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의 신화,내마음의 별 17

[이주향의 신화, 내 마음의 별]상실의 하데스와 석류

[이주향의 신화,내 마음의 별] 상실의 헤데스와 석류 올해로 일흔여덟이 된 엄마가 어느 날 강렬하게 자신을 찾아온 꿈을 펼쳐놓습니다. “꿈에 내가 사막에 서 있는 거야. 햇빛은 쨍쨍한데, 가방도 없고, 돈도 없고. 너희들도 없고, 아무도 없고 아무것도 없는 거야.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모르겠고, 참 막막했어.” 혼자 가야 하는 길,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한 길, 그 꿈은 엄마에게 ‘죽음’이 바로 엄마의 화두임을 상기시켜준 거였습니다. 엄마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있었지만, 이제는 죽음을 생각하면서 살 만큼의 힘이 조금 생겼기 때문에 꿈이 그렇게 찾아온 것입니다. 거창하게 말하면 그 꿈은 엄마의 신곡입니다. 단테의 이 어떻게 시작하는지 아십니까? “생의 절반을 보낸 나는 길을 잃고 홀로 어두운 숲에 서 ..

[이주향의 신화, 내 마음의 별]‘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상처

[이주향의 신화, 내 마음의 별]‘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상처 욕망은 인간적일까요? 비인간적일까요? 사실 ‘인간적’이라는 형용사는 욕망을 품어내기엔 그 품이 너무 작습니다. 차라리 욕망이 인간을 낳았다고 해야 할 겁니다. 인간을 낳은 욕망은 ‘인간적’이라는 형용사를 삼키며 스스로 인간적인 무늬를 만들어냅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엄청난 욕망의 소유자입니다. 어쩌면 그는 자기 자신도 어쩌지 못하는 욕망에 휘둘리고 있는 존재라 해도 맞을 겁니다. 그의 아내가 된 암피트리테는 원래 포세이돈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미친 듯이 그녀를 쫓아다니고 찾아다녔고, 마침내 찾아내 결혼합니다. 원하는 것을 얻을 때 행복이 오는 게 아니라면서요? 이미 얻은 걸 원할 줄 아는 사람이 행복을 누릴 줄 아는 사람입..

[이주향의 신화, 내 마음의 별]아폴론의 여인들

[이주향의 신화, 내 마음의 별]아폴론의 여인들 따뜻한 봄 햇살에 꽃들이 환하게 피어납니다. 창문을 열었을 때 문득 눈에 들어오는 꽃들의 설렘, 그것이 공감이겠지요? 태양을 향해 다투어 피어나는 꽃망울들의 설렘에 나도 설레며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룹니다. 운동화를 신고 봄볕 속을 걷고 또 걷습니다. 저 봄볕은 어디서 올까요? 동쪽으로 동쪽으로 걸어가면, 남쪽으로 남쪽으로 걸어가면 태양마차를 모는 아폴론을 만날 수 있을까요? 그러면 나는 카산드라가 될까요? 시빌레가 될까요? 잠시 아폴론에 매혹된 죄로 고독한 운명을 살아야 했던 여인들이 실재보다도 더 실재인 것처럼 나를 자극합니다. 원래 시빌레는 아름다운 소녀였습니다. 그녀에게 매혹된 아폴론은 그녀가 자신의 사랑을 받아들일 경우 원하는 것을 주겠다고 제의..

[이주향의 신화, 내 마음의 별]디오니소스, 광기의 뿌리

[이주향의 신화, 내 마음의 별]디오니소스, 광기의 뿌리 사랑이 외로운 건 운명을 걸기 때문이라면서요? 사랑하는 사람은 운명을 나눠 가집니다. 디오니소스는 합일의 힘을 아는 사랑의 신입니다. ‘나’도 사라지고 세상도 사라지는 합일의 경지 속에 디오니소스가 있습니다. 황홀한 불꽃으로 타오르는 신성, 그 신성을 사랑하는 도취의 신, 그가 디오니소스입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되기까지 그의 생은 고통과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젊고 어린 날 죽음의 고통까지 겪어야 했던 굴곡진 운명 속에서 그의 운명이 만들어집니다. 그와 연결되는 자, 그 비극적 운명을 나눠 가져야 합니다. 디오니소스는 니체의 신이라고도 합니다. 올림포스 12신 중 유일하게 인간 여인에게서 태어난 존재감 없는 신, 그것도 비극의 주인공인 신은 유..

[이주향의 신화, 내 마음의 별]헤라는 왜 제우스를 떠나지 못했나

[이주향의 신화, 내 마음의 별]헤라는 왜 제우스를 떠나지 못했나 남편은 아내의 울타리고, 아내는 남편의 울타리입니다. 아내를 보면 남편의 여성성이 보이고, 남편을 보면 아내의 남성성이 보입니다. 아내에게서 남편이 보이지 않고 남편에게서 아내가 보이지 않는다면 부부관계가 이상한 겁니다. 서로가 서로를 무시하거나 서로를 버린 거지요. 제우스와 헤라, 이상한 커플입니다. 왜 헤라는 제우스의 바람기 때문에 시커멓게 속을 썩으면서도 제우스를 떠나지 못하는 걸까요? 헤라는 누구보다도 가부장적 틀에 길들여진 여인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 사회도 곳곳에서 가부장적인 틀을 많이 벗어버렸지만 여전히 그 틀이 강력하게 작동되는 곳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한 곳이 재벌일 것입니다. 힘과 권력을 가진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결..

[이주향의 신화, 내 마음의 별]헤파이스토스의 분노

[이주향의 신화, 내 마음의 별]헤파이스토스의 분노 아름다움의 여신 아프로디테와 전쟁의 신 아레스는 거침없는 성격이라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자기중심적인 생명력의 표본 같습니다. 그 둘이 사랑을 했습니다. 열정 많고, 분노 많고, 눈치를 모르는 커플의 결합이니 얼마나 격정적이었을까요? 밖은 이미 환한데도 전쟁의 신은 곤히 잠들어 있습니다. 아프로디테는 진작 일어나 단장을 하고 있고, 전쟁의 신의 무기는 이미 아이들의 장난감이 되었는데도 말입니다. 저 그림을 통해 보티첼리가 표현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사랑은 본디 전쟁의 신마저 무장해제하게 만드는 거침없는 욕망이란 것이었을까요? 사랑한다면 저들처럼 해야 할까요? 그런데 저 상황을 아프로디테의 남편 헤파이스토스 입장에서 보면 어떨까요? 마누라가 용서..

[이주향의 신화,내마음의 별]불의 여신 ‘헤스티아’

[이주향의 신화,내마음의 별] 불의 여신 '헤스티아' 신화가 허구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80년대 대학가가 그랬습니다. 교수나 친구가 “그건 신화야”라고 말하면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의 토론이 불가능했습니다. 철저하게 과학의 영향을 받은 언어철학, 분석철학, 심리철학은 신화를 먼먼 옛날,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의 무지한 세계관쯤으로 치부하고 무시했습니다. 하긴 20세기 전반 최고의 분석철학자 러셀의 꿈이 애매모호한 일상언어를 참 거짓이 분명한 이성언어, 수학언어로 바꾸는 것이었으니 말하면 무엇 하겠습니까? 러셀을 이으며 새로운 전통을 만든 비트겐슈타인은 “말할 수 없는 것에는 침묵해야 한다”며 말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암시했습니다. 그 명제로서 그는 신화의 영역, 종교의 영역을 무시하지 않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