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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꾸짖음

모든 2 2024. 3. 17. 23:05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꾸짖음 - 이용숙 안젤라 | 음악평론가

 

  어릴 때부터 좋아하는 일을 먼저 하고 꼭 해야 할 일을 미뤄두는 나쁜 버릇이 있었습니다. 학교에 다녀오면 숙제부터 하는 일은 단 한 번도 없었고, 먼저 친구들과 어울려 놀거나 집에서 뒹굴거리며 교과서 아닌 다른 책만 읽었습니다. 스스로도 이건 아니다 싶어 해가 바뀔 때마다 또는 크리스마스나 부활절을 맞이할 때마다 ‘이제부터는 해야 할 일을 먼저 하고 즐거운 일을 뒤로 미루는 새로운 삶을 살아야지!’ 하고 수없이 결심해 보았지만 잘되지 않았지요.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도 논문을 쓰거나 평가서를 작성 하는 등의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면 마음에 부담이 돼 공연히 다른 책을 읽기 시작하거나 예전에 쓴 일기 또는 오래전에 받은 소중한 편지를 다시 읽는 엉뚱한 짓을 합니다. 현재의 긴장을 피해 과거의 포근한 안락함에 기대려는 게으름이겠지요. 그럴 때마다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기 위해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예수님 말씀을 묵상해봅니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루카 9,62)는 말씀의 맥락은 ‘세상에 대한 욕망과 미련을 버리고 예수님의 길을 따르라’는 의미지만, 저는 스스로의 게으름을 물리치기 위한 꾸짖음으로 이 구 절을 애용하고 있습니다. 부족한 제게 은총으로 마련해 주신 과제들을 게으름 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해내는 것이 ‘하 느님 나라에 합당한 사람의 길’에 조금이라도 다가가는 일 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잠긴 문을 열지 말라, 뒤를 돌아보지 말라, 이름을 묻지 말라 등의 금지조항은 세계 여러 문화권의 설화에 공통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금지를 어긴 인간들에게는 반드시 벌이 주어집니다. 문을 열어보지 말라는 금지는 자신과 결 혼한 아내를 차례로 죽이는 남자인 ‘푸른 수염’ 설화에,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금지는 소돔과 고모라에 나오는 롯의 아내 이야기와 우리나라의 장자못 전설, 그리고 그리스신화 속 최초의 음악가이며 시인인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이야기에, 그리고 이름을 묻지 말라는 금지는 성배 기사 이야기 인 ‘로엔그린’에 들어있습니다. 하나같이 인간의 지나친 욕심과 호기심 또는 경솔함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지요.

 

  쟁기를 잡았으면 앞으로 나아가며 밭을 갈아야지 왜 뒤를 돌아보는 걸까요? 욕망과 욕심뿐만 아니라 아마 두려움 도 그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따라오라고 하시는 길로 가려면 때로는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말아야 하고, 하 기 싫은 일도 해야 할 테니까요. 어릴 때부터 학교에 다녀와 숙제부터 하던 친구들은 자기수련이 잘 되어 있어 욕망을 억제하거나 고통을 감수하는데 어느 정도 익숙하겠지만, 저처럼 하고 싶은 일부터 하며 살던 사람들은 예수님이 원하시는 길을 따르기 위해 자신이 도달해야 할 내적 변화가 더 두렵고 버겁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여전히 포기는 하지 않습니다. 음악을 통해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하는 일을 하도록 이끌어주신 크신 은총. 그 은총을 아주 헛되게 해서는 안 된다는 작은 양심은 남아있기 때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