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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포기해야 얻는 황금

모든 2 2024. 3. 17. 22:50

 

사랑을 포기해야 얻는 황금 - 이용숙 안젤라 | 음악평론가

 

  제가 어릴 때는 여우 목도리나 족제비 목도리가 유행이어서 겨울이면 동네에서 동물 한 마리를 목에 두른 어머니 들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뾰족한 코와 꼬리를 보면 죽은 여우나 족제비가 금방이라도 다시 살아날 듯해 겁이 나 기도 했지만, 몸은 다 잃어버리고 털가죽만 남아 인간에게 봉사하는 죽은 동물이 가엽기도 했습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뒤 독일에 공부하러 갔다가 어느 자연사박물관 전시실 벽에 걸린 모피 코트를 보았습 니다. 박물관에 모피 코트가 걸려있는 것이 신기해 다가가 읽어보니, 바로 옆에는 죽은 표범 가죽이 활짝 펼쳐진 채 걸려 있었고, 이런 해설이 붙어 있었습니다. ‘당신이 이 레오파드 코트를 입으려 하면 이처럼 아름다운 표범을 세 마 리나 죽여야 합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표범 가죽의 무늬는 그 하나하나가 피어나는 꽃처럼 아름다웠습니다. 곁에 다가와 표범 가죽을 함께 들여다보던 독일 초등학생들이 ‘예쁘다!’를 연발하면서도 “난 절대로 모피 코트를 입지 않 을 거야.”라고 그 자리에서 다짐하는 걸 보고, 전시 기획자의 아이디어가 뛰어나다고 생각했습니다. 교육효과가 바로 나타났으니까요. 독일 TV에서도 모피를 얻기 위해 사육되거나 잔인하게 살해되는 동물들의 현장을 자주 볼 수 있었 습니다. 시청자들에게 충격을 주어 모피 소비를 줄이려는 의도로 보였습니다. 사람들이 모피를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불쌍한 동물들을 죽일 필요가 없을 테니까요.

 

  오랜 옛날에는 인간이 추운 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짐승을 죽여 털가죽 옷을 만들어 입었지만, 오늘날엔 추위보 다는 모피의 아름다움에 매혹당하거나 그 아름다움으로 자신을 돋보이게 하고 싶어서, 또는 풍요의 상징으로 모피를 원합니다. 하지만 아름다운 물건이나 고가의 물건을 소유 할수록 잃어버릴까 봐 불안해하는 마음도 커지는 것 같습니다. 오래 타고 다닌 낡은 차를 음식점이나 집 앞에 세워 놓은 사람과 방금 산 값비싼 새 차를 세워놓은 사람의 마음이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너희의 보물이 있는 곳에 너희의 마음도 있다.”(루카 12,34) 이런 문제에 관련해 예수님의 이 말씀처럼 명쾌하게 정곡을 찌르는 구절은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북유럽 신화를 소재로 한 바그너의 음악극 <니벨룽의 반지>에는 라인 강 바닥에 있는 찬란하고 아름다운 신들의 황금을 훔쳐다가 ‘절대반지’를 만드는 못생긴 난쟁이가 등장합니다. 세상의 모든 부와 권력을 소유할 절대적인 힘을 주는 반지입니다. 그런데 그 반지를 얻으려고 하는 사람은 한 가지 조건을 채워야 합니다. ‘사람을 사랑하거나 사람에게 사랑받는 일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황금을 지키던 강의 요정들은 “이 세상에서 대체 사랑을 포기하고 황금을 얻으려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라며 방심하다가 황금을 도둑맞습니다. 사랑과 황금을 결코 둘 다 차지할 수는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예수님도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으며,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루카 16,13 참조) 고 우리에게 확실하게 가르쳐 주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