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6년 주보

부활 제 6주일 2016년 5월 1일(다해)"성모 성월"

모든 2 2016. 5. 1. 22:00

서천성당(보령지구)

본당 설립:1936.5.10/주보성인:예수 성심

 

  +  요한 복음. 14,23-29 <또는 17,20-26>

 

<성령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내 아버지께서 그를 사랑하시고, 우리가 그에게 가서 그와 함께 살 것이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이것들을 이야기하였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나는 갔다가 너희에게 돌아온다.'고 한 내 말을 너희는 들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 가는 것을 기뻐 할 것이다. 아버지께서 나보다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나는 일이 일어나기 전에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다. 일이 일어날 때에 너희가 믿게 하려는 것이다."

 

 

<말씀의 향기>

 

우리는 희생자이자 공범입니다 - 이진욱 미카엘 아주 사목(대전) 전담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교에 한국학을 가르치는 러시아 출신 '박노자'(한국 이름, 본명: Vladimir Tikhonov) 교수가 있습니다.

한국의 역사를 공부하며 한국인보다 한국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평을 가진 그가 칼럼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 시절 저곡가 정책에 신음하고 군대에서 실컷 구타당했음에도 ○○○ 를 비판한 필자에게 호통을 쳤던 농촌 아저씨, 외유나 일삼는 국회의원들이 더럽고 밉다 하면서도 데모하는 민중을 가리켜 아주 역적들이야, 잡아가서 잘 패야 정신 차릴 거야, 말하던 택시기사 아저씨...' 우리는  이들 안에서 '세계의 피해자임에도 체제의 사고를 받아들여 수구적 환상에서 깨어나지 못한 기층 민중의 모습에서 희생자의 측면과 공범의 측면을 쉽게 구별할 수 있는가? 이들이 과연 지배자들에게 끌려다니는 처지에서 벗어나 계급적인 연대의 눈으로 세계를 보는 생각하는 백성이 될 수 있을까?' 참으로 공감되는 표현입니다.

 

  102차 세계 이민의 날을 맞아 위의 박노자 교수의 비판을 우리 신앙인들에게 이렇게 적용시켜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국가가 나를 보호하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팽배한 현실에 살면서 세월호 사건을 향해 그만 잊자고 말하면서도, 조선족 중국인 오원춘 살인 사건을 두고는 경악을 금치 못하며 모든 조선족을 추방해야 한다고 말하는 우리, 얼마 전 통과된 테러방지법으로 인해 나 자신이 잠정적 테러범으로 억울하게 지목될 수도 있다는 사실은 모른 채, 132명이 사망한 파리 테러 사건을 계기로 모든 외국인을 이 법으로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는 우리, 그 위험성으로 전 세계적으로 점점 사양세인 원자력 발전소를, 정작 우리는 많이 가지고 있어 자칫 일본 후쿠시마처럼 사로로  인해 살지 못하는 땅이 되어 어쩌면 우리도 난민이 될 수 있음에도, 정작 살기 위해 국내로 이주해 온 난민에 대한 인정률은 세계 평균인 30%도 안되는 고작 2%에 머무는 우리나라.

 

  이렇듯 우리는 나 자신도 정치라는 지배자, 매스 미디어라는 지배자, 사상과 이념이라는 지배자에게 끌려 다녔던 희생자였음을, 동시에 그러한 지배자 앞에서 침묵하며 그들이 행동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공범이었음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교황님께서는 2016년 이민의 날의 주제를 '이민과 난민의 도전에 대한 자비의 복음의 응답'으로 정하시며, "이주의 흐름은 이제 구조적인 현실이기에 계획을 세워 현재의 위급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우리가 당면한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 면에서 교황님께서 권고하신 '계획과 대처'의 핵심에는 '자비의 복음'이 있어야 하고, 우리 신앙인은 그 복음으로 이주민과 이주 현실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뜻으로 이를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라도 우리는 우리가 세상 체제와 지배자들의 희생자였음을 자각하며 '공범이 되지 않기 위하여 마스크를 벗고 외쳐야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자비는 모든 이들에게 똑같이 베풀어진다고, 모든 이주민과 난민들도 그리고 자비와 사랑을 받아 마땅한 소중한 인격이라고, 그리고 우리 신앙인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고백하는 사람으로서 형제인 그들의 인격을 외면해서는 안된다고 말입니다.

 

 

제102차 이민의 날 담화문

이주민과 난민에 관심을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자비의 특별 희년'을 지내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우리는 특별히 주님의 자비에 주의를 기울여 우리 자신이 자비를 베푸시는 아버지의 뚜렷한 표지가 되도록 부름 받을 때가 있습니다."(「자비의 얼굴」 3항)라고 하시며, 우리 스스로가 자비의 증거자가 되기를 촉구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특별히 누구에게 자비의 증거자가 되어야 하겠습니까?

 

  교황님께서는 2016년 이민의 날 주제를 '이민과 난민의 도전에 대한 자비의 복음의 응답'으로 정하시며, "이주의 흐름은 이제 구조적인 현실이기에 계획을 세워 현재의 위급 상황에 대처하는 것이 우리가 당면한 최우선 과제가 되었다."라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저는 교황님의 뜻에 따라 우리 사회에서 관심이 더욱 필요한 이주민과 난민에게 여러분의 자비를 호소합니다. 최근 이주민들과 난민들이 저지른 사회문제들이 자주 언론을 통해 보도됨에 따라 그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커져갈까 걱정이 됩니다. 우리 사회가 이주민들과 난민들을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고자 하는 인격체로 포용하고 복음적 시각으로 받아들이는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난민에 대한 현실은 어떨까요? 작년 한 해 국내 난민 신청자는 5,700여 명에 달했고, 백여 명이 인정을 받아 난민 인정률은 2%에 못 미쳤습니다. 유엔 난민기구(UNHCR)에 의하면 세계 평균 난민 인정률은 30%가 넘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유엔은 매년 한국 정부에 난민 인정률을 높이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서유럽을 포함한 많은 국가가 우리나라보다 15배나 많이 난민 인정을 하는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서유럽 국가들은 인정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을 받지 않도록 배려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그들이 인간 생명을 존중하고 인권을 보호하기 위해 관심을 기울이고 노력하는 것에 찬사를 보냅니다. 인간 존중과 인권 보호에 더욱 진력하기를 기대합니다.

 

  또한, 지난 3월 테러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테러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얼굴은 무엇입니까? 제 추측이 틀리기를 바랍니다만, 혹시 중동 무슬림의 얼굴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 않으십니까? 현대의 국제 정세 측면에서 중동 지역의 각종 분쟁이 자주 보도되면서 중동은 분쟁과 테러의 대명사가 되었고 최근의 IS(이슬람 국가) 사태는 기름에 불을 붙인 격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중동의 분쟁은 서방 세계가 연루된 복잡한 정치, 경제, 종교 복합체의 한 단면입니다. 그러니 중동 지역 분쟁과 테러의 책임을 중동과 무슬림들에게만 지울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종과 선정적인 기사를 좇는 현대의 매스미디어의 책임도 적지 않습니다. 교황님께서도 "이민들에게 해가 되는 근거 없는 두려움과 추측을 막기 위해서라도 여론 또한 올바로 형성되어야 한다."며 매스미디어의 책무를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테러방지법 통과 이후 매스미디어가 이주민들 특히, 무슬림들의 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하여 기사가 작성되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올해는 복된 '자비의 특별 희년'입니다. 동시에 '모든 형태의 인종 차별 철폐에 관한 국제 협약(인종차별 철폐협약)이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지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물론 우리나라도 1978년에 이 협약에 가입하였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자비'와 '이주민'은 낯선 조합이 아닙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든 이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합니다만, 올해는 그 중에서도 이주민들과 난민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평화가 한 단계 더 도약되어, 우리 모두가 자비의 증거자이기를 진심으로 청하고 기도합니다.

 

2016년 5월 1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옥현진 시몬 주교

 

* 한국 천주교회는 우리나라의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특별한 사목적 관심을 기울이기로 하고 '이민의 날'을 지내고 있다. 주교회의 2000년 춘계 정기 총회에서는 해마다 '해외 원조 주일'의 전(前) 주일을 '이민의 날'로 지내기로 하였으나, 2005년부터는 이 이민의 날을 5월 1일(주일인 경우)이나 그 전 주일에 지내 오고 있다.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107)>

 

사자의 심장에도 달빛은 따뜻하다

연민, 참 평화를 여는 문

 

  위의 그림은 앙리 루소의 "잠자는 집시 여인"이라는 그림입니다. 제가 학창 시절 참 좋아하던 그림이었는데, 얼마 전 우연히 인터넷에서 이 그림에 대한 해설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그림의 원제목 옆에 부제가 하나 더 붙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 부제는 다음과 같습니다.:

"아무리 사나운 육식동물이라도 지쳐 잠든 먹이를 덮치는 것은 망설인다."

 

  그림 제목치고는 매우 긴 문장이었지만, 저는 그 문장이 너무도 아름다워 그림 속 집시 여인과 사자의 마음을 떠올리며,

상상 속에서 그들과 가상의 인터뷰를 해 봤습니다.

 

  [집시 여인] 하루 종일 거리를 돌아다니며 만돌린을 연주하며 생계를 꾸렸습니다. 아이들은 저를 따라다니며 '집시 여자'라고 놀려대곤 했죠. 배가 고팠지만 먹을 거라곤 몇 조각의 빵과 물밖에는 없었습니다. 해가 지자 갈 곳이 없던 저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피곤한 몸을 뉘었습니다. 그리곤 저도 모르게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사자] 하루 종일 숲속을 돌아다녔지만 먹이를 찾지 못했어요. 어느새 밤이 되어 저는 지친 몸을 이끌고 사막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때 어디에선가 사람 냄새가 났습니다. 그 냄새를 따라가 보니 한 여인이 잠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차마 그녀를 먹잇감으로 삼을 수 없었습니다. 달빛에 비친 그녀의 모습이 묘하게 저를 닮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적막함 속에서 별은 총총히 빛나고, 달빛 아래 지칠 대로 지친 여인 곁에 굶주릴 대로 굶주린 사자가 마치 호위병처럼 서 있는 이 기적의 순간.. 가끔 하느님은 이런 극적인 순간에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시는 것 같아 눈물이 납니다.

 

  사람들은 종종 삶을 약육강식의 정글이라고도 하고, 힘없는 자가 도태되는 건 어쩔 수 없는 현실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연민의 달빛이 사자의 심장 안에 비추면 모든 게 달라질 거라는 믿음을 저는 앙리 루소의 그림 안에서 발견합니다.

 

  약한 사람들이 불안함으로 잠 못 드는 고단한 세상 말고, 약자들 곁에서 파수꾼이 되어 주는 마음 따뜻한 사자들이 무리지어 살아가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며 5월의 첫날을 시작해 봅니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꽃이 진다하여

그대들을

잊지 아니하였습니다.

 

가슴 저 깊은 곳에

그리움을 키워 갑니다.

 

글. 그림 이순구 (베네딕도)

 

 

<함께하는 이야기마당>

 

저희의 고향이신 어머니

 

어머니,

어제는 고향 쪽으로 난 길을 바라보다가

불현듯 깨달았습니다.

고향은 제가 태어난 곳이 아니라

어머니가 계신 곳이더이다.

 

어머니,

당신의 눈이 닿아 있는 곳을

저희도 바라봅니다.

온 삶을 잃으신 당신께서

물 젖은 눈으로 바라보던 곳

되살아난 영광의 아들을 만나

기쁘게 저희를 기다리시는 곳

어머니 계신 그곳

달려가 안길 하늘 세상이

저희의 고향이 아니더이까

 

어머니,

군중의 밀림 속에서라도

당신은 저희를 알아보십니다.

눈 가린 채 당신께 등 돌리고 있어도

침묵의 미소로 쓰다듬어 주시며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내 편이 되어 주신 오직 한 사람

옳고 그름을 판별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니

그분 앞에 서기 전까지

맹목으로 제 편이 되어 주시는

오직 한 사람

 

어머니,

저희의 고향이신 어머니

하늘나라의 약속이신 어머니

죽어 산 아드님의 증인이신 어머니

오늘만은 고단한 하루를 저희에게 맡기시어

묵주의 기도로 당신을 위로하게 하소서.

 

-박현 사도 요한/둔산동 성당-

 

 

 

생의 마지막 5분 -강준석 신부님의 "PESS 야, 놀자" 중-

 

  러시아의 작가 도스토예프스키가 스물여덟 살 때의 일이다. 당시 러시아는 니콜라이 1세의 억압 통치 아래 놓여 있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그런 현실을 비판하는 정치적. 사회적 개혁 운동에 가담하고 있었다. 이 무렵 유럽에서는 한창 혁명 운동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러시아 정부는 이 혁명 운동이 러시아에서 미칠 영향을 염려하여 1849년 4월 개혁 사상가들을 체포했다. 체포당한 218명 중 21명에게 총살형이 선고 되었고 여기에 도스토예프스키도 포함되어 있었다.

 

  12월 22일 영하 50도나 되는 추운 겨울날, 그는 형장으로 끌려갔다. 형장에 세워진 기둥에 묶였을 때 이제 그에게 남은 시간은 겨우 5분이었다. 그는 생의 마지막 5분을 어디에다 쓸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는 형장에 같이 끌려온 동료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2분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남은 1분은 아름다운 자연을 한 번 둘러보는데 쓰기로 했다. 그래서 그는 먼저 옆사람에게 최후의 키스를 하고 이제 자신에 대해 생각하려는데, 문득 3분 후에 어디로 갈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 눈앞이 캄캄해졌다. 28년이란 세월이 너무나 헛되게 느껴졌다.

 

  다시 시작할 수만 있다면 하는 생각이 절실했지만 돌이킬 수 없었다. 그의 귀에 탄환을 장전하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 견딜 수 없는 죽음의 공포가 엄습했다. 그때 한 병사가 흰 손수건을 흔들면서 달려왔다. "황제의 칙령이요. 사형을 중지하시오." 이후로 도스토예프스키는 시간을 금같이 아끼며 최선을 다해 살면서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