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23년 주보

연중 제28주일 2023년 10월 15일(가해)

모든 2 2023. 10. 20. 08:10

 

바양허쇼 성 소피아성당

 

+ 마태오 복음 22,1-14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여러 가지 비유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하늘 나라는 자기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베푼 어떤 임금에게 비길 수 있다.

  그는 종들을 보내어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을 불러오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오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다른 종들을 보내며 이렇게 일렀다. '초대받은 이들에게, '내가 잔칫상을 이미 차렸소. 황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준비를 마쳤으니, 어서 혼인 잔치에 오시오.'하고 말하여라.'

  그러나 그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떤 자는 밭으로 가고 어떤 자는 장사하러 갔다.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은 종들을 붙잡아 때리고 죽였다.

  임금은 진노하였다. 그래서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자들을 없애고 그들의 고을을 불살라 버렸다.

  그러고 나서 종들에게 말하였다.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는데 초대받은 자들은 마땅하지 않구나. 그러니 고을 어귀로 가서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그래서 그 종들은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왔다.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임금이 손님들을 둘러보려고 들어왔다가,혼인 예복을 입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하고 물으니,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였다.

  그러자 임금이 하인들에게 말하였다. '이자의 손과 발을 묶어서 바깥 어둠 속으로 내던져 버려라. 거기에서 울며 이를 갈 것이다.'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말씀의 향기>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 나봉균 요셉 솔뫼성지 주임

 

  내 마음 밭은 어떤 상태 입니까? 길? 돌밭? 가시덤불? 좋은 땅? 그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 성장 가능성과 열매가 달라집니다. 마음 밭 상태가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런데 마음 밭 상태가 아무리 좋더라도 가라지는 얼마든지 함께 자랍니다. 교회 안에 의인들뿐만 아니라 죄인들도 함께 공존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는 하나인데 구성원들은 부류가 다양합니다. 교회는 거룩한데 구성원들은 상태가 제각각 다릅니다. 교회 공동체는 그렇게 온갖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 모든 사람이 전부 구원되기를 바라십니다. 하지만 자유의지로 자기 멋대로 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도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

 

  오늘 복음에서 처음 초대받았던 사람들은 각자 자기 일이 우선이었습니다. 물론 놀러 다니느라 초대에 응답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먹고살려고 밭일이나 장사하러 갔습니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보면 충분히 억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말씀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은 그게 아닙니다. 먹고사는 문제보다 신앙이 우선이라고 단언하는 말씀이 아니라 하느님의 초대에 응답하는 것이 다른 그 어떤 일보다 우선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이든 때가 있습니 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다음으로 미루다가 자칫 가장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중요한 것을 놓칠 수 있습니다. 분기점에서는 어느 한쪽 길만 선택할 수 있을 뿐입니다.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 오너라.” “거리에 나가 악한 사람 선한 사람 할 것 없이 만나는 대로 데려 왔다. 잔칫방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이제 초대는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이방 민족에게까지 확대되었습니 다. 한 사람이라도 더 초대하고자 하는 하느님의 자비와 절박함이 느껴집니다. 덕분에 이제 하느님 나라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거의 공짜 선물과도 같아졌습니다. 그럼에도 최소한 혼인예복은 갖춰 입어야 한답니다. 그렇다면 혼인예복을 갖춘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오늘 제2독서에서 그 단서를 발견합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나그네 여정인 이 세상 삶에 묶여있지 않은 사람만이 그렇게 살 수 있습니다. 세상에 발을 딛고 살면서 묶여있지 않는 삶을 산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야 신앙인입니다. 그것이 예복을 갖춘 사람입니다.

 

 

더 나은 우리 가정

 

4. 주님, 제 자녀와 함께 해 주세요

 

  매일 성장하는 자녀의 생활 범위는 그 성장에 따라 점차 확장됩니다. 확장된 만큼 새로운 경험, 만남과 이별, 때로는 낯선 상황과 타인들은 부모처럼 무조건 허용적이지 않습니다. 그럴 때 자녀는 “내 맘대로 다 할 수 없구나.” 생각하며 종종 실망과 좌절감을 경험 합니다. 이런 자녀를 보는 부모는 안타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자녀가 이러한 실망, 실수, 실패를 할 수 있다는 허락이 필요합니다. 단, 그러한 경험들로 자녀에게 상처가 되지 않도록, 때로는 그 상처가 잘 아물 수 있도록 자녀 마음을 돌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녀가 부적절한 행동을 할 때, 부모는 감정적으로 반응하지 않도록 주의합니다. 명령이나 감정적 질책, 또는 협박은 상황을 종료하고 일시적으로 부정적 행동을 없앨 수는 있지만 그로 인한 해결 상태를 지속시킬 수는 없습니다. 자녀의 성장과 변화를 위해 자녀에게 부드럽지만 단호한 표정과 어조로 “안돼, 그만.”이라고 말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한없는 하느님의 자비와 달리, 본성상 한계를 갖는 부모의 자비는 분명 제한과 허용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얘야, 지금 이 행동은 멈춰야 해.’라는 의미를 꼭 전달해야 합니다.

 

  특히 미성숙한 자녀가 부적응적 행동을 멈출 때 새로운 적응의 대안과 허용범위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 다. 이때 부모와 자녀가 함께 더 나은 적응을 위한 타협을 마련한다면 더욱 좋습니다. 자녀가 새로운 대안을 사용하여 변화된 행동으로 나아가는 것은, 부모로 하여금 자녀의 수고와 노력에 칭찬과 지지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이 결정적 순간에 적절한 지지와 칭찬은 변형된 적응의 행동을 자녀가 내재화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때로는 내 자녀가 실수나 실패를 하기도 하고, 누군가로부터 거부나 부정적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이때 자녀에게는, “이런 상황에서 실망감, 수치감, 좌절감이 느껴지는 것도 자연스러운거야. 괜찮으니 다음에는 더 나아질 거야.”라는 감정의 수용과 진정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은 부모의 공감으로 이루어집니다. 부모가 안타까운 마음에 자녀보다 먼저 속상해하고 수치심에 화를 낸다면, 자녀는 자신 때문에 힘들어하는 부모의 감정을 살피느라, 자신에 대한 부모의 화나 걱정을 방어하느라 자신을 스스로 돌보고 조절하고 관리하는 것을 어려워하거나 포기해 버립니다.

 

  공감은 부모의 마음을 얘기하고 표현하기보다 자녀의 감정과 생각을 들어주고 그 도움과 내용에 기꺼이 응해 주는 것이 먼저입니다. 자녀가 진정과 위로로써 실패로 인한 부정적 감정을 감당하면서도 스스로 실패의 과정을 점검하고 새로운 대안을 마련하여 더 넓은 사고의 발달과 관계적인 확장을 이룰 것입니다. 이러한 전 과정을 ‘상처가 되지 않는 실패’, ‘최적의 실패’라 하며, 이 경험은 자녀가 새로운 지향성과 도전을 마주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부모는 자녀가 실수하고 실패하는 것을 지켜보고 허락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최적의 실패 속에서 만나는 용기와 더 나은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맙시다. 그럴 때마다 주님께 청합시다. “주님, 제 자녀와 함께해 주세요.”

 

-천주교대전교구 가정사목부-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60. 미사 해설 -성찬 전례(24) : 영성체 예식 - 주님의 기도(3)

 

  지난 편에 이어서 영성체 예식 때 봉헌하는 주님의 기도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지소서.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1티모 2,4)”

    아버지의 뜻은 모든 이가 서로 사랑하며 하느님의 사랑 안에 일치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뜻이 바로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이루어지기를 청하는 것이 세 번째 청원의 핵심입니다. 우리가 봉헌하는 미사 역시 이러한 목적을 지닙니다. 어느 한 사람이나 한 공동체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봉헌하는 제사가 아닌 아버지의 뜻이 바로 우리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네 번째 청원은 자녀다운 믿음을 가지고 아버지께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을 청하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핵심적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부분은 “일용할 양식”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일용할 양식은 우리가 곧 모시게 될 “성체”입니다. 우리에게 성체는 생명의 빵이며, 구원의 빵입니다. 곧 우리가 이 사랑의 잔치에 참여한 이유도 이러한 일용할 양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단순히 우리의 재산을 늘리는 차원으로의 청원이 아닌 우리의 청원과 함께 생명의 빵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이 미사에서 하느님의 자녀들에게만 열려진 은총이기도 합니다.

 

  ◇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다섯 번째 청원은 우리가 지은 죄를 용서해주시기를 청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주님을 통해서 우리의 죄를 용서받습니다. 그리고 이 용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러한 자비의 은총에 힘입어 우리는 잘못한 이웃을 하느님처럼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늘 자비이신 아버지의 품 안에 머무는 이들입니다. 늘 아버지의 사랑과 자비, 은총을 입고 살아가는 이들입니다. 그렇기에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 10,8)’는 말씀처럼 우리가 받은 용서의 은총을 우리 역시 다른 이들에게 열어주는 것입니다.

 

  ◇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여섯 번째 청원과 일곱 번째 청원은 악과 유혹으로 부터 우리를 구해주십사 청하는 것입니다.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기도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기도를 통해 늘 그 힘을 얻습니다. 나아가 악에 빠지지 않고 평화를 누릴 수 있는 것 또한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렇기에 이러한 청원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주님께 올릴 수 있는 기도이면서 동시에 우리가 아버지께 온전히 의탁할 때 자연스럽게 고백되어질 수 있는 기도입니다.

 

  다음 편에서는 이어지는 사제의 기도와 신자들의 응답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윤진우 세례자요한 신부 사목국 차장-

 

 

 

바양허쇼 성 소피아성당

  바양허쇼 성 소피아성당은 이준화 노베르토 신부님께서 1997년 몽골에 들어와서 가나안 회사를 설립하여 사회복지사업을 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 니다. 처음 에르뜨산트 지역에서 농장을 운영하였고 울란바타르 성깅하이르항구에 1999년에 터를(현재 바양허쇼 성당터) 잡고 가난한 이들과 이웃하며 몽골의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그 후 2012년 7월 5일 몽골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허가를 얻어 공식적인 소피아 본당의 종교활동이 시작되었습니다. 주보 성인은 성 소피아(축일 4월 30일)를 모시고 있습니다. 바양허쇼 본당은 복음을 삶으로 증거하기 위해서 가난한 이웃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음식을 함께 나누고 병자들을 돌보고 소외된 이들을 맞아들이며 몽골에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글. 사진 바양허쇼 성 소피아성당-

 

 

김용태 안드레아 신부의 학교 사목 이야기(10)

 

Nine to Nine

 

  영어로 근무시간을 표기할 때 nine to five라는 표현을 쓴다고 한다. 아홉 시부터 다섯 시까지 8시간 근무한다는 뜻일 게다. 그런데 대건 학교 아이들 사이에서 흔히 쓰는 표현으로 nine to nine이라는 말이 있다. 이건 외박을 가지 않을 때 아이들의 주말 일정이다. 아침 아홉 시부터 저녁 아홉 시까지 자기 주도적 학습(?)을 한다. 쉬는 날에도 끊임없이 책상머리에 붙어앉아 있어야 하는 모습은 안쓰럽기 그지없다. 아이들에게 자신을 위한 시간은 허락되지 않는 것일까. 어른들도 하루에 8시간 근무하는데, 왜 아이들에게는 근무시간이 적용되지 않는 것일까.

 

  물론 어떤 분들은 나 때는 더 했다고 하실지도 모르 겠다. 혹은 대학 가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 말들이 다 맞는 말일 수도 있다.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열심히 하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지도 모른다. 허나 분명한 것은 쉴 새 없이 계속 학업에 매달리고 있어야 하는 피로감이 참 크다는 것이다. 끊임없이 성실한 친구들도 있겠지만, 많은 아이가 지쳐한다. 지친 아이들은 집중력이 떨어지고, 결국은 학업이 아닌 꿈나라에 가거나 딴 짓을 하곤 한다. 여기서 자기 주도적 학습이라는 말이 맞는지 고민하게 된다. (예로부터 자습이라는 말은 타의에 의한 학습을 의미했던 것은 아니었을 까라는 생각을 해 본다.)

 

  여기서의 요지는 자습 제도에 대한 비판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현실은 살아가야 하는 것이니만큼 해야만 한다면 힘을 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학교에서는 주일 저녁 8시에 학생들을 위한 주일미사를 드린 다. 아이들은 바쁘거나 피곤하면 미사를 빠지는 일도 잦은 편이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매주 80여 명이 나온다. 신자가 아닌 친구들도 많다. 어쩐 일이냐고 물으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왔다고 대답한다. 17살이 마음의 평화를 찾으러 왔다니 놀랍게 느껴지기도 하면서 정말 평화가 필요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자습하기 싫어서 도망 온 거라고 하지만, 그리고 실제로 그럴 수도 있지만,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하는 그 마음은 진심일 거라고 생각한다. 하느님 안에서 평화를 찾고 평화를 이루고자 하는 그 마음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공부를 제외하곤 치킨과 피자에 환장하고 축구와 게임 생각만 하고 사는 것 같은 아이들이지만, 이 아이들에게 평화를 찾는 마음을 주시는 하느님께서는 놀라운 방법으로 일하시고 계시다는 생각이 든다.

 

  “행복하여라,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라 불릴 것이다.”(마태 5,9)

 

  이러한 마음으로부터 당신의 자녀로 부르시고 당신의 사람이 되게 하시는 것이겠구나 싶다. nine to nine에서 peace to heaven이 되는 신비가 이루어지기를 기도한 다. 복잡한 세상에서 마음의 평화를 찾아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가는 이 아이들이 언젠가는 이 세상에 하느님의 평화를 이루는 사람이 되리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김용태 안드레아 신부 논산대건중.고교 교목-

 

 

성지를 걷다 - 도앙골성지

 

1. 도앙골성지

 

  도앙골은 1800년대 초부터 공주, 서천 등지의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이주하여 살던 교우촌이다. 1890년의 교세통계표에 50명이 넘는 교우들이 거주했던 것으로 나온다. ‘도앙골’은 이 마을 계곡 주변에 개복숭아 나무가 많다 하여 생긴 도원곡(桃園谷)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1866년 병인박해가 발생하자 도앙골 출신 김사범, 김 루카, 김 바오로, 오 시몬, 오 요한 등이 체포되어 공주에서 순교하였다.

 

  중국에서 사제품을 받은 두 번째 한국인 사제 최양업 신부가 국내로 입국하여 1850년 10월에 쓴 첫 편지의 발신지가 ‘도앙골’이다. 오랜 기간 동안 한 곳에 머물며 조선 천주교의 사정을 자세히 기록한 편지인데 이곳 도앙골에서 작성되었다. 이에 따라 도앙골에는 최양업 신부의 시복을 기원하는 현양비가 세워져 있고, 사제로서 그의 열정적인 사목을 기념하는 제대를 만들어 봉헌하였다.

 

  도앙골 교우촌은 월명산 정상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있는 ‘삽티 교우촌’과 관련을 맺고 있다. 도앙골 교우들이 삽티 교우들과 서로 연통하며 신앙생활을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 도앙골과 삽티를 잇는 도보순례길이 조성되어 있어 옛날의 의미를 살리고 있다.

 

 

<1분 교리>

 

Q-1) '묵주기도'란 무엇인가요?

  A) 묵주기도는 복되신 성모 마리아께 찬미와 공경을 드리기 위해 묵주 구슬을 세면서 바치는 기도입니다. '로사리오'라고도 부르는데, '장미 꽃다발'을 의미하는 라틴어에서 유래합니다.

 

  묵주기도의 세 가지 신비에는 성모송 백오십 번이 들어 있는데, 이 유래는 구약 시편 150편을 기도로 바치던 데에서 나왔습니다. 최근에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2002년 10월 16일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를 반포하면서 빛의 신비가 추가 되어 네 가지 신비를 묵상하는 기도를 바치게 되었습니다.

 

Q-2) '십자가의 길'이란 무엇인가요?

  A) 지정된 14처마다 주님의 십자가 처형을 묵상하며 자신 역시 주님이 짊어지신 십자가의 무게를 체험하며 드리는 기도입니다. 십자가 처형은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잔악모도함의 극치였으며 치욕과 패배의 멍에였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스스로 고난의 십자가 길을 걸어가셨으므로 십자가 역시 영광의 표지이며 구원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우리를 구원하신 주님을 묵상하며 그 사랑을 본받아 살아가고자 기도 올리는 것입니다.

 

 

순환 경제 -의류

 

+ 찬미 예수님

 

  세계경제포럼에서 순환 경제를 '의도와 설계로 복원되거나 재생되는 산업 체제'라고 정의합니다. 즉, '물건을 생산할 때부터 이 물건이 버려져서 다시 쓸 수 있는 자원으로 복원되거나 재생할 것까지 염두에 두고 만든다.'란 뜻입니다.

 

  우리 생활에서 의류는 그 사람의 개성과 지위, 역할을 나타내는 중요한 부분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버려지는 의류는 엄청나게 많아서 전 세계 탄소 배출량의 1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전체 의류 중에서 60%가 넘는, 중요한 소재인 합성섬유는 원재료 분리가 쉽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 매립되거나 소각되어서 또 다른 탄소배출의 원인이 됩니다.

 

또한, 의류 세탁 시 발생 되는 미세플라스틱은 우리가 마시는 식수와 바다를 오염시키는 원인 물질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의류로 인한 환경오염이 증가하게 되면서 의류의 생산부터 자원으로 쓰일 수 있는 순환 경제의 도입이 최근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의류를 아끼면서 입고, 낡으면 수선해서 재활용하는 생활 습관을 지니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재활용품 성당 수거일 안내] * 사회 복음화분과*

 

매월 셋째 주 (주일)

1. 우유 팩 (세척 후 잘 말려 펼침)

2. 아이스팩 (물×, 젤로 되어 있는 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