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당리공소(금사리성당) / 그림 안종찬(바오로),2021년
+ 마태오복음 28,16-20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그때에 열한 제자는 갈릴래아로 떠나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산으로 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뵙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러나 더러는 의심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말씀의 향기>
우리 잠깐 이야기 나눠요! - 조수환 바오로 청소년국장
“너희는 가서 모든 민 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 라”(마태 28,18~20).
오늘 복음은 마태오 복음서의 마지막 말씀으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떠나시며 주신 사명입니다. 그 역할은 특정한 사람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성령의 힘으로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신앙을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은 강의를 듣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모습을 보여주고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보여주신 삶을 내 삶으로 따라하는 것입니다. 또 부모의 신앙이 자녀에게 삶으로 전달됩니다.
청소년국에서 오랜 시간 소임을 하면서 많은 경우 각자의 하느님 체험을 나눌 때 서로에게 큰 울림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느님 체험을 나누는 자리가 꼭 피정이나 연수 등의 특정한 프로그램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정에서, 주일학교에서, 단체에서, 어디에서든 예수님의 이름으로 둘 이상이 모인 자리면 충분합니다. 하지만 하느님 체험을 나누자고 하면 무엇을 나눠야 하는지, 이것이 맞는지, 틀리면 어쩌나 하는 고민이 앞서게 됩니다.
예수님 곁에서 함께 지냈던 제자들마저도 더러는 의심하였다고 복음은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의심도 한편으로는 필요합니다. 단순히 의심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그 의심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한다면 신앙 성장에 큰 역할을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더 듣고, 더 묵상하고, 더 고민해 본다면 세상 끝까지 언제나 함께하시겠다고 하는 예수님과 조금 더 함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체험을 나누는데 맞고 틀린 것은 없습니다. 매일의 삶 속에서 인격적인 하느님과의 만남을 친구에게 이야기하듯 서로 나누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우선 매일 기도하고 성경도 읽으며 하느님과 인격적인 만남의 시간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만남이 없다면 나눌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가 어디에서든 자연스럽게 하느님 체험을 나누며 신앙의 여정을 함께 걷는다면 참으로 좋겠습니다.
청소년 주일을 맞아 먼저 가까운 가족들과 자신의 신앙 이야기를 나눠보면 어떨까요!!
- 지난 한 주간 동안 하느님께 감사함을 느낀 순간은 언제였나요?
- 이번 한 주간 동안 꼭 하느님께서 함께해 주셨으면 하는 일이 있나요?
아직도, 여전히 또한 앞으로도
시노달리타스(23)
성령칠은과 시노달리타스
시노드 정신을 따르는 교회는 아무리 오랜 시간을 생각하고 말을 한다고 해서 실현되지는 않는다. 생각과 말만이 아니라 실천으로 이어질 때만 온전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시노드 정신을 생각하고 말하며 삶으로 살아가야만 하느님께서 기대하시는 바에 진정으로 부합하는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1요한 3, 18)하는 교회를 이룰 수 있다. 이는 성령의 인도를 받는 방식으로, 성령께서 풍요롭게 부어 주시는 은사와 부르심의 다양성을 받아들이고 활용하는 형태와 방식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시노드 정신으로 무엇보다 함께(syn)해야 하는 대상은 성령이시기 때문이다. 성령과 함께하는 생활과 활동 방식을 가리켜 추기경 괄티에로 바세티(G. Bassetti)는 “우리 시대에 복음의 진리를 전하는, 신뢰받을 수 있고 신뢰를 주는 그리스도인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성령께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데 어떻게 인도하시는지를 확실하게 인식한다면 신뢰받고 신뢰를 주는 그리스도인의 방식을 따르는데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을 것이다. 성령께서 세례를 받은 모든 하느님의 백성에게 베풀어주시는 7가지의 은사는 슬기, 통달, 의견, 굳셈, 지식, 효경, 경외심이다. 이 은사들은 시노달리타스의 실천 요소로 이해되는 경청과 공동 책임, 자문, 선교적 변모, 신앙 감각, 담대함 그리고 친교와 형제애로 표현된다.
슬기는 일상의 모든 것을 하느님의 관점에서 판단하게 해 주는 은사로 필수적으로 경청을 요구한다. 통달은 진리를 깊이 통찰해 잘 이해하도록 도와주는 은사로, 사건의 표면에 머물러 책임을 떠넘기지 않고 그 ‘안’으로 들어가 공동으로 책임을 지니게 한다. 의견은 마땅히 해야 할 것과 피해야 할 것을 올바로 판단하게 하는 은사이다. 이는 식별과 연관되어 자문을 ‘하게’도 하며 자문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굳셈은 신앙생활 중에 찾아오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덕을 실천하게 해주는 힘으로 충실함과 관대함, 인내, 정의 그리고 평화로 세상을 복음화시키려는 의지를 성장시킨다. 그래서 선교적 변모를 촉진시킨다. 지식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바르게 이해하게 해주는 은사로 인과관계의 과학적 논리가 아니라 사랑의 논리로 나아가게 한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의 예언자적 소명을 완수하게 하는 신앙 감각에 해당된다. 효경은 자녀로서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자녀인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해주는 은사로 담대하게 이웃을 용서하고 사랑하게 해 준다. 경외심은 하느님을 무서워하는 것이 아니라 놀라움과 경탄에서 비롯되어 하느님을 공경하는 것이다. 이는 억압하고 짓누르는 위압감이 아니라 포근하게 안아주는 그러한 안도감을 느끼게 하는 은사로 친교와 형제애를 자라나게 한다.
-안동훈 안드레아 신부 가수원 주임-
스테인드글라스 이야기(20)
전주교구 소양 데레사 요양원 경당 십자고상
「빛이 되다. 예수그리스도」
재료 : 열성형유리(Fusedglass), 동(bronze)
크기 : 64x75cm
손승희(손소벽 막달레나) 유리화 작가
•제작의도
이 작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여러 겹의 투명한 색유리를 사용해 뜨거운 가마에서 녹여 제작되었습니다. 빛이 유리를 통과할 때마다, 신성하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마음 깊숙이 스며들며, 예수님의 희생과 무조건적인 사랑을 상기시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라는 요한복음 8장 12절의 말씀처럼, 이 작품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깊이 성찰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우리 각자는 그분의 빛을 따라, 어떻게 그분의 뜻을 실천하며 살아갈 것인지를 스스로 찾아가야 합니다. 이는 각자에게 주어진 고유의 여정이며, 그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우리 모두는 그분의 빛을 실천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이 작품은 바로 그런 묵상과 실천을 초대하는 십자가입니다.
해외 선교지 몽골, 그곳은
하느님의 은총에 맡겨지는 삶 : 선교
“그들은 선교 활동을 위하여 하느님의 은총에 맡겨졌었는데”(사도 14,26)
얼마 전 독서 말씀에서 이 성경구절을 읽으며 선교사로서 지냈던 제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해가 갈수록 선교지에서 지내고 있는 이 삶이 얼마나 큰 은총인지 하느님께 깊이 감사드리게 됩니다.
그렇다고 선교사이기 때문에 다른 이들보다 특별히 대단한 일을 더 하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수많은 제약으로 할 수 없는 일이 더 많습니다. 그리고 제게 맡겨진 공동체가 아주 작기 때문에 신자들이 저에게 사제로서 필요로 하는 일은 아주 적습니다.
그러나 선교지에서 더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고 하느님께 의지해야 하는 특별한 상황들을 더 많이 접하게 됩니다. 선교지라는 상황과 외국인이라는 처지 때문에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하느님보다도 돈과 인맥, 능력을 통해서 쉽게 해결하려 할 때가 많지만, 선교지에서 인간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막막한 상황에서 하느님께 도움을 청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게 하느님께 의지하며 그분의 뜻을 찾으면, 하느님의 해결 방법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제게 맡겨진 작은 공동체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사랑받고 소중한 사람인지 너무나 절실하게 느낍니다. 그래서 밥 한 그릇 놓고 두 손 모아 기도하는 한 아이의 모습에서 큰 감동을 받기도 합니다. 그리고 밤새 아르바이트를 하고도 주일미사를 드리러 온 아이들의 그 정성된 삶의 봉헌을 볼 때도 있습니다. 그저 성당에서 웃고 떠들고 놀고 있는 아이들에게서 미래에 복음을 선포하는 사도들의 모습을 꿈꾸게 됩니다.
이렇게 선교활동을 통해, 하느님을 더 찾게 되고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은총 속에 살아갑니다.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하느님의 자녀들을 소중하게 받아들이고 그들을 통해서 하느님 나라를 꿈꾸며 살아갑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온 세상에 가서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 하고 우리 모두를 선교사로 파견하십니다. 오늘 이웃과 함께 기쁜 소식을 함께 나누며 그 은총 안에 머무릅시다.
노상민 토마스 신부 몽골 선교
성지를 걷다 - 지석리성지(2)
2. 지석리성지
손선지 베드로 성인은 자신의 집을 공소로 사용하며 30년 동안 전교 회장직을 맡아 어려운 사람을 적극적으로 돕는 모범적인 삶을 통해서 신자와 비신자들로부터 존경받았고, 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천주교에 입교하게 하였다.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성인은 1801년 양반 집안의 자제로 태어나, 관직에 올라 고을(부여 임천) 원님까지 지냈다. 손선지 성인 가족의 신앙에 깊이 감동하여 천주교에 입교하게 되었다. 이후 박해를 피해 전라 지역의 여러 곳을 떠돌다가, 손선지 성인을 따라 신리 골에 정착하게 된다. 정문호 바르톨로메오 성인 역시 높은 학식으로 교리를 가르치며, 교우들을 올바른 신앙으로 인도했다.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위격이 다른 세 분이 같은 하느님 한 분'이시라는 삼위일체교리는 우리로서는 이해 불가능한 '신비'입니다. 이 신비를 설명하기 위해 여러 철학적, 신학적 개념들이 동원됩니다. '위격'(persona)과 '본질'(naturam essentia, substantia)이라는 철학적이고 신학적인 용어를 동원하여 학문적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비유적으로 설명하기도 하지만, 그 어떠한 설명도 충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절대 신비'이고 '지고의 신비'입니다.
이해 불가능한 신비인 '삼위일체의 신비'는 그저 신학자들의 관념적, 학문적 대상이 아니라 실은 우리 모두에게 깊이 연관된 신비입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바로, 이 삼위일체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육화하신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지상의 존재이긴 하지만, 순전히 지상적인 존재인 것만은 아닙니다. "교회는 성 삼위로부터 오고 성 삼위의 모상에 따라 구성되고 역사의 삼위일체적 완성을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위로부터 형성되어 위에서 오고(oriens ex alto), 위로 나아가고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신비 중의 신비인 '삼위일체' 대축일을 맞으며, 지엄하신 하느님의 신비 속에 잠기는 거룩한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 인간 존재의 존엄함을 묵상해 보는 시간도 가져 봅시다.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있는 가족과 이웃 한 분 한 분이 실은 하느님의 이 깊은 신비를 담고 있는 소중하고 존엄한 존재임을 깊이 묵상해 보는 한 주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녹조
+ 찬미 예수님
해마다 여름에 가까워지면 녹조가 발생합니다. 녹조는 일사량이 많은 여름철에 주로 발생하며 초가을까지 생깁니다. 요즘은 지구온난화로 긴 시간 동안 강이나 호수에서 자주 보입니다.
녹조는 사실상 독성물질이 강 위에 있는 것입니다. 녹조현상은 조류가 과대하게 성장해서 일어나는 현상인데, 특히 남조류는 마이크로시스틴이라는 독소가 나와서 우리 인간과 농작물에 악영향을 줍니다. 녹조 상태의 물을 농업용수로 사용할 시 농작물에 이 독소가 들어가서 사실상 인간이 섭취하게 됩니다.
녹조 속의 독소는 청산가리보다 100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간질환을 일으키고 잠재적 발암물질로써 폐, 생식기에도 병 발생률을 높이는 물질입니다.
-글. 사회 복음화분과 제공-
'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 > 2024년 주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중 제10주일 2024년 6월 9일(나해) (0) | 2024.06.19 |
---|---|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2024년 6월 2일(나해) (0) | 2024.06.19 |
성령 강림 대축일 2024년 5월 19일(나해) (0) | 2024.05.21 |
주님 승천 대축일(홍보 주일) 2024년 5월 12일(나해) (0) | 2024.05.17 |
부활 제6주일(생명 주일) 2024년 5월 5일(나해) (1) | 2024.05.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