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22년 주보

주님 수난 성지 주일 2022년 4월 10일(다해)

모든 2 2022. 4. 11. 13:41

 

성환성당 소동리공소

충청남도 아산시 연암율금로 295번 길 119-12(음봉면 소동리 105-5)

 

 

+ 루카복음 22,14-23,5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기>

 

시간이 되자 예수님께서 사도들과 함께 자리에 앉으셨다. 그리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내가 고난을 겪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파스카 음식을 먹기를 간절히 바랐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파스카 축제가 하느님의 나라에서 다 이루어질 때까지 이 파스카 음식을 다시는 먹지 않겠다."

예수님께서 잔을 받아 감사를 드리시고 나서 이르셨다.

"이것을 받아 나누어 마셔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제부터 하느님의 나라가 올 때까지 포도나무 열매로 빚은 것을 결코 마시지 않겠다."

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예수님께서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을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

그러나 보라, 나를 팔아넘길 자가 지금 나와 함께 이 식탁에 앉아 있다. 사람의 아들은 정해진 대로 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넘기는 그 사람!"

사도들도 자기들 가운데 그러한 짓을 저지를 자가 도대체 누구일까 하고 서로 묻기 시작하였다. 사도들 가운데에서 누구를 가장 높은 사람으로 볼 것이냐는 문제로 말다툼이 벌어졌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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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어떤 하녀가 불 가에 앉은 베드로를 보고 그를 주의 깊게 살피면서 말하였다.

 

 

 

<말씀의 향기>

 

사반의 십자가 - 이준화 노베르토 반석동 주임

 

  오늘 수난기에서 우리는 군중에게 환영받던 예수님이 체포되어 사형선고를 받으시고 십자가 처형을 받으심을 묵상합니다. 호산나를 외치며 열렬히 환영하던 군중은 얼마 전 선거 유세장을 떠올립니다. 후보자는 화려한 공약을 외치고 모여든 군중은 손을 흔들며 거기에 열광합니다. 예수님은 아무 말 없이 그냥 조그만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시는데, 군중은 그가 이스라엘을 로마 식민지에서 해방하고 자유와 풍요를 줄 위대하고 초인적인 구세주로 알았던 것이지요.

 

  급기야 군중은 그가 무력하게 잡혀 빌라도에게 심문받는 것을 보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칩니다. 예수님을 극단적인 궁지로 몰아넣으면 물 위를 걷고, 불구자를 일으키고, 빵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로 수많은 군중의 허기를 채우시고, 죽은 사람까지 살리셨던 그가 어떤 놀라운 행동을 하시리라 기대했던 것일까요?

 

  실망한 군중은 바라빠를 풀어주라고 외칩니다. 바라빠는 열혈당으로 불리는 일종의 무장 독립 단체의 수장으로 여겨지는 사람입니다. 군중은 예수님을 버리고 바라빠를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열혈당은 같은 동족 이스라엘 사람을 약탈하고 목숨을 뺏기도 하여 그리 신임을 받지 못한 단체였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군중은 이성을 잃고 분위기에 휩싸여 예수님을 버리고 바라빠를 선택했습니다. 진리가 영혼 없는 군중에게 짓밟히는 순간이었습니다.

 

  김동리 선생의 소설 "사반의 십자가"에서 사반은 바라빠와 같은 열혈 당원입니다. 소설에서 사반은 예수님을 두 번 만나 같이 독립운동을 하자고 제안하지만 예수님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는 우리가 땅을 말하면 하늘을 말하고 우리가 오늘을 말하면 볼 수 없는 내일을 말하고 우리가 사는 것을 말하면 죽음을 말한다."

 

  사반은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에 달렸으나 끝까지 천국을 부정하고 죽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십자가 죄수는 예수님께 천국을 부탁하고 약속을 받습니다. 우리는 바라빠나 사반처럼 현세의 것이 최고의 가치이고 천상의 것은 허상이라고 믿지는 않겠지만, 현세도 내세도 모두 하느님의 권능과 통치에 속한다는 것을 아는 참 신앙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십자가의 진정한 의미는 믿음, 사랑, 정의, 겸손, 지혜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현세에서는 수고로운 기쁨이고 천국에서는 하느님의 영광입니다.

 

  은혜로운 하느님 백성으로 또 한걸음 주님께 가까이 가는 부활이 되기를 바랍니다.

 

 

 

<교구 전담 사목을 소개합니다>

 

말씀 사목

 

  '말씀 사목'은 신자들이 성경에 관한 관심과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말씀을 살아가도록 이끌어주는 사목입니다. 말씀 사목은 '양성'과 '확산'이라는 두 가지 방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첫째, 본당 사목을 돕기 위한 말씀 봉사자 양성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들은 본당 안에서 예비자 교리의 '성경' 부분을 담당하거나, 성경 공부를 통해 영세자들의 견진성사 준비를 도와줄 것입니다. 그 이후에도 '말씀 나누기'와 같은 그룹 모임을 통해 말씀 안에서 신앙을 지켜나가는 길잡이 역할을 할 것입니다. 또한 소공동체의 핵심인 복음 나누기를 주도할 말씀 봉사자들은 본당 소공동체에도 큰 활력을 불어넣을 것입니다.

 

  둘째, 신자들의 성화와 신앙 성숙을 위해 교구 안에 말씀의 씨앗이 골고루 뿌려져야 합니다. 이를 위해 권역별로 성경 공부를 확대할 예정입니다. 우선 지난 2021년 9월부터 대전과 세종. 공주지역을 중심으로 성경 공부를 시작하였고, 향후 천안. 아산지역(2023년), 당진. 보령지역(2029년)으로 확산해 나갈 것입니다. 교구 안에 이와 같은 시스템이 정착하는 데에 10년 정도의 기간이 소요될 전망입니다.

 

  성경 공부는 단계별로 마태오복음(1년), 루카복음(6개월), 요한복음(1년) 과정입니다. 현재 대전과 세종지역 중심으로 '마태오복음 성경공부' 3개 반(241명)을 운영하고 있고, 다른 복음서와의 관계 및 서간이나 구약과의 관계 안에서 맥을 짚어주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향후 사도행전과 로마서, 코린 토서, 창세기, 탈출기 등의 관정을 통해 지속적인 교육의 기회를 마련할 것입니다.

 

  올해 9월부터는 6개월 과정의 '루카복음 성경공부'가 시작됩니다. 아는 만큼 기도하고 이해한 만큼 감사하며 살 수 있으니, 부디 성경 공부가 성경 통독이나 성경 필사 안에서 계속 되었던 궁금증을 해소하고 은혜로운 신앙생활을 해 나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말씀 사목부는 신자들이 말씀에 맛을 들이고 본당 신부님들의 사목에 도움이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습니다.

 

-이재훈 세례자요한 신부 말씀사목 전담-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5. 미사 :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하나 되어 전능하신 천주 성부 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아멘>

 

  미사 중 성찬례의 마지막 부분에서 주례사제는 마침 영광송을 바칩니다. 여러분께서는 이 마침 영광송을 귀담아 들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이 기도문은 중요한 부분을 마무리 짓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이 기도문을 묵상하다 보면, 지금 우리가 드리는 이 미사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미사의 참 의미를 전달하기도 합니다.

 

  "성찬례를 이루는 것은 우리가 아닙니다. 성찬례는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하느님'의 행위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려고, 우리와 함께 사시려고 오시는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행위입니다. 이는 전례를 우리의 일상생활과 연결시키는 것이기에 매우 중요합니다. 모든 일에서 그리스도처럼 행동하라는 부르심을 받아들일 때에, 우리는 날마다 끊임없이 전례와 연결되는 것입니다. 성찬례를 예식 지침에 따라 완벽하게 거행한다 하더라고, 그 예식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한다면, 그 예식은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삶에 어떠한 양식도 가져다주지 못할 것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

 

  지난 편에서 미사를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라는 교리를 통해 설명드렸습니다. 이를 설명하며 다름과 같은 표현을 덧붙였었습니다. <우리는 미사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과 만나고, 그분을 체험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우리를 만남의 장으로 이어주는 분이 계십니다.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미사를 봉헌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우리가 감각적으로 느끼고, 도무지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을 토대로 우리는 하느님과의 만남으로 인도받습니다. 우리가 봉헌하는 미사는 분명 "그리스도를 통해서"이루어지는 거룩한 만남입니다. 만일 우리가 미사를 봉헌하면서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는다면, 결코 하느님과 만날 수 없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미사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을 만나고, 그리스도와 함께 거룩한 잔치를 봉헌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을 완성하게 됩니다. 길이 보이지 않고, 여러 가지 분심으로 어려움을 겪고 계시다면,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 그리고 그 사랑에 초점을 맞춰 미사를 봉헌해 나아갑시다.

 

  다음 편에는 "미사- 교회 안에서의 환호"라는 주제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윤진우 세례자요한 주교좌 대흥동 제1보좌-

 

 

* 교구 내 공소

 

성환성당 소동리공소

 1800년대 말 경상도 출신 전 발라바가 천석꾼이었던 윤석복의 집에 머물며 신앙을 전파하였다. 1012년 공세리성당 크램프 신부가 소동리(바르미)에 공소를 설립하였다. 당시 신자수는 17명이었다. 윤석복(가밀로)이 초대 회장을 맡아 집에서 공소예절을 하였다. 1934년 윤 회장이 토지와 1천 원을 희사하여 18평(8칸) 규모의 목조 초가 공소를 건립하였다. 그 후 1967년, 1979년에 각각 공소를 재건축하였고, 현재의 공소 건물은 2001년 신축되었으며 부속 건물들이 마련되었다. 2007-2013년까지 임진강(라파엘) 선교사의 파견으로 신앙공동체가 크게 융성하였다. 현재 50여 세대 50여 명이 공소 미사에 참례하고 있다.

 

 

 

<이충무의 숨은 행복 찾기(30)>

 

이력서와 추도사

 

  미국의 유명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에 의하면 인생에는 두 가지 중요한 문서가 있다고 한다. 하나는 이력서이고 하나는 추도문이다.

 

  이력서와 추도문은 매우 대조적이다. 이력서는 내가 작성하는 것이지만, 추도문은 타인에 의해 작성된다. 이력서는 직장을 갖기 위해 쓰고, 추도문은 한 사람을 기억하기 위해 적는다.

 

  그래서 이력서에는 한 사람의 업적들이 빼곡하게 적히고, 추도문에는 실적이나 업적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관계에 대한 묘사가 진솔하게 드러나게 된다.

 

   이력서를 쓸 때 우리는 학력, 경력, 자격증, 업적 수상경력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하려고 노력한다. 그것들이 안정된 삶을 보장해 줄 수 있는 중요한 요소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력서를 어떻게 쓰느냐에 대해 고민하고, 심지어는 이력서 작성법에 대한 요령이나 기술을 교육받기도 한다.

 

  하지만 추도문의 경우에는 그런 노력들이 의미가 없다. 그것은 오로지 타인들의 마음속에 내가 어떻게 자리잡고 있었는지에 의해 좌우되기 때문이다.

 

  추도문에는 고인의 삶을 돌아보며 그가 평소 어떤 모습으로 살아왔는지, 그와 함께 어떤 추억을 나누며 행복했는지, 또 그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남기고 싶었는지가 기록된다.

 

  브룩스는 이 두 개의 문서를 기준으로 우리 인생은 각각 '이력서 가치'와 '추도사 가치'로 나뉠 수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어떤 가지가 더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졌다.

 

  물론 이력서도 중요하다. 어떻게 현실적 난관을 이겨나가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도 해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더 먼저, 더 크게 봐야 할 것이 있음을 기억해야만 할 것 같다.

 

  인생의 끝에 가면 뭐가 보일까? 그때도 책상 앞에 앉아 홀로 외롭게 작성하던 이력서 한 장이 여전히 중요할까? 아니면 여러 사람들이 그리운 마음으로 작성하게 될 추도사가 중요해질까?

 

  부활절이 다가온다. 새롭게 태어나는 것은 나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의 마음 안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임을 기억하면서 부활절을 맞이하고 싶다.

 

-이충무 바오로 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1분 교리>

 

Q) 성주간이란?

  성주 간(Holy Week) 또는 고난주간(苦難週間)은 그리스도교에서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을 묵상하는 교회력 절기이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주님 수난 성지주일(종려주일, 고난주일)로 시작하며, 부활 성야 전까지, 곧 성 토요일까지이다. 예수 수난 주일부터 부활절 전날까지의 1주간을 말하며 이 시기에는 예수의 관을 기억하며 절제된 생활을 한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는 성주간을 교우들은 특별히 엄숙하게 지낸다.

 

  성주간 기간 내 성삼일은 주님 만찬 성 목요일, 주님 수난 성 금요일, 주님 부활 성야(성 토요일)를 말한다.

 

  파스카 성삼일을 시작하는 주님 만찬 미사에서는 그리스도께서 제자들과 최후 만찬을 하면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신 것을 기념한다. 주님 수난 성금요일에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기념하며, 성 토요일에는 무덤에 묻히신 것을 묵상하면서 부활 성야 대축일 미사를 봉헌한다.

 

  성주간의 수난과 죽음이 의미 있는 것은 주님 부활이 있기 때문이며, 부활이 전제되지 않는 수난과 죽음은 크리스찬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이주민

 

'가난하고 보잘것없는 이에게 해 준 것이 나에게 해 준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예수님.

 

  우리 생활에서 참 많은 이들과 지내고 있죠? 신앙인으로서 제약도 많을때가 많은데요. 저는 개인적으로 사순시기는 안 그래도 힘들게 살고 있는데 이런 시기를 둬서 더 어렵게 하나 하는 생각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비신앙인들보다 쉽지 않은 길을 가는 우리 교우분들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사순절이 시작되면 많은 신자들이 보속과 희생을 결심하면서 나름의 계획을 세우곤 합니다. 그러나 담배와 술 끊기, 금식과 금육 등 소극적인 극기 생활에만 중점을 두기 쉬운 게 사실입니다. 이런 것도 다 좋지만, 우선은 이 시기 힘들게 지내시는 주위 분들을 위한 기도부터 하는 건 어떨까요. 그리고 사랑의 실천이 같이 가면 더욱 좋겠죠.

 

  교황님은 몰타 순방 마지막 일정에서 "이주민을 따뜻하게 맞아들이십시오"라고 말씀하시고 난민센터를 방문해 200여 명의 난민을 만나며 난민을 숫자가 아니라 각자 사연을 지닌 한 사람으로 바라보라며 침몰한 보트에 우리 아이들이 타고 있었다고 생각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는 예수님의 얼굴을 뵙는 것인데 그분을 뵐 때 좀 더 자유롭길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