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22년 주보

사순 제4주일 2022년 3월 27일(다해)

모든 2 2022. 3. 28. 20:58

 

서천성당 장구리공소 충청남도 서천군 충서로 263번 길 27-40(종천면 장구리 655-143)

 

 

+ 루카복음 15,1-3,11-32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그때에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이,'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그가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아버지가 그를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들었다.그리고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 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그때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말씀의 향기>

 

처음으로 되돌아가는 용기  - 강대원 즈카르야 홍보국장

 

  사순 시기가 되면 신자들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바로 판공성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본다면 사제들도 사순 시기가 되면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부담감이 조금 생기게 된다. 바로 판공성사를 주어야 하는 것과 동시에 자신도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머릿속에 '사순시기=고해성사'라는 도식이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고해성사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왜 생기는 것일까?

 

  저마다의 이유는 다 다르겠지만,이것 역시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생각해 본다면 "회개"에 대한 두려움일 수 있을 것이다. 바꾸어 말하자면, 고해성사는 지금까지의 내 생활을 되돌아보고 그 안에서 하느님께서 좋아하지 않을 만한 것들을 되짚어 보고 뉘우치며, 다시는 그런 생활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마음을 고쳐먹고 모든 잘못을 낱낱이 고백하는 것이다. 그런 다음 회개했다는 증거로서 보속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 일련의 과정들은 지금의 나와 이전의 나와는 전혀 다른 사람으로 살겠다는 것이다. 또한 하느님께서 좋아하지 않을 일보다 하느님께서 보시고 좋아할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회개했다는 증거로서 나의 삶을 바꾸는 중요한 역할이 바로 사순 시기에 모든 그리스도인이 행하는 판공성사, 즉 고해성사이다.

 

 그러나 나 자신은 알고 있다. '나약한 인간이기에, 참으로 작은 유혹 앞에 너무도 자주 넘어지는 나이기에, 오랜 시간에 걸쳐 알면서도 행해오던 잘못들을 고칠 용기가 부족하기에,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아갈 자신이 없기에... 이런 모든 이유들로 인해 회개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일종의 두려움으로 판공성사가 어렵게 다가오는 것은 아닐까?'라는 성찰을 해 보게 된다.

 

  이러한 측면에서 생각해 본다면, 오늘 복음에 나오는 작은 아들은 참으로 큰 용기를 지닌 사람이다. 물론 이 복음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용서하시는 하느님', '우리와의 화해를 위해 기다리시는 하느님'이라는 것이지만, 작은 아들의 용기 또한 눈여겨볼 만하고 우리가 가져야 하는 모습이라 생각된다. 과거와의 단절을 전제로 하는 용기를 보여준 작은 아들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이 되기를 희망하며 판공성사를 통해 아버지께 되돌아가는, 처음 신아을 가지고 하느님을 사랑했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은총을 청해 본다.

 

 

 

  우리농의 전체 명칭은 "우리 농촌 살리기 운동"입니다.

  우리농 조직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뿌리의 역할을 하고 있는 "가톨릭 농민회"와 줄기의 역할을 하고 있는 사목자와 실무자들, 그리고 열매 또는 꽃님이라 불리고 있는 "도시생활공동체"가 존재합니다.

 

  이 세 영역 모두를 일컬어 "우리농촌살리기운동"이라고 할 수 있고, 줄여서 "우리농"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가톨릭 농민회"에서는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고, 사목자들과 실무자들은 농민회원들이 생산한 소출을 도시에 사는 우리농 회원들에게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으며, "도시생활공동체" 회원들은 각본당에 설치되어 있는 우리농 나눔터를 중심으로 봉사하며 농산물을 나누는 데에 앞장서는 분들입니다.

 

  가톨릭 농민회 입회자 연수 때의 일입니다. 신입회원들 가운데 연세가 칠십이 넘은 분이 계셨는데, 이분은 그동안 살충제와 제초제 등을 사용하는 관해농법으로 평생을 농사지어 오신 분이었습니다. 약 20년 전에 마을에 들어와 친환경 농사를 시작하는 한 가톨릭농민회원을 보고 처음에는 비웃었지만, 이제는 생명농사가 여러 가지 차원에서 올바른 길이라는 것을 깨닫고 늦게나마 입회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우리농 활동을 하면서 가장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대전 우리농은 온갖 물품을 주문하실  수 있는 홈페이지(www.wefarm.or kr/) 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농은 회원제로 운영됩니다. 2만 원을 내면 '평생회원'이 되십니다. 홈페이지를 통해서 회원에 가입해 주세요. 우리농의 농축산물을 5만원 이상 주문하면 회원님 댁으로 배송해 드리며, 물품정보지와 문자를 통해 여러 정보를 안내해 드립니다. 회원가입으로 저희와 연결되시면 땅을 살리고 지구를 지켜오셨던 유기농민들과 함께 생명살리기 운동에 동참하시게 됩니다.

 

  유기농산물을 선택하시면 식탁에서 지구온난화를 막는 일에 참여하시게 됩니다.

 

-강승수 요셉 신부 가톨릭 농민회 전담-

 

 

 

<스테인드글라스 이야기⑦>

 

서울대교구 옥수동 성당 주출입문 「빛의 영광」

 

● 재료 : 열성형 유리(Fused Glass), 스테인리스 스틸(Stainless Stee)

● 크기 : 389cm × 333cm × 20cm

● 제작 : 2012년도

● 제작의도 :

경계와 경계, 안과 밖, 세속의 영적 공간을 분리하는 그 첫 번째 '문'

어제의 정치도, 이념도, 어수선하고 시끌벅쩍한 모든 잡음들이 일순간에 정지되며

내가 어떻게 이 공간을 오롯이 받아들이고 깨어 있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구조물이다.

빛을 품은 문이고 싶었다. 안과 밖을 빛으로 투과하여 경계를 허물고 예수님의 사랑을

성체성사와 십자가의 은혜로 표현하였다. 내가 그분의 자녀로 빛의 씨앗이 되기를 바라며...,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손승희(손소벽 말 달레나) 유리화 작가-

 

 

* 교구 내 공소

 

<서천성당 장구리공소>

 

  장구리(송동)는 박해 이후 형성된 교우촌으로 1882년(신자수 69명) 퀴를리에 신부의 사목담당 공소였다. 1899년 뮈텔 주교가 방문할 정도로 큰 공소였으나 송동공소는 쇠락하고, 장구리 옹기마을을 중심으로 전교가 활발하게 이루어져 1911년 장구리에 공소가 설립되었다. 공소예절은 회장집에서 지내다가 8.15 해방 이후 전태용 회장 재임 시기 중 당정리 약방집에 공소를 마련하였고 이어서 이 집을 매입하였다. 현재와 공소는 이상의(호노라도) 회장 재임 시기인 1976년 시멘트벽돌조(연면적 42.71㎡)로 건축되었다. 1993년 공소는 폐지되고 건물은 비어 있다. 현재 30여 세대에 11명이 서천성당으로 주일미사를 다니고 있다.

 

 

 

<해외 유학 사제들의 편지 12>

 

철학? 내가 왜?? - 우리 삶의 의미를 찾아서....

 

  안녕하세요. 로마에서 유학 중인 허권범 프란치스코 신부입니다. 제가 공부하고 있는 과목은 "철학"입니다. 제가 로마에 처음 와서 이곳 신부들에게 철학을 전공하기 위해 왔다고 하면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Mammamia... La filosofia e terribile.Coraggio!"였습니다. 우리말로 하면 "와... 철학은 끔찍해... 힘내렴!"입니다. 이런 반응을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철학"은 어렵고 피하고 싶은 학문임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러한 철학을 공부하는 것이 너무 힘들어서 하느님께 투정을 부린 적이 많습니다. "주님! 왜 저입니까?"라고 말이죠. 그러나 기도 중에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가야 한다."(루카 13,33)라고 말씀하시며 하느님의 뜻에 따라 당신의 길을 묵묵히 걸어 나가시는 예수님을 발견했습니다. 저는 그 순간 외국에서 공부한다는 것이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누군가는 해야만 하는, 유학이라는 귀한 직무에 초대받은 사제라는 점을 깨닫고서는 투정하던 저에게 답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제가 공부하는 철학이 사실 가톨릭교회의 신아과 신학에 직접적으로 연결된다는 점과 더 나아가 철학은 하느님과 인간,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 우리 삶과 관련된 거의 모든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을 깨달으면서, 사제인 제가 왜 철학을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지 그 의미와 동기 역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주님 안에서 진심으로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철학"은 어렵게 말하자면 끝도 없이 어렵게 말할 수 있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왜"라는 질문을 통해 어떤 현상에 대한 "근본적인 원인과 원리"를 찾아가는 학문입니다. 그래서 철학을 공부하는 제가 여러분께 제안하고 싶은 것은 우리의 삶과 신앙 안에서 항상 "왜?"라는 질문과 가까이 지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나는 왜 행복해지고 싶지?", "나는 왜 하느님을 믿지?", "나는 왜 오늘도 직장에서 혹은 가정에서 일하고 있지?" 등등의 질문을 하면서 말이죠.

 

  그러면 "왜?"라는 철학적 질문이 가진 고유한 힘이 여러분 삶의 근본적인 의미를 발견하게 해 주고, 여러분 삶의 가장 중심에서, 그리고 가장 깊은 곳에서 모든 것을 당신의 선하신 뜻대로 섭리하시는 하느님을 발견하게 해 줄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서는 각자의 시간 속에서 삶의 구체적 질문을 통해 당신을 찾는 이들에게 언제나 당신의 모습을 드러내 보이시고,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시는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허권범 프란치스코 신부 로마 유학-

 

 

 

 

<1분 교리>

 

Q) '십자가의 길'기도는 언제 어떻게 바치나요?

'십자가의 길' 기도는 평상시에도 바치지만, 예수님의 수난과 죽으심을 묵상하며 바치는 기도이기에 사순시기의 금요일과 특별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성금요일에 바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형선고부터 시작하여 돌무덤에 묻히신 수난의 장면을 14곳으로 구분하여 묵상하게 되어 있는데 이를 '십자가의 길 14처'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교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걸으셨던 것처럼 매 처마다 이동하면서 한 처 씩 그 의미를 묵상하며 기도를 올립니다.

 

 

카인

 

  교우분들도 아시다시피 지금 우크라이나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전쟁의 공포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사람이 사람 위에 군림하려 들고, 몇몇 사람의 욕심과 탐욕으로 대다수 사람들이 고통받고 있는 것을 보면 '하느님은 뭐 하시나 저런 거 어찌 안 하시고'그런 마음이 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전쟁 중단 기도문 일부를 적어봅니다.

 

  하르키우의 벙커 안에서 당신 어머니의 품에 죽어 계신 주 예수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최전방에 보내진 스무 살 젊은이의 주 예수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십자가 아래에서 여전히 무장하고 있는 손을 보고 계신 예수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중략)

고통 때문이라며 저희의 잔혹함을 정당화하고 있는 저희를 용서해 주십시오.

간구하오니, 카인의 손을 붙들어 주시어 저희의 양심을 밝혀주소서.

이루어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의 행함 때문에 저희를 버리지 마소서.

주님, 저희를 막아주소서. 그리고 당신께서 카인의 손을 잡으시며 그도 돌봐주십시오.

그도 우리의 형제입니다.

 

-글, 사회복음화 분과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