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뫼공소(산막골·작은재줄무덤성지) / 그림 안종찬(바오로), 2014년
+ 마르코 복음 3,20-35
<사탄은 끝장이 난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집으로 가셨다. 그러자 군중이 다시 모여들어 예수님의 일행은 음식을 들 수조차 없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친척들이 소문을 듣고 그분을 붙잡으러 나섰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미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한편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 학자들이, "그는 베엘제불이 들렸다."고도 하고, "그는 마귀 우두머리의 힘을 빌려 마귀들을 쫓어낸다."고도 하였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부르셔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떻게 사탄이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한 나라가 갈라서면 그 나라는 버티어 내지 못한다. 한 집안이 갈라서면 그 집안은 버티어 내지 못할 것이다. 사탄도 자신을 거슬러 일어나 갈라서면 버티어 내지 못하고 끝장이 난다. 먼저 힘센 자를 묶어 놓지 않고서는, 아무도 그 힘센 자의 집에 들어가 재물을 털 수 없다. 묶어 놓은 뒤에야 그 집을 털 수 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신성을 모독하는 어떠한 말도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이게 된다."
이 말씀을 하신 것은 사람들이 "그는 더러운 영이 들렸다."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그때에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왔다. 그들은 밖에 서서 사람을 보내어 예수님을 불렀다. 그분 둘레에는 군중이 앉아 있었는데, 사람들이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과 누이들이 밖에서 스승님을 찾고 계십니다."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당신 주위에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바로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말씀의 향기>
너 어디 있느냐? - 강대원 즈카르야 홍보국장
오소서 성령님! 새로나게 하소서!
기쁨의 부활 시기를 거쳐 성령 강림 대축일과 삼위일체 대축일 그리고 성체 성혈 대축일을 지내고 맞이하는 예수 성심 성월입니다. 우리를 너무도 사랑하시어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예수님의 뜨거운 마음을 우리 안에 채워 주시기를 함께 기도하는 한 달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1독서의 창세기 말씀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원죄 사건에 대해 전해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먹지 말라는 열매를 먹고 난 뒤 눈이 열려 알몸인 것을 알게 된 아담과 하와는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두렁이를 만들어 입었습 니다. 그런 뒤 하느님께서 저녁 산들바람 속에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듣자 하느님을 피해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습니다. 그때 하느님께서 사람과 그 아내를 부르십니다.
“너 어디 있느냐?”
죄를 지은 인간은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을 알지만 맞으러 나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을 피해 숨었습니다. “너 어디 있느냐?”라는 말씀을 듣고 앞으로 나아왔지만 핑계에 핑계를 거듭하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다른 이의 잘못을 더 부각시킵니다. 그 핑계를 핑계로 삼아 하느님 앞에 솔직해지지 않고 더 숨으려 하는 모습을 성경을 통해 바라봅니다. 또한 나의 모습을 그 안에서 보게 됩니다.
솔직해지지 못하고 나의 잘못을 인정하지 못하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하느님께 다가가기를 두려워합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은 알지만 정작 나 자신은 하느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입으로는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몸은 그러지 못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을 차일피일 미루며 더 숨어드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너 어디 있느냐?” 라는 말씀을 통해 아담과 하와같이 하느님께 나아가지 못하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나보다 나를 더 뜨겁게 사랑하는 하느님, 그 사랑을 당신의 생명으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예수님, 이 모든 것을 기억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성령님. 삼위 일체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를 부르고 계십니다. “너 어디 있느냐?” 더 이상 숨지 않고 피하지 않고 핑계대지 않고 하느님 앞으로 나아갑시다. 사랑한다고 말하고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넘어지지만 일어서서 하느님께로 나아갑시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하셨던 것처럼.
아직도, 여전히 또한 앞으로도 시노달리타스(24)
교황 프란체스코가 말하는 교회의 쇄신 방법
교황 프란체스코는 「세계 주교 시노드 설립 50주년 기념 담화문」을 통해 현(現)시대의 교회가 “하느님께서 제삼천년기에 기대하시는 여정”을 걷는 교회로 새로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였다. 교황이 제시한 쇄신의 틀은 단순한 구조적 형태의 변화를 넘어서는 교회 생활과 사목 활동 방식의 획기적인 전환이라 할 수 있다. 바로 하느님의 백성을 이루는 다양한 주체들이 교회 안에 자리하고 생활하며, 서로 관계 맺고, 하느님 나라를 위한 봉사의 방식에 관한 것이다. 이는 크리스토프 테오발드(Ch. Theobald)에 따르면 복음의 정신에 따라 형제애, 친교, 사랑의 협력 그리고 공동 책임을 바탕으로 함께 생활하고 활동하는 항구적인 태도이며 행동 양식이다.
교황 프란체스코는 이를 세 가지 차원으로 이야기한다. 첫 번째는 영성의 차원에서 시노달리타스를 실현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열매를 맺을 때까지 참고 기다리며 인내하는 것이다. 세 번째는 갈등을 원만하고 현명하게 대처하는 것이다. 첫 번째로 시노달리타스 영성을 살아가는 데 바탕이 되는 견고한 토대는 겸손한 마음이다. 가자의 도르 테우스(St. Dorotheus of Gaza)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겸손”이라고 가르친다. 실제로 복음적 겸손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시노드적인 길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마음을 따르며 자기 자신을 비우는 영적으로 겸손한 사람만이 교회를 새로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교회의 쇄신은 순식간에 완성되지 않는다. 그런데도 조급하게 서두른다면 이는 교회를 알지도 못하고 더 나아가 사랑하는 것도 아니다. 인내하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이브 콩가르(Y. Congar)는 “성급하게 개혁을 추진하는 이는 불행하게도 거짓과 타협하여 진리를 위태롭게 하고 그의 노력은 안타깝게도 개혁을 지연시킨다.”라고 말하였다. 세 번째, 갈등을 마주했을 때 교황 프란체스코는 이를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고통스럽지만 낙담하지 않고 온화하게 끌어안으며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를 위해서는 복음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크고 작은 유혹을 극복할 수 있는 회심이 필요하다. 사람과 사물에 대한 집착, 성취욕과 개인적인 이상향에서 벗어날 때 누리는 자유를 살지 못한다면 그곳에는 우상 (偶像)만이 자리할 뿐 하느님을 향한 진정한 흠숭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교회는 겸손과 인내 그리고 회심을 통해 자기중심적 나르시시즘의 애정과 강박에서 벗어나 그리스도께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다시 말해 ‘자기의’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삶이, 또한 ‘자신의’ 활동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활동의 의미를 알아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중심이심을 깨닫게 된다.
-안동훈 안드레아 신부 가수원 주임-
전례 일반과 미사의 Q&A
1. <전례 일반과 미사의 Q&A>를 시작하며
2022년 3월부터 연재한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글이 어느덧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동안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에 나와 있는 부분을 근거로 미사에 대해 설명드렸고, 이를 바탕으로 어떠한 자세와 마음가짐으로 각각의 예식을 봉헌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려드렸습니다. 이러한 내용에 대해서 많은 교우분께서 관심 가져주시고, 격려해주신 덕분에 잘 마칠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러한 설명이 교우분들에게는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을지는 가늠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사실은 교회의 정신과 전례법을 근거로 설명드렸기에 우리 교회가 추구하고 있는 올바른 전례의 방향성에 대해서 함께 고민해 보았다는 점에서는 뜻깊은 작업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점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세부적인 예식에 대해서 설명해 드렸다 하더라도 우리가 마주한 전례적인 어려움을 온전히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실질적이고 전례적인 어려움과 궁금증들은 우리가 봉헌하는 전례의 참 의미를 되새기는 데 방해가 됩니다. 아울러 “능동적인 전례”를 봉헌하는데 분심이 되곤 합니다. 현행 가톨릭 교회에서 신자들이 미사를 봉헌할 때 “능동적인 전례”를 강조하곤 합니다. 실제로 저 역시도 “어떻게 하면 교우분들이 형식적인 전례 참여가 아닌 능동적으로 전례를 참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글을 작성해 왔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현재 전례가 거행되는 사목현장에서 능동적인 전례보다는 수동적인 봉헌의 모습이 많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이러한 형식주의적인 전례 봉헌은 전례 안에 담긴 은총에 찬미와 감사, 기쁨으로 화답하기보다는 경직된 예식으로만 거행되곤 합니다. 또한 전례 봉사자들이 전례를 준비하는데 있어서 정신보다는 형식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준비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머무는 지금의 자리에서 능동적으로 전례를 봉헌하는 데 필요한 부분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례의 궁금한 점에서 우리가 기억하고 행해야 할 참된 “정신”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교회의 정신에 따라 능동적으로 전례를 거행해 나갈 수 있을까요?
그동안은 미사의 예식을 세부적으로 설명하는 차원으로 글을 연재했다면, 앞으로는 교우분들이 마주한 실질적인 전례의 궁금한 점들에 대해서 답변을 다는 형식으로 글을 구성하고자 합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의 후속 편으로써 “전례 일반과 미사의 Q&A”로 연재할 것입니다.
가끔은 어디에다가 묻기 어려워 주저하게 되는 질문들, 그리고 전례 봉사를 하시거나, 또는 전례에 참여 하시면서 마주하게 되는 어려움들에 대해서 교리서와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그리고 교회의 전통적인 모습들을 근거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답변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홍보국에 들어온 질문들, 그리고 본당에서 받았던 질문들을 종합해서 함께 전례에 대한 답변들로 찾아뵙겠습니다.
궁금한 질문은 tjubo@djca.kr 메일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 윤진우 세례자요한 신부 사목국 부국장-
스테인드글라스 이야기 (21)
전주교구 익산 어양동성당 유리화
「말씀의 씨앗 2006」
손승희(손소벽 막달레나)
유리화 작가
•재료 엔틱글라스 (Antique Glass), 판석유리 (Dalle de Verre)
•크기 77x362cm (1 ea) 본당우측창 중 부분
•제작의도
마태복음 13장 31-32
예수께서 또 다른 비유를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나라는 겨자씨에 비길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밭에 겨자씨를 뿌렸다. 겨자씨는 모든 씨앗 중에서 가장 작은 것이지만 싹이 트고 자라나면 어느 푸성귀보다도 커져서 공중의 새들이 날아와 그 가지에 깃 들일 만큼 큰 나무가 된다.”
연속적으로 겹치며 흐르는 부드러운 곡선과 색상의 유리 조각들은 대지의 다양한 층을 나타내며, 이는 풍부하고 깊은 토양을 상징합니다. 땅속의 대지와 그 안에 숨겨진 씨앗을 통해 성모 마리아의 품과 자궁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유리 조각들이 이루는 다채로운 색상과 곡선은 성모님의 온화하고 보호하는 성격을 상징하며, 땅속 깊은 곳에 자리한 씨앗은 생명의 시작과 성장 가능성을 나타냅니다.
그 대지 속에 작은 씨앗들이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려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복음이, 사제의 말씀이, 우리 신자 한 명 한 명이 모두 씨앗인 것입니다.
이제 이 작은 씨앗을 어떻게 키워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고,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이게 할 수 있을까요? 조용히 흐르는 빛 속에 반짝이는 나의 작은 씨앗이 숨어있습니다. 그대로 썩어 없어질지, 모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고 성장하여 찬란하게 빛나는 가지를 만들어 낼지는 그 누구의 몫도 아닌 오롯이 내 자신의 몫입니다.
<1분 교리>
Q-1) 성령은 어떤 분 이신가요?
A) 성령은 하느님의 숨결로 구약 성경에서는 숨, 얼, 바람 등으로 표현되고 신약성경에서는 물, 불, 바람, 비둘기 등으로 표현됩니다.
성령은 교회의 원동력으로 교회 안에 항상 머무르시어 하느님의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고 지도하시며 교회에 봉사하도록 적합한 은사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Q-2) 성령의 일곱 은사와 아홉 열매란 무엇인가요?
A) 일곱 가지 은사를 '성령 칠은'이라고 하며, 그 일곱 은사로는 슬기(지혜)), 통달(깨달음), 의견(일깨움), 지식(앎), 용기(굳셈), 효경(받듦), 경외(두려워함)가 있습니다.
또한 성령께서 맺어 주시는 열매가 아홉 가지인데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친절), 선의(선행)// 성실(진실), 온유, 절제가 그것입니다.
생물 다양성
+ 찬미 예수님
생물 다양성이란 지구에서 생존하는 모든 종의 다양성, 이들이 서식하는 생태계의 다양성, 또는 생물이 지닌 유전자의 다양성을 총체적으로 지칭하는 말입니다. 간단히 말해, 자연계가 하나의 사슬처럼 촘촘히 엮여 있을수록 외부 영향에 대한 저항력이 강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침팬지 박사'로 유명한 제인 구달은 생물다양성을 거미줄, 즉 '생명의 그물망'에 비유했습니다. 거미줄의 줄이 한두 개씩 끊어지면 거미들이 점점 약해지는 것처럼 동식물 종이 하나씩 없어지면 '생명의 그물망'이 끊겨 나가 지구의 안전망에 구멍이 생기고, 균형이 무너지게 됩니다.
생물 다양성은 인간을 포함한 지구상의 모든 생명의 생존과 번영을 책임지는 '안전망'을 제공하며, 이런 자연 생태계가 균형을 이룰 땐 스스로 물과 공기의 오염 물질을 정화하고, 토양을 유지하고, 기후를 조절하며, 질병 발생을 막고, 영양분을 재활용하여 인간에게 음식물을 제공합니다.
'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 > 2024년 주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중 제12주일 2024년 6월 23일(나해) (0) | 2024.07.01 |
---|---|
연중 제11주일 2024년 6월 16일(나해) (0) | 2024.06.19 |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 2024년 6월 2일(나해) (0) | 2024.06.19 |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청소년 주일) 2024년 5월 26일(나해) (0) | 2024.05.28 |
성령 강림 대축일 2024년 5월 19일(나해) (0) | 2024.05.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