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어서 아름다운 것 / 권대웅
달이 쓰고 가는 저 기러기와 기러기가 읽고 가는 저 달의 문체와 기러기의 문장이 이어져 가을밤이 된다. 길밖의 기러기와 길안의 달 우리는 늘 서로 그렇게 만나지 못하고 가을이 되면 묻는다. 어디로 가는 길인가 어디로 가야하는 것인가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자꾸 해결하려 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해.풀려고 할수록, 말하고 떠들수록 더 꼬이게 되는 경우가 있어. 그냥 내버려두는것, 가만 두면 저절로 풀리게 되는 것 같아. 어떤 문제나 해결해야 할 일이 생기면 순간 뇌가 판단해서 지시하는 답을 나는 곧바로 따르지 않으려고 해. 내 판단에 오답이 많았기 때문이야. 나는 내가 아니 인간이 배워온 이성적 판단을 믿지 않는 편이야.
우리의 삶은 유화나 페인트칠이 아닌 번짐, 스며들어 배어나오는 수채화라고 생각해. 그렇게 물의 속성을 가지고 있어. 물 흐르듯이 흘러가야 한다는 것. 중요한 혹은 급한 문제가 생길수록 바로 빨리 해결하지 않고 잠시 생각해보아야 한다는 것이야. 그렇게 하루 이틀, 문제에 당면한 시간과 공간을 떠나 있다 보면 저절로 문제들이 해결되고 답이 오지. 우리가 살아오면서 체험한 감성적 판단이 인간의 문제 특히 관계에 있어서 대부분 정답을 가져다 주기 때문이야. 그 답은 조금 늦게 오지. 거리를 두고 있어야 오지. 뚝뚝 멀리 떨어져 있어야 오지. 그렇게 스스로 답을 얻은 자는 또다시 묻지 않아.
자주 멀리 여행을 떠나는 편이야. 낯선 공간과 시간 사람과 음식을 접하다보면 그 생경함이 굳어 있던 내 오래된 습관이나 관습을 깨워 주곤 해. 무엇보다도 멀리서 바라본 내가 사는 곳은 보이지도 않는 먼지 같다는 사실이야. 너무나 큰 문제인 것만 같은 고민을 안고 살아가던 곳이 아주 작은 점에도 불과하지 않다는 것이야. 거기서 답을 얻곤 해.
여행은 이 세상을 조금씩 떠나가 보는 연습인 것 같아. 짐을 싸며 내가 머물던 곳과 잠시 이별을 하며 연민을 생각하기도 해. 언젠가는 아무런 짐도 싸지 않고 내가 사랑하고 집착하던 것에서 영원히 떠나겠지.
사람들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없어지더라도 자신이 살던 곳과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마치 돌아가신 어머니 아버지가 하늘 어디서인가 나를 지켜보고 계실 것이라는 생각을 하듯이. 그 가엾음을 생각하면 돼. 미리 상정上程시켜 놓고 바라보지 않아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것들은 가여운 것이야.
달이 떴어. 가을이야. 어느 밤하늘에서는 기러기가 날아가고 있겠지. 그 달을 바라보다 보면 거리감 즉 공간감이 생기게 돼. 함께 있더라도 멀리 있는 것. 그렇게 비춰주고 있는 것. 그런 아름다운 관계 말이야.
함께 있되 혼자 있어라. 마치 현악기의 줄들이 하나의 음악을 울릴지라도 서로 혼자인 것처럼. 레바논의 시인 칼린 지브란이 쓴 시에 나오는 구절이야.
멀리 있는 것은 멀어서 아름다운 것. 가엾고 연민스럽고 마음이 짠해지는 것. 그렇게 당신과 멀리 있으려고 해. 멀어지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