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22년 주보

부활 제3주일(생명주일) 2022년 5월 1일(다해)

모든 2 2022. 5. 2. 13:44

세종 도원 성당 봉암리 공소

세종특별자치시 중뜸 길 22-10(면서면 봉암리 427-8)

(좌측 상단 사진은 2012년에 철거된 첫 번째 공소)

 

 

+ 요한복음 21,1-19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주셨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시 제자들에게 당신 자신을 드러내셨는데, 이렇게 드러내셨다.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 그리고 그분의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시몬 베드로가 그들에게 "나는 고기 잡으러 가네."하고 말하자, 그들이 "우리도 함께 가겠소." 하였다. 그들이 밖으로 나가 배를 탔지만 그날 밤에는 아무것도 잡지 못하였다.

 

   어느덧 아침이 될 무렵, 예수님께서 물가에 서 계셨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분이 예수님이신 줄을 알지 못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얘들아, 무얼 좀 잡았느냐?" 하시자, 그들이 대답하였다. "못 잡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 다른 제자들은 그 작은 배로 고기가 든 그물을 끌고 왔다. 그들은 뭍에서 백 미터쯤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이 뭍에 내려서 보니, 숯불이 있고 그 위에 물고기가 놓여 있고 빵도 있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방금 잡은 고기를 몇 마리 가져오너라."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배에 올라 그물을 뭍으로 끌어올렸다. 그 안에는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가득 들어 있었다. 고기가 그토록 많은데도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 가운데에는 "누구십니까?" 하고 감히 묻는 사람이 없었다. 그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다가가셔서 빵을 들어 그들에게 주시고 고기도 그렇게 주셨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그들이 아침을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너는 이들이 나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자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어린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 다시 두 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너는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예,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예수님께서 세 번째로 세 번이나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시므로 슬퍼하며 대답하였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그  러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내 양들을 돌보아라.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네가 젊었을 때에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다. 그러나 늙어서는 네가 두 팔을 벌리면 다른 이들이 너에게 허리띠를 매어 주고서, 네가 원하지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어,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느님을 영광스럽게 할 것인지 가리키신 것이다. 이렇게 이르신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라."

 

 

 

<말씀의 향기>

 

부족함을 아는 것도 은총입니다 - 김선태 야고보 병원사목 전담

 

  일상으로 돌아가 고기잡이를 하던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나타나셨다. 밤새 그물을 쳤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한 그들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그물을 배 오른편으로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실행에 옮긴 제자들은 끌어올리기가 어려울 정도로 많은 물고기를 잡는 경험을 하게 된다.

 

  오늘은 제자들의 행동을 눈여겨보자, 이들이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생업인 고기잡이에 나서는 모습이다. 베드로는 다른 이들을 남겨두고 혼자서 고기를 잡겠다고 나선다. 이에 다른 이들도 함께 따라나서지만 밤새 허탕을 치고 만다. 다시 그물을 쳐보라고 권하는 이의 지시에 따르면서도 귀에 익은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한다.

 

  왜 그럴까? 평생 고기만 잡아 왔던 사람들이 몇 년을 쉬었다고 고기가 있는 곳을 몰랐을까?

 

  그 이유는 지난날 자신들이 보였던 어리석고 부족한 행위들이 이들을 온통 짓누르고 있어 다른 것들은 보이지 들리지도 않기 때문이다.

 

  서로 높은 자리에 앉고 싶어 눈치껏 청탁을 하고, 재물이 탐이나 스승을 팔아넘기고, 배신할 수도 있을 것이란 말씀에 자신은 정녕 그러지 않을 호언장담을 했으면서도 사형선고를 받으시는 모습을 보면서 죽음이 두려워 예수님과의 관계를 부정하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모습마저도 먼발치에서 숨어 바라보고만 있었던 자신들의 모습이 죄의식으로 다가와 앞으로 그분을 어떻게 봐야 하나 하는 생각들이 고통스럽게 했을 것이다.

 

  그러니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건성으로 던지고 있고 지난 삼 년간 매일같이 들어왔던 목소리조차 알아듣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베드로에게 당신을 사랑하느냐고 세 번씩이나 물어보시는데 베드로는 그때마다 주님만을 사랑하고 있노라고 대답한다. 여기서 다시 한번 주의를 기울여 바라봐야 할 것은 죄스러움에 서러움을 억누르며 고백하는 베드로에게 기회를 주신다는 사실이다.

 

  우리도 항상 불완전하게 살아가고 있는 나약한 존재들이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겸손하게 살아가는 세리와 같은 사람을, 완전한 사람이라고 자처하면서 살아가는 바리사이나 율법학자 같은 교만한 이들보다 더 사랑하신다. 그러므로 우리의 부족함을 진솔하게 고백하자. 그리고 그 부족함에 더 많은 은총으로 채워주시는 주님만을 바라보며 살아가자.

 

 

 

<공동의 집>

 

산업화된 관행 농업과 생태공동체

 

  기휘 위기에 어떻게 대응하여 지속 가능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인류 최대의 과제가 되었습니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온도 상승을 섭치 1.5도 이내로 억제하고자 화석 연료 사용을 줄이는 정책이 시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 세계적으로, 자연 친화적일 것 같은 농업과 대규모로 이루어지는 축산업이 상당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특히 생산력을 높이려고 살포하는 화학 비료는 제조와 분해 과정에서 온실가스를 배출합니다. 가격 경쟁을 위하여 끊임없이 진행되는 규모화와 기계화 과정에서 전통적 농업 생산 기술뿐만 아니라 생물 다양성, 토종 종자도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산업화된 농업 생산물은 화석 연료를 태워 가며 전 세계로 이동됩니다.

 

  대기업과 거대한 유통 자본이 농산물 생산과 식량 소비의 전 과정에서 최고 권력자가 되었습니다. 대다수의 농민이 자영농에서 소작농으로 전략하였고, 서로 협동하던 농촌 공동체가 기업 자본에 종속되고 말았습니다. 우리나라의 농촌이 피폐해졌고, 지구 곳곳 가난한 나라의 농업 체계가 무너져 가고 있습니다. 산업화된 관행 농업은 기후 위기의 주범이 되었고, 농민은 가난해지고, 농촌은 인구가 감소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제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서 새로운 질서를 찾아 나서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어울리는 공동체적 가치를 발견하고 실현해 가야 합니다. 안정적으로 식량을 공급하며 생태 환경을 보전하는 농업의 공익적 기능이 구현되어야 합니다. 자연의 순환 원리를 존중하는 생태 질서를 보존하여 생물 다양성을 확보하고 식량 주권을 수호해야 합니다. 농민은 생계를 걱정하지 않고 농사일에 전념하여 보람을 느끼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하고, 농민을 비롯한 다양한 직업의 구성원으로 농촌 공동체를 이루고 지켜 가야 합니다. 농업이 제자리를 찾고 농민 스스로 기쁘게 일하며 농촌의 삶이 행복해져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우리 사회가 건강해지고 안정적인 공동체로 거듭날 것입니다.(2021년 '농민주일 담화문') 중에서)

 

-강승수 요셉 신부 대전교구 생태환경위원회-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7. 미사 : 거룩한 표징으로 거행되는 미사

 

「표징」 여러분들께서는 이 단어를 보면 어떠한 생각이 드십니까?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라고 생각하실 수 있지만, 우리는 이미 표징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는 장미꽃 한 송이, 생일 때 케이크를 두고 축하해주는 모습, 이처럼 우리는 보이지 않는 마음을 눈에 보이는 것으로 드러내는 모습을 "표징"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표징은 말과 그림, 동작, 그리고 그 밖의 감각적으로 감지할 수 있는 것들로 어떤 지시 또는 메시지를 표현합니다. 이러한 표징은 우리 가톨릭에서 성사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습니다. 전례헌장 59항에서는 성사의 본질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표징"에 대한 부분을 언급합니다.

 

    "성사는 인간의 성화와 그리스도 몸의 건설, 그리고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를 지향하며, 표징들로서 교육에도 기여한다. 성사는 신앙을 전제할 뿐  아니라 말씀과 사물로 신앙을 기르고 굳건하게 하고 드러낸다.  ... 그러므로 신자들이 성사의 표징들을 쉽게 이해하고 또한 그리스도인 생활을 살찌우도록 제정된 이 성사들을 열심히 자주 받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의미에서 성사와 전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거룩한 표징으로 거행"되는 부분을 이해해야 합니다. 특별히 전례 안에서 이루어지는 예식은 상징적인 요소를 담고 있습니다. 전례 안에 드러나는 모든 표징은 장소, 말씀, 소리, 시간, 사물을 통해서 하느님의 신비를 드러내줍니다. 전례 안에 거룩한 표징은 은총을 구체화시켜주고, 비밀을 밝혀줍니다. 동시에 표징은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인간은 전례 안에서 표징을 만들고 표징을 바라보며 서 있습니다. 전례 안에서 인간은 영혼이 깃든 육체와 자신을 표현하는 영혼으로, 영혼과 육체가 하나가 디어 기도하고 움직입니다. 이미 말씀 안에서 이러한 것이 이루어집니다. 말씀 안에서 내면성의 첫육화가 이루어집니다. 인간은 말하고 듣습니다. 모든 동작과 행위에서 이러한 것이 이루어집니다. 동작은 보이지 않는 내면성이 볼 수 있는 육화로 전개됩니다. 인간은 표현하고 이해합니다.(로마노 과르디니)"

 

  그러므로 미사는 거룩한 표징으로 이루어진 예식으로, 이 표징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신비와 은총을 마주하게 됩니다. 우리가 미사에 대한 참된 의미를 되새기기를 원한다면, 전례 안에 담긴 거룩한 표징이 무엇인지 묻고 찾아야 합니다.

 

  다음 편에는 "미사 - 우리의 행위로써 봉헌하는 제사"라는 주제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윤진우 세례자요한 신부 사목국 차장-

 

 

* 교구 내 공소

 

세종도원성당 봉암리공소

  봉암리공소는 1957년 신자수 68명으로 설립되었다. 공소 초기에는 초대 윤병주 베드로 회장집에서 공소예절을 했다. 첫 공소 건물은 1967년 연면적 76.2㎡ 규모의 시멘트벽돌조로 건립되어 원 아드리아노 주교의 집전으로 축복되었다. 부지는 윤 회장이 봉헌하고 건축비용은 본당지원과 공소 교우들의 봉헌으로 이루어졌다. 대중교통의 발달로 1995년 공소가 폐지되고, 공소건물은 누수와 균열 등의 노후화로 2012년 철거 되었다. 그리고 대지의 남쪽에 33.75㎡ 규모의 경량철골조 건물을 신축하여 공동체 모임의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현재 35세대 70여 명이 본당으로 미사 참례하고 있다.

 

 

 

 

<이충무의 숨은 행복 찾기(31)>

 

값진 빵값 외상

 

  어느 날 한 여성이 빵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얼핏 특별할 것 없이 평범해 보이는 이 여성을 빵 가게 주인은 처음엔 그리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후 이 여성이 다가와 빵값을 외상으로 줄 수 있는지 물었을 때, 비로소 이 여성의 옷차림이 남루하고 얼굴 표정은 매우 심란해 보이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게를 운영해 오면서 외상 부탁은 처음 받았지만, 부모가 없는 네 명의 아이를 입양해 돌보면서 본인마저 실업자가 되자 아이들을 굶길 수 없어 외상을 부탁한 그녀의 딱한 사정을 알고 주인은 외상을 기꺼이 허락했다.

 

  얼마 후 빵 가게 주인은 오랜 세월 운영하던 빵 가게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게 되었고, 그렇게 해서 빵을  외상으로 가져가던 그녀와의 인연도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었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어느 날, 한 여인이 빵 가게 주인을 찾아왔다. 반백의 머리에 손에는 낡은 서류한 뭉치를 들고 나타난 그녀는 19년 전 외상으로 가져간 그 사람이었다.

 

  어차피 도움을 주려는 마음이었기에 주인은 외상장부를 기록하지 않았지만, 빵을 외상으로 가져간 그녀는 외상 장부에 꼬박꼬박 빵값을 빠짐없이 적어 놓았고 그것을 가져온 것이다.

 

  19년  동안 그 고마움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다면서 낡은 외상장부와 함께 소중하게 모아 온 외상값을 내민 반백의 그녀와 빵 가게 주인은 서로를 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 이야기는 몇 해 전 아르헨티나에서 제과점을 운영하는 '알리시아'라는 사람이 실제로 경험한 미담을 인터넷에 올려서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던 이야기다.

 

  이들의 이야기가 감동적인 것은 단지 은혜를 잊지 않고 갚았따는 사실만이 아니라,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동화처럼 아름답게 보여 주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외상으로 주면서 결코 장부에는 그 기록을 남길 필요가 없는 것, 동시에 외상으로 가져갔으면 꼭 다시 되돌려 주고 싶은 것... 그런 관계에서 진정한 사랑이 완성되는 건 아닐까?

 

  베푼 사람은 그 베푼 것에 매달리지 않고, 받은 사람은 그 받은 것을 결코 잊지 않는 것, 그게 진짜 사람임을 기억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축복된 5월이 되길 바라본다.

 

-이충무 바오로 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022년 제12회 생명 주일 담화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인간 생명을 취하시고 그것을 모든 인류의 구원을 위한 도구로 삼으셨으니,
그 인간 생명이란 얼마나 위대한 것입니까!”(「생명의 복음」, 33항)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사회를 향하여

 

  형제자매 여러분!

  5월 1일은 생명, 특별히 인간 생명의 신비를 경축하고, 그 소중함을 되새기며, 보호할 것을 다짐하는 생명 주일입니다. 교회는 제12회 생명 주일을 맞아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든 ‘죽음의 문화’를 직시하면서 생명 존중과 보호에 앞장서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기를 호소하고자 합니다.


  1. 교회는 인간 생명을 소중한 부부 사랑의 결실이요, 하느님의 선물로 여깁니다. 인간 생명은 결코 인간 자신이 주인이 아닙니다. 교회는 언제나 ‘수정되는 순간부터 자연사에 이르기까지 인간 생명을 결코 함부로 훼손해서는 안 된다.’(「생명의 복음」, 63-64항 참조)는 것을 변치 않는 진리로 가르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할 인간 생명이 곳곳에서 위협받는 현실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2. 어머니의 몸 안에 잉태된 태아도 엄연한 인간 생명이기에 낙태는 심각한 죄악입니다. 형법상의 낙태죄 관련 조항이 헌법 재판소의 헌법 불합치 판정을 받았다고 해서 낙태가 죄가 아닌 것은 아닙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사람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하느님께 순종하는 것이 더욱 마땅합니다.”(사도 5,29)라는 말씀처럼, 실정법으로 허용하더라도 하느님의 법과 양심에 따라 단호히 거부해야 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헌법 불합치 판정 이후 다루어질 관련 법 개정안이 생명을 죽이는 것을 용인하는 쪽이 아니라,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강화되기를 거듭 촉구합니다.

 

  3. 임신·출산·양육에 따르는 여러 어려움으로 낙태를 고민하는 이들의 고충과 아픔을 교회는 잘 알고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갑니다. 나아가 교회는 임신·출산·양육을 어렵게 만드는 사회 구조적이고 제도적인 여러 문제가 있음을 직시하면서, 임신과 출산이 부담스러운 짐이 아니라 축복이 되도록 정부 당국과 여야 정치인은 물론 뜻을 같이하는 시민 사회단체들이 함께 힘을 모아 주시기를 호소합니다.


  4.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사회에 활력을 주는 기본 세포인 가정은 생명을 전달하고 양육하는 사랑의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보호하고 지원한다는 취지에서 이른바 ‘건강 가정 기본 계획’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4차 건강 가정 기본 계획은 ‘비혼 동거’와 ‘사실혼’을 법적 가족 개념으로 폭넓게 확대하고 있으며, 이는 나아가 동성혼의 합법화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비혼 동거나 사실혼 관계에 있는 이들이 정부의 복지 혜택에서 소외되어도 안 되지만, 가족 개념 자체를 확대, 변경함으로써 야기되는 혼란을 간과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5. 교회는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부부의 사랑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 주는 표지, 곧 성사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개인의 선택과 자유에 기반한 ‘건강 가족 기본 계획’은 부부 일치와 사랑, 자녀 출산과 양육이라는 가정의 고유한 개념과 소명을 훼손할 여지가 큽니다. 이는 부부 관계를 상호 사랑과 헌신이 아니라, 개인적 취향이나 욕구 충족의 대상으로 쉽게 변질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가정의 해체와 생명 경시 풍조로 이어질 우려가 크기에, 다시 한번 모든 가정에 호소합니다. 가정이 본연의 자리를 되찾아 생명과 사랑의 보금자리가 되도록 힘을 쏟아 주십시오.


  6. 죽음을 앞둔 말기 환자들이 고통을 줄이고자 의사나 간호사 등 외부의 도움을 받아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례가 보도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존엄사’ 또는 ‘안락사’라고 부르는 조력 자살은 ‘고통은 참을 수 없는 좌절’이라 여기고, ‘삶의 가치를 오로지 쾌락과 안락을 가져다주는 기준에서만 평가하는 경향’에서 기인합니다. (「생명의 복음」, 64항 참조). 그러나 이는 ‘죽음을 선택할 권리’ 또는 ‘고통을 줄여 주는 자비’라고 미화하더라도 명백한 살인 행위입니다. 교회는 생애 말기의 환자들이 평안하고 인간다운 임종을 맞도록 도와주는 호스피스·완화 의료를 권장합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호스피스·완화 의료 및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 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이 시행 중입니다. 그러나 호스피스·완화 의료 대상이 일부 환자들에 국한되어 있고 호스피스 시설과 제도적 장치도 매우 제한적입니다. 호스피스·완화 의료의 대상 범위를 확대하고 시설과 제도적 장치를 확충하고자 더욱 힘써 줄 것을 정부 당국에 요청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나라에는 낙태를 허용하는 법이 아니라 생명을 보호하고 생명의 존엄성을 증진하는 법이 필요합니다. 임신과 출산이 짐이 아닌 축복이 되는 사회, 미혼 부모 가정이나 한 부모 가정 또는 조손 가정 등이 소중하게 보살핌을 받는 사회, 생의 마지막을 평안하고 인간답게 마칠 수 있는 사회, 그리하여 생명의 신비를 드높이 경축하는 사회가 되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2022년 5월 1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
위원장 문 희 종 주교

[내용출처 - https://cbck.or.kr/]
[해당 부분을 어문 저작물, 음향·영상물, 컴퓨터 데이터, 기타 저작물 등에 인용할 때에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 저작권 사용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해당 부분을 어문 저작물, 음향·영상물, 컴퓨터 데이터, 기타 저작물 등에 인용할 때에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 저작권 사용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2022년 노동절 담화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젊은이야, 일어나라(루카 7,14 참조)


  1977년, 우리나라가 수출 실적 100억 달러를 달성하여 중진국 상위권 진입을 자축하던 무렵, 한국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는 당시 들떠 있던 한국 사회에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경제 이익이 국민의 0.3%에게 쏠려 있는 이 상황은 과연 공정한가? 장시간 노동-저임금 산업 구조와 노동 탄압 정책으로 이룬 경제 성장은 정의로운가? 경제 성장의 실질적인 주역인 “청소년 노동자들의 피땀”에 대한 사회적 외면은 과연 올바른가?(정의평화위원회, 1978년 성명 ‘노동 정의를 실현하라’ 참조)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우리는 이전보다 풍요로운 사회에 살고 있으며 노동 조건과 노동자의 권리 또한 어느 정도 향상되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에게 봉사해야 할 ‘경제의 도덕적 차원’(『간추린 사회 교리』, 330-335항 참조)은 오히려 악화되었습니다. 빈부 격차는 더욱 심화되었고, 노동자의 존엄성과 안전은 다양하고도 교묘한 방식으로 위협받습니다. 이윤 축적을 위한 자본의 탐욕과 비인간성은 여전히 건재하고,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1베드 5,8). 여기에는 청소년도 예외가 아닙니다.


  세상의 아픔과 치유는 언제나 사회적 약자로부터 시작됩니다. 우리나라 산업 재해 추방 운동도 1988년 열다섯 살 노동자의 죽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청소년이 공장과 사무실에서, 거리에서, 항만과 바다 등에서 과로와 스트레스, 질병과 사고로 다치거나 생명을 잃어 갑니다. 심지어 스스로 목숨을 내려놓기도 합니다. 기업이 수익에만 관심을 둔 나머지 비용 절감과 ‘부리기 쉬운 노동력’에 집착하는 사이에, 교육계가 청소년을 보호하고 격려하기보다는 취업률과 지원금을 우선시하는 사이에, 정부가 일관성 없는 행정으로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그리고 노동자들 간의 욕설과 폭행 그리고 강요 행위가 방치되는 사이에 청소년들은 하나둘씩 죽어 가고, 서서히 그들의 가정도 파괴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청소년 노동 문제의 배경으로 그동안 인간 탐욕이 만든 고질적 폐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윤의 극대화를 위한 노동의 도구화, 장시간-저임금 노동, 고압적인 관리‧감독 체계, 중대 재해 처벌법의 제정에도 계속되는 산업 재해, 직장 내 괴롭힘과 강요, 온정적 처벌과 무관심, 정부의 안이한 근로 감독, 자본에 유리한 법 적용 그리고 폐쇄적이고 강압적인 노동 문화 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에 ‘어리다’는 이유로 쉽게 무시당하는 ‘나이 문화’를 더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잘못된 노동 조건과 제도 그리고 문화 등으로 말미암아, 청소년은 자신의 꿈을 펼치기는커녕 슬프게도 자본과 노동의 노예와 희생물이 됩니다.


  이러한 안타까운 상황은 성경에 나오는 한 젊은이의 장례 행렬(루카 7,11-17 참조)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의 죽음으로 그 어머니와 고을 사람들은 큰 슬픔에 빠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행렬을 마주하셨을 때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먼저 그에게 손을 내미시고, ‘젊은이야, 일어나라.’(루카 7,14 참조)는 말씀으로 그를 일으켜 세우시며, 마침내 그에게 생명과 꿈을 돌려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불의한 노동 현장으로 내몰린 청소년 노동자들에게 손을 내밀어 그들이 자신의 꿈을 온전히 펼칠 수 있는 ‘인간적인 노동 현장’(「백주년」, 43항 참조)을 만들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사실 청소년은 전인적 발전이 방해받지 않는 노동 조건에서 일할 권리가 있습니다(「지상의 평화」, 18-19항 참조). 그리고 청소년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해당 청소년 개인은 물론 우리 세상의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하셨습니다. “젊은이가 넘어질 때마다 어떤 의미에서는 온 인류가 넘어지는 것입니다. 반대로, 젊은이가 일어나면 이는 마치 온 세상이 일어나는 것과 같은 것도 사실입니다”(제36차 세계 젊은이의 날 담화). 그렇습니다. 청소년이 일어서야 우리 세상이 새롭게 시작할 수 있고, 미래를 꿈꿀 수 있습니다.


  사회의 정의로움은 약자들 가운데 가장 약자, 곧 ‘노동자들 가운데 가장 작은 노동자인 청소년 노동자’(마태 25,40 참조)의 보호 여부에 따라 결정됩니다. 청소년이 더 이상 어른의 탐욕으로 희생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사회, 그리하여 육체적, 정신적, 지적 그리고 경험적 상황에 걸맞게 자기 자신을 완성할 수 있는 사회가 절실히 요구됩니다(『간추린 사회 교리』, 296항 참조). 이를 위하여 이제 정부와 교육계, 기업과 사회 전체 어른들이 손을 내밀어야 합니다. 청소년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각자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청소년이 자신과 인류의 미래를 열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청소년의 현재와 미래를 위한 법과 제도 마련과 실행 그리고 현재의 노동 현실과 문화의 개선을 위하여 노력해야 합니다. 새롭게 들어서는 정부 또한 인간의 탐욕이 아닌 인간의 생명과 공동선을 위한 정책을 통하여 청소년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기를 바랍니다.

2022년 5월 1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김선태 주교

[내용출처 - https://cbck.or.kr/]
[해당 부분을 어문 저작물, 음향·영상물, 컴퓨터 데이터, 기타 저작물 등에 인용할 때에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 저작권 사용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해당 부분을 어문 저작물, 음향·영상물, 컴퓨터 데이터, 기타 저작물 등에 인용할 때에는 한국천주교주교회의·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 저작권 사용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1분 교리>

 

[생명 주일]

◎ 가톨릭 생명주일인 5월 1일은 특별히 인간 생명의 신비를 경축하고, 그 소중함을 되새기며, 보호할 것을 다짐하는 생명주일입니다. 교회는 우리 사회 곳곳에 스며든 '죽음의 문화'를 직시하면서 생명 존중과 보호에 앞장서는 사회를 함께 만들어 가기를 바라며 아래와 같이 호소합니다.

 

1) 교회는 인간 생명을 소중한 부부 사랑의 결실이요, 하느님의 선물로 여깁니다. 인간 생명은 결코 인간 자신이 주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모든 것에 앞서 존중받고 보호받아야 할 인간 생명이 곳곳에서 위협받는 현실로 목도하고 있습니다.

 

2) 어머니의 몸 안에 잉태된 태아도 엄연한 인간 생명이기에 낙태는 심각한 죄악입니다.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강화되기를 거듭촉구합니다.

 

3) 임신, 출산, 양육에 따르는 여러 어려움으로 낙태를 고민하는 이들의 고충과 아픔을 교회는 잘 알고 있습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마음으로 그들에게 다가갑니다. 임신과 출산이 부담스러운 짐이 아니라 축복이 되도록 모두 함께 힘을 모아 주시기를 호소합니다.

 

4)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하는 일은 무엇보다도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비혼 동거나 사실혼 관계에 있는 이들이 정부의 복지 혜택에서 소외되어도 안 되지만, 가족 개념 자체를 확대, 변경함으로써 야기되는 혼란을 간과해서도 한 될 것입니다.

 

5) 교회는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부부의 사랑이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사랑을 드러내 주는 표지, 곧 성사라고 가르칩니다. 모든 가정에 호소합니다. 가정이 본연의 자리를 되찾아 생명과 사랑의 보금자리가 되도록 힘을 쏟아 주십시오.

 

 

 

꽃가루

 

  요즘은 꽃가루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입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너무나 좋은 봄 날씨에 마음도 심장이 콩콩 할 지경이었는데 꽃가루가 해도 해도 너무할 정도로 많이 날리는 바람에 저같이 비염 끼가 있는 사람은 참으로 괴로움이 많습니다. 해서 꽃가루에 대해 신자분께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꽃가루 알레르기란 뭘까요?

집 먼지나 진드기 등 여러 알레르기의 원인 중 '꽃가루'가 원인이 되는 질환으로, 3-5월에 많이 발생합니다. 모든 꽃가루가 알레르기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니에요. 주범은 바람을 통해 수분하는 '풍매화'인 식물들이랍니다. 대표적으로 소나무, 단풍나무, 자작나무, 버드나무, 참나무 등이 있어요! 봄철 알레르기의 대표적인 비염과 결막염입니다!  이런 증상들은 방치하면 더 심한 질환이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예방법은 꽃가루 노출을 피하는 거예요. 하지만 매번 꽃가루 위험 농도 지수를 확인하기는 쉽지 않죠. 외출을 안 할 수도 없고요. 시력이 나쁘다면 랜즈보다 안경 착용을 추천하는데요. 눈을 보호하기에 더 수월하기 때문입니다. 어쩔수 없이 렌즈를 선택해야 한다면, 인공눈물을 수시로 넣어 주셔야 눈을 보호할 수 있어요! 또한 외출 후에는 재빠른 환복과 개인위생을 철저히 해야 합니다.

 

[알레르기 완화에 좋은 음식 리스트]

연어, 시금치, 딸기, 호박씨 등이 있습니다.

 

--글.사회복음화분과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