떠나야 할 세상을 스스로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 읽어본 안병욱 교수의 '회자정리(會者定離)'가 생각난다. 언제 떠나더라도 조용히 떠날 마음의 준비를 하는 생사관의 확립이 중요하며, 죽음은 예고 없이 우리를 찾아오기 때문에 더욱 그러함을 강조한다.

 

  이제 고인이 된 베네딕토 형제님은 몇 달간의 병고를 거치면서 회자정리를 생각한 것 같다. 평소 감사하고 싶은 사람들을 기억하며 부인에게 본인을 대신하여 감사의 말을 전해 달라는 부탁을 했었다는 사실을 고인을 위한 문학회 가족 미사에서 알게 되었다. 그동안 죽음을 맞을 준비를 충실히 해 왔던 것이다.

 

  본인도 이번 기회를 통해 죽음에 대해 깊이 묵상하게 되었으며, 사랑하는 이 세상과의 아름다운 이별을 위하여 떠날 준비를 차분히 하며 하느님 안에서 더욱 잘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새롭게 해 보았다. 오늘이 나의 마지막 날일 수도 있다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이익환 바오로/궁동성당-

 

 

 

기뻐하게 하소서 -이해인 수녀-

 

항상 기뻐하는 이의 마음에

더 많은 기쁨의 씨앗을 뿌려 주시는 주님.

 

저로 하여금

아무리 작은 씨앗이라도

정성껏 가꾸어 꽃 피우게 하시고

잘 익은 열매에서 짜 낸

향기로운 기쁨의 즙을

이웃에게도 한 잔씩 건네주며

당신을 찬미하는 매일이 되게 하소서

 

햇빛과 공기와 바람

물과 불과 흙

가족과 친지와 이웃처럼

너무 가까이 있기에 오히려 소홀하기 쉬운

제 주변의 사물과 사람들을

더욱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새로운 마음으로 사랑하는 가운데

감사의 기쁨을 새롭히게 하소서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던 그 제자들처럼

저도 당신을 만나 계속되는

은혜로운 삶의 기쁨을 노래하게 하소서

 

당신이 제게 선물로 주신

삶과 존재와 시간을

"죽고 싶다""지겹다"

"그저 그렇다""별 것 아니다"등의

부정적인 말로 푸념하며

몹시 지쳐있는 순간에도, 주님

힘없고 떨리는 음성으로나마

 

 

당신을 부르는 믿음과 기도의 기쁨으로

새 힘을 얻게 하소서

 

슬픔과 절망과 고뇌의 불로 구워 내

빛나고 단단해진 기쁨의 보석들을

더욱 열심히 갈고닦는

은총의 매일이 되게 하소서

 

정성을 다한 선행

아낌없이 자신을 쏟아부은 봉사가

아무런 보답도 받지 못하고

비난과 오해의 대상이 될 때라도 주님

이를 흔연히 받아들 일 줄 알게 하시며

남에게 잊혀지는 쓸쓸함을 통해

자신에게 눈을 뜨는 겸허한 기쁨을

조금씩 맛들이게 하소서

 

온전한 기쁨의 원천이신 주님

저로 하여금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나무들처럼

너무 덤비지도 않고 너무 느리지도 않게

당신의 뜻을 찾아 응답하는

기쁨의 명수가 되게 하소서

 

그리하여 어느 날

제가 이 세상을 떠난 후에도

당신과 함께 영원한 나라에서

영원한 기쁨을 노래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