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22년 주보

부활 제2주일 곧,하느님의 자비 주일 2022년 4월 24일(다해)

모든 2 2022. 4. 25. 14:13

성환성당 신휴리공소

충청남도 아산시 관용로 261번 길 2-1 (음봉면 신휴리 339)

<종탑을 포함하여 울타리 친 부분이 경계이며, 좌측이 공소, 우측은 개인주택>

 

 

+ 요한복음 20,19-31

 

<여드레 뒤에 예수님께서 오셨다.>

 

그날 곧 주간 첫날 저녁이 되자,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나서 당신의 두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 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뵙고 기뻐하였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이르셨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이렇게 이르시고 나서 그들에게 숨을 불어넣으며 말씀하셨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서'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는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에 그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우리는 주님을 뵈었소."하고 말하였다. 그러나 토마스는 그들에게, "나는 그분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을 직접 보고 그 못 자국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고 또 그분 옆구리에 내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결코 믿지 못하겠소."하고 말하였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모여 있었는데 토마스도 그들과 함께 있었다. 문이 다 잠겨 있었는데도 예수님께서 오시어 가운데에 서시며, "평화가 너희와 함께!"하고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토마스에게 이르셨다. "네 손가락을 여기 대보고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뻗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의심을 버리고 믿어라."

 

토마스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저의 주님, 저의 하느님!" 그러자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예수님께서는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많은 표징도 제자들 앞에서 일으키셨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말씀의 향기>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고 믿는 사람들  - 김문수 야고보 하기동 주임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사도 토마스의 믿음을 두고 미루어볼 때 '믿음'에 관하여 사람들을 두 부류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보이는 것만을 보고 믿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보이지 않는 것까지 보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 후자의 경우가 '더 넓은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살아가는 맛이 더욱 클 것으로 본다. 그만큼 행복한 사람들이라 여겨진다.

 

  지난날 기억에 의하면 토마스 사도의 신앙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이 참 많았다. 부활 2주일이 되면 토마스 사도의 귀가 가려울 정도로 '불신앙'의 주제가 자주 등장했다. 지금은 부정적 이미지를 탈피하여 토마스의 실증적이고도 확고한 믿음의 방식이 주목받는 때가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신다. 초대 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우리와 같은 고민이 있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어떻게 믿어야 하는가?'였다. 사도행전을 통해 초대 교회의 감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듯이 기적과 놀라운 일들이 하느님이 계시다는 간접적인 증거가 되어주었다. 신자들의 무리가 늘어났고, 모두 공동으로 소유하며 궁핍하지 않았다. 제자들은 밖으로 나가 병자들을 축복하였고, 베드로 사도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기만 해도 그들의 병이 모두 나았다. 보이지 않는 영적 체험을 통해 하느님의 현존을 느낄 수가 있었다.

 

  지난 이야기다. 제가 부제품을 받고 처음으로 클러지셔츠에 로만칼라(Roman Collar)착용하고 본당으로 돌아 올 때 몇 그램의 플라스틱 조각에 불과한 그 가볍디가벼운 로만칼라가 그렇게도 무겁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 성직자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보여줘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하느님은 부족했던 사도 토마스를 통해 큰 일을 이루셨다. 사도 토마스뿐만 아니라 함께하는 모두에게 평화를 보내주셨고 생명력 넘치는 숨을 불어넣어 주셨다. 이에 큰 용기를 얻는다. 조건 없이 만나주시고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일이 사제의 일이기도 하고 부활을 살아가는 신앙인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는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보이는 것만을 보고 믿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여줄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모범으로 보여주시고, 사도들이 활동을 통해 그랬듯이 교우들도 사랑과 봉사의 생활을 통해 하느님이 계시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점이다. 하느님의 모습은 봉사하는 신앙인들에게서 찾을 수 있기에 봉사 없는 신앙인들에게서는 하느님을 눈으로 볼 수가 없지 않겠는가! 신앙인들은 사랑과 봉사 안에서 성령의 게임으로 놀라운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음을 믿는 사람들이다. 부활의 참된 의미는 갇혀있는 부활이 아니라 힘있게 생명력으로 뛰쳐 나가는 삶인 것이다. 이에 용기를 가져야 한다.

 

  그레고리오 교황님께서 남기신 말씀이다. "아무런 의심없이 믿었던 제자들의 신앙보다는 온전히 믿지 못했던 토마스가 우리를 더 많이 도와주고 있다."

 

 

 

교구  전담 사목을 소개합니다.

 

성령쇄신봉사회

 

  '성령쇄신봉사회'는 성령이신 하느님은 올바로 알고 체험하며 생기있는 신앙생활을 하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성령쇄신봉사회의 목적은 "체험"과 "쇄신"에 있습니다. 성령이신 하느님을 체험하고, 다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살아가는 삶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60여 명의 봉사자들이 기도하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주요 활동 내용은,

  성령 묵상회(연 3-4회) 일정기간 동안 교육, 성찰, 면담, 고해성사, 안수식, 나눔을 통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성령 체험을 통해서 하느님 안에서의 삶을 기쁘게 살아갑니다.

 

  화요 치유 미사와 기도(매주 화요일 오후 2시) 육체적, 내적으로 들어하시는 분들을 위한 미사와 치유를 위한 안수기도를 합니다.

 

  수요 전구 미사와 묵주기도 100단(매주 수용일 오전 9시 30분~2시) 교회와 교황님, 주교님과 사제들, 봉사회를 위해서 묵주기도 100단을 봉헌하고, 미사를 봉헌합니다. 힘든 시간이기도 하지만, 이 기도를 통해서 묵주기도의 은총을 체험하게 됩니다.

 

  목요 기도회(매주 목요일 7시 30분)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함께 모여 기도하면서, 성령 안에서 성장하는 삶을 살아가자고 합니다. 기도회와 미사, 성체강복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밖에도 매주 토요일(오전 10시) 성모 신심 미사와 면담과 고해성사, 본당 요청시 견진이나 신자 재교육을 위한 파격 교육 및 묵상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성령이신 하느님은 늘 우리의 삶 가운데서 활동하십니다. 성령쇄신 운동이 시작될 때처럼, 성령이신 하느님을 느끼고, 체험하고자 하는 원의가 있다면, 성령께서는 우리의 청에 응답해 주십니다. 또한 기도와 성체성사, 고해성사의 삶이 얼마나 큰 은총의 선물인지 깨닫게 해 주십니다. 많은 분들이 이곳에 와서 아픔과 죄와 삶의 어려움들을 내려놓고, 성령을 기쁘게 돌아가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저희는 다만 함께 기도하며, 하느님께서 주신 너무나 소중한 기도와 성체성사와 고해성사의 삶을 다시 찾도록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할 뿐입니다.

 

● 장소 : 새얼센터(대전시 유성구  지족로 306)

● 문의 : (042) 824-6771

● 홈페이지 : http ://www.crs.or.kr/

 

-김기범 시몬 신부 성령쇄신봉사회 전담-

 

 

 

<교회음악 이야기⑦>

 

하이든 <불안한 시대를 위한 미사>

 

  기나긴 아픔의 시간을 지나 주님이 부활하셨다. 여러 가지로 어수선하고 편치 않은 이 시절에도 꽃은 움트고 생명이 약동한다. 마냥 설렐 수도 기쁠 수만도 없는 이 시기에 부활하신 주님, 피어나는 자연 안에서 우리는 조용히 샘솟는 희망을 느낀다. 캄캄하고 적막한 빈 무덤에도 환한 빛이 찾아들었다. 이 간절한 마음을 음악으로 표현한 작곡가가 있다. 고전주의 시대의 대표적 작곡가 하이든(Franz Joseph Haudn. 1732-18-9)년 1798년 《불안한 시대를 위한 미사》(Missa in Angustiis, Hob. X Xll/11)라는 제목이 붙은 미사곡을 작곡하였다.

 

많은 별칭을 갖고 있기도 한 이 곡은 최근 <2022년 통영 국제음악제>에서 앤드루 노민(Andrew Norman)의 《소용돌이》(Spiral, 2018)와 함께 마르쿠스 슈텐츠(Markus Stenz)의 지휘로 연주되기도 하였다. 시대에 대한 깊은 사색이 반영된 기획이 아닐 수 없다. 잠시 1798년 유럽의 상황을 떠올려 보자. 당시 승승장구하고 있던 나폴레옹 군대는 1797년 초, 알프스를 넘어 비엔나를 위협하기 시작했고 이어진 네 번의 큰 전투에서 연승하였다. 하이든의 명성은 1798년 최고조에 달하지만 미사곡을 썼을 당시 세계는 두려움과 슬픔으로 인한 혼란에 빠져 있었다. 1798년 여름은 오스트리아에게 두려운 시간이었다. 이 곡의 기원에 여러 가지 설이 있기는 하지만 이 '불안한' 시대에 신께 평화를 갈구하며 미사곡을 작곡했다는 설 또한 설득력이 있다.

 

  이 작품의 유명한 다른 이름은 《넬슨 미사》(Lord Nelson Mass)인데 여기에도 인상적인 일화가 있다. 하이든이 미사곡을 작곡할 당시에는 전해 듣지 못했겠지만, 이 곡이 초연되었던 1798년 9월에 그와 청중들은 전쟁에 관한 새로운 소식을 들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바로 나폴레옹이 영국군과의 해전에서 충격적인 패배를 당했다는 것. 이 해전은 넬슨(Horatio Nelson) 제독이 이끄는 군대에 의해 수행되었고 이 우연의 일치로 인해 미사곡은 《넬슨 미사》라는 별칭을 얻게 된다. 때문에 이 곡은 작곡가의 의도했던 《불안한 시대를 위한 미사》라는 제목과 더불어 《넬슨 미사》로도 유명하다.

 

  초연 당시 악기의 구성으로도 당시의 시대 상황을 어림짐작해 볼 수 있다. 현악기, 3대의 트럼펫, 팀파니 및 오르간으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에는 목관 파트가 빠져 있었다. 당시의 불안정했던 정치, 재정 상황으로 악기를 사용하기가 녹록치 않았던 것이다. 물론 이제는 여러 논쟁 끝에 목관악기 부분을 추가한 다양한 출판본들이 존재한다. 음악도 세상의 어려움을 피해 갈 수는 없다. 힘든 시절 음악가들은 자신들만의 방법을 통해 세상을 위로하는 작은 힘이 되길 소망하였다. 암울함, 불안에 머물러 있지 않고 이미 우리 옆에 성큼 다가온 희망찬 날들을 꿈꾸며.

 

-오주현 헬레나 음악학자-

 

 

 

* 교구 내 공소

 

성환성당 신휴리 공소

 

 

  신휴리에 전교가 시작된 것은 1920년경 김대기(도미고) 형제가 영세를 받고서 비롯되었다. 1964년 교우 가정은 다섯 가족이 되었고, 1978년 둔포성당 소공공소에서 공소가 분리되어 6가구 14명으로 신휴리공소가 설립되었다. 그 후 20여 년간 초대 이종현(야고보)회장집에서 공소예절을 가졌다. 현재의 공소 건물(시멘트 블록 조, 연면적 115㎡)은 강학수 회장이 토지를 봉헌하고 교우들의 기금조성으로 건축되어 1988년 9월 18일 경 요셉 주교의 집전으로 축복되었다. 2010년 교우들은 정성을 모아 면적 50㎡ 규모의 증축공사를 마쳤다. '공동체 기도'와 선교 열정으로 입교자들이 늘 있었다. 현재 40세대 25명이 두 번째와 네 번째 주일 공소미사에 참례하고 있다.

 

 

 

해외 선교지 페루, 그곳은

 

선교지에서의 성주간

 

선교지인 페루에 와서 처음 맞이한 성주간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공소가 워낙 많아서 성지 주일 미사부터 시작해서 부활 대축일 미사까지 공소를 방문하며 하루에 네 번씩 미사를 봉헌하였습니다. 첫 번째 공소 성지 주일 미사를 봉헌하는데 신자분들이 정말 진심으로 준비를 잘하신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입성 행렬로 마을을 한 바퀴 도는데 사람들이 폭죽을 터뜨리고, 모든 마을 사람들이 나와서 나뭇가지를 흔들고 길위에 옷을 벗어 깔기 시작했습니다. 동네 어린이들은 뛰어다니고, 사람들이 악기를 연주하고 심지어 동네 개들도 나와서 짖으며 뛰어다니는 모습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여기가 진짜 예루살렘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첫 번째 미사를 마치고 다른 공소에 성지 주일 미사를 봉헌하러 이동하고 있는데 공소 회장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나귀를 빌릴 테니 신부님이 나귀를 타고 마을 한 바퀴를 돌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살짝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나귀 빌리는 것이 잘 되지 않아서 걸어서 마을을 돌며 행렬을 했습니다. 제가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 이유는, 이분들이 진심으로 성주간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서 성금요일에는 저에게 큰 십자가를 지게 하고 마지막엔 십자가에 못 박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벌써 3년 전 성주간입니다. 그때가 참 많이 그립습니다. 마을을 돌며 모든 사람들이 나뭇가지를 흔들며 환영하는 성지 주일의 모습, 자신들이 예수님의 제자가 됨에 감사하며 잘 씻지 못해 더러워진 발을 쑥스럽게 내미는 성목요일 신자분들의 모습, 각 공소 공동체가 손수 만든 큰 나무십자가를 직접 지고 동네에서 가장 높은 언덕을 오르는 성금요일의 모습, 마을 한가운데에 큰 모닥불을 지피고 불 축성을 하고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맞이하는 부활 성야의 모습, 모든 것이 그리운 요즘입니다.

  우리가 맞이한 성주간의 모습은 조금씩 달라도 변함없이 우리에게 부활의 기쁨을 주시는 예수님! 그 기쁨으로 저도 여기서 만난 모든 분을 사랑할 수 있는 은총을 청하며 나아갑니다.

-박상호 라파엘 신부 해외 선교(성골롬반외방선교회 파견)-

 

 

 

 

 

<1분 교리>

 

Q) 하느님의 자비 주일

  주님 부활 대축일을 지내고 처음으로 맞이하는 주일을 말하며, 전 세계 신자들은 하느님 자비의 은총을 되새기며 자비를 실천할 것을 다짐합니다. 특별히 '하느님 자비 주일'엔 사랑하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죽음과 부활을 통해 보여주신 하느님의 크나큰 자비를 기념하고 전례 안에서 찬양합니다.

 

  정치. 사회 어는 분야에서건 타인에서건 조그마한 잘못이라도 발견하면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사정없이 몰아붙이고 확대 재생산하는 행동이 서슴없이 이어지기도 합니다. 사회가 각박해지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스스로 가난한 이들의 고통을 외면하며 각박한 세상을 만드는 모습 또한 부지기수입니다. 이러한 어둠을 걷어내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하느님 자비를 세상 곳곳에서 드러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비의 실천은 먼저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또한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는 것을 구체화하여야 합니다. 특히 용서가 필요합니다. 하느님께서 자비로이 우리를 용서하시는 것처럼 우리도 이웃에게 용서의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또한 하느님 자비와 은총을 더욱 풍성히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스승이신 예수님

 

 전 세계 인구의 70%가 하느님을 믿는다고 합니다. 근데 왜 평화롭지 않을까요? 교황님의 이번 부활절 강론 말씀을 적어볼까 합니다.

 

  "그분께서는 살아 계십니다. 오늘도 우리 가운데를 지나가시며, 우리를 변화시키시고, 우리를 자유롭게 하십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무덤에서 돌을 치우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기쁨을 모든 이에게 전하자고 초대하며, 유럽의 심장부에서 진행 중인 전쟁의 어둠 속에서도 부활의 선포는 숱한 고통에도 불구하고 희망과 위로의 원천이라 전했습니다.

 

  교황님은 우리도 종종 땅바닥을 쳐다보며 그저 오늘에만 시선을 고정한 채 미래에 대한 꿈도 없이 무관심과 체념의 감옥에 갇혀 삶의 기쁨을 박탈당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밤 주님께서는 "두려움, 고통, 죽음이 더 이상 우리에게 마지막 말이 아니라는 희망으로" 우리를 변화시키려 하십니다.

 

  "예수님의 파스카 덕분에 우리는 무(無)에서 생명으로 도약할 수 있으며 '죽음은 더 이상 우리의 실존을 앗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죽음이 하느님의 무한하신 사랑에 온전하고도 영원히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물론 죽음은 우리를 두렵게 하고 마비시킬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눈을 들어 슬픔과 쓰라림의 베일을 벗고 하느님께서 선사하신 희망에 마음을 엽시다!"

 

- 글. 사회복음화 분과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