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득한 한 뼘 / 권대웅
달은 경계가 없어, 내가 이곳에서 보는 달과 당신이 저곳에서 바라보는 달이 같으니 우리는 모두 한 동네야. 한국, 일본, 중국, 미국, 프랑스, 아르헨티나... 지구 위에 경계가 그어진 그 어느 나라에서 보아도 달 아래 인류는 모두 한 동네야. 비단 지금 우리가 바라보는 달뿐만이 아니라 아주 오랜 옛날 사람들이 밤이면 바라보았을 달을 생각하면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의 긴 달빛의 끈으로 이어져 있는 것 같아.
'바라본다'라는 말은 '그리워하다'라는 말과 동의어가 아닐까. 북간도에서 고국을 그리워하며 바라보던 달, 오지 않는 당신을 기다리며 바라보던 달, 그런 그리움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 그리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아쉽고 보고싶고 쓸쓸하고 슬프고 애타는 것들이 합쳐진 마음 그 어둡고 진흙탕 같은 곳에서 그리움은 또 다른 생을 빚어낼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
연꽃을 수도 없이 그렸어. 생의 비밀이 달빛과 연꽃이 피어나는 지점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 내가 이 세상에 오고 가는 이유를, 이곳과 저곳 이생과 저생의 의미를, 그 모든 것이 그리움으로 연결된 연緣을 연꽃에서 찾으려 했어. 분명 달에 존재하지 않는 환한 달빛이 연못에 비출 때 그 있고 없음을 달에서 찾고 싶었어. 달시로 그려보고 싶었어. 어둠을 바탕으로 빛나는 달과 진흙탕을 본질로 피어나는 연꽃, 시간과 공간, 과거 현재 미래, 서로 경계가 없는 연못의 달과 연꽃 속의 달이 만나 또 다른 그 어떤 그리움과 인연을 탄생시키는 꽃 속의 달, 달 속의 꽃 말이야.
달이 뜬 고요한 밤에 연꽃잎 하나가 후드득 져서 달에 날아가 닿는다. 그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 올랐어. 연꽃은 지는 것이 아니라 날아간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는 것 같아. 연못에 비친 하늘 구름 너머 달이 차오르면 후드득 날아가 환한 달에 피어나는 연꽃. 꽃잎의 음계音階와 달빛의 옥타브가 만나 아득히 펼쳐지는 삼천대천세계. 어둠이 있어야 환해질 수 있다고 달이 말하고 있었어. 진창 같은 마음이 있어봐야 그 마음에 꽃이 핀다고 연꽃이 말해주고 있었어. 서로 바라보고 그리워하던 것들이 닿아 연꽃으로 피고 달빛으로 내려오고 있었어. 이곳과 저곳이 이생과 저생이 아득한 한 뼘이라고 알려주고 있었어.
멀리서 당신이 보고 있는 달과
내가 바라보고 있는 달이 같으니
우리는 한 동네지요.
이곳 속 저곳
은하수를 건너가는 달팽이처럼
달을 행해 내가 가고
당신이 오고 있는 것이지요.
이 생 너머 저 생
아득한 한 뼘이지요.
그리움은 오래되면 부푸는 것이어서
먼 기억일수록 더 환해지고
바라보는 만큼 가까워지는 것이지요.
꿈속에서 꿈을 꾸고 또 꿈을 꾸는 것처럼
달 속에 달이 뜨고 또 떠서
우리는 몇 생을 돌다가 와
어느 봄밤 다시 만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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