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수어진 뼈들이 춤추게 하소서 - 이용숙 안젤라 | 음악평론가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 나오는 ‘플라잉 더치맨(The Flying Dutchman)’은 배의 성능과 항해술을 과신해 폭풍우에도 항해를 강행했다가 실종된 네덜란드 선박의 이름입니다. 그 네덜란드 선장의 오만 때문에 이 배는 저주를 받아 영원히 바다를 떠돌게 되었고, 선원들은 죽지 못한 채 3백 년 동안 좀비로 살아갑니다. 바로 전설의 유령선입니다.
이 소재를 오페라로 만든 독일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에는 이 배의 좀비 선원들이 7년 만에 한 번 뭍에 내려와 합창을 하며 춤추는 장면이 나옵니 다. 제가 중학생일 때 이미 대학생이었던 오빠가 이 오페라 영화를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새하얗게 빛나는 해골로 등장한 유령선 선원들의 삐걱거리는 춤은 기괴하고 무서운 장면인데도 묘하게 우스웠습니다. 오빠와 저는 그 해골 인간들의 춤을 보면서 “바수어진 뼈들이 춤추게 하소서!” 하며 키득거렸습니다. 그 뒤로 가족들이 함께 할아버지, 할머니 기일에 연도를 바칠 때마다 저희 둘은 이 대목이 나오면 웃음을 참느라 기를 써야 했습니다. 오페라 영화 속 ‘바수어진 뼈들이 춤추’는 장면이 매번 눈앞에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올해 부활 제2주일 전날, 엄마가 돌아가셨습니다. 새벽 잠자리에 누운 채로 묵주기도를 바치다 잠시 잠든 중에 돌 아가신 듯 합니다. 손에 묵주를 쥔 채 지극히 평온한 표정이었습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선종의 은총을 구하는 기도를 열심히 바치셨는데, 주님께서 그 기도를 들어주신 것 같았습니다. 빈소는 꽃향기와 연도의 노랫소리로 가득했습니다.
결혼 전에 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치기도 했던 엄마는 막내 딸인 저와 함께 화음을 맞춰 노래하는 걸 참 좋아하셨습니다. “꽃밭에서는~ 봉숭아, 맨드라미, 분꽃, 나팔꽃 핀~ ” 어릴 때 부터 부르던 이 노래를 제가 어른이 된 뒤에도 틈만 나면 부르자고 하셨는데, 제가 공부하러 외국에 가고 결혼하고 일 때문에 바빠지면서 차츰 엄마와 함께 노래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엄마가 통화 중에 노래하자고 하면 얼른 엄마의 소프라노 멜로디에 알토 화음을 넣어드렸던 기억이 납니다.
“기쁨과 즐거움을 돌려주시어 바수어진 뼈들이 춤추게 하소서.”(시편 51,10) 연도에 들어 있는 이 구절은 다윗 왕 이 밧 세바와 정을 통한 다음 예언자 나탄이 찾아왔을 때 지은 참회의 시로 알려져 있습니다. ‘주님께서 (죄를 지은) 저를 꺾어 벌하셨지만 제가 기쁨을 되찾을 것입니다’라는 의미라고 합니다. 그처럼 용감하고 지혜롭고 예술적인 인 간이었던 다윗 왕이 사사로운 욕망을 이기지 못해 이런 죄를 짓다니요. 누구라도 실망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지만, 다윗의 절실한 참회는 연도를 바치는 우리의 마음에 진하게 스며들며 주님의 용서를 희망하게 해 줍니다.
이번에는 연도 중에 이 대목에서 웃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신 엄마의 영정 사진을 올려다보며 엄마가 천국의 꽃밭에서 저 대신 천사들과 함께 화음 맞춰 노래하실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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