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23년 주보

연중 제27주일(군인 주일) 2023년 10월 8일(가해)

모든 2 2023. 10. 12. 11:30

대만 한인 성당

 

 

+ 마태오 복음 21,33-43

 

 <주인은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비유를 들어 보아라. 어떤 밭 임자가 '포도밭을 일구어 울타리를 둘러치고 포도 확을 파고 탑을 세웠다.'그리고 소작인들에게 내주고 멀리 떠났다. 포도 철이 가까워지자 그는 자기 몫의 소출을 받아 오라고 소작인들에게 종들을 보냈다.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들을 붙잡아 하나는 매질하고 하는 죽이고 하나는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였다. 주인이 다시 처음보다 더 많은 종을 보냈지만, 소작인들은 그들에게도 같은 짓을 하였다. 주인은 마침내 '내 아들이야 존중해 주겠지, '하며 그들에게 아들을 보냈다

  그러나 소작인들은 아들을 보자, '저자가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여 버리고 우리가 그의 상속 재산을 차지하자.'하고 저희끼리 말하면서, 그를 붙잡아 포도밭 밖으로 던져 죽여 버렸다.

  그러니 포도밭 주인이 와서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그렇게 악한 자들은 가차 없이 없애 버리고, 제때에 소출을 바치는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밭을 내줄 것입니다."하고 그들이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경에서 이 말씀을 읽어 본 적이 있느냐?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네,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너희에게서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아, 그 소출을 내는 민족에게 주실 것이다."

 

 

<말씀의 향기>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필리 4,6)  -최승범 베드로 해군사관학교 주임

 

  필승! 저는 해군사관학교성당 최승범 베드로 신부입니다. 군인 주일을 맞아 오늘 강론은 오늘 2 독서의 사도 바오로의 말 씀으로 시작하고 싶습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필리 4,6).

 

  저는 2020년도 해군 해병대 군종신부로 발령을 받고 노은동성당을 떠나 두 번째 입대를 해 훈련을 받으면서 세 가지 목표를 정했습니다. 1. 세례 많이 주기, 2. 신학교 보내기, 3. 1년에 한 명 살리기

 

  이러한 마음을 품고 저는 해병대 2사단 5 여단 강화도 세라핌성당 초대 신부로 오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걱정이 많았습니다. 본당 통장은 제가 만들어서 0원, 성당은 조립식 컨테이너에, 한 명의 신자도 없어서 혼자 사제관에서 미사를 했습니다. 더군다나 코로나까지.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필리 4,6)라는 말씀이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 그렇게 하루 이틀, 한 달 반 동안 저는 우리 해병대 2사단과 제가 만나는 사람들을 위한 지향을 두고 주님께 의탁하며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리고 햄버거를 가지고 위문을 갔습니다. 그곳에 병사 신자가 있었습니다.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속으로 그 신자가 미사를 하고 싶다고 하길 바랐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친구는 “신부님 미사는 안 해도 괜찮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 그렇구나. 신부님이 미사 중에 기도할게.” 햄버거 셔틀이 된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계속해서 혼자 미사를 봉헌하며, 두 달이 더 지날 무렵, 위문을 간 곳에 신자가 있는 것이었습니다. 속으로 ‘미사를 하고 싶다고 해라. 해라.’ 생각하며 물었습니다. 다행히 미사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속으로 ‘하느님, 감사합니다.’ 코로나라 성당에서 미사를 할 수가 없어 1시간 걸리는 부대에 가서 미사를 하고, 미사 후에 피자를 먹다 보니 세례를 받고 싶다는 해병들도 생겨 교리 후 성탄절에 세례도 주었습니다. 이 세례를 받은 해병들이 저를 햄버거와 피자 셔틀이 아닌 함께 교리하고 미사를 하는 신부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필리 4,6)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렇게 6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갈 때, 24살 하사 신자 청년을 만나 미사도 같이하고, 밥도 먹고, 술도 마 시며, 제 사제 생활의 첫 사목회장을 임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사목회장님에게 청년회를 만들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사목회장님이 “신부님, 그것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하고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아마 제가 실망할까 봐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 아버지의 도우심으로 소위, 하사, 중사들 중심으로 10명 정도의 청년들을 모아서 청년회가 되었습니다.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필리 4,6).

 

  끝으로 기도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제가 있는 해군사관학교 생도들과 해군, 해병대 그리고 전국에서 고생하고 있는 장병들과 군인 가족들 그리고 군종 사제들과 수도자들과 선교사들을 위해서도 기도해 주십시오. 저도 주보를 읽는 모든 분에게도 “아무것도 걱정하지 마십시오.”(필리 4,6)라는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두 손 모아 기도하겠습니다. 오늘 나눔은 제가 좋아하는 기도로 마치겠습니다.

 

하느님, 제가 바꿀 수 없는 것들을

받아들일 평온함을 주시고

제가 바꿀 수 있는 것들을 바꿀 용기를 주시며,

그것들을 분별할 지혜를 주소서.

오늘 하루를 살게 하시고, 오직 이 순간을 살게 하시며

어려움을 평화에 이르는 길로 받아들이게 하소서. 아멘.

 

 

아직도, 여전히 또한 앞으로도 시노달리타스(11)

 

성직주의를 극복하는 시노달리타스의 교회

 

  교회의 쇄신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거나 혹은 시노달리타스에 대해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다면 ‘성직주의 혹은 성직자중심주의’라는 표현을 접해 보았을 것이다. 바로 하느님께서 기대하시는 하느님 백성의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데 반드시 치료해야 하는 고질병 가운데 하나로 말이다. 실제로도 성직주의에 대해 교황 프란체스코는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말살할 뿐 아니라 세례성사를 통해 그리스도교 신자들 마음에 불어넣어 주신 성령의 은총마저 경시하고 무시하는 태도”라고 말하며 강하게 비판한다. 그래서 성직 주의를 교회의 시노드적인 실천을 방해하는 가장 큰 장애물 가운데 하나이며 교회의 친교와 복음의 핵심을 왜곡할 위험을 지닌 병폐라고 규정한다. 교회의 ‘권위’를 ‘권위주의’적으로 이해하고 사제직무를 이타적인 무상의 ‘봉사와 섬김’이 아닌 ‘권력’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직자와 평신도 그리고 가르치는 교회 (Ecclesia docens)와 배우는 교회(Ecclesia discens) 사이의 엄격한 구분에 기초한 피라미드적이고 수직적인 모습의 교회를 정당화하고 옹호한다.

 

  성직주의로 병든 교회를 전적으로 성직자들의 탓이라고 매도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평신도들의 탓도 공동으로 존재한다. 현실 안에서 성직주의는 성직자들 뿐만 아니라 평신도들이 조장하는 경우도 제법 많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교 신자라면 교회의 삶과 사명에서 당연히 짊어져야 하는 책임에서 벗어나게 하기에 편리하고 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황 프란체스코는 성직주의를 “교회의 오른손과 왼손이 함께 지은 죄”라고 말하기도 한다. 결국 성직자와 평신도는 공범(共犯)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성직주의를 넘어서기 위해서 는 성직자들만이 아니라 평신도까지, 즉 하느님의 백성 모두가 시노달리타스의 회심을 해야 하는 것이다.

 

  교황 프란체스코는 시노달리타스의 교회를 피라미드의 형태가 아니라 맨 꼭대기와 맨 아래가 뒤집어진 피라미드의 교회라고 한다. 피라미드의 형태인 교회에서 맨 꼭대기에 성직자가 자리했고 맨 아래가 평신도가 자리했다면 뒤집어진 피라미드에서 맨 위에는 과연 누가 자리해야 하고 맨 아래에는 누가 자리해야 하는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질문에 맨 꼭대기에 ‘자신’을 두고 맨 아래에 ‘자신이 아닌 타인’을 배치한다면 여전히 성직주의가 초래한 병폐와 참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권력 구조가 아니라 봉사와 섬김의 구조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맨 아래에는 가난해지시고 낮은 곳으로 내려오신 그리스도를 닮기를 희망하는 ‘그리스도교 신자인 자신’이 자리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직주의를 넘어서는 시노달리타스의 교회의 모습이라 할 것이다.

 

-안동훈 안드레아 신부 한산 주임-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59. 미사 해설 - 성찬 전례(23) : 영성체 예식 - 주님의 기도(2)

 

  영성체 예식 때 봉헌하는 주님의 기도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것 자체에서 자녀다운 신뢰와 믿음을 주님께 고백하고, 하느님 아버지께 대한 감사와 찬미, 흠숭을 올리는 것입니다. 아울러, 이 호칭 안에는 이 미사를 참석하지 않고 있는 공동체원들을 기억하도록, 곧 아버지의 품안에 머무는 모든 자녀가 분열과 대립을 넘어서 일치과 친교에로 나아가겠다는 다짐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곧, 우리의 신원을 재차 확인하고, 그 확인을 통해서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열어주신 그 은총을 기억하자는 의미입니다.

 

  주님의 기도에는 모두 일곱 가지의 청원이 등장합니다. 첫 세 가지 청원은 하느님 아버지에 관한 것이고, 이후 네 가지 청원은 우리에 관한 것입니다.

 

  ◇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첫 청원은 우리를 통해서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기를 청하고 있습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자신을 거룩하게 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1,44).

  하느님 아버지께서 거룩한 이들이기에 우리는 거룩한 이들입니다. 하느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는 거룩한 이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는 행위는 거룩함을 전달하는 것이고, 나아가 아버지의 이름을 위해, 그리고 우리 가족을 위해, 우리가 가진 거룩함을 잘 보존하고 거룩한 행위를 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미사에 참석한 이유도 바로 이것입니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남과 동시에 우리의 거룩함을 위해!

 

  ◇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루카 17,21).

  이 세상에서 이미 시작된 하느님 나라는 우리 가운데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기를 기도하며 이를 위해 함께 모여 찬미, 찬양하며 나아갑니다. 우리가 봉헌하는 이 미사도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미사를 통해 우리에게는 하느님 나라를 맛볼 수 있도록 열립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렇게 맛본 하느님 나라를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 공간에서도 기억하고 행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다음 편에서도 주님의 기도에 대한 설명이 계속됩니다.

 

-윤진우 세례자요한 신부 사목국 차장-

 

 

 

대만 한인성당

 

  대만 한인성당 공동체가 함께 모이고 미사를 하는 곳은 『長安天主堂 (장안천주당)』이라고 하는 천주교 성당입니다. ‘장안당성당’은 중국에서 설립된 수도회인 ‘主徒會(주도회)’ 소속 성당이며 타이페이 시내 한가운데 위치하고 있습니다.

 

  대만 한인성당은 이곳 ‘장안당성당’에서 1985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대만에 거주하는 한인 천주교 신자들을 위해 공부나 선교 등을 목적으로 파견된 한국 교구 및 수도회 신부님들이 도움을 주셨고, 이후 대전교구에서 교포사목 사제가 파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작은 공동체이지만 해외 생활 중 기쁘게 신앙의 길을 함께 가고 있습니다.

 

 

이충무의 숨은 행복 찾기(66)

 

겉바속촉한 사람

 

  맛있는 음식을 표현하는 말은 참 다양합니다. 그중에 특히 ‘겉바속촉’은 튀김음식의 환상적인 맛을 강조할 때 가장 많이 나오는 표현일 겁니다.

 

  한 입 베어 물 때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 느껴지는 오묘한 맛... 바삭함과 촉촉함이라는 전혀 상반된 느낌이 한 번에 입안에서 어우러질 때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곤 합니다.

 

  사실 바삭하기만 해도 맛은 납니다. 아니 바삭할수록 더 맛이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다소 아쉬움이 남습니다. 거친 식감에 입안이 종종 불편해지기 때문입니다.

 

  촉촉하기만 해도 맛은 납니다. 아니 촉촉해질수록 더 맛이 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소 아쉬움이 남습니다. 너무 부드러워 사근사근하게 씹히는 식감이 없어 밍밍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겉이 바삭하고 속이 촉촉하다고 다 맛있는 것도 아닙니다. 거친 것과 촉촉함이 얼마나 서로 적절하게 어우러지는지 그 조합이 최상의 맛을 좌우합니다.

 

  사람 관계에서도 맛은 존재합니다. 만날 때마다 쓴 맛을 느끼게 하는 사람, 너무 달달한 느낌만 주는 사람, 혹은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맛을 전하는 사람...

 

  사람 관계에서도 맛볼 수 있는 최고의 맛이 있다면, 그것 또한 ‘겉바속촉’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람들과 오랜 세월 만나다 보니 인간관계에 있어서 ‘겉바속촉’한 맛은 겉은 ‘바르고’ 속은 ‘촉’이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언행은 늘 바르기에 다소 엄격하고 딱딱하게 느껴지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늘 공감과 연민의 감정으로 사람을 포용하는 사람들은 만날수록 자꾸만 만나고 싶어 집니다.

 

  상식과 예의를 벗어나지 않고 늘 바른 언행으로 타인을 만나면서 동시에 내면에서는 함부로 타인을 판단하지 않는 감수성이 살아 있는 겉바속촉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만나면 좋은 친구는 만날수록 만남의 맛이 깊어지는 친구일 겁니다. 헤어질 때마다 아쉽고, 만날 때마다 살아가는 맛을 느끼게 하는 그런 멋진 겉바속촉한 사람이 그리워지는 가을입니다.

 

- 이충무 바오로 극작가, 건양대교수-

 

 

<1분 교리>

 

Q-1) '십계명'이란 무엇인가요?

  A) ''십계명'이란 모세가 시나이산에서 하느님께 받은 열 가지 계명을 말합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사랑의 내용이 축을 이루는데 1~3 계명 내용인 '하느님 사랑'과 4~10 계명 내용인 '이웃 사랑'이 그것입니다. 십계명은 믿을 교리와 함께 가톨릭 신자들이 지켜야 할 수계 생활의 핵심입니다.

 

Q-2) 미사 드릴 때 취하는 동작들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A) 미사성제를 봉헌할 때는 하느님께 드리는 경배와 찬미를 드러내도록 경신례에 따른 여러 가지 동작을 취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무릎을 꿇는 동작은 하느님께 흠숭과 찬미를 드리며 그분의 은총을 간청하는 표시이며, 앉는 동작은 하느님의 말씀을 잘 경청하고자 함이고, 서는 동작은 주님을 대리하는 사제를 맞을 때와 하느님께 대한 감사를 드러낼 때 취하는 행동입니다.

 

  또한 사제와 연관된 동작들에는 경건과 주님과의 일치를 표시하는 '손 모음', 개방과 수용의 표시인 '손 벌림', 봉헌과 간청의 표시인 '손 올림', 겸손과 낮춤의 표시인 '몸 숙임'등이 있습니다.

 

 

쓰레기 자원화

 

+ 찬미 예수님

 

  오늘은 쓰레기 자원화에 대하여 말씀드릴까 합니다. 탄소중립이란 탄소 배출량과 흡수량이 같아져서 제로가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화석에너지(석탄, 석유, 천연가스)를 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화석에너지를 계속 사용할수록 탄소 배출량은 늘어나서 탄소중립과는 거리가 멀어지게 됩니다.

 

  우리가 버리는 쓰레기는 소각에서 에너지원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소각에 쓰이는 연료원 또한 쓰레기를 통해서 얻을 수 있어서 화석에너지 사용을 줄일 수 있습니다. 이런 기술들을 계속 발전하고 있습니다.

 

  플라스틱에서는 화유기(기름) 생산이 가능하고 유화유 성분 중 일부는 합성수지 제품의 원료로서 공급될 수 있습니다. 이제까지는 쓰레기는 소각을 통해 아주 작게 만들어서 매립량을 줄이는데 중점을 두고 정책이 이루어졌다면, 앞으로는 자원화를 통해 환경문제 및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중요한 부분으로 발전되고 있습니다. 쓸 수 있는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중요한 에너지원입니다.

 

[재활용품 성당 수거일 안내] * 사회 복음화분과*

 

매월 셋째 주 (주일)

1. 우유 팩 (세척 후 잘 말려 펼침)

2. 아이스팩 (물×, 젤로 되어 있는 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