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바람 / 한승구
바람이 분다.
가을 내음이 섞인 밤바람이다.
새로운 가을의 전설을 써 내려갈 서막이 열리는 기대와 함께
한 절기를 보내 버린 아쉬움이 교차하는 변곡점에서 조급함이 밀려드는 것은
남은 분량의 삶이 살아 낸 삶보다 짧은 이유 때문일까.
바람은 굴곡진 세월을 보내며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써 내려왔던
기나긴 전설 속에 남겨진 삶의 궤적들을 뒤적여 보게 한다.
버리고 비우는 것이 참행복에 이르는 길이라며
마음을 다졌던 어느 날들에 남겨진 전설의 페이지들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넘긴다.
움켜쥔 것을 놓을 수 있는 것은 용기가 아니라 포기여야 했다.포기에 순응하기까지 참으로 지난한 세월을 보내야 했고한 권의 소설을 완성해 가는 시점에서야 깨닫게 되는 것은 소확행을주는 것과 동시에 탐욕의 덩어리였음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지고 말 존재인 것을.무엇을 위해 그토록 움켜쥐고 있어야 했을까.
바람이 분다.과거와 현재, 미래를 품고찾아든 가을을 품은 밤바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