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예천동성당 송시리공소
충청남도 서산시 송시 3길 92(부석명 송시리 산 189-2
+ 루카복음 6,17.20-26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너희 부유한 사람들!>
그때에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와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말씀의 향기>
행복하여라, 기도하는 사람 - 윤인규 라우렌시오 대흥봉수산 순교성지 전담
60여 년 전 천수답 시절 이맘때 내포들은 무들로 그득했다. 벼 베기가 끝나면 방죽이든 둠벙이든 논이든 물을 가두기 시작했다. 입춘이 지나면 아이들은 썰매를 마루 밑이나 헛간에 두고 정월 보름이 지나도록 윷놀이나 쥐불놀이나 연날리기하였다. 북녘으로 날아가던 철새들이 방죽과 물논에서 며칠간 묵으며 허기와 피로를 달랬다. 논둑 양달에는 사춘기가 된 소년의 코밑수염 같은 잔풀들이 송송 나며 흙과 햇풀이 섞어내는 풋봄내음이 풍기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면 기억 속에 걸어 둔 옛 그림을 꺼내 보곤 한다. "그때는 행복했어, 나를 무엇이 그리 들뜨고 벅차게 했는지, 무엇이 나를 웃게 하고 즐겁게 하였는지!"라며 속삭인다.
가난하고 굶주리고 슬퍼하고 미움받는 사람이 행복하다 하시고, 부유하고 배부르고 웃고 호평받는 자들이 불행하다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신다.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행복과 불행은 물구나무를 선 것 같다.
행복은 날개를 가지고 있단다. 철새처럼 머물지 않고 까막득하게 날아가기 때문일까? 아니면 점이 되어 사라진 그 행복이 다시 돌아오기 때문일까? 행복은 삶이 순환하며 생성소멸하고 세상이 흥망성쇠를 그 날개에 태워 보여주기 때문일까? 행복의 '행(幸)'은 갑골문자에서 '수갑'이나 '감금되다'를 뜻한다. 행복이 '잡히는 것', '갇히는 것'이라니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예수님은 하느님이 아닌 것에 사로잡혀 갇힌 상태를 '불행', 하느님이 삶의 전부인 상태를 '행복'으로 가르치신다. 건강이든 재물이든 명예든 쾌락이든 자만 자족이든 그 어느 것으로든 그것이 나로 하여금 하느님을 잊거나 잃게 한다면 나의 끝은 불행하다는 가르침이다.
지금도 입춘 때면 첩(貼)이다 점(占)이다 굿(㖌)이다 제(祭)다.... 알 수 없는 한 해가 복되기를 발원한다. 육과 영이 겉도는 고학력자나 과학자. 공학적 일에도 무속이 비일비재하다. 사람은 타인이나 앞일만이 아니라 스스로를 못 미더워하기 때문이다. 이같이 나약하고 허술한 인생들에게 행복과 불행을 말씀하실 때 얼마나 답답하고 안타까우셨을까? 사람은, 과거는 바꿀 수 없고 미래는 알 수 없다. 그 틈에 낀 '지금 여기'삶은 누구에게 희미하고 흐리터분하다.
천수답 시절, 부드러운 봄바람에 남실대던 내포들 물들을 회상 한다. 삭막한 들녘에 널린 평안함과 기대감에 차 있었다. 논에 물만 있으면 풍년을 예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몸속에 숨어 드나들고 피가 도는 곳마다 기도가 살고 있다면 누구의 삶이라도 미덥고 든든할 것이다. 어제는 남으로 날아가다가 오늘과 내일은 북으로 날아가는 새들처럼 날개 달린 행복이 날아가더라도 기도하는 삶은 행복하다. 기도하는 습관이 없어도 괜찮다. 내 침대나 책상과 거실과 자동차에 성상이나 성화 같은 성물을 모시는 것도 묵주를 쥐고 자는 것도 기도다. 사람은 보고 듣고 느끼는 대로 생각하고, 생각하는 대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삶이 그리되어 가면 성령께서 기도로 숙성시킬 기회를 반드시 주신다. 기도는 길고 많음이 아니라 깊어야 한다. 기도에 그리스도께서 살아계셔야 한다.
가톨릭 천안청소년 사목센터 '하품'은
자기다움, 성장, 행복을 바탕으로
청소년, 청년, 학부모가
고유한 자신의 모습을 만나
함께 성장하며 서로 행복을 나누는
'하느님 품'입니다.
'하느님 품'이라는 뜻을 지닌 '하품'은 천안, 아산 및 지역 본당과 지역 대학생을 위해 지난 2019년에 개소되었습니다. 하품센터는 하느님 품이라는 말 그대로 지역의 청소년과 청년, 대학생이 자유롭고 행복하게 머무를 수 있는 공간입니다.
하품센터에서는 청소년과 청년들이 하느님께 찬양을 드리고, 함께 모여 기도하고, 신앙과 삶을 나누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자신의 모습을 마주하는 '수지 에니어그램'과 부모와 자녀가 서로 사랑으로 소통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 위해 '성교육'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품센터는 바쁜 일상과 학업, 취업, 삶의 문제 등으로 지치고 힘든 청소년과 청년, 가정 안에서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부모와 자녀에게 언제나 열려 있습니다. '하느님 품'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수요 하품 데이
● 주님께 찬양을 - 매월 둘째 주 수요일 오후 8시
● 청년 떼제 기도 - 매월 둘째 주 수요일 오후 7시 30분
● 주신부의 묵주 공방 - 매월 셋째 주 수요일 오후 8시
● 청년 성시간 - 매월 넷째 주 수요일 오후 7시 30분
또 하나의 소통성, 사랑 그리고 생명(참가비 1만 원/1인)
3.19(토) 초등 부모(1) | 3.26(토) 초등 부모(2) |
4.10(주일) 중2-3 | 5.15(주일) 초등 저학년 & 부모 |
6.25주일) 청년 | 7.17(주일) 초6 |
수지에니어그램
●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수지에니어그램 기본과정)
일시 : 상시 모임(일정 조정 필요)/시간: 6시간
정원 : 8명 이내/참가비 : 5만 원(8만 원 하품센터 지원)
● 가족 수지에니어그램(수지에니어그램 기본과정)
일시 : 매월 첫째 주 토요일 오전 10시~ 오후 5시
인원 : 선착순 1 가족
참가비 : 10만 원/1 가족(참가비 외 하품센터 지원)
● [특별 이벤트] 수지맞았다! (수지에니어그램 기본과정)
일시 : 매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
인원 : 선착순 8명 /참가비 : 2만 원 (11만 원 하품센터 지원)
시설 안내 1층 모임방, 소강의 실/2층 성체조배실. 대강의 실. 밴드 연습실
대관 신청 전화 및 이메일로 문의
프로그램 신청 hapum7179.godomail.com
천안시 서북구 월봉 5길 가톨릭천안청소년사목센터 하품
문의 (041) 572-7179, Fax (041) 572-7180
E-mail hapum7179@daum.net
-남광근 프란치스코 드 살 신부 천안지역 청소년사목전담-
'교회와 나' 새롭게 알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신앙과 삶을 배웁시다!>
12.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선교 이해 ② - 교회의 실존과 선교의 관계
이 공의회 선교 이해의 둘째 시간은 (지난회의 선교에 대한 마음가짐에서) 교회의 실존과 선교의 실제적인 관계를 들여다보는 데 쓰려한다. 이를 위해 이 공의회의 교회 실존의 의미와 목적을 제시한 수에넨스(Siemems) 추기경의 구상을 살펴보면 그 이해에로 나아가보자. 사실 추기경의 이 구상이, 교회가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지를 명시한 「교회헌장」과 「사목헌장」이 두 헌장이 곧 이 공의회의 교회론(임)의 기틀이 되므로 간과할 수 없는 중요성을 띠고 있다 하겠다.
우선, 추기경의 구상의 대전제에는 이러한 물음과 답이 놓여있다: '교회가 어떻게 실존해야 하는가?' '교회는 그리스도와 하느님 안에 있는 인간 실존에 대한 메시지의 보유자로 파악돼야 한다.' 딱딱하게 들리는 이 말을 풀어쓰면, 교회는 그리스도와 하느님 안에서 살아가는 인간 삶에 계속해서 메시지를 주는 존재로 있어야 한다. 곧 인간 삶과 동떨어진 존재가 아니라 직접 관련된 존재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추기경이 제안한 구상의 근본은 교회 자체이다. 계속 살아 계시는 그리스도의 교회,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 안에서 모든 인간의 동시대인이 되신 그리스도로의 교회 자체가 그 근본주체인 것이다.
바로 이 주제를 살아가는 데에 예수님의 파견 명령이 들어선다. 곧 오늘날의 교회가 얼마만큼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마태 28,19-20)를 실행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이 파견 명령은 '교회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라는 원천과 목표의 두 관점을 포함하고 있으며, 또한 교회의 내적인 면과 외적인 면이 동시에 관련되어 있다. 곧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 백성으로 있도록 불리었음을 선포하는 사람들의 모임으로 사람들도 구성되어 있고(내적) 사람들에게로 파견된다(외적). 내적인 면으로는,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이며, 이들의 임무는 무엇인가, 무엇을 전달해야 하는가를 살펴야 할 것이고, 외적인 면으로는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교회로부터 무엇을 기대하며, 교회가 전달해야 하는 내용이 이 사람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가, 교회는 이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쳐져야 하는가를 고려해야 할 것이다.
추기경의 구상은 이를 내향적 교회(ecclesia ad intra:교회에 속하며, 그리스도의 몸인 사람들로 구성된 교회-「교회헌장)와 외향적 교회(ecclesia ad extra: 인간에 대해서 묻고, 이 인간들에게로 파견된 교회-「사목헌장」로 나타내며, 결국 교회의 실존은 내적인 동시에 외적이며, 교의(교리)적인 동시에 사목(삶)적인 양극을 함께 포함하고 있음을 제시한다. 말하자면 교회의 교리와 삶, 그리고 교회 안팎의 백성이 별개가 아니라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돼 있다는 것이며, 이러한 교회 실존의 양극의 원리는 그 양극을 스스로 드러내고 제시한 그리스도인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교회는 교회 안과 밖을 향해 복음을 전하고(가시오), 가르치며(가르치시오), 거룩하게 하고(세례를 베푸시오), 기도하는 교회(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로서 "내가 여러분에게 명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시오."를 실현해간다. 이것이 곧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인간과 세상, 모든 피조물에게 그리스도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드러내 보이는 교회의 선교적 삶이다.
-서명옥 로사 대전가톨릭대학교 기초신학 강사-
* 교구 내 공소
서산예천동성당 송시리공소
송시리공소는 1949년 대전교구 교세통계표에 처음으로 나타나며 신자수는 72명이었다. 초대 김원실 공소회장 시기부터 공소 건물이 건축되기 전까지 회장집에서 공소 예절을 가졌다. 서산본당 관할 공소를 시작하여 석림동성당을 거쳐 2004년 예천동성당의 관할이 되었다. 현재와 공소 건물은 1984년 제4대 김진오(오질론)회장 재임 시기에 공소 신자들의 봉헌 및 본당 지원 2천만으로 장방형 평면을 갖는 적벽돌조 93.06㎡의 규모로 건축하였다. 건축은 김동일씨가 맡아 시공하였다. 현재 공소는 부석 2반에 편성돼 있으며, 39가구에 15명이 전례에 참례하고 있다.
<이충무의 숨은 행복 찾기(26)>
나의 이름은
얼마 전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접하게 되었다. 학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휴대폰에 갖고의 전화번호를 저장할 때 상대방 이름을 어떻게 저장하는지에 관한 설문조사였다.
조사결과 설문에 응한 학부모의 경우, 대부분 자녀 이름을 있는 그대로 저장하지 않고 사랑이 듬뿍 담긴 수식어나 애칭 등을 사용해 색다르게 저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울 공주' '로또' '보물' 등과 같은 단어로 자녀의 소중함을 강조하거나, 이름 앞에 '예쁜; '사랑하는' '금쪽같은'수식어를 붙여서 무한한 사랑을 드러내는 경우가 가장 많았다.
사랑의 하트 이모티콘도 거의 빠짐없이 등장했고, 자녀양육에 돈이 많이 든다고 '돈덩어리'라는 단어로 자녀에 대한 애정을 위트 있게 표현한 부모들도 있었다.
자녀들 역시 휴대폰에 부모님의 성함을 있는 그대로 입력한 경우가 거의 없었다. 주로 애칭이나, 엄마 아빠의 특징을 십분 활용한 개성 넘치는 표현들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어마마마, 아바마마' '엄마 곰, 아빠 곰' 등과 같은 별명은 흔한 편이었고, 빵을 잘 구워 주는 아빠를 '아빵'이라는 기발한 애칭으로 저장한 경우가 눈길을 끌기도 했다.
흥미로운 점 중에 하나는 부모나 자녀 모두 이름만 달랑 저장해 놓은 걸 알게 되면 매우 서운해한다는 것이었다.
어떤 엄마는 아이 휴대폰에 자신의 이름 대신에 '사랑하는 엄마'라고 본인이 직접 입력한 경우도 있다고 하니 새삼 휴대폰에 저장된 이름의 중요성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름은 우리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가장 간결한 수단이다. 이름 석 자만으로 충분한데 굳이 왜 우리는 상대방을 이름 대신에 다른 어휘로 저장해 놓으려 하는 걸까?
그것은 아마도 우리가 한 사람을 객관적인 대상으로 보기보다, 자신과 어떤 관계로 어떤 교감을 주고받았는가에 의해 바라보고 기억하고 싶어 하기 때문인지 모른다.
하느님이 휴대폰을 갖고 계시다면 나는 거기에 어떤 방식으로 내 이름이 저장되어 있을지 문득 궁금하기도 하고 동시에 두렵기도 하다.
기왕이면 '사랑스런 바오로''기특한 바오로'라는 이름으로 저장되어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 좀 더 부지런한 오늘을 보내야 할 것 같다.
-이충무 바오로/극작가, 건양대학교 교수-
<1분 교리>
Q) 교적은 무엇인가요?
신자라면 누구나 소속 교회에 교적을 가지고 있는데, 세례 받은 이들의 신앙생활에 관한 기록을 교적(교적)이라고 합니다. 가톨릭 교회는 사목 관할권을 지역에 따라 나누기 때문에(속지), 만약 주소지가 변경되는 경우에는 새로운 주소지가 소속된 본당으로 본인의 교적을 옮겨 놓아야 합니다. 교적 변경은 본당 사무실에 전화나 방문으로 간단히 전산처리가 됩니다.
-김동규 신부님 예비자 교리서에서 발췌-
빙하
우리 나라는 빙하와 거리가 멀죠?
그런데 빙하를 이용하여 먹는 물을 얻고 있는 나라들에서는 빙하가 없어지고 있는 실정이 심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요. 최근 기술개발로 빙하에 관련해 장래 예측을 아주 정밀하게 한 사례가 있어 교우 여러분께 알려드리고자 합니다.
지난해 8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보고서(WG1)는 "1901-2018년 사이 지구의 평균 해수면은 20cm 상승했는데 인간이 끼친 영향 때문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지구 평균 해수면이 21세기 내내 상승할 것이 거의 확실하며 1995~2014년 대비 2100년에는 매우 낮은 온실가스 배출 시나리오(SSP1-1.9)에서도 28~55cm 상승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2017~2018년에 세계 21만 5 천여개의 빙하를 촬영한 위성영상 81만 1천 개를 토대로 컴퓨터 분석을 했다. 산악 빙하의 속도와 깊이를 측정해 이전보다 훨씬 더 상세하고 사실적으로 재구성을 했다. 논문 저자인 마티유 몰리 헴 다트머스대 교수는 "보통 빙하가 여름에나 녹을 수 있는 단단한 얼음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끊임없이 움직이며 자체 무게로 시럽처럼 계곡으로 흘러내린단. 빙하는 높은 고도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다 결국 물로 변하는데 이 움직임으로 빙하가 안에 품고 있는 얼음(물)양을 추정할 수 있다"고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빙하의 두께가 빙하를 움직이는 속도를 제어하기 때문에 빙하가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를 안다면 두께를 추산할 수 있다. 프랑스 환경 지구과학연구소는 영상 데이터를 10만 시간 이상 계산 처리했다.
연구팀이 세계 빙하가 모두 녹았을 경우 해수면 상승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추정해보니 25.7±8.5cm가 계산됐다. 이는 기존의 추정치 30cm보다 20% 정도 적은 것이다. 하지만 어느 경우든지 지구온난화가 재앙적 수준으로 진행돼 먼 미래에 그린란드와 남극대륙이 녹아 발생하는 해수면 상승과 비교하면 작은 양이다.
연구팀은 "세계 많은 지역의 빙하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얼음을 적게 품고 있어 빙하 용융수에 의존해 살아가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한테는 수자원 고갈 시점이 당겨질 수 있어 관심이 필요하다"라고 밝혔다.
-글. 사회복음화 분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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