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23년 주보

연중 제23주일 2023년 9월 10(가해)

모든 2 2023. 9. 15. 17:02

 

천안청당동성당(천안동부지구)

본당설립 : 2014.01.15 / 주보 :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 마태오 복음 18, 15-20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그가 네 말을 들으면 네가 그 형제를 얻은 것이다. 그러나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모든 일을 둘이나 세 증인의 말로 확정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 교회의 말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그를 다른 민족 사람이나 세리처럼 여겨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내가 또 질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

 

 

<말씀의 향기>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다 - 김홍식 시몬 광천 주임

 

  바오로 사도의 편지에서 보듯 초세기 교회는 교우를 가족처럼 ‘형제’, ‘자매’라고 불렀습니다. 피가 섞이지 않았는데 이렇게 부른 것을 보면, 교우들끼리의 친밀함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피를 나눈 정도의 형제에게 문제가 생긴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두 사람이 가서 설득해도 안 되면, 교우들이 모인 자리에 가서 이실직고해야 하는 것으로 보아 신앙적으로 심각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이 써졌던 곳은 여러 문화와 종교들이 섞여 있던 도시였기에, 사람들이 가치관에 혼란을 겪던 상황입니다. 교회에도 주변의 이방 종교에서 영향을 받아 도저히 함께할 수 없는 형제가 있었을 것입니다. 요즘 식으로 ‘이단’에 물든 신자죠.

 

  그런 때는 별수 없이 교회적인 차원에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그러나 모진 결정을 내리고 마음이 약해질 수 있기에 예수님은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교회의 결정이 곧 하늘의 결정이라는 의미죠. 이처럼 교회에 엄청난 권위가 주어졌습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교회가 판단력과 분별력을 상실할 경우 엄청난 파국이 닥친다고 걱정합니다. 실제로 그리스도교의 역사에서 불행한 일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희년인 2000년을 맞이하며 성 요한 바로오 2세 교황은 교회가 역사에서 저지른 잘못에 대해 깊이 반성하고 용서를 청한 적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때의 상처가 다 지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때문에 언제라도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십자가의 무게가 크다 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오늘 복음은 교회에 막강한 권위가 주어졌다고 해석하기보다 교회의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가? 얼마나 신중하게 결정을 내려야 하는가?라는 뜻으로 봐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모은 기도가 필요하고, 교회 공동체는 하느님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이런 우리에게 지혜로운 삶의 기준을 제시해 줍니 다. ‘사랑하라, 그리고 그대가 원하는 것을 하라.’ 그래야 교회의 결정이 하늘에도 매여 있을 것입니다.

 

 

아직도, 여전히 또하 앞으로도

시노달리타스(9)

 

시노드 교회를 넘어뜨리는 유혹들

 

  카르타고의 테르툴리아누스(160~220)는 “그리스도인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되어가는 것이다(Fiunt, non nascuntur Christiani).”라고 말한다. 그의 이 심오한 통찰은 한 명의 그리스도인이라는 개인적 차원에 그치지 않고 ‘되어가는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인 교회 공동체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교회 역시 ‘되어가는 것’이라고 말이다. 실제로 교회는 급변하는 세상 안에서 언제나 하느님께서 바라시며 예수 그리스도께서 원하시고 성령께서 머무시고자 하는 교회가 되도록 부름받았다. 이러한 부름에 응답하는 ‘되어감’의 길에 있어 시노달리타스는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엔조 비앙키(E. Bianchi)는 오늘날 우리의 교회가 하느님께서 기대하시는 교회 공동체가 되어가는 여정을 일컬어 시노달리타스의 여정이라고 표현한다. 시노달리타스의 여정에는 필연적으로 교회의 현주소(現 住所)와 하느님의 기대 사이의 간극을 줄이고 좁히는 과정인 쇄신과 개혁이 요구된다. 교황 프란체스코는 “교회의 쇄신은 무엇보다 순례하고 여정을 걷는 교회 그리고 살아 있는 교회로서, 그 생명력을 나타내는 표 지이다. 다시 말해 [...] 교회가 살아 있기 때문에 쇄신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교회 역사 안에는 쇄신과 개혁에 대한 수많은 요청과 그에 응답하는 운동들이 있었다. 그렇지만 모든 운동들이 성공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새롭게 되는 쇄신의 과정에 있어 아주 쉽게 마주할 수 있는 유혹에 발목 잡히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다. 그 유혹이란 즉각적이고 감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변화 혹은 변형을 교회의 쇄신과 동일하게 여기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이브 콩가르(Y. Congar)는 『Vraie et fausse reforme dans l'Eglise(교회 안에서의 참된 개혁과 거짓 개혁)』을 통해 두 가지 유혹의 존재에 대해 말한다. “먼저, 교회가 사람 안에 진리가 있다는 것을 잊어 버리고, ‘사물들’에 머물고자 하는 유혹이 있다. 이는 법률이나 수단을 목적으로 여기고자 하는 유혹으로 바리 사이주의라고 부를 수 있다. 다음으로는 하느님의 사업을 실행하려는 기존의 형식들을 넘어서려는 모든 노력들을 거부하려는 유혹이다. 만일 기존의 형식들이 절대화되면 발전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어떠한 열매도 맺지 못하도록 할 것이다. 이것을 회당의 유혹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교황 프란체스코 역시 『복음의 기쁨』 2장과 담화문들을 통해서 사목 일꾼들이 빠질 수 있는 유혹을 고발한다. 서로를 부추기는 세 가지 해악인 개인주의의 팽배와 정체성의 위기 그리고 열정의 쇠퇴를 먼저 지적하고 이기적인 나태, 무익한 비관주의, 영적 세속성, 적대감과 성직주의에 대해 주의를 기울이고 경계하도록 가르친다. 그리고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져다 주신 새로운 관계”에 마음을 여는 시 노달리타스의 회심을 촉구한다.

 

-안동훈 안드레아 신부 한산 주임-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56. 미사 해설 - 성찬 전례(20) : 영성체 예식의 의미

 

  마침 영광송으로 감사 기도는 마무리됩니다. 그리고 성찬 전례는 “영성체(領聖體) 예식”으로 들어갑니다. 영성체는 말 그대로 우리 자신이 성체를 받아 모신다는 뜻이 담겨 있지만, 더 넓게는 공동체의 식사,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들 간의 공유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도 합니다. 곧 내가 성체를 모시는 행위를 뛰어넘어 우리 공동체가 성화된다는 점에 초점을 맞춥니다. 거룩한 잔치를 통해 그리스도와의 친교로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영성체 예식”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 (요한 6,56)”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80항에서는 “영성체” 예식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정리합니다.

 

  “성찬례 거행은 파스카 잔치이므로, 신자들은 주님의 명령에 따라 합당하게 준비하여, 주님의 몸과 피를 영적 양식으로 받아 모시는 것이 마땅하다. 빵을 나누는 예식과 다른 준비 예식들은 바로 이러한 목적으로 마련되어 신자들이 곧바로 영성체를 하도록 이끈다.”

 

  말씀 전례는 말씀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성찬 전례는 빵과 포도주를 통해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에게 다가오고, 주님의 신비와 마주하게 되는 시간이며,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친히 우리에게 오시어 사랑의 일치를 이룰 수 있는 순간입니다. 성찬 전례는 두 가지의 예식으로 나뉘는데, 감사 기도는 신앙의 눈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화 되심을 보았다면, 영성체 예식은 성체를 모심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와 실제적으로 일치가 된다는 점이 성체의 교리적 특징입니다. 미사 중 성찬 전례, 특히 감사 기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신비를 함께 보았고, 이제는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성체를 모시기 위한 마음의 준비를 시키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영성체 예식은 다음과 같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1) 주님의 기도 권고
2) 주님의 기도
3) 평화 예식
4) 빵 나눔과 하느님의 어린양
5) 영성체 전 기도
6) 영성체 초대
7) 영성체
8) 감사 침묵 기도
9) 영성체 후 기도

다음 편부터는 영성체 예식을 순서대로 설명하겠습니다.

 

-윤진우 세례자요한 신부 사목국 차장-

 

 

천주교대전교구 성령쇄신봉사회

 

<18>

봉사자의 삶

 

  새얼센터는 성령쇄신 봉사자들과 함께 운영되고 있습니다. 성령쇄신 봉사자는 봉사자로 살기를 희망하는 이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과 삶은 사실 쉽지 않습니다. 묵상회를 참여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한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하고, 면담을 하고, 그 사람을 위해서 함께 기도하고, 또 그러기 위해서 자신을 성장시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봉사자로 살기를 희망하게 되면, 거쳐야 할 과정도 만만치 않습니다. 일정시간 교리 교육과 봉사자의 삶에 대해서 공부하고, 작은 일들부터 봉사를 시작하게 됩니다. 면담과 묵상회 조장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거의 5년 정도 성장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또한 이곳 역시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동체이기 때문에 그 안에서 어려움을 겪기도 합니다. 그리고 저는 가끔 우리 봉사자들의 모습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기도 합니다. 하지만 제가 이곳에서 함께 살면서 느끼는 것은 봉사자로 살아가는 모든 시간이 하느님의 손을 통해서 깎이고 다듬어지는 과정임을 확신합니다. 많은 분이 봉사자로서의 삶을 희망했다가 포기하기도 하고, 실망하기도 하고 떠나기도 했습니다. 시간도 많이 내야 하고, 그런 만큼 가정에도 소홀히 할 수밖에 없기에, 어려운 시간들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저와 우리 봉사자들을 함께 일하게 하십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아무도 함께하지 않을 것 같지만, 정말 놀라우신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하며 살게 됩니다. 또한 성령 운동 봉사자는 은사 사용에 있어서 교회와 사제의 식별 아래 있어야 합니다. 교회에 소속되어야 합니다. 홀로 은사를 사용하는 사람을 신자분들은 만나지 않으시길 부탁드립니다.

 

-김기범 시몬 신부 성령쇄신봉사회 전담-

 

 

 

<이충무의 숨은 행복 찾기(64)>

 

시끌벅적함이 그립다

 

  강의실을 향해 갈 때 복도 끝에서부터 제자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면 벌써 가슴이 설레 오곤 했습니다.

 

  지쳐있다가도 그 시끌벅적한 소리를 듣게 되면 거짓말같이 발걸음이 빨라지고 어깨가 펴지며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곤 했습니다.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은지 제자들은 강의가 시작되는 줄도 모른 채, 서로 먼저 말하느라 분주했고, 그래서 늘 강의는 이렇게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자, 자, 조용, 조용, 이제 그만 이야기하고 강의 시작 할까요?”

 

  학생들이 조용히 해 주길 바랐지만 내심 그들의 그 소란스러움이 마냥 부러웠던 건 사실이었습니다.

 

  그렇게 시끌벅적한 것이 바로 생동감 넘치는 청춘의 증표이고, 서로 그만큼 친밀하다는 뜻이었기에 그 소란스러움은 짜증이 아니라 유쾌함으로 다가왔었습니다.

 

  몇 년 전까지 강의실에선 늘 그러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럴까요? 평생 처음 겪는 코로나 19라는 당혹스러운 시간을 겪으면서 강의실 풍경은 어떻게 변했을까요?

 

  코로나 바이러스는 놀랍게도 청춘의 그 ‘시끌벅적 함’까지 휩쓸어 갔습니다. 강의실을 향해 가는 복도에는 이제 놀랄 정도로 차가운 침묵만이 가득할 뿐입니다.

 

  강의실에 들어서면 모두 고개를 숙이고 손바닥 안의 휴대폰을 바라보며 적막함 속에 홀로 고립되어 한 사람 한 사람 무인도가 되어 가고 있는 듯합니다.

 

  시끌벅적했던 강의실이 그립습니다. 뭐가 그리 할 말이 많았는지 서로 재잘거리기에 분주했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이제 강의는 늘 이렇게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자, 이제 휴대폰 그만 보고 옆 사람하고 인사부터 나누면서 강의 시작해 볼까요?

 

  개강한 지 일주일 지났습니다. 단순히 옛날이 좋았고, 지금이 나쁘다는 푸념이 아니라, 그때나 이때나 소중한 것은 기억되고 살아남길 바라는 소망을 담아 오늘도 강의실을 향해 봅니다.

 

- 이충무 바오로 극작가, 건양대교수-

 

 

성지를 걷다 - 대흥봉수산 순교성지(1)

 

1. 대흥봉수산 순교성지 설정 배경

  124위 순교복자 중 약 50위가 대전교구에 연고가 있다. 그중 29위가 예산 땅에 내력을 둔다. 2014년 8월, 아시아청년대회 기간 중 한국순교자 124위 시복 식은 이울어 가는 103위 시성식의 열정을 기억하게 하였다. 124위 시복식은 순교선조들에 관한 기억에만 머물지 않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비전을 다그쳤다. 2015년 6월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찬미받으소서’라는 회칙으로 하느님의 창조 의도와 목적에 관한 그리스도인들의 각성을 촉구하셨다.

 

  대전교구는 124위 순교복자의 신앙과 회칙 ‘찬미받으소서’의 정신을 구현하기에 적합한 성지를 신설하기에 이르렀다. 자연이 잘 보존된 곳이면서도 순교지라는 공통분모를 갖춘 곳은 청양칠갑산 아래 정산순교지와 예당호를 바라보는 예산봉수산 아래 대흥순교지였다. 복자이도기의 순교신앙의 은사를 잘 간직한 ‘정산일기’의 배경이 되는 정산은 지가가 비쌌다. 대신 배산임수 지형인 예산대흥봉수산 아래는 형옥터(刑獄址)가 그런대로 남아 있어 2015년 8월 최종 결정지가 되었다.

 

 

<1분 교리>

 

Q-1) '사도신경이란 무엇인가요?

A) 사도신경은 초대 교회의 신앙 고백문에서 유래하며 사도들의 신앙고백 내용이었다는 전승에 따라 '사도신경'이라 이름 붙여졌습니다. 창조주이신 하느님과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과 부활, 심판, 성령, 영생 등 가톨릭의 핵심적인 믿을 교리로 기도문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당대에는 미사전례 및 세례 시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다는 표시와 이단으로부터 그리스도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오늘날에는 통상 전례 시 니케이-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부활절과 사순절에는 사도신경을 바치고 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 정확히 알고 배출하기

 

+ 찬미예수님

 

9월은 쓰레기 줄이기에 대해서 글을 올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음식물 쓰레기 제대로 배출하기입니다. 우리 본당 주변에는 주택이 많아서 길을 가다 보면 음식물을 담아서 배출스티커를 붙인 통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음식통이 깨지고, 통 안에 검은 비닐 여러 장으로 담아 버리는 경우를 자주 보게 됩니다. 이런 배출은 수거해 가는 분을 힘들게 하고 주변을 더럽게 하므로 올바른 방법이 아닙니다.

 

다음은 음식물 쓰레기를 올바르게 배출하는 방법입니다.

 

▶이 물질은 제거하고, 물기를 최대한 꽉 짜서 버립니다.

▶ 소금기 많은 장류 및 김치는 헹구어서 버립니다.

▶ <양파, 마늘, 생강, 옥수수 등의 껍질, 채소의 뿌리, 견과류의 껍데기, 조개, 굴, 게, 달걀 껍데기, 동물 털, 뼈다귀 생선 뼈>등은 일반 쓰레기로 버립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올바르게 배출하고, 튼튼한 음식물 통을 사용하여 불필요한 자원을 낭비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