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동공소(서산석림동성당) / 그림 안종찬(바오로)
+ 마르코 복음 1,14-20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호수에 그물을 던지고 있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를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시다가, 배에서 그물을 손질하는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을 보시고, 곧바로 그들을 부르셨다. 그러자 그들은 아버지 제베대오를 삯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그분을 따라나섰다.
<말씀의 향기>
거룩한 독서 -김용우 베드로 청년성서 전담
“믿음은 들음에서 오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로마 10,17). 하느님 계시의 초대에 대한 응답을 신앙이라고 합니다. 계시된 진리인 성경을 모르면 믿음이 부족하고, 믿음이 부족하면 신앙도 그러합니다. 역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가까이하면 신앙도 자라납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우선, 성경을 읽기 위해서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거룩함’은 ‘구별됨’을 뜻하지요. 집에 귀한 손님이 오시면 여느 때와는 달리 집을 치우듯, 하느님 말씀을 읽을 때도 공간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합니다. 내 공간에 ‘하느님 말씀’을 위한 구별된 공간을 마련하는 겁니다(책상, 기도상 등). 시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 24시간 중, 하느님께 봉헌할 귀한 시간을 저마다 따로 마련합시다. 다음엔 잠시 마음을 가다듬고 성령 청원 기도를 바칩니 다. <성경을 읽기 전 기도문>을 바쳐도 좋습니다. 성령의 감도로 기록된 성경 말씀은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하느님의 말씀’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성경을 눈으로 보든, 소리 내어 읽든, 손으로 필사를 하든, 이 모든 방법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만나기 위한 일입니다. 그리고는 천천히 정해진 분량을 읽습니다. 읽고 또 읽습니다. 잘 모르는 단어나 상황은 표시하고 찾아가며, 또 머릿속으로 상황을 그려가며 읽습니다. 읽을 때는 내 생각에 머무르지 않고, ‘성경 본문이 그 자체로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가져 봅니다. 이렇게 성경을 읽은 뒤에는 묵상을 합니다. ‘성경 본문이 지금 나에게 무엇을 말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하며 말이지요. “너 자신 안으로 다시 들어가라. 사람의 내면에 진실이 머문다”(아우구스티누스, 『참된 종교』).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말씀을 인용하며, 묵상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내면으로 들어가십시오. 여러분의 삶을 읽으십시오. 여러분 삶의 여정이 어땠는지 여러분의 내면을 읽으십시오.” 말씀과 함께 각자의 삶을 읽는 이러한 과정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시선’을 선물로 받고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됩니다. 새로운 시선, 회개해야 할 내용, 새로운 결심 등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관상’이라 합니다. 예를 들면, 숨겨두신 비상금으로 시켜주신 자장면 한 그릇이 자식을 향한 배고픈 어머니의 사랑이었음을 깨달으며,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새로운 발견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의 말씀으로 조금씩 변화되어 행동하는 것, 기도하는 것이 바로 교회의 전통 안에서의 거룩한 독서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 「강론 지 침」 29항). 이 거룩한 독서의 과정은 우리 소공동체의 <말씀 살아가기>에도 잘 녹아들어 가 있습니다. 요나의 외침을 듣고 곧장 회개한 니네베 사람들처럼, 예수님의 부르심에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삶으로 나섰던 제자들처럼, 우리도 새로이 하느님 말씀을 듣는 삶을 시작해 봅시다. 사랑으로 변화된 우리의 삶은 하느님과 이웃을 위한 좋은 선물이 될 것입니다.
<공동의 집>
온실가스진단은 '알아서 면장()하는' 길
“알아야 면장을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이나 타인의 무지를 한탄하는 말이죠. 우리는 보통 이 말에서의 ‘면장’을 흔히 행정구역의 장인 ‘面長’으로 알고 있지만 원래 이 말은 논어 양화편에 나오는 ‘免牆’입니다. “울타리 또는 담벼락을 벗어나다.”의 뜻인 것이죠. 즉, “알아야 면장을 피할 수 있다.”는 ‘免面牆’의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우리가 벗어나야 할 가장 큰 울타리 또는 담벼락은 무엇일까요?
바로 기후위기입니다.
요즘 전 세계가 탄소중립을 외치고 있습니다. 지난달 초 아랍에미리트의 두바이에서 COP28(제28차 유엔기후 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이 열리는 등 탄소중립은 전 지구적 과제가 됐습니다. 우리나라도 나름NDC(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를 설정하고 저감 정책을 펴고 있지만 너무 더디고 때로는 역행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습니다.
특히 온실가스를 줄인다고 하면서 국가나 지역 단위의 탄소배출량은 발표되고 있지만 개별 건물이나 공동체의 구체적인 배출량을 당사자들이 아는 곳은 많지 않습니다. 중앙이나 지방정부는 전체적인 발생량과 목표 등을 제시하고 거시적 차원에서의 정책을 펴지만 실제로 온실 가스를 줄이는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현장은 바로 개별 건물이나 공동체입니다.
우리 건물이나 공동체가 과연 얼마나 많은 온실가스를 대기 중으로 내뿜고 있는지를 알아야, 그에 따른 대응 방안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의사가 진단을 정확히 해야 처방을 낼 수 있듯이 말이죠. 우리 본당(또는 기관)의 온 실가스배출량을 먼저 알아야지만 그것을 상쇄하는 탄소 중립을 이루기 위해 나무를 심는다면 몇 그루의 나무를 심어야 하는지, 태양광 발전시설을 한다면 어느 정도 규모로 해야 하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것이죠. 그 후에야 입지나 비용, 로드맵 등 적절한 계획을 세우고 시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배출량도 모르면서 탄소중립방안에 대해 얘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실가스진단은 탄소중립으로 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작업입니다. 지난해 우리 교구에서는 41곳의 본당과 성지에서 온실가스진단을 신청했고, 이 가운데 39곳이 진단 결과를 놓고 공동체 구성원들과 함께 감축 방안을 모색해 보는 워크숍까지 진행하였습니다. 이들은 ‘2030 전기에너지 자립, 2040 탄소중립’이라는 교구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구체적인 로드맵도 나름대로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올해도 80곳에 대한 온실가스진단을 계획하고 있지만, 각 본당과 기관의 적극적인 관심과 신청이 있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온실가스 진단 문의 ·신청 : (042)223-2220, bulhuisun@hanmail.net
불휘햇빛발전협동조합-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69. 미사 해설 - 성찬 전례(33) : 영성체 예식 : 영성체(3)
134. 그다음에 사제는 성체를 담은 성반이나 성합을 들고 영성체할 사람들에게 가서 매번 성체를 조금 들어 보이며 말한다. ✚ 그리스도의 몸. 영성체할 사람은 응답한다. ● 아멘. 그리고 성체를 모신다. 부제도 성체를 나누어 준다면 같은 방식으로 한다. 135. 성체와 성혈을 함께 모실 때에는 양형 영성체 규정을 따른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284-287항). 136. 영성체 노래는 사제가 성체를 모실 때에 시작한다 |
“그러므로 부당하게 주님의 빵을 먹거나 그분의 잔을 마시는 자는 주님의 몸과 피에 죄를 짓게 됩니다. 그러니 각 사람은 자신을 돌이켜보고 나서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셔야 합니다. 주님의 몸을 분별없이 먹고 마시는 자는 자신에 대한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1 코린 11,27-29)
영성체 때, 사제는 교우에게 성체를 들어 보이며,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다시 한번 선포합니다. 신자들은 “아멘”이라고 동의합니다. 이때의 아멘은 자신 눈앞에 거양된 성체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임을 믿음으로 동의한다는 상징적 고백입니다. 영성체는 이 거룩한 제사의 완성의 때입니다. 우리는 영성체를 통하여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오시는 예수님과 일치하게 되고, 하느님의 사랑과 은총을 받은 모든 형제자매들과 일치하게 됩니다. 발터 카스퍼의 “일치의 성사”에서는 다음과 같은 표현으로 미사를 설명합니다.
“우리는 미사를 혼자 사사로이 봉헌하지 않는다. 미사는 하느님 백성이 어느 한 곳에 모여 함께 드리는 찬양이요, 감사며, 희생이요 잔치다. 미사는 세상 곳곳에서 미사를 봉헌하는 모든 공동체와 우리를 하나로 결속시킨다.”
나와 하느님, 우리와 하느님이, 나아가 너와 나, 우리 모두가 바로 이 성체를 모심으로써 완전한 일치를 이루게 됩니다. 그렇기에 영성체는 주님의 사랑이라는 하나의 구심점에 하느님 자녀 모두가 일치하도록 돕습니다. 우리 눈앞에 펼쳐지는 “그리스도의 몸”은 단 순히 내가 성체를 모시기 위한 작은 예식이 아닌, 나와 우리 눈앞에 선포되는 그리스도의 신비가 구체화되어 우리에게 다가오는 신비의 시간입니다. 따라서 사제의 말에 응답하는 우리들의 “아멘”은 그만큼 중요합니다. 다음 편에서부터는 영성체와 관련된 신자들의 궁금한 사항에 대해서 풀이하도록 하겠습니다.
-윤진우 세례자요한 신부 사목국 부국장-
효소단식피정은 효소단식, 침묵, 복음서 통독을 통해 몸을 비우고, 생각과 말을 비우며, 마음과 영을 충만한 말씀으로 채우는 은총의 여정입니다. 또한, 유혹을 알아차리며, 삶과 믿음의 광야에서 만나는 인생 강의와 숲길 걷기의 시간들은 새로운 깨달음과 힐링의 시간들을 선사합니다. 사랑이신 주님께서는 우리의 몸과 마음이 다시 살아나고, 은총으로 비워지고 채워져서 기쁨의 신앙으로 나아가기를 바라십니다. 내 몸의 소리를 느끼고, 내 마음에 들려오는 음성을 은혜롭게 만나는 ‘비움’과 ‘충만’의 피정에 형제자매님들을 초대합니다.
-글 관장 김민희 바오로 신부-
글로 만나는 성화
조토 디 본도네의 주님 봉헌
조토,1303-1305년, 성전에서 그리스도의 봉헌, 스크로베니 경당, 파도바
이탈리아 북부 파도바라는 도시에 있는 스크로베니 경당 에는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7~1337)의 걸작들을 볼 수 있다. 그는 화가이자 건축가로서, 그의 업적으로 미술이 르네상스 시대로 나아갈 수 있었다.
조토는 1302년 파도바 부자인 엔리코 스크로베니로부터 경당 내부의 프레스코화 작업을 의뢰받았다. 엔리코의 아버지 레지날도는 고리대금업으로 큰 부를 쌓은 사람으로, 엔리코는 가문의 죄에 대해 속죄하기 위해 경당을 건립하기로 결정하고 조토에게 작품을 맡겼다.
스크로베니 경당 내에는 여러 주제의 프레스코화가 있지만, 이번에는 주님 봉헌의 작품에 관해 이야기하겠 다. 이 주제의 장면에서는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후에 모세 율법의 예식을 지켰다는 내용이 언급된다. 아기 예수는 맏아들로서 다섯 세겔이나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양과 집비둘기 하나로 속량되어야 했다(참조, 레위 12,8). 이 장면은 또한 시메온의 노래를 통해 아기 예수 가 그리스도로 인정받는 순간을 보여준다(루카 2,29-32).
조토는 이 장면에 언급되지 않는 하인과 천사의 모습을 추가했다. 이 장면에 등장하는 7명의 인물은 주님 봉헌을 더 풍요롭게 드러낸다. 아기 예수와 마리아의 손 사이의 간격은 점점 넓어져 갈 운명을 상징하며, 천사와 예언자 안나, 마리아 사이의 몸짓은 삼각형 모양으로 육화의 삼위일체를 나타낸다. 아기 예수의 시선은 자신을 안는 늙은 시메온의 손에 신성한 것을 만지기 위한 베일을 쓴 손으로 만지는 것에 편안하지 않음을 나타낸다. 아기 예수는 성모 마리아처럼 고통스러운 운명의 첫 번째 계시를 이미 알고 있으므로 팔을 뻗고 어머니 품으로 돌아가고 싶은 모습을 보여준다. 시메온은 제단 상단의 계단에서 있는 주교를 연상시키는 자세로 표현되었다. 그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소중한 사람처럼 헌신적으로 아기 예수를 팔에 안고 손을 감싸고 있다. 성모 마리아는 봉헌의 의미로 약간 고개를 숙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다. 이 예언자는 메시아를 가리키며 축복하고, 요셉은 비둘기 두 마리를 안고 안나와 이야기한다.
이 작품은 배경으로 성전을 연상시키는 건물 안에 장면을 배치하고, 같은 장면에 참여하는 관람객을 포함한 다. 아기 예수와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만나기 때문에 이 작품은 “만남”이라고 불리는 축제를 나타낸다. 2월 2일 금요일은 주님 봉헌 축일이자, 축성 생활의 날이다. 주님 봉헌이라는 축제의 날에 우리는 단순한 구경꾼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세례성사를 통해 축성된 이들 모두 주님께 봉헌되었음을 기억하며, 그에 맞갖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도록 초대받는다.
- 권영명 안드레아 신부
내포교회사연구소 부소장 겸 솔뫼 교구역사관 관장-
성지를 걷다 - 성거산성지(2)
2. 성거산성지
1959년 성거산 정상에 미군이 군사기지를 건설하면서 도로를 내던 중에 순교 자들과 신앙 선조들의 유해가 발굴되었다. 이때 미군에 의해 제1줄무덤과 제2 줄무덤에 나누어 이장된 유해는 200여 구가 넘었다고 한다. 유해와 함께 묵주와 십자고상이 많이 나왔다고 한다.
처음 이장할 때에는 각각의 유해를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봉분을 만들지 않고 합장형태로 이장하였다. 그 후 1997년 10월 26일 줄무덤 재조성사업을 시작하면서 제1줄 무덤에 38기, 제2줄무덤에 36기의 봉분을 조성하였다.
소학골에서 체포되어 순교한 배문호 베드로와 최천여 베드로, 최종여 라자로, 고요셉, 최씨 며느리 등 이름이 알려져 있는 5명의 순교자 중 최씨 며느리를 제외한 4명의 순교자는 제1줄무덤에 안장되어 있다.
-글·사진 성거산성지-
하느님의 말씀 주일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9년 9월 30일 자의 교서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Aperuit lllis)를 발표하고 연중 제3주일을 하느님말씀의 주일로 제정하셨습니다. 교황은 교서에서 "성경이 없다면 이 세상에서 예수님과 그분 교회의 사명에 따른 여러 사건은 이해되지 못한 채 남아 있을 것"이라며 하느님의 말씀이 담긴 성경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습니다. 자의 교서 제목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는 교서를 시작하는 성경 구절인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여시어 성경을 깨닫게 해 주셨다."(루카 24,45)에서 나왔습니다.
기후위기에 따른 식량난
찬미 예수님!
한반도 주변 바다 온도 상승으로 대기 중 수분함량이 많아져서 지속적인 비와 눈이 올겨울에도 예상된다고 합니다. 오늘은 기후 위기 시대 한반도 2편으로 북한의 실정을 알려주는 기사가 있어서 소개하려 합니다.
"한반도에서 기후변화는 전 세계 평균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난 133년간 지구의 평균기온은 0.85도 올랐는데 한반도는 지난 30년간(1981~2010년) 연평균 1.2도 상승했다. 북한의 연평균 기온상승 경향은 0.45도/10년으로 남한의 0.36도/10년보다 1.3배나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집중호우가 많아지면서 상대적으로 겨울철~봄철 가뭄 기간은 길어졌다. 이에 따라 북한은 2021년 미국 국가정보국(DNI)이 꼽은 기후변화대응 취약 우려국 11개 나라 중 하나로 지목됐다.
북한의 산림 면적은 906만 ha로 국토 면적의 73.6%에 달하지만, 산림 황폐화는 심각한 상황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은 1999년부터 북한의 산림 현황을 10년 단위로 모니터링하고 있다. 2018년 위성영상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북한 산림 황폐지면적은 전체 산림 면적의 28%인 약 262만ha에 달한다."
산림은 어느 날 뚝딱 생기는 자원이 아니다. 수십, 수백 년이 지나야 만들어지는 자원이므로 보존해야 하는 우리 자산이다. 남한의 개발행위 역시 철저한 조사 뒤에 개발이 이루어져야 하는 시기임을 인지해야 할 것이다.
-글, 사회 복음화분과 제공-
[재활용품 성당 수거일 안내] * 사회 복음화분과*
매월 셋째 주 (주일)
1. 우유 팩 (세척 후 잘 말려 펼침)
2. 아이스팩 (물 ×, 젤로 되어 있는 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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