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률리공소(예산성당) / 그림 안종찬(바오로)
+ 마르코 복음 9,2-10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사실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제자들이 모두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하는 소리가 났다. 그 순간 그들이 둘러보자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만 그들 곁에 계셨다.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지켰다. 그러나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저희끼리 서로 물어보았다.
<말씀의 향기>
거룩하게 될 때까지 -박진홍 요셉 해미 Wake-Up 센터 관장
새하얗게 빛이 나는 예수님과 베드로 사도의 표현!
사순 둘째 주일을 보 내면서 만나는 복음에서 우리는 매우 대조적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지금 제자들의 눈앞에는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가장 위대했던 전설 속 인물들이 나타났습니다. 율법을 상징하는 모세와 예언서를 상징하는 엘리야 그리고 갑자기 천상의 모습으로 변하신 예수님께서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계십니다. 눈앞에서 이 장면을 보고 있다는 상상만 해도 숨이 멎을 것 같습니다. 과연 어떤 대화를 나누시는 걸까? 같은 내용을 전하는 루카 복음을 참조(루카 9, 31) 해 보면, 이 대화는 하느님의 아들이 인류의 구원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는, 그야말로 인류 역사에서 가장 놀랍고 위대한 사건을 준비하는 대화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놀라운 대화 앞에 베드로 사도의 이 표현이 등장하지요.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마르 9,5).
아! 이 상황에 이게 뭔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랴? 복음은 겁에 질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른 채 말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그럴 만합니다. 그 현장에 있었다면 우리라고 뭐 다를 것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가끔 우리는 우리가 뱉은 무의식적 표현 속에서도 진심을 만나기도 합니다. 한없이 부족한 모습을 가진 베드로 사도에게는 인류 구원을 준비하시는 거대한 하느님의 안목은 알 길이 없고, 그저 눈앞의 귀한 분들 모시고 싶다는 순박한 시각만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여기에는 하느님의 거대한 사랑 앞에 좁아터진 시각으로 자신의 아집만을 주장하며 살아가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도 표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평소 우리들이 간절히 바치는 기도 중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내용들은 과연 몇 % 나 될까요?
“하느님, 우리 000가 이번 시험에 합격하게 해 주세요.” “하느님, 우리 000가 이번에 취직하게 해 주세요.” “하느님, 우리 000가 하는 사업이 번창하게 해 주세요.” “하느님, 우리 000가 건강하게 해 주세요.” ... 어쩌면 당신 외아들의 목숨을 바쳐 모든 인류를 당신 나라로 초대하시기 위해 그야말로 모든 것을 다 바치고 계시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가 청하는 기도의 실체가 혹시 ‘저희는 하느님 나라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라는 내용이 아닐까요?
묵상을 하다 보면 가끔 하느님의 거대한 은총 앞에 너무나 부끄러워 고개도 들지 못하는 그런 비참한 모습의 자신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은 그런 우리에게까지도 위로와 희망을 주고 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 앞에서 거룩하신 천상의 모습으로 변모하신 예수님께서 그대로 그렇게 저 높은 곳으로 떠나가시지 않고, 다시 사람의 모습이 되어 제자들 곁으로 오셨다는 이야기에서 말입니다. 아직 더 함께 계셔 주신다는 이야기입니다. 어리석어 아직 하느님 나라보다는 내 눈앞에 나타나는 이득밖에 볼 줄 모르는 내가. 그런 내가 바치는 나의 이 기도가... 조금 더 성장을 해서 언젠가 방금 변모하신 그 거룩한 모습으로 변할 때까지를 기다리시면서 말입니다.
아직도, 여전히 또한 앞으로도
시노달리타스(20)
서로의 목소리에서 하느님을 발견하는 공동식별
제삼천년기를 살아가는 교회 공동체는 시노달리타 스를 살아가며 새로나고자 많은 관심을 보이고 힘을 쏟고 있다. 분명히 이러한 노력이 그 자체로 교회의 쇄신에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움직임이지만 한번의 ‘시도’가 아니라 지속적인 교회의 여정이 되어야만 교회가 “하느님께서 완전히 거져 주시는 은총에 응답하며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복음의 기쁨」 179)할 수 있다. 그 관건은 하느님께서 제삼천년기의 교회에 기대하시는 바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식별이라 할 수 있다. 식별한다는 것은 좋은 선택을 내리기 위해 합리적으로 따져 보는 과정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신앙 안에서 “영들을 식별하는 은사”(1 코린 12,10)로 “사건들 안에서 하느님의 메시지를 읽는 참된 영적 감수성”(「복음의 기쁨」 154)으로 하느님의 구원사업을 이해하고 복음의 정신을 구현하는 행동의 기준을 마련하도록 한다.
현실 안에서 식별은 교회의 지도자나 전문적 지식과 소양을 갖춘 이들에게 독점적으로 유보되어 있는 듯하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 성령께서는 모든 이에게 말씀하시기 때문에 세례 받은 모든 이의 소리를 경청하고 함께 식별해야 한다. 실제로 식별은 세례 받은 모든 그리스도교 신자에게 허락된 권리이며 맡겨진 의무이다. 세례 받은 모든 하느님의 백성은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것을 직관적으로 통찰하고 이에 따라 행동하게 하는 신앙의 본성인 신앙감각을 부여받기 때문이다. 모든 신자가 함께하는 공동식별은 교회의 내일을 그리며 오늘날의 세상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무엇보다 복음의 새롭고 다양한 길들을 꿈꾸며 함께 걸어가는 ‘공 동의 길’을 찾는 것으로 결코 즉흥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자기중심적 사고와 개인주의를 피하며 사랑과 존경 그리고 신뢰로 유대를 맺고자 영적으로 준비하는 노력이 필수적이다.
이탈리아 가톨릭 운동을 담당했던 구알티에로 시지 스몬디(G. Sigismondi) 주교는 공동식별이 어떠한 단계로 진행되어야 하는지를 이렇게 가르친다. 첫 번째, 식별하고자 하는 문제를 명확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이때 문제의 다양한 측면을 살펴보며 사목적 관련성과 타당성을 공동으로 평가한다. 두 번째, 열린 마음으로 모두가 하느님께 의탁하고자 결심하는 것이다. 세 번째, 각자 개별적으로 그리고 공동으로 성찰하는 것이다. 개별적이고 공동으로 하는 성찰은 모순이 아니라 하나의 특별 한 방식으로 개별적 성찰은 다른 이들과의 나눔을 통해 풍요로워진다. 네 번째, 성찰한 바를 나누는 것이다. 이는 논쟁의 과정이 아니라 형제애와 기도 안에서 서로의 목소리를 주의깊게 경청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 결정하는 것으로 이는 다수결이 아니라 교회정신에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안동훈 안드레아 신부 가수원 주임-
교회 음악이야기 2
성수 예절, 성전 오른편에서...
파스카 성야 미사에서 우리는 세례 때의 서약을 갱신하고 축복된 성수를 받습니다. 성수를 뿌리는 동안 오늘날의 많은 교회는 가톨릭 성가 67번 〈성전 오른편에서〉를 부릅니다. 이 성가는 어디에서 유래한 것일까요?
전통적으로 성수 예절(Ordo Aspersionis Aquae Benedictae)은 교황 레오 4세의 명으로 매 주일 미사 때 성수를 뿌리 는 예절을 말하며, 세례의 의미를 되새기는 데 그 뜻이 있습니다. 성수는 사람이나 사물을 정화하고 축복하기 위해서도 사용합니다. 현재 《로마 미사 경본》의 부록에 예식이 명시되어 있으며 주일에 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예로부터 성수를 뿌리는 동안 부르는 안티폰(antiphona, 교대로 부르는 노래)의 가사는 Asperges me...로 시작하는 새 라틴어 성경의 『시편 51(50):9』입니다. 이때 라틴어 ‘Asperges’는 ‘뿌리다’는 뜻입니다. 이 안티폰의 전체 가사와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Asperges me, Domine, hyssopo, et mundabor: lavabis me, et super nivem dealbador. Miserere mei, Deus, secundum magnam misericordiam tuam |
주님, 우슬초로 제 죄를 없애 주소서. 제가 깨끗해지리이다. 저를 씻어 주소서. 눈보다 더 희어지리이다. 하느님, 당신 자애에 따라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
V. Gloria Patri, et Filio, et Spiritui Sancto: R. Sicut erat in principio, et nunc, et semper, et in Sæcula scæulorum, Amen, |
선.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응.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한편 부활 기간에는 성수 예절에 부르는 안티폰이 다른 노래로 불리는데 『에제 47:1,2,9』에서 말씀을 따온 Vidi Aquam입니다.
Vidi aquam egredientem de templo, a latere dextro, alleluia: et omnes, ad quos pervenit aqua ista, salvi facti sunt, et dicent, alleluia, alleluia. Ps. Confitemini Domino quoniam bonus. Quoniam in saeculum misericordia eius. |
성전으로부터 물이 흘러나와 우측으로 흐르는 것을 내가 보았도다. 알렐루야 이 물이 닿는 모든 사람은 구원을 받았도다. 그들은 외치리라, 알렐루야 알렐루야 시편 주님을 찬송하여라, 좋으신 분이시다. 주님의 자애는 영원하시다. |
V. Gloria Patri, et Filio, et Spiritui Sancto: R. Sicut erat in principio, et nunc, et semper, et in saecula sæculorum. Amen. |
선.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응.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
두 개의 안티폰을 살펴보았을 때 가톨릭 성가 67번 〈성전 오른편에서〉는 부활 시기의 성수 예식에 사용되는 Vidi Aquam에서 시편과 영광송을 제외한 부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혜순 데레사 연주학박사(지휘)-
대전성모병원 심혈관센터
가톨릭대학교 대전성모병원 심혈관센터는 지난 1986년 순환기내과 진료를 시작으로 1998년 8월에는 대전·충청권 에서 처음으로 심혈관센터를 개설했습니다.
현재 중재 시술(협심증, 심근경색, 말초동맥혈관 질환, 구조적 심장 질환 시술) 전문의, 심장 영상, 심부전, 심장판막 질환 전문의, 부정맥 전문의 등 분야별 의료진이 365일 24시간 응급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 심장 중환자실, 심혈관 촬영실, 심장 초음파실, 운동부하 검사실, 24시간 생활 심전도 검사실을 구축, 진단영상의학과와 협진을 통해 심장 핵의학 검사, 심장 CT 등의 검사를 실시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8년에는 인구의 고령화에 따른 혈관질환, 심장 판막증, 부정맥 및 말기 심부전 등 증가하는 심혈관질환 환자에게 최적의 진단과 응급치료를 제공하기 위해 심혈관센터를 확장, 최첨단 디지털 혈관 조영 진단 장비인 ‘아주 리온(Azurion 7 M12)’을 추가 도입해 운영하고 있습니다.
해외 선교지 칠레, 그곳은
지방 선교
칠레의 2월은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이 시작되는 시기입니다. 길에서 구걸하는 사람들도 모두 휴가를 떠나는 시간입니다. 이런 쉼의 시간을 이용하여 사제들은 본당의 몇몇 신자들과 선교사 그룹을 만들어서 농촌 산간지방에 선교여행을 떠납니다. 저는 산티아고에서 800km 떨어진 한 농촌 마을에 가서 선교활동을 한 경험을 나누고자 합니다. 제가 갔던 곳은 남쪽 해안가에 위치한 아라우꼬라는 곳이었습니다. 마을 중심에 성당이 있고, 본당신부님은 마을로부터 반경 50km 안에 20개의 공소를 담당하고 계셨습니다. 혼자서 그 광활한 지역을 담당하시기에 적절한 사목이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신부님은 직접 공소를 다니기 어려워서, 매일 15분간 라디오 방송을 하시면서 복음을 나누고, 간단한 교리교육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종신부제님 한 분과 봉성체 특별 봉사자들이 신부님을 도와 사목을 하고 계셨습니다. 저희 그룹은 2주 동안 머물면서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위해 교리교육을 하고, 집집마다 방문하여 가정을 축복하고, 아픈 환자들을 방문하고, 공소로 초대하여 기도하고 교육과 친교를 나누는 행사를 하였습니다.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로 시골의 인심은 후하고 넉넉하였습니다. 선교사들을 가족처럼 맞아들이고,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사람들처럼 이야기꽃이 피었습니다. 마당에 돌아다니는 닭들이 낳은 달걀들, 마당에 있는 나무에서 바로 딴 사과와 복숭아 과일들을 한 보따리 싸주기도 하였습니다. 한편 사제의 부족으로 인해 신자들이 가톨릭 신앙을 많이 잃어버리고 개신교로 개종을 하는 현상을 보고 마음이 안타까웠습니다. 조그만 마을에 벌써 개척교회들이 15개나 되고, 그들의 적극적인 방문과 관심으로 많은 가톨릭 신자가 개신교로 개종을 한다고 합 니다. 평생 성당에 봉사했지만 내가 아플 때, 내가 어려울 때 아무도 나를 찾아와 주지 않았다는 하소연을 들을 때 신자들에 대한 사제들의 관심과 봉사자들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김동진 사무엘 신부 국내연수-
십자가의 길의 기원, 예루살렘
십자가의 길의 시작은 1세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세기 신자들은 그리스도가 고난을 겪고, 십자가를 지고 걸었으며, 십자가에 못박혀 죽고 묻힌 자리를 방문하곤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고 그를 통해 우리가 얻는 부활과 영원한 생명을 기억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물론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정형화된 처(處)나 기도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이 일어난 장소를 따라 행렬하던 전통은 오늘날 십자가의 길 기도의 기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이라는 용어는 중세시기 이후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보나벤투라 등의 성인들도 이 십자가의 길에 큰 관심을 두고 참여했습니다.
성인들은 십자가의 길을 방문하는 순례의 여정을 단순히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행위로만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 십자가의 길을 걷는 순례 자체가 신자들의 신심을 수련하는 기도로 봤고, 많은 신자가 이 십자가의 길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자연환경파괴 -골프장 건설
+ 찬미 예수님
골프장 건설 후 관리를 위해 막대한 제초제와 살충제로 인한 비점 오염원 발생 또한 큰 문제가 됩니다. 전국 각지의 강변은 주변지역에 식수를 공급하거나 장마철에 홍수 피해를 막아주고, 생태계 보호에 일조하는 등 큰 의미가 있습니다. 다른 스포츠와 다르게 골프장은 환경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이 매우 큽니다.
다음은 환경부 홈페이지에 있는 골프장에서의 피해 사항입니다.
① 일본 : 비가 오면서 골프장에서 사용한 약제의 정화조 용량이 제구실을 못하여 양식장으로 유입되어 송어 9만 마리 떼죽음
② 고양시 골프장 : 캐디 김씨의 기형아 출산, 캐디 황씨 임신 8개월 만에 기형아 조산
③ 김해시 골프장 : 캐디, 농약 살포 후 안질 및 피부병 발생
-글,사회 복음화분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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