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대웅의 달시

실크로드의 달

모든 2 2023. 10. 12. 15:53

 

 

 

실크로드의 달

 

어렸을 적에는 여기 저기 참 많이도 기웃거렸지. 우르르 몰려다녔지. 가만히 혼자 있지를 못했어. 답이 밖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이름을 알리고 싶었고 알려진 이름들을 만나고 싶었지. 부러웠지. 그래서 내 것이 없었어. 허전했고 외로웠어.

 

불안감 때문에 그랬을 거야. 미래에 대한 불안감, 먹고 사는 것에 대한 불안감, 그 불안감을 해결해 주는 것이 안에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어. 사람, 관계, 일 그 모든 것이 밖에 있었으니까 밖으로만 다녔지. 더 불안했어. 불안해서 만나고 또 만나고 웃고 떠들고 돌아와도 마음은 늘 허전했어.

 

고요하다는 것, 그 조용하고 정지해 있는 듯한 그곳에 나는 모든 것들이 다 들어 있다고 생각해. 이제 세상을 막 떠난 한 사람이 머물고 있는 평온한 슬픔 같은 것. 무엇인가 새로 다시 오려고 하는 두려움 같은 것, 그 고요를 가끔 볼 때가 있어. 땅거미가 질 때,  길 모퉁이를 돌 때, 처마 밑 거미줄로 허공이 뚝뚝 떨어질 때, 어느 집에서인가 밥짓는 소리가 들릴 때, 국화꽃 그늘 같은 그 자리, 적막이 어루만져지고 있는 자리, 쓸쓸해서 아늑한 자리.

어느 날 그 고요의 방에 혼자 머무는 법을 알게 됐어.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점점 익숙해지자 고요해졌어. 내면에 무언가 솟아오르고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어. 산길,숲길, 오솔길들을 자주 걸었어. 꽃, 나무, 강물, 해지는 노을을 오래 바라보았어. 답은 사람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연들에게 있었어. 인간은 그저 욕망이고 그래서 가여운 허상이고 허망함일 뿐이야. 내가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일들을 찾았어. 내 안의 실크로드, 나를 이겨나가고 있었어.

 

아름답다는 것은 무엇이 아름답다는 것일까. 길을 걸으며 오랫동안 생각을 했어.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바람소리가 나고 햇빛이 묻어 있고 빗소리가 들어 있는 것들이야. 오래된 슬픔과 기쁨 아픈 사연들이 꾸덕꾸덕 자연과 함께 스며 깃들어지고 어우러져 있는 것.

사람도 그래. 그렇게 나이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찰랑찰랑 햇빛이 부서지는 소리, 가슴에 강물 흐르는 소리, 말할 때, 웃을 때, 침묵할 때 심지어 욕을 할 때도 연습하려고 해.

 

사람이 아닌 자연의 성질을 알아가는 것, 너와 나와 우리를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구절초와 쑥부쟁이를 구별할 줄 아는 것, 당신들과 멀어지고 자연의 이름을 하나씩 배워가는 것, 그렇게 사람들을 떠나가는 여행을 하려고 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이나 하늘에도 신호등이 있다고 생각했어. 건너갈 때가 있고 건너가지 못할 때가 있는, 인생에 우선멈춤과 건널 때를 이제사 배우고 있는 것 같아.

나 혼자 이기며 사는 법을 알아가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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