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예천동 성당 금학리공소
충청남도 서산시 금학소길이길 158-20(팔봉면 금학리 679-1)
+ 루카 복음 4,21-30
<예수님께서는 엘리야와 엘리사처럼 유다인들에게만 파견되신 것이 아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그러자 모두 그분을 좋게 말하며,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였다. 그러면서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들며, '네가 카파르나움에서 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그 일들을 여기 네 고향에서도 해 보아라.' 할 것이다."그리고 계속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떠한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 온 땅에 큰 기근이 들었던 엘리야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들 가운데 아무에게도 파견되지 않고, 시돈 지방 사렙타의 과부에게만 파견되었다. 또 엘리사 예어자 시대에 이스라엘에는 나병 환자가 많이 있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아무도 깨끗해지지 않고,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 깨끗해졌다."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 화가 잔뜩 났다. 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았다. 그 고을은 산 위에 지어져 있었는데, 그들은 예수님을 그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
<말씀의 향기>
모든 이의 이웃이 되자 -권지훈 베드로 한끼 100원나눔운동 전담
인류의 역사 안에서 사람들은 바라보는 많은 기준 중에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이분법적인 바라봄이 있습니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바라봄은 그리스도교적 양심에 있어 크나큰 도전이 되는 문제입니다. 그러한 시선은 사람들 사이를 갈라놓은 '차별'이라는 담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다양한 차별은 불평등의 사회적 구조를 만들게 되었고, 그로 인해 세계 각국의 성장에 있어서도 불평등 성장을 끌어냈습니다. 그로 인해 소외되어 왔거나 가장자리에 밀려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이들은 넘나들 수 없는 담 저편에 그리고 어둠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바라본 교회는 희망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연대와 정의, 보편적 사랑의 의무에 대한 책무를 실천해야 한다는 자성을 다시금 하게 되었습니다. 1988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께서는 '사회적 관심'이라는 회칙에서, 세상에 사는 모든 인간 사이의 협력은 "모든 이에게 주어진 의무이며, 동과 서, 남과 북의 세계가 모두 참여하여야 할 의무이다."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에 근거에 이러한 의무는 우리의 실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지속적인 모습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실천해야 하는 것을 소홀히 하거나 잊데 되면, 그 자체로 그리스도인인 우리 자신의 의미도 작아지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이를 위해 모든 것이 될 수 있는 모습을 살아가야 합니다. 먼저 우리 자신은 가난해지는 모습을 택해야 합니다. 먼저 우리 자신은 이들이 많아지는데, 교회 안에 모인 이들이 가난해지지 못한다면 교회의 존재 의미도 점점 작아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주님 역시 가난한 모습으로 오셨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신 삶의 모습을 떠올려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한 지체를 이루고 있는 우리는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른 삶을 듣지 않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지체로 붙어 있을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의 뜻대로 아버지의 나라가 이 땅 위에 이루어지기를 정녕 바란다면, 그분의 뜻을 따라야 합니다. 개인과 가족과 민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차별'이 아닌, '평등'의 입장에서 모든 이와 함께 하려 해야 합니다.
우리는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처럼 '누가 내 이웃인지 아닌지'에 대한 기준을 떨쳐버리고, '나 스스로가 모든 이의 이웃'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임을 기억했으면 합니다. 아니 기억하고 실천해 봅시다.
<제임스 수사의 성소 나눔>
성소
성소란 무엇일까요? 거룩한 어머니인 교회는 성소에 대해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원하시는 것은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1 테살 4,3: 에페 1,4 참조)라고 한 사도의 말씀대로, 교회 안에서 모든 이는 교계에 소속된 사람이든 교계의 사목을 받는 사람이든 다 거룩함으로 부름 받고 있다"(「인류의 빛」,39). 교회는 사제성소, 수도 성소, 결혼 성소를 언급합니다. 사제 성소는 그 직분을 합당하게 수행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까지 다 내놓을 각오로 응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도 성소는 예수님의 요구를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청빈과 정결과 순명으로 응답하며 수행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수도자들은 지상에 이미 마련된 하느님 나라를 체험하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적 삶의 한 장소로 여기는 결혼 성소는 그리스도와 교회가 구현하는 사랑의 공동체의 모범을 따르기로 응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혼을 통해 이루는 가정이야말로 애덕을 완성하는 훌륭한 영적 여정의 현장이 될 수 있습니다.
사제성소든 수도 성소든 결혼 성소든 거룩한 부르심은 궁극적으로는 예수님을 따르려는 목적이 최우선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아 예수님을 닮아 성부께 나아가는 삶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진정한 성소의 모습일 것입니다. 이 모습을 우리는 어떠한 모습으로든 세상에 드러내어야만 하며 교회의 유산인 거룩한 부르심의 증거자로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향한 인생 여정 안에서 성소의 높고 낮음, 귀하고 천하고의 구분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성소는 동등하고 한 분이신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기에 모두가 다 아주 특별하고 귀한 것입니다.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를 모두는 하느님의 자녀이면서 하느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에 응답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지금의 나의 모습입니다.
-아룰 제임스 수사 신부 프란치스코 전교봉사 수도회 성소 담당-
<건강한 음식 건강한 영혼>
굴 떡국
오소서 성령님, 새로나게 하소서!
2022년 임인년 새해가 밝았고 우리의 명절 설날이 다가왔습니다. 예로부터 우리네는 정월 초하루에 빠짐없이 어느 가정에서나 가래떡을 얇게 썰어 장국 또는 육수에 넣어 끓이는데, 이 음식을 '떡국'또는 '병탕'이라고 합니다. 사골, 양지, 사태 등을 오랫동안 고아서 만든 깊은 맛의 고기육수를 이요하여 끓인 것이 보통의 떡국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떡국에 올리는 고명도 지방이나 각 가정에 따라 조금씩 다릅니다. 다진 고기를 볶아서 얹기도 하고, 오색의 채 고명을 얹거나 작은 고기 산적을 지져서 얹기도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떡국 중에 겨울철 식재료인 굴을 이용한 '굴 떡국'을 소개해 볼까 합니다.
굴은 혈관 질환 개선에 좋고, 아연 성분이 매우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는데, 이 성분은 인슐린 분비를 촉진시켜 혈당을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하며, 골다공증 예방, 피부미용 효과 등 우리 몸에 좋은 영향을 줍니다. 하지만 굴도 조개의 일종으로 패독이 있어서 평소에 몸이 찬 분들이 많은 양을 드시게 되면 배탈 또는 설사를 유발할 수 있으니 주의하셔야 합니다.
재료
떡국떡(가래떡) 600g, 굴 200g, 두부 100g, 계란 1개, 김 2장, 국간장 1큰술, 소금 약간, 식용유 적당량(계란지단 부칠 때 사용), 멸치 맛국물 국물(멸치, 다시마, 물) 1.6리터
양념장
간장 1큰술, 다진 파 2작은술, 다진 마늘 2작은술, 깨소금 2작은술, 참기름 1작은술
(큰 술 : 밥 먹는 수저/작은 술 : 티스푼)
만드는 법
1. 떡국떡을 물에 불린 후 물기를 빼고, 굴은 소금물에 씻은 후 체에 밭쳐서 물기를 뺀다.
2. 두부는 1cm 크기의 정사각형으로 자른다.
3. 계란 지단을 부쳐서 가늘게 채 썰고, 김은 구워서 부셔 놓는다.
4. 냄비에 멸치장국물을 넣고 끓인 다음 떡을 넣고 끓어 오르면, 굴,두부를 넣고 국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한다.(멸치장국 물은 취향에 맞게 멸치와 다시마를 넣고 끓여 둔다)/ 전 개인적으로 오*기에서 나온 멸치장국을 사용하는데, 제 입맛에는 딱입니다. 요즘은 제품들이 잘 나와서 취향에 맞는 브랜드를 잘 찾으시면 간편하고 맛있게 즐기실 수 있답니다.
5. 그릇에 떡국을 담고 계란지단과 김을 얹고 양념장을 곁들인다.
올 설날에는 '굴 떡국'드시고, 건강한 삶과 건강한 신앙생활을 하는 2022년이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참고문헌: 한국의 전통향토음식 경상남도 편>
고영욱 알렉산델 청운대학교 호텔조리식당경영학과 왜래교수
* 교구 내 공소
서산 예천동 성당 금학리공소
금학리(소길리) 지역에 전교가 된 것은 1860년대 후반으로 추정되며 신인식 신부의 고령 신씨 집안과 정병식, 조인승 집안이 이곳에 정착하였다. 1884년 두세신부의 사목담당 지역으로 32명의 신자가 있었다. 1910년 이전에는 조병규(바오로) 회장 집에서 공소예절을 거행하다가 1913년 8칸 규모의 한옥 공소를 건축하였고, 1918년 10칸을 증축하였다. 1917년 안학만 신부가 금학리로 부임하여 선산지역에 처음으로 본당이 설정되었으나 1920년 상홍리로 본당을 이전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65년 오일복 신부 재임 시기에 시멘트벽돌조(136,71㎡)로 건축되었다. 공소는 판공 미사와 공동체 모임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으며 35가구에 25명이 전례에 참례하고 있다.
<교구 신자들의 신앙 나눔터>
성지순례는 결코 성지여행은 아니었습니다
가톨릭신자로서 그 껍질을 벗기는데 참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수많은 피정에 참가하고 성지순례도 다녔지만, 세월에 버금가는 신앙의 깨우침은 바닥인 것을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20여 년 전, 충남대학병원 가톨릭신자회 동료 여섯 명의 2박 3일 제주도 '성 이시돌 피정의 집'이 처음이었고, 그 후에 우리끼리 '터키'와 원목실 신부님의 인도로 '이집트 -이스라엘' 성지순례 등으로 이어졌지만, 신앙으로 포장된 거창한 성지여행일 뿐이었습니다.
본당에 조직된 '103위 순교자회', 새로 부임하신 신부님의 제안으로 10여 명이 '황새바위순교성지'로 인솔되어 해설까지 들었던 첫 순례(2012.10.10)는 잊을 수 없는 감동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사제의 인사이동은 저희들을 길 잃은 양으로 만들었으나, 신부님의 고귀한 5년 동안 성지 111곳의 순례(2017)를 마감(4명)하는 은총과 함께 축복장(한국 천주교 성지순례사목위원회)의 영예도 얻었습니다.
성지순례는 분명 여행은 아니었습니다. 안내책자를 참고하여, 산간벽지의 성지까지 찾아다니며 미사도 봉헌하고 '십자가의 길'을 걸음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때마다 신앙을 향한 생생한 발걸음임을 깨우치게 했습니다. 한겨울에도 이른 시간에 출발하여 저녁 늦은 시간에 성당으로 돌아와 성모님께 바치는 마침기도는 신앙의 허물을 벗기는 좋은 채찍이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순례하며 느꼈던 여정의 아쉬움은 새로운 여정에 대한 길을 걷도록 만들었습니다.
새로운 여정이 안겨준 열매는 틈틈이 성경을 읽거나 필사토록 했고, '가톨릭교리신학원'의 통신교리 6년 과정의 길을 인도했으며, 지난 6월에 졸업장까지 받았던 일은 또 하나의 순례여정이 남긴 선물이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신앙선조들의 순교행적을 더욱 깊은 그리움으로 남았고, 신앙의 골은 더 깊게 패어져 그 깊이를 더했습니다. 그래서 2차 성지순례(2017.10.31)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세종 요한 성당의 '성지순례 Shalom회'는 '103위 순교자회'의 분신이었습니다. 1차 순례일정을 바탕으로 3년이면 마칠듯 했으나, 처음 경험하는 '코로나19'의 공포는 순례의 길을 수시로 막아 그 일정의 차질은 불가피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2021년 5월 25일, 5년 만에 순례를 겨우 마쳤고, 축복장(4명) 수여마저 지연되어 결국 본당 신부님께서 대신 전달(12.26)해 주셨으며, 이 또한 하느님께서 베푸신 깊은 뜻이 아닐까 감사했습니다.
성지순례는 결코 성지여행은 아니었습니다. 80세 고령의 나이로 10여 년 동안에도 두 차례의 순례는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의 여정이자 큰 은총이었습니다. 도보순례처럼 두 발로 걸어보지 않으면 그 맛을 느낄 수 없듯, 전체 성지를 두 번 이상 순례해야 순교자의 얼을 온전히 기리는 신앙체험이라 말해 봅니다. 끝으로 '왜, 성지순례인가?'의 물음에서 '하느님의 법에 어긋나는 우리 안밖의 모든 것에서 떠나고자 노력하는 것'이란 말로 마감해 봅니다.
-김광진 마르코 버드내본당-
「교구 신자들의 신앙 나눔터」는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지면입니다. 참여를 원하시는 분은 수필 형식으로, 원고지 6장 또는 A4(10pt) 용지 25줄 이내로 원고 작성 후 우편 또는 이메일로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채택되신 분께 소정의 선물을 드립니다.
주소: 세종특별자치시 국책연구원 5로 12 대전교구청 홍보국
이메일 : tjubo@hanmail.net 문의: (044) 270-3041 홍보국
<1분 교리>
1) 연도(煉禱)는 왜 하나요?
연도(煉禱)는 연옥(煉獄)에 있는 영혼들을 하느님의 자비하심에 맡겨 드리는 기도입니다. 또한 '위령의 기도'라고도 합니다. 사도신경에 나오는 '성인들의 통공'교리를 통하여 우리는 살아 있는 사람의 기도나 착한 일이 연옥 영혼에게 전달되어 이들이 겪는 고통의 정도와 기간을 단축시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국가습지지정 갑천 미사와 줍깅
올해 1월 1일부터 매주 토요일 국가습지지정 갑천 거리미사와 줍깅 하는 것 아시죠? 다음은 강승수 신부님의 제4차 갑천 거리미사 강론 전문입니다.
「찬미 받으소서」159항에서 교황님은 '세대 간 연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의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우리가 받은 지구는 우리 후손들에게도 속하기 때문입니다.' 포르투갈 주교님들의 말씀을 인용하여 이렇게도 말씀하십니다. '환경은 각 세대가 빌려 쓰는 것으로 다음 세대에 넘겨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후손들, 지금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어떤 세상을 물려 주고 싶습니까?
이 질문은 환경만 따로 떼어 놓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문제에 부분적으로 접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너무 많은 재화를 사용하고 함부로 버리는 문화 안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생태적으로 부주의하게 살아간다고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존엄함을 위기에 빠뜨리는 일입니다. 좁깅을 하면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이 쓰레기들은 모두 누군가의 부주의로 말미암은 결과임을 알게 됩니다.
저 상류의 농경지에서 버려지고 제대로 수거되지 않은 비닐, 농약 봉지, 플라스틱, 부서져 가는 스티로폼 등을 많이 줍게 됩니다. 결국 이 쓰레기들은 돌고 돌아 우리의 입과 코로 되돌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상류에 사는 이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그저 열심히 농사지은 것뿐이라고. 단지 수확량을 많게 하기 위해서 비닐 멀칭을 좀 해야 했고, 농약 좀 뿌린 것뿐이고, 농산물 배송을 해야 하니 어쩔 수 없이 스티로폼 박스를 써야 했었다고 말할지 모르겠습니다.
나는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가? "내가 세상에 온 목적이 무엇인가?" "지구는 이렇게 오염되어 가고 있고 생명 종들이 영원히 사라져 가고 있는데, 나의 성취들은 과연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나는 무엇을 위하여 일하고 노력하고 있는가?" "지구는 얼마나 나의 돌봄을 필요로 하고 있는가?" "그리고 왜 나를 필요로 하고 있는가?"
2022년 제30회 해외 원조 주일 담화
인류는 한 가족, 우리는 모두 형제
희망을 품고 함께 걸어갑시다(「모든 형제들」,55항)
같은 배를 타고 항해하는 세계 공동체
이 년이 넘게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에 따른 위기는 세계 모든 이의 일상을 빼앗고 불안에 떨게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사회 경제적으로 취약한 이들의 존엄성뿐만 아니라 생명까지 위협받고 있습니다. 나아가 그들은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새로운 형태의 빈곤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이제 일상이 되어 버린 '거리두기'나 '격리'는 그들에게 생명을 위협하는 '소외'의 시간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전 세계인들이 겪고 있는 이 불안한 현실에서 우리는 서로 함께하지 않으면 오늘의 위기를 이겨 낼 수 없다는 공감과 연대의 필요성을 깨달아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코로나19와 같은 세계적 비극은 우리가 모두 같은 배를 타고 항해하는 세계 공동체라는 인식을 삽시간에 효과적으로 불러일으켰습니다. 그 배 안에서 한 사람의 불행은 모든 사람에게 해가 됩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혼자 구원받을 수 없고 오로지 함께라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모든 형제들」,32항)"라고 하시며, 서로에 대한 관심과 나눔은 선택이 아니라 책임과 의무임을 분명히 밝히십니다. 특히 '함께라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가르침은 서로에 대한 관심과 나눔이 책임과 의무를 넘어 우리교회와 신앙인들에게는 소명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십니다.
인류는 한 가족, 우리는 모두 형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회칙 「모든 형제들」을 통하여 서로에 대한 관심과 나눔의 원칙에 따라 살아가는 세계 공동체를 만들기 위하여 '이웃'을 넘어 진정한 '형제'가 되라고 요청하십니다. 세계 곳곳에서 지금도 분쟁과 불의로 위기에 있는 이들의 절망 섞인 목소리를 빈번히 듣습니다. 우리는 모두 한 형제임을 고백하지만, 그만큼 진심으로 그들을 형제로 받아들이며 그들의 외침에 귀 기울이고 또 응답하려고 노력하였느지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들 곁에 머무르시기만 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운명을 함께 나누신 것처럼 우리도 고통받고 있는 이들과 '운명'을 함께 나누기를 거듭 촉구하십니다.(제5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 담화 참조) 운명을 함께 나눌 때 비로소 형제들의 위기 앞에서 무관심을 관심으로, 배척을 환대로 바꿀 적극적이고 용기 있는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착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선택이 이 시대에 더 절실히 요구됩니다.(「모든 형제들」),67항 참조)
희망을 품고 함께 걸어갑시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착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선택으로 더 이상 '다른 이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경계를 뛰어넘는 오직 '우리'만 있게 되는 세상을 만들어 가도록 초대하십니다. (「모든 형제들」 94항 참조)
해마다 해외 원조 주일에 모인 한국 교회 신자들의 기도와 사랑은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을 통하여 인종과 국적, 종교의 벽을 넘어 세계 곳곳에서 그리스도 사랑의 기적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적은 배타적인 이들의 경계를 무너뜨려 '우리'만 있게 되는 세상을 만들어 갑니다.
2022년 올 한 해도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은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소외받은 이들이 희망을 되찾을 수 있도록, 그리고 전쟁과 불의로 고통받는 이들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도록 "인류는 한 가족, 우리는 모두 형제"라는 목표를 가지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우리'만이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가고자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일에 한국 교회의 모든 신자의 관심과 참여를 요청합니다.
2022년 1월 30일, 해외 원조 주일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
이사장 정신철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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