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22년 주보

대림 제3주일(자선주일) 2022년 12월 11일(가해)

모든 2 2022. 12. 11. 14:25

 

운산성당 탑곡리공소

충청남도 서산시 안치중곡길 92(음암면 탑곡리 691-5)

 

 

 

+ 마태오 복음 11,2-11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그때에 요한이,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은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그들이 떠나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 자들은 왕궁에 있다.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내가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말씀의 향기>

 

수확의 기쁨  - 맹세영 세례자요한 하부내포성지 전담

 

  오소서 성령님! 새로 나게 하소서.

  형제 자매 여러분 한 주일 동안 잘들 지내셨 습니까?   

  저는 이곳 하부내포 성지에 와서 성지 사목을 하면서 짬짬이 사제관 앞마당 밭을 일구며 생활하고 있습니다. 작은 공간이지만 제 손으로 직접 밭을 일구고 땀을 흘리면서 새로운 체험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혼자 다하는 것은 아니고요. 제 옆에서 도와주는 농사 선배님들이 있습니다. 마늘과 양파, 성지 땅에는 밤농사 들깨 등등...

 

  그리고 올해에는 배추와 무를 심어서 직접 김장도 했습니다. 사도 바오로가 “아폴로는 심고 나는 물을 주고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라는 말씀을 온몸으로 체험하며 살고 있습니다. 직접 땀을 흘려 보고 애쓰면서 새로운 기쁨을 만나고 있습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묵상하면서 대림 제3주일이 이야기하는 기쁨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기쁨이라는 것은 밖에서 주어지는 경우도 많지만, 제 안에서 찾아지는 기쁨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가 제게 억지로 밭을 가꾸라고 시켰다면 기쁘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스스로 하면서 힘도 들고 어렵지만 시기와 때에 맞춰 애쓰고 노력하다 보니 수확의 기쁨이 주어짐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사야 예언자의 외침도, 복음의 주님 말씀도 우리에게 위로와 기쁨을 전해 줍니다.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 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내 안에 지니고 있는 편견과 고집과 아집을 걷어냄으로써, 누구보다도 우리를 사랑하시려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그분이 바라보셨던 그 마음으로 내게 드리워진 벽들을 걷어내야 합니다. 내 귀로 들어주고, 내 입으로 위로해주고, 내게 주신 것을 나보다 더 필요한 이들에게 기꺼이 내어줌으로써 내 안에 기쁨이 차오르게 해야 합니다. 주님의 손길을 통하여 드러난 놀라운 사랑의 움직임이 우리의 적극적인 사랑으로 우리의 주위를 새롭게 변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제 앞마당 밭에는 내년 수확을 앞둔 마늘과 양파가 자라나고 있습니다. 수확의 기쁨을 희망하며 추운 겨 울을 그것들과 함께 기다리며 남은 대림을 기쁨으로 기다려봅니다.

 

 

 

 

교구 전담 사목을 소개합니다

 

전의 요셉의 집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의 차이는 뭘까요? 동네에도 여러 어르신 돌봄 시설이 있어서 차이가 중요할까 싶겠지만요. 요양병원은 의료법에 근거하여 국민건강보험에서 재원을 부담합니다. 요양시설, 즉 요양원은 노인 복지법에 따라 노인장기요양보험으로 운용됩니다. 때문에 일반적인 노인성 질환이 있고 가정에서 돌봄이 어려운 어르신들이 주로 요양원에서 생활하십니다.

 

  전의요셉의집은 대전교구에서 직영으로 운영하는 요양원입니다. 초창기 전의성당에서 사목하시던 황용연 신부님께서 인근 지역에서 홀로 지내시는 어르신들을 위한 보금자리에서 출발했습니다. 쉽게 양로원 정도로 이해하실 수 있는데요. 1993년 5월 1일 전의요셉의집 축성식을 시작으로 내년에는 30년의 긴 역사를 맞이 하게 됩니다.

 

  2008년 7월, 장기요양보험제도의 시작과 함께 지금과 같은 요양원으로 개편되어 운영 중에 있습니다. 종종 가톨릭 신자가 아니면 입소가 안 되냐는 질문을 받기도 하는데, 나라의 보조금을 받는 시설이기 때문에 신앙이나 거주지 상관없이 시설에 입소할 수 있는 장기요양등급을 받으시면 얼마든 요양원에 오실 수 있습니다.

 

  요양원에서의 일상은 어떨까요? 소독약 냄새가 가득하고 자칫 무료해 보이기도 하지만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가장 메인 프로그램? 큰 메리트는 당연히 성사생활입니다. 신자분들이 주로 입소하시기 때문에 웬만한 성당 평일 미사보다 분위기가 더 좋은데요. 그렇게 신앙생활과 함께 사회복지사들의 다양한 인지, 활동 프로그램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아직 코로나로 외부 봉사프로그램은 어렵지만, 그것까지 포함한다면 활기찬 노후생활을 보낼 수 있습니다.

 

  100세 시대이자 25년이면 65세 이상 인구가 20%가 넘는 초고령사회를 맞는다고 합니다. 노화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자연스러운 하느님의 선물인데요.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인터넷 검색 창에 ‘노인’이라는 단어만 검색해보면 부정적인 분위기를 엿볼 수 있습니다. 세대 간 갈등도 심각하고요. 때문에 이 글을 보시면서 안정적인 노후에 대한 걱정보다는 어떤 어르신으로 성숙할지 고민하시면 어떨까요? “나때는”이 아니라 “나라면” 어떨지 말이죠.

 

- 세종·충남가톨릭사회복지회 차장 겸 요셉의 집 담당 신성수 베드로 신부-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29. 미사 예절 - 말씀 전례(5) : 말씀 전례 중 화답송

 

  말씀 전례를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키워드는 “거룩한 대화”입니다. 곧, 일방적인 교육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소통하는 것이 말씀 전례의 핵심입니다. 대화란 말하고, 듣기가 반복됨 을 말합니다. 우리가 독서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면, 화답송을 통해 우리가 하느님께 말씀을 올려 드리는 행위는 말씀 전례의 매우 흥미로운 요소입니 다. 종종 신자분들께서 이 화답송에 대해서 “듣는 부분”이라고 오해하지만, 이 부분은 분명 우리 입장에서의 “화답”입니다. 물론 이러한 의미에 있어서 몇몇 신자분들께서는 또 다른 질문을 가지실 수도 있습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느님께 올려 드리는 것이 아닌데 어떻게 “대화”라고 할 수 있는가?> 충분히 가질 수 있을 만한 질문입니다. 그러나 말씀 전례에서의 대화는 “말씀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대화라는 의미로 이해해야 합니다.

 

  우선, 현행 전례 법인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에서 제시하는 화답송에 대해서 살펴봅시다.


화답송은 말씀 전례에서 떼놓을 수 없는 부분이며, 전례적으로도 사목적으로도 매우 중요하다. 화답송은  하느님 말씀에 대한 묵상을 도와준다. 화답송은 그 독서 내용에 어울려야 하며, 원칙적으로 [미사 독서] 에 있는 것을 사용한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61항).

  흔히들 신자분들께서 독서의 중요성보다 화답송의 중요성을 크게 생각하지 않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화답송은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에 답변을 드린다는 점에, 나아가 하느님 말씀에 대한 묵상을 돕는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지금은 “화답송”이라고 부르지만, 한때는 “층계송”이라 불렀습니다. 이는 하느님 말씀을 들은 하느님 백성들이 계단(gradus)에 앉아 경청하다가 시편으로 구성된 노래를 불렀다는 것에서 유래를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화답송 때 시편 선택은 전례주년에 맞추어 독서와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화답송은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기도로 화 답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공동체 전체가 참여하는 노래로 준비하여야 합니다. 화답송을 노래로 하기 위해 성가대의 아름다운 화음을 통해 표현하는 것도 좋지만, 적어도 후렴 부분은 공동체 전체가 참여하는 것이 좋습니다. 화답송을 성가대가 따로 노래하지 않는다면, 독서자나 화답송을 노래하는 다른 봉사자가 독서대에서 노래하거나 낭송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화답송을 노래로 하거나, 낭송을 할 때 너무 긴 시간이 소요되어 공동체가 지루해하거나, 너무 어려운 곡을 선택하여 공동체가 소외되는 경우가 발생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합니다. 다음 시간에는 “복음 환호송”에 대해서 설명드리겠습니다.

 

-윤진우 세례자요한 신부 사목국 차장-

 

 

 

* 교구 내 공소

 

운산성당 탑곡리공소

  탑곡리(길마재, 질마재)는 1909년 홍성 결성에 소재하고 있던 수곡본당 폴리 신부의 사목담당 공소로 신자수 101명이 있었다. 1945년경 한의술을 갖고 있던 정학영 초대 회장집에서 10여 명이 모여 공소예절을 하였다. 1972년 서산본당으로부터 운산성당이 분리·설립되면서 공소관할은 운산성당으로 이관되었다. 현재의 공소 건물(연면적 93.78㎡, 시멘트벽돌+치장벽돌조)은 방효돈(모이세) 회장 재임 때인 1987년 6월 13일 완공되어 봉헌예식을 했다. 건축은 본당지원과 교우들의 헌금으로 7,470만원이 소요되었다. 2010년 본당구역으로 편입되어 건물사용이 중지되었고 현재는 50여 세대 25명의 신자들이 본당미사에 참례하고 있다.

 

 

 

<이충무의 숨은 행복 찾기(46)> 

 

껍질이 본질

 

  겨울에 먹는 사과는 겨울대로 나름 맛납니다. 입 안에 아삭한 식감을 느끼며 코에 와닿는 묘한 향은 이 ‘사과’라는 과일이 얼마나 멋진 과일인지를 새삼 깨닫게 해줍니다.

 

  땅콩 또한 제가 매우 좋아하는 간식거리입니다. 그 고소함은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유혹이라, 처음 손바닥만큼 집었다가 결국 양손 가득찰 때까지 먹고 맙 니다.

 

  사과와 땅콩은 맛 외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껍질’의 중요성입니다. 사과와 땅콩 모두 과육이나 알맹이보다 껍질에 더 많은 영양성분이 있음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입니다.

 

  비단 사과와 땅콩만일까요? 바나나, 포도, 참외, 복숭아, 배, 귤, 심지어 마늘까지 껍질의 영양적 가치가 이미 과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되었다니 그저 놀랍기만 합니다.

 

  껍질 안에 이렇게 유익한 성분이 존재하는 것은 껍질이 온갖 외부의 척박한 환경으로부터 내용물을 보호하고 지켜내는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두텁고 단단한 껍질만이 아니라, 마늘이나 땅콩의 그 얇은 껍질이라도 만약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껍질이 없다면 알맹이도 없는데, 껍질은 종종 버려지고 알맹이만 취해집니다.

 

  사과의 맛은 과육의 맛에 있지만 사과의 본질은 껍질에 있습니다. 한 알의 사과 안에 깃든 오묘한 맛의 이력서는 결국 껍질의 이력서이기 때문입니다.

 

  비유컨대, 우리가 각자 인생이라는 사과나무에 매달린 사과열매라면, 우리는 이 순간 저마다 나름대로 숙성한 사과열매로 결실을 맺기 위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겁니다.

 

  각자 최대한 달콤한 맛이 나는 인생이기를 꿈꾸면 서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는 우리... 껍질이 없다면 우리 삶도 없습니다. 껍질이 우리의 본질입니다.

 

  날선 비바람과 뜨거운 햇살 같은 시련으로부터, 해충처럼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는 탐욕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는 껍질이 기꺼이 되어 주신 분이 주님이십니다.

 

  그분이 계시기에 내가 오늘 여기 삶의 나뭇가지에 매달려 살아갑니다. 그분의 눈물겨운 사랑 안에서 보호받고 성장하는 오늘이 놀랍도록 감사합니다.

 

-이충무 바오로 극작가, 건양대교수-

 

 

 

<1분 교리>

 

Q-1) 교회 공동체는 무엇이며 이것은 성당과 본당이란 용어와 어떻게 구분되나요?

A) 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를 따르고 그분을 본받는 '하느님의 백성'을 뜻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백성인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비유하는데 이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직자와 평신도, 수도자들이 한 몸인 교회 공동체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당이나 본당의 장소적 관할적 개념보다는 공동체를 이루는 신앙인들의 신원을 드러내고 나타내는 의미로 널리 사용되는 용어가 '교회'입니다. 일반인들은 교회의 정확한 뜻을 몰라 성당, 본당과 혼용하기도 하지만, 그 실제적인 의미로는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① 성당(성당):성당은 성스럽고 거룩한 장소와 건물을 뜻합니다. 신자들이 모여 미사와 여러 다른 거룩한 전례들을 거행하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경배드리는 기도의 장소임과 동시에 성체에 모셔진 건물이기에 '성당'이라 부릅니다.

 

  ② 본당(본당): 지역사회 속에서 주교로부터 사목권한을 위임받은 신부가 상주하는 곳으로, 정해진 관할 범위 안에 살고 있는 신자들을 사목하도록 관할권이 부여된 기초적인 교회 공동체를 '본당'이라고 합니다.

 

 

 

다른 지역보다 4배 빠른 극지방의 온난화

 

  한동안 추운 날씨가 있어서 사실 글쓴이는 반가웠습니다. 그런데 아마도 올겨울도 기상이변으로 롤러코스터같이 기습한파의 이상고온이 번갈아 가며 한반도 겨울이 예상된다고 하네요. 북극, 남극의 이상기후 현상은 많이들 알고 계실 텐데요. 북극의 이상기후를 연구하는 과학자의 글이 있어서 공유하고자 합니다. 다음은 과학자의 글입니다.

 

  북극의 빠른 온난화와 중위도 이상기후가 어떻게 관련된 걸까? 그 관계를 짚어 보겠다. 지구의 기후는 태양열을 많이 흡수하는 열대에서 태양열이 부족한 극으로 대기와 해양이 순환하며 끊임없이 열을 전달해 평형을 이루고 있고, 열대의 난기와 극 지역 사이에는 대류권 상공에 강한 편서풍 제트기가 있어 그 경계를 나누고 있다.

 

  이 제트기류가 어떤 모양의 흐름을 보이느냐에 따라 중위도 지역의 기후는 평온한 상태 또는 극단적 상태가 나타난다. 즉, 온난화와 중위도 이상기후는 이 제트기류의 운동이 북극 온도 상승에 영향받았다는 걸 의미한다.

 

  제트기류는 열대의 난기와 극의 한기 간 온도 차에서 에너지를 얻어서 동으로 강하게 불며 날씨의 흐름을 만든다. 그런데 온난화에 따라 뜨거워지는 속도가 북극에서 가장 빠르다. 북극 기온 상승은 전 지구 평균보다 2~3배 빠르다고 여겨졌는데, 최근 4배에 이른다는 보도고 있다.

 

  올해도 필자는 아라온호 북극 탐사에서 해빙 두께 변화 데이터를 실시간 전송해주는 해빙 부이(buoy)를 고위도의 1m 이상 두께의 해빙에 설치하였다. 그런데 불과 한 달 사이에 그 해빙은 모두 녹아버렸다. 이렇게 북극은 열을 축적하면서 다가올 계절에 기후를 요동치게 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도 언제든 닥칠 수 있는 이상기후에 대응 태세를 철저히 해야 할 것이다.

 

-글. 사회복음화 분과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