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22년 주보

주님 부활 대축일 2022년 4월 17일(다해)

모든 2 2022. 4. 17. 14:17

 

+ 요한복음 20.1-9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아직도 어두울 때에 마리아 막달레나가 무덤에 가서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치워져 있었다. 그래서 그 여자는 시몬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였다.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어디에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밖으로 나와 무덤으로 갔다.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저 다다랐다. 그는 몸을 굽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기는 하였지만,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예수님의 얼굴을 쌌던 수건은 아마포와 함께 놓여 있지 않고, 따로 한 곳에 개켜져 있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들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사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아직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말씀의 향기>

 

부활(거듭남)의 삶 -최석영 이냐시오 신부 성모의 마을 담당

 

  만물이 소생하는 화창한 봄날에 부활의 기쁨이 충만하시길 기원합니다.

  지면 관계로 부활의 실천적 측면에 한정해서 몇 가지 나눠보겠습니다.(부활과 같은 뜻인 순우리말 "거듭남"으로 바꿔 씁니다.) 아시는 대로 거듭남이란 묵은 나는 죽고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는 것인데 먼저 개인적 차원에서 보면, 예를 들어 기도하지 않던 내가(묵은 나) 기도하는 나로(새로운 나) 다시 태어났다면 나는 기도로 거듭난 것입니다. 또 사랑하지 않던 내가 사랑하는 나로, 용서하지 않던 내가 용서하는 나로 다시 태어났다면 나는 사랑으로, 용서로 거듭난 것입니다. 이러한 예는 얼마든지 다양하게 있을 수 있기에 각자가 죽어야 할 묵은 나는 무엇이고 어떻게 거듭날 것인가를 기도하면서 잘 실천해 나가시면 되겠습니다.

 

  이렇게 매일매일 거듭나는 삶을 잘 사실 때 이 세상 삶을 마치고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할 거라고 믿습니다.

  다음은 공동체적 차원에서의 거듭남인데 교회 공동체가 처한 총체적 위기 상황에서 다음 몇 가지는 거듭 나아야 할 시급할 과제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물질(돈)에 대한 것인데 믿음과 사랑으로 모인 공동체 안에서 돈이 너무 강조되고 주요시되고 있는 현실은 세상 사람들에게 매우 민망합니다.

 

  예를 들면 돈에 관계된 얘기를 너무 자주 듣는다든지, 교무금이나 교납금이 늘 부담스럽게 요구된다든지 또한 여느 때부터인지 수십 억의 빚을 진 본당이 적지 않다든지 하는 것 등입니다.

 

  거기에다 투명하지도 않습니다. 신자들이 어렵게 정성으로 낸 돈을 막상 신자들은 어디에 어떻게 얼마나 쓰였는지를 모르는 현실은 분명 거듭나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물질만능의 세상에서 교회공동체만큼은 돈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도 그리고 중요하지도 않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둘째는 성직자 중심인에 신자들이 해도 되고 더 잘 할 수 있는 부분은 과감하게 맡겨드리고, 

 

  셋째는 소통 부재인데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넷째는 체험의 부재인데 교회공동체 안에서 사랑과 평화, 기쁨과 감사를 체험하고 이를 전하고 나누는 게 기본이고 존재 이유인데 현실은 많이 아쉬운 게 사실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걱정해야 하는데 세상이 교회를 걱정한다는 황당한 소리가 들리고 예비자가 감소하고 성소가 위기라는 소리도 들립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나 공동체적으로 거듭난 신앙을 잘 살아간다면 그런 문제들은 자동적으로 해결될 거라고 믿습니다.

 

  활기차고 역동적인 교회, 사랑의 기쁨, 감사와 평화가 넘치는 성령 충만한 교회공동체를 희망하면서 거듭난 신앙을 잘 살아가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천안 모이세 이주민 수기 공모작(2)>

 

한국은 어떤 색의 나라일까요? -쩐 안 응웻(TRAN ANT NGUYEN)

 

  그다지 넉넉하지 않은 집에서 자란 저는 언젠가 한국에 가서 성공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회가 25살 때 찾아왔습니다. 베트남에서 25살이면 이미 결혼해서 가정을 꾸릴 나이지만, 저는 이제라도 한국에 갈 기회를 잡기로 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과 함께 다시 집에 돌아가고 싶을 만큼 겁이 났습니다. 한국에 대해 막연히 분홍색 꿈을 가지고 있던 저는, 그 순간 처음으로 한국의 생활이 어두운 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와 같은 유학생들은 금전적인 어려움을 많이 겪습니다. 더구나 저는 유학 대행사가 파산하면서 베트남 1억 동(한화 약 540만 원)은 적은 돈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가난한 우리 부모님에게는 아주 큰돈이었습니다.

 

  그렇게 학비 마련을 위해 일과 학업을 함께하다 보니 어디에도 제대로 집중할 수 없었고, 저는 결국 학업을 후기하고 돈을 벌게 되었습니다. 일자리를 구한 저는 어쩔 수 없이 유학생 자격이 취소되어 미등록자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한국에서 지내 지 이제 4년이 되었습니다.

 

  지금 저는 남편과 귀엽고 똑똑한 딸이 있습니다. 제가 임신 7개월이었을 때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때 저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처지라 눈물만 흘렸습니다. 다만 어머니께서 하느님 품에서 행복하시기를 기도했습니다. 슬픔 중에 이 작은 행복이라도 허락해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렸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이 아니었다면 저는 버텨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미래를 위해 고향을 떠나기로 한 사람들은 저마다 잃는 것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보호에서 벗어나서 혼자 낯선 환경에서 살아야만 합니다. 저는 베트남에서보다 더 나은 미래를 가족과 함께하기 위해 그런 선택을 했습니다. 한국에서의 삶은 분명 분홍색일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려움은 언제나 주위에 있었습니다. 2020년 코로나로 인해 남편이 일자리를 잃게 되어 거의 1년을 수입없이 지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일자리를 구하기로 하고, 14개월 된 아이는 어린이집에 보내야만 했습니다. 몸은 더 바빠졌지만, 차츰 생활이 안정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아이가 어린이집에 잘 적응하면서 애교도 늘어서 아이의 춤과 노래를 보고 듣고, 아이의 웃음소리를 들을 때마다 저와 남편의 모든 피로가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렇게 저는 남편과 함께 지금의 삶에 조금씩 적응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어떤 색인지는 각자의 사정에 따라 다를 것입니다. 복지 서비스나 아름다운 관광지들 그리고 베트남과 비교해 3배 이상 많은 월급 등 한국은 좋은 점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외국인들에게 어려운 점도 많습니다. 일이 힘든 것도 있지만,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으로 마음도 힘듭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 살고 어떤 일을 하든지 가장 중요한 것은 인내입니다. 자신을 더 사랑할 줄 알아야 하고, 건강을 챙기고,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그 나라가 어떤 색이든 더 잘 적응하며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든 무엇을 하든 하느님 섭리의 손에 맡겨야 합니다. 우리가 그분께 달려갈 때, 그분만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면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그분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실 것입니다. 여러분도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삶을 사랑하며 나다운 모습으로 양심에 따라 살면 모든 것을 이겨낼 것이라고 믿습니다. 모두 항상 평안하고 건강하며 특히 코로나 상황에서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한국은 어떤 색인가요?

 

 

가톨릭 신자로서 알아야 하는 <미사>

 

6. 미사 : 교회 안에서의 환호

 

 미사 중에 사제는 성찬 전례의 시작 부분에서 "감사 송"을 기도합니다. 이 감사 송은 당일 전례력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주로 다음과 같은 기도로 교회 공동체를 환호에로 초대합니다.

 

  "저희도 수많은 천사들과 함께 찬미 노래를 부르면 주님을 찬양하나이다."

 

  신자분들은 이 기도문에 따라, "거룩하시도다"를 노래하며 환호합니다. 그리고 이 환호는 거룩한 만찬에 참여한 모든 공동체원들이 능동적으로 환호하게 돕습니다. 가끔 이 부분에서 함께 노래하지 않거나, 성가대만의 임무라고 생각하며 침묵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모습은 능동적으로 미사에 참여하는 데 있어서 올바른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는 마음과 목소리로 환호에 동참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미사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창조하신 모든 천사와 성인들까지 다 함께 환호하는 추제의 장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 역시 목소리와 마음을 모아 하느님께 환호를 올려드림이 미사를 올바로 이해하는데 많은 점을 일러줍니다. 미사가 환호하는 측면으로 이루어진다는 부분은 비단 "거룩하시도다"의 부분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로마 미사 경본 총 지침」 34항에서는 교회 공동체가 드리는 미사가 "대화와 환호"의 차원으로 일치되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미사 거행은 그 본성상 '공동체 행위'라는 특성을 지니므로, 사제와 함께 모인 신자들 사이의 대화와 환호는 매우 중요하다. 이대화와 환호는 미사가 공동체의 거행임을 밖으로 드러낼 뿐만 아니라 사제와 교우들의 일치를 이루고 굳건하게 한다."

 

  우리가 드리는 미사는 교회 공동체가 일치되어 하느님의 영광에 감사를 드리고, 환호로서 응답하는 축제입니다. 지난번 미사에 대해서 설명드리며 "만남"이라는 키워드를 제시했습니다. 이 만남은 단순한 만남이 아닙니다. 친교로서 하나가 되기 위한 만남, 환호로서 하느님께 응답을 드리기 위한 만남 그 자체입니다. 우리가 일치된다는 상징은 하나의 목소리, 하나의 환호로 미사를 구성할 때 완성된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미사에서 여러분들께서는 친히 자신의 목소리로 환호하며 미사를 봉헌하고 계십니까?

 

 다음 편에는 "미사-거룩한 표징으로 거행되는 제사"라는 주제에 대해 다루겠습니다.

 

-윤지우 세례자요한 신부 주교좌 대흥동 제1보좌-

 

 

 

 

논산 대건 중고등학교

교목 신부 이야기- 두 번째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논산 대건중. 고등학교 교목 정동수 야고보 신부입니다. 벌써 한 달이 지나 "교목 신부 이야기 -두 번째" 시간이 되었네요. 잠시 짬을 내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보겠습니다. 첫 번째 보따리에서는 학교에서 봉헌되는 미사들과 그 미사들 가운데에서 주님 만찬 성목요일 미사를 봉헌하며 느꼈던 감동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도 역시 주님만찬 성목요일 미사와 연결되는 학급별 '발 씻김 예식'을 말씀드리려 합니다. 여러본당들과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거행되는 '발 씻김 예식'도 강론 후에 진행되는데, 발 씻김을 당하는(?) 12명은 신자 여부에 상관없이 학년 부장 선생님, 각 학년 대표, 학부모 대표로 선정됩니다. 학교 선생님들이야 매해 '발 씻김 예식'을 했으니 한두 번쯤 경험을 했을 텐데 학생 대표와 학부모 대표님들은 처음 겪는 일이라 무척 당황해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학교에서 최고 어른이라 할 수 있는 교장 신부님과 교장 신부님을 돕는 두 교목 신부님이 손수 발을 씻겨 주니 아무리 예식이라 해도 황송할 수밖에 없을 테지요. 아마도 처음으로 발 씻김 예식이 거행되던 그날 그 밤, 열두 사도들의 기분이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해 봅니다.

 

  미사가 끝나면 학생들은 각자 교실로 돌아갑니다. 이제 학생들 차례입니다. 담임 선생님이 스무 명에서 서른 명 정도 되는 학생들의 발을 손수 씻겨 줍니다. 학생들은 교실에 둘러앉아 있고, 한 명 한 명 차례로 나와 의자에 앉습니다. 담임 선생님은 몸을 굽히거나 바닥에 앉습니다. 선생님은 발을 씻겨 주며 그 학생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와 격려의 말을 합니다. 그렇게 모든 학생의 발을 씻겨 주면 대략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이 흘러갑니다. '발 씻김 예식'을 작년에 경험해 본 어떤 2학년 학생은 며칠 동안 발을 씻지 않을 것이라고 농담 삼아 이야기했는데, 제가 들어본 바로는 지금까지 그런 학생은 없었습니다. 피드백 자료를 보면 학생들의 반응은 "이상했다." "선생님이 내 발을 씻겨 주어서 고마웠다.""미안했다.""선생님 격려 말씀이 좋았다." "선생님과 더 가까워진 것 같다" 등 다양합니다. 그렇게 스승과 제자는 서로의 벽을 허물어갑니다.

 

  학급별로 진행되는 '발 씻김 예식'은 가톨릭 전례를 본뜬 프로그램이지만 학생들은 전혀 이질감을 느끼지 않고, 아주 특별하게 생각합니다. 학급별 '발 씻김 예식'이 높은 이와 낮은 이의 관계가 역전되는 현장이고, 그 안에서 학생들은 담임 선생님과 더 가까워짐을 느끼며, 섬김의 리더십이라는 새로운 리더십을 배우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사회 곳곳에서 유사하게 '발 씻김 예식'을 인성 프로그램의 하나로 유행처럼 진행했지만, 우리 논산 대건중. 고등학교가 오랜 시간 학급별 '발 씻김 예식'을 포기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진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끝으로 다시 한번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드립니다.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알렐 루야!!

 

-정동수 야고보 논산 대건중. 고등학교 교목 신부-

 

 

<1분 교리>

 

Q) 부활절(復活節)

 

  부활절은 예수님이 십자가형을 선고받고 십자가에 못 박힌 날로부터 3일째 되는 주일에 부활한 것을 기념하는 최대 축일이자 교회 전례력의 최대 명절입니다. 그리스어(語)로는 파스카(Pascha)라고 하는데 이는 교회력에서 가장 오래된 축일입니다.

 

  오늘날 지키고 있는 부활절은 제1 니케아 공의회(325년)에서 결정된 것으로 춘부(春分: 3월 21일경) 후의 최초의 만월 다음에 오는 첫째 주일로 보통 3월 22일부터 4월 26일 사이에 지켜집니다.

 

  부활절의 유래는 절기 그 자체 용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히브리력 14일 유월절(목요일)에 최후의 만찬을 하고 그날 밤에 예수님을 증오하던 유대인, 종교인들, 로마 군경에 의해 잡혀서 고난과 조롱을 받습니다. 다음 날 히브리력 15일(금요일)은 무교절로 이날 십자가에 못 박혀 사망합니다. 다음 날 안식일(토요일)이 지나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지 3일째 되는 날 주일 새벽에 사망과 죽음의 권세를 이기고 부활을 합니다. 이게 부활절의 유래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님 부활 대축일'이라 하여 전례에 규정된 대로 성삼일 예식이 엄숙한 가운데 성대하게 행해집니다. 성삼일의 예식은 '주의 만찬'으로 시작되어 부활 성야 대축일 미사로 정점에 이르며 부활 주일 저녁기도로 끝납니다. 그러나 가능한 한 파스카 엄숙함과 절제는 성 토요일 부활 성야 미사 전까지 지키도록 권고하고 있습니다.

 

 

 

세 족례

 

  저는 가톨릭의 예식 중 가장 감동적인 일이 성목요일에 있었던 사건, 세족례입니다. 예수님의 유언이 몸으로 표현된 극한의 자극제이기도 한 것 같은데요. 교우님들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말을 씻어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요한복음 12: 1-17,31-35)

 

  예수님께서는 노예들의 일이었던 세족(洗足)을 하느님의 일인 세족례(洗足禮)로 승격시킵니다. 이제 세족(洗足)은 몸종의 일이 아니라 주인의 일이 되었습니다. [출처, 세족과 세족례 작성자, 아침이슬]

 

  4월 16일은 성삼일의 마지막이면서 파스카 성야 예식이 있죠. 사회적으로 세월호 참사가 있었던 날이기도 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비단 참사로 기억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역할과 사회구조에 대한 총체적인 질문을 세월호 사건이 대표하고 있습니다.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지?

 

  예수님의 세족례에서, 그분의 유언에서 찾게 됩니다.

 

-글. 사회복음화 분과 제공-

 

 

 

  + 오소서 성령님
  우리를 위해 죽으신 주님 부활의 기쁨과 은총을 교구의 모든 형제·자매님들과 함께 나눕니다. 


  저는 이번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이하면서 먼저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하여 발생한 많은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싶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이 사태에 큰 우려를 갖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를 티 없이 깨끗하신 성모성심께 의탁하고 봉헌하며 모든 그리스도인이 함께 기도하기를 청하셨습니다.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은 죄로 인해 갈라졌던 하느님과 인간을 다시 결합시키는 화해와 평화의 사건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2 코린 5,21)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아들을 희생하여 우리를 구원하시는 지극히 거룩한 이타심을 보여주셨지만, 아직 이 세상에는 개인과 집단 그리고 국가적 차원에서의 이기주의가 힘을 발휘하면서, 때로는 죄 없는 많은 형제들이 희생되고 있습니다. 


  부활 대축일 밤 미사 독서에는 구원의 역사를 요약하는 7개의 구약성경 구절이 있는데, 그 첫째가 세상과 인간 창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고, 그래서 하느님의 대리자로 이 세상을 다스리도록 하셨다는 이 성경 말씀은 우리 인간이 얼마나 위대한 존재인지 잘 보여줍니다.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인간의 모습은 이웃 형제에 대하여 그리고 자연 생태계에 대해서도 ‘하느님을 닮은 착한 목자’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느님 닮은 사람이 하느님처럼 사는 것, 바로

이것이 우리가 진정으로 구원받는 길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면서 받은 하느님 닮은 씨앗이 꽃을 활짝 피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믿는 이들은 모든 형제들을 하느님을 닮은 거룩하고 소중한 사람으로 대하면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올바른 신자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세례를 받았든 받지 않았든, 건강하든 아픈 사람이든, 사회적인 직위가 높든 낮든 아무 차별 없이 
사랑받고 존중받는 형제가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하느님께서는 창조하신 모든 인간을 위하여 당신 아들을 십자가 위 희생제물로 삼으셨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이 뜻을 실현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분과 함께 죽고 그분과 함께 부활의 생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태초부터 하느님께서 계획하셨고 모든 사람이 원했던 신비가 하느님의 아들의 십자가상 죽음과 부활로 성취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일 년 전례 가운데 파스카 성삼일 전례를 가장 성대하게 거행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부활의 이 은총을 항상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가 주님 안에서 어떤 사람인지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이 은총을 늘 새롭게 기억해야 합니다. 믿는 이들이 이 은총을 매일 가장 확실하게 기억하게 해 주는 것은 말씀과 성사입니다.
  말씀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자비로운 역사를 뚜렷이 보여주면서 오늘도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건네시는 목소리입니다. 말씀을 읽고 필사하며 함께 공부하면서 나누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고, 많은 신자들이 함께 하고 있어서 감사합니다. 말씀에 
대한 사랑이 우리 안에서 더욱 깊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성사는 주님께서 이루신 구원의 은총을 누리도록 주님 친히 제정해주신 것이고, 그 가운데 우리의 일상생활에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이 고해성사와 성체성사 곧 미사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우리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서 죽으시고, 그 용서의 은총을 사도들에게 고해성사로 남겨주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시어 우리 가운데 살아계시는 주님께서는 성체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당신의 생명을 건네주십니다. 사제들이 이러한 고해성사와 성체성사 거행에 온 힘을 기울여 수행하면서 거룩한 기쁨을 맛보고, 신자들은 성사에 자주 참여하여 진실로 주님다운 주님을 만나는 공동체가 되기를 빕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에게 지극한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주님께서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루가 6,36)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느님처럼 살라고 주시는 거룩한 명령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그렇게 살 수 있다고 믿어주십니다.
  우리는 가진 것을 이웃에게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지극한 자비를 입고도 깨닫지 못한다면, 이웃 형제들을 사랑하는 자비로운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미 십자가 위에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가 늘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립니다. 여러분은 하느님을 닮은 거룩한 사람이고, 주님의 지극한 자비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며, 하느님의 자녀로서 하늘나라의 상속자입니다. 이 복음을 마음에 항상 간직하고, 이웃 형제들에게 주님께서 행하신 것처럼 자비롭게 살아갑시다.
  교구의 모든 형제·자매 여러분에게 주님 부활을 축하하고 함께 기뻐하는 인사를 드립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완전한 친교로 인간을 구원하시고 이끌어주시는 하느님, 저희에게 강복하소서.
  교회의 어머니이시며 교구의 주보이신 루르드의 성모 마리아 님, 저희를 보호하시고 이끌어주소서.
  한국 교회의 순교 성인과 복자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2022년 4월 17일 주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대전교구장 주교 
김종수 아우구스티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