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22년 주보

연중 제3주일(하느님의 말씀 주일) 2022년 1월 23일(다해)

모든 2 2022. 1. 23. 18:26

서산 석림동성당 망대동공소 충청남도 서산시 양대 7길 19 (망대동 517-3)

 

 

+ 루카 복음 1,1-4,4,14-21

 

<오늘 이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다.>

 

   우리 가운데에서 이루어진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엮는 작업에 많은 이가 손을 대었습니다. 처음으로 목격자로서 말씀의 종이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을 그대로 엮은 것입니다. 존귀하신 테오필로스 님,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자세히 살펴본 저도 귀하게 순서대로 적어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는 귀하께서 배우신 것들이 진실임을 알게 해 드리려는 것입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시니, 그분의 소문이 그 주변 모든 지방에 퍼졌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모든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자라신 나자렛으로 가시어,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경을 봉독 하려고 일어서시자, 이사야 예언자의 두루마리가 그분께 건네 졌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 시중드는 이에게 돌려주시고 자리에 앉으시니,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말씀의 향기>

 

'말씀'을 산다는 것   - 이재훈 세례자 요한 말씀사목 전담

 

  B, C 597년 바빌론과의 전쟁에서 패한 유다인들은 60년간 유배를 당합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이런 벌을 받는 이유가 '하느님의 말씀'(율법)을 충실히 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여기며 지난 삶을 뼈저리게 후회합니다. 그러고는 B,C 537년 무너진 성전 터 위에 새 성전을 완공합니다.(에즈 6,15) 그러나 이런 감격도 잠시, 이들은 또다시 이민족과 혼인하고 그들의 신들을 섬기기 시작합니다.

 

  바빌론에서 귀향한 지 불과 20년밖에 되지 않았고 더구나 성전을 재건한 지 오래지 않아 '하느님 말씀'(율법)의 소중함을 잃어버린 참담한 현실 앞에서, 사제 에즈라는 이렇게 기도합니다. "저의 하느님, 너무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저의 하느님, 당신께 너무나 부끄럽고 수치스러워서, 저의 하느님, 당신께서 제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에즈 8,6) 에즈라는 하느님께 죄를 용서 받고서도 다시 죄에 떨어지고 마는 나약한 백성들을 위해 염치없게도 또다시 하느님께 자비를 청합니다.

 

  이제 유다인들은 성전 건축에 이어, B, C 444년 6월 25일 예루살렘의 성벽 재건공사까지 마무리함으로써 적의 공격에 대한 위험에서 벗어나게 되었습니다.(느헤 6,15) 그러고는 오늘 제1독서에서 보듯이, 유다인들의 새해가 시작되는 7월 1일 나팔절에, 에즈라는 성전 광장에 모인 백성 앞에서 '하느님의 말씀'(율법)을 낭독합니다. 모인 백성들은 지난달 저지른 큰 잘못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충실하게 보살펴 주셨던 하느님의 역사를 다시금 들여다봅니다. 이들은 흐트러짐없이 6시간 이상을 하느님 말씀에 집중하면서(느헤 8,3), "아멘, 아멘!"이란 말로 신앙을 고백하며(느헤8,6) 회개의 눈물을 흘립니다.(느헤 8,9)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하여 선포하신 '하느님의 말씀'도 바로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떤 사람이 그의 잘못으로 인해 가난하게 되었고, 잡혀가게 되었고, 눈멀게 되었고, 억압받게 되었더라도, 그가 처음의 삶을 찾아 살아가기를 희망하십니다.(루카 4,18) '이민족들의 땅',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땅' 갈릴래아에서 선포된 이 '말씀'은 아무런 희망도 없던 이들에게 삶의 의미를 더해 주었습니다.(마태 4,15-16)

 

  이처럼 '말씀'은 곧 감사와 은총과 희망의 삶을 살도록 해줍니다. 그러니 우리가 소중한 것을 잃고 희망없이 살고 있다면, 죄스러움 안에서 삶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면, 반드시 '하느님의 말씀'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말씀'은 우리를 '물가에 심긴 나무처럼'(예레 17,8) 생기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아

그분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1 코린 2,16)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성경'을 자주 읽고 기도할 것 같지만, 실상은 참 어렵습니다. 젊은이들도 마찬가지죠. 특히 젊은이들은 학업이나 취업, 세상이 주는 수많은 즐거움 등에 휩싸여 마음뿐 아니라 물리적인 시간도 성경을 읽는 것에 할애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좀 이상한 문화가 자리잡게 되었는데, 본당 청년회에서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거나, 성경구절이 포함된 대화를 하는 일이 되려 쑥스럽고 삼가게 되는 현실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치열한 생활 중에 제법 많은 것들을 누리면서 살지만 해결할 수 없는 내면의 고독과 불안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젊은이들은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요한 7,37)는 복음 말씀을 실천하려고 애를 씁니다. 해서 교구 청년성서 전담사목부의 문을 두드리고, 성경을 함께 읽고 서로 나누며 기도합니다.

 

  처음에는 '이리도 두껍고 어려운 책을 과연 내가 알아들을 수 있을까? 아니 다 읽을 수는 있을까?' 반신반의하던 젊은이들도 결국 함께 읽는 공동체의 우정과 앞서 소개한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이미 새겨진 "그리스도의 마음"이 일깨워져서 외롭고 불안한 자신의 진짜 마음을 마주하는 변화를 고백하게 됩니다. 하느님 말씀이 은총이고 힘이라는 것을 매번 체험합니다.

 

  모든 젊은이에게 열려 있는 '청년성서'입니다. 이지면을 통해 하느님 말씀이 은총, 교회라는 공동체의 든든함, 생기 있는 신앙생활로 많은 젊은이들이 함께하길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기쁜 신앙 생활이 되길 소망합니다.

 

-강진영 요셉 신부 대전교구 청년성서 전담-

 

 

 

 

<스테인드 글라스 이야기⑥>

 

서울대교구 양원성당 유리화 부분

<빛이 되다-양원성당>

●재료 : 엔틱글라스(Antique glass), 판석 유리(Dalle de verre)

●크기 : 1082 cm×317 cm×5cm 중 부분

●제작 : 2021년도

●제작의도 : 에페 5,8-14

 

8 여러분은 한때 어둠이었지만 지금은 주님 안에 있는 빛입니다. 빛의 자녀답게 살아가십시오.

9 빛의 열매는 모든 선과 의로움과 진실입니다.

10 무엇이 주님 마음에 드는 것인지 가려내십시오.

11 열매를 맺지 못하는 어둠의 일에 가담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십시오.

12 사실 그들이 은밀히 저 지르는 일들은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것입니다.

13 밖으로 드러나는 것은 모두 빛으로 밝혀집니다.

14 밝혀진 것은 모두 빛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잠자는 사람아, 깨어나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비추어 주시리라."

 

  죽음으로 온전한 사랑을 실천하신 예수 그리스도, 빛이신 예수님에 대한 우리 신자들의 보답과 사랑은 기도뿐만 아니라 선을 위해 스스로 행동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각양각색의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 이제 빛의 자녀로서 우리 스스로가 그 빛이 되기를 염원하였다.

 

-손승희(손소벽 막달레나) 유리화 작가-

 

 

*교구 내 공소

서산 석림동성당 양대동공소

  1970년대 초 유병석 베드로의 희사로 양대리 567-3번지 소재 전 162평의 토지에 30여 평 규모의 시멘트벽돌조 공소를 건축하였다. 공소 설립은 그 보다 뒤인 1982년 9월 20일에 이루어졌다. 석림동 본당이 설립된 1987년 당시 교우수는 70여 명이었다. 2005년 노후된 건물은 청년회와 대건회에서 리모델링으로 바닥 장판 교체, 부속실 칸막이 철거, 건물 내외부 수성 페인트칠 등을 시행하였다. 공소는 양대반 사랑의 모후 쁘레시디움 주회와 공동체 모임의 장소로 활용해 왔다. 역대 공소회장으로는 이근영, 유병석 베드로, 장학손 막시모가 맡아 봉사하였다. 현재 12세대 중 8명의 본당미사에 참례하고 있다.

 

 

<해외 유학 사제들의 편지 ⑩>

 

항상 나보다 크신 하느님

 

  찬미 예수님, 멀리서 인사드립니다. 로마에서 교회법을 공부하고 있는 김솔 노엘 신부입니다. 이렇게 지면을 통해서 수녀님들, 신부님들 그리고 신자분들과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돼서 아주 반가운 마음입니다.

 

  로마에 도착한 뒤 처음 맞이한 아침이 떠오릅니다. 비행기에서도 얼마 못 잤는데, 얼마나 긴장했던지 새벽 4시에 눈이 떠져서 산책을 나갔습니다. 큰길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저는 산타 마리아 마죠레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이런 일기를 적었습니다.

 

  "처음 맞이하는 로마의 아침, 셀렘, 두려움, 막연함, 하느님께서는 무엇을 바라보고 계실까? 때론 나는 다 알지 못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분명히 알고 계신다. 나를 통해 드러날 당신의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 것일지."

 

  이제 로마에 머문 지 만 2년이 되어가고, 이곳 생활에도 제법 적응을 했지만, 여전히 두렵고 막연한 마음이 저를 지배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마을은 전혀 낯설지 않습니다. 처음 신학교에 들어가던 날도 그랬고, 사제품을 준비하는 피정 때도 그랬고, 처음 본당에 보좌신부로 부임하던 날도 그랬고, 주교님으로부터 로마에 가서 공부하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그랬습니다. 늘 두려움이 있었고 막연함이 있었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런 저를 쓰셨고, 사제로 이루어주셨고, 지금도 무엇인가를 위해 양성하고 계십니다.

 

  항상 두려움은 있지만, 그래도 자신은 있습니다. 희망은 있습니다. 공부가 끝난다고 완성될 삶도 아니고, 유학 너머에는 또 다른 도전이 찾아올 것이고, 그때마다 제가 원하는 무엇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무엇이 저를 이끌어주실 것이기 때문에, 자신이 있습니다. 제 좁은 마음과 좁은 지혜는,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알아낼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만 기도할 뿐입니다.  보잘것 없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아주 작은 일에, 아주 조그만 일에 당신을 위한 무언가로 있게 해 달라고.

 

  작은 일의 도구로 쓰이는 동안, 우리는 분명 다시 만날 것입니다. 언제 어느 자리에서 하느님을 위한 새로운 일을 함께 시작하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그렇게 함께 만난 그때에 희망의 발걸음을 함께 내딛고 싶습니다. 그 걸음을 희망하며 지금 제 소임을 기쁘게 살아내겠습니다. 그런 우리들 서로를 위해서 기도, 그리고 기도 부탁드립니다.

 

-김솔 노엘 신부 로마 유학-

 

 

<1분 교리>

 

◎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고해성사를 봐야 한다.

  한국 교회에서는 1년에 두 번 이상, 부활과 성탄 때 고해성사를 보도록 하여 합당하게 성체를 모실 준비를 시킵니다. 이를 판공성사라 하는데 이는 본당 교적에 기록 되어야 하는 성사 생활로서 3년 동안 고해성사를 보지 않으면 쉬는 교우로 분류됩니다. 대죄가 있는 경우에는 그때마다 자주 보는 것이 좋습니다.

 

 

찬미 받으소서 13장

 

  우리의 공동의 집을 보호해야 하는 긴급한 과제에는 모든 인류 가족이 지속 가능하고 통합적 발전을 추구하는 데에 하난 되도록 하는 일도 포함됩니다. 상황이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주께서는 우리를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창조주께서는 사랑의 계획을 결코 포기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창조하신 것을 후회하지 않으십니다. 인류는 여전히 우리의 공동의 집을 건설하는 데에 협력할 능력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우리의 공동의 집의 보호를 보장하려는 수많은 방법으로 노력하는 이들을 인정하고 격려하며 수많은 방법으로 노력하는 이들을 인정하고 격려하며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의 삶에 끼치는 환경 파괴의 비극적 영향을 해결하고자 쉼없이 노력하는 이들에게 특별한 감사를 드립니다.

 

  젊은이들은 변화를 요구합니다. 그들은 그  누구라도 환경 위기와 배척당한 이들의 고통을 생각하지 않고서 어떻게 더 나은 미래의 건설을 내세울 수 있는지 의문스러워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회칙에서 지구를 "우리 공동의 집"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안에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이 공동 운명체라는 인식이 깔린 셈이죠. 이러한 인식은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깨우침이기도 합니다. 인류는 이미 24시간 안에 지구 반대편에 도달할 이동 수단을 지닌 편리한 세상에 살고 있으니 한 가족이나 다름없습니다.

 

  한편 전 세계는 만 2년에 걸쳐 코로나19 펜대믹으로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사람들이 기후 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기 시작했습니다. "환경 파괴"가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이들의 삶'에 끼치는 비극적 영향들을 세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목격하면서 말이죠. 이제 인류가 더 나은 미래를 꿈꾸려면 가난한 이들에게 불평등하게 다가오는 차별을 정의롭게 극복해야 합니다.

 

-글, 사회복음화분과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