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21년 주보

연중 제26주일(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2021년 9월 26일(나해)

모든 2 2021. 9. 26. 18:33

도고성당 유동공소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산로 489번길 8-9(도고면 신유리 323)

 

+ 마르코 복음 9,38-43,45,47-48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네 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그때에 요한이 예수님께 말하였다."스승님, 어떤 사람이 스승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저희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저희를 따르는 사람이 아니므로, 저희는 그가 그런 일을 못 하게 막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막지 마라. 내 이름으로 기적을 일으키고 나서, 바로 나를 나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이는 우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나를 믿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죄짓게 하는 자는,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오히려 낫다.

 

   네 손이 너를 죄 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손을 가지고 지옥에, 그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불구자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네 발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려라.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절름발이로 생명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또 네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 던져 버려라.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외눈박이로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지옥에서는 그들을 파먹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

 

 

<말씀의 향기>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이성진 다미아노 천안 모이세 보좌

 

  본당에서 복사단을 가르칠 때 생각보다 많은 어린이가 걱정하면서도 즐거워하는 것이 바로 '종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내가 종을 잘못 치면 어쩌나 걱정하고, 어떤 아이들은 종을 친다는 것에 신기해 하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런데, 은근히 이 종 치는 방법이 본당마다 다른 예도 있음을 알게 됩니다. 종이 달라서 그렇기도 하고 조금씩 종 치는 타이밍도 횟수도 다른 경우를 보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들은 천안모이세에서 지내면서 이주민분들과 다양한 국가별 미사를 봉헌하면서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베트남 공동체 미사, 필리핀 공동체 미사 그리고 영어 미사 등 여러나라의 미사에 함께 참여하다 보니 조금씩 종을 다르게 치는 모습을 봅니다. 처음에는 저에게 익숙한 순간에는 들리지 않거나, 생각하지 못한 순간에는 들리기도 하는 종소리에 당황하고 분심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이 또한 각 나라마다 전례에 집중하는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이 미사의 어느 부분이면서 왜 종을 칠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고, '아, 이 공동체는 이 순간을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익숙하지 않은 순간의 종소리가 오히려 저를 미사에 집중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사실  미사 중 성변화 때 종을 치는 이유 역시도 그 순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니까 말입니다.

 

  전례의 다름이 저에게 새로운 집중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이렇듯 '다름'은 일상의 익숙함을 흔들어 새로운 깨달음으로 나아가게 도와 주는 창구가 되어 주곤 합니다. 오늘은 연중 제28주일이면서 제107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입니다. 한국 사회에 '새로운 다름'을 선물해 주는 외국인들을 특별히 기억하고 돌아오는 날입니다.

 

 난민과 이주민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지면 아직은 대부분 부정적인 면이 먼저 보이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이웃을 반대하고 멀리하려는 그 마음보다, 또 하나의 이웃을 위해 닫은 손과 마음을 펴고 포용할 때, 우리는 주님의 가르침 위에 서 있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의 예수님께서도 이렇게 말씀해 주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마실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마르 9,41)

 

  다른 이유가 아닙니다. 바로 우리 스스로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회와 교회를 잇는 길잡이>

 

'생명을 위한 40일 기도'에 앞서 태아의 생명수호를 기억합시다.

 

9월 1일 0시부터 미국 텍사스 주는 임신 6주 이후 낙태를 사실상 전면 금지했다. 이는 '태아심장박동법'(6주이후 낙태금지법)에 따른 것으로,  태아의 심장이 뛰는 순간부터 낙태를 금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의학적 긴급상황을 제외하면 그 어떤 때에도 낙태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여, 성폭력이나 근친상간이라 하더라도 낙태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더욱이 배럿 연방대법관이라는 사람은 아이티에서 입양한 2명과 다운증후군 막내를 포함한 자녀 7명을 둔 가톨릭 신자였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식에, 일제히 포털뉴스를 비롯한 TV언론매체들은 찬반의 여론이 있음에도 편향된 보도만을 내어 놓았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먼저 당신의 생명은 언제부터 시작했는가? 나의 생명이 수정되는 순간부터라고 말할 수 있다면, 태아의 생명은 이미 시작되었으니 그 생명을 살해할 수 있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둘째, 태아심장박동법으로는 여성이 아이를 잉태했는지를 확인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인지할 수 없기에 여성이 태아를 인지할 때까지는 기다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다, 실제로 여성이 태아를 인지하는 데는 개인적 편차도 있으며, 의학적인 소견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보이지 않는 생명이라 하여, "너무 작아서", '아직 못 느낀다."고 없는 생명은 아니다.

  사실 많은 산모들이 신체 변화를 통해 느끼는 것은 4주차부터로 시작하며, 평균적으로 6~7주차라고 말한다. 이때 산모들은 복부로부터 느껴지는 미세한 통증이나 불쾌감처럼 느껴지는 장의 활동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태아 심장소리는 6주보다 앞서서도 들리며 빠르고 확실한 소리다. 그리고 임신 8주차된 태아는 비록 1~2cm정도의 크기지만, 얼굴에는 눈, 콘, 입, 귀가, 몸에는 손가락, 발가락도 있다. 산모는 아랫배의 부풀어짐을 느끼며, 태아의 성장에 맞추어 자궁 역시 커지고, 입덧도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자기 몸의 변화를 확실하게 느낀다. 태아의 심장소리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어떻게 이 존재를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셋째, 태아의 권리는 그 어떤 것으로도 결정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 누군가는 "태어나면 불행할 거라고",  "아직 자신을 인지하지 못한다고" 태아의 권리를 무시한다. 심지어 임신의 잘못을 피의자인 강간범에게 묻지 않고, 태아가 그 잘못을 저지른 것 마냥, 강간범의 죄를 태아가 왜 대신 처벌받아야 하는가. 나의 선택과 결정이 지은 결과의 책임을 태아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과연 합당한 일인가. 그것은 본래 행복할 수 있는 태아의 행복추구권마저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마지막으로 오늘날 이 시대의 박해는 무엇인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모든 생명에 대한 박해가 바로 그것이다. 이 박해의 현실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은 태아를 수호하고 돌보는데 굳건히 바로 서 있어야 하겠다.

 

  * '생명을 위한 40일 기도'는 국제적 생명운동으로 2007년부터 전 세계 900여 도시에서 시행해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2021년 처음 시작하는데, 9월 22일부터 10월 31일까지 가톨릭과 개신교 생명운동가들이 함께 매일 생명수호를 위한 지향으로 기도하는 운동이다. 비록 함께 하지 못하지만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지향을 두고 함께 기도합시다.

 

-이영일 야고보 신부 주교회의 생명운동본부 대전교구 팀장-

 

 

 

스테인드글라스 이야기④

수원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자비의 징표, 빛의 씨앗(Seeds of Light)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 안에 계신 주님을 섬기는

수원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는

하느님의 현존함, 곧 빛의 사랑을 실천하는 공간이다.

 

가난한 이들에게 전하는 빛의 성경인 스테인드글라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핵심인 자비를 실천하는 이 소중한 공간에

스테인드글라스, 빛의 씨앗을 심고자 하였다.

 

빛의 씨앗은 곧 자비의 징표이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공포와 죽음으로 위협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하느님의 살아 계심, 빛의 씨앗이 전하는

위로와 용기가 절실한 때에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가 간직하게 될 빛의 씨앗은

힘없는 이들을 지키는 소호자,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온 몸과 마음으로 실천하는 수녀님들의 삶 속에

깊은 위로와 따뜻한 교감이 되길 희망하며 제작하였다.

 

"주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작품명 빛이되다

-성 빈센트 드 뽈 자비의 수녀회

재료 엔틱글라스(Antique gless)

열성형유리(Fueed glass)

크기 220 ×130 ×4m 12창 중 부분

제작년도 2020년

손승희(손소벽 막달레나) 유리화 작가

 


교구내 공소

* 도고성당 유동공소




  유동 마을은 일명 '버들 마을'로 칭하며, 1896년 기낭 신부의 사목당담 공소로 당시 46명의 신자가 있었다. 1916년경 신인섭 회장이 초대 회장을 맡아 40여 년간 공동체를 이끌었다. 이때 공소 뒷산 6천여 명을 매입하여 교회 묘지로 사용하면서 대세지에게도 도움을 주었다. 현재 공소건물은 본당지원과 공소 기금 등으로 1965년 신용규 요한 회장 재임시기에 대지 460㎡규모로 건축되었다. 그후 1998년경 지붕마감재를 교체하는 등 내외부 수리를 실시하였다. 신앙 깊은 유동공소에서 교구 사제가 두 분 탄생하였다. 현재 14세대 20여 명이 전례에 참례하고 있다.

 

 

<해와 유학 사제들의 편지⑥>

 

덤으로 배운 것들

 

  "내가 잘 알지도 못했던 한국이라는 나라의 신부님을 친구로 두다니 참 신비로운 일이다."

  지극히 평범하고 별로 대수롭지도 않던 어느 날 점심, 별다를 것 없는 밥을 먹다가 그 모든 일상들이 특별해지는 한 마디를 들었습니다. 같이 살고 있던 외국의 한친구 신부님으로부터 들은 말입니다. 이 커다란 세상에서 하느님께 허락된 찰나의 인생을 걸어가는 사이에 만난 값진 인연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로마에서 유학 중인 유영근 야고보입니다. 햇수로는 5년을 눌러 채우고 이제 6년을 채워가고 있는 중입니다. 우르바니아나 대학교에서 교의신학 공부를 시작하면서 베드로 기숙사로 들어가게 되었고 거기에서 배우고 얻은 것들에 대해서 나눠보려 합니다.

 

  베드로 기숙사는 선교지역으로 선포된 나라 중에서 일정한 기준을 거쳐 공부를 원하는 신부님에게 숙식비와 학비를 제공하는 인류 복음화성의 산하 기숙사입니다. 그래서 저도 돈 없이, 값없이, 먹고 자고 공부하며 살 수 있었습니다. 참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매년 새로운 신부님들이 빈자리를 채워가는데 그해에 같이 들어간 학생들은 대부분 3년 동안 같이 지내게 됩니다. 그래서 아프리카, 인도, 방글라데시, 인도네시아, 중국, 베트남 등등 세상 곳곳의 신부님들과 함께 기도하고 먹고 공부합니다.

 

  사실 처음부터 쉬운 것은 없습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타국의 언어들을 자막 없이 하루 종일 견뎌야 하는 일은 생각보다 피곤합니다. 모든 학생들이 로마에서 만났기 때문에 이탈리아어를 써야 하지만 첫해에 저들끼리 하는 대화는 눈먼 이가 눈먼 이를 인도하다 구덩이에 빠진다는 마태오 복음의 말씀처럼 갈피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나이든 새내기들은 몸으로 마음으로 부딪히면서 고난을 돌파해 갑니다.

 

  언어를 대충 무시하고 넘어가는 법을 배워도 학업이 쉽지가 않습니다. 제 나라 말로 배워도 긴가민가하는 것들을 외국말로 배우자니 환장할 노릇입니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에 모여서 밥을 먹을 때면 바벨탑을 세운 사람들을 욕하거나 교수를 욕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신부들이니 험한 말은 쓰지 않습니다.

 

  그렇게 점잖게 욕하고 적당히 버티는 법을 여럿이서 함께 배우다 보면 그러면서 우리는 둘도 없는 친구들이 되어 함께 기도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유학 중에 배우는 것이 신학보다도 삶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입니다. 사제로서, 사람으로서, 친구로 살아가는 법을 또 한 번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이 순간과 인연이 빛나 보이는 시간이 옵니다.

 

  신학에 더해 더 귀한 것들을 배우고 느끼게 해 주셔서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감사를 잊지 않으면서 저는 또 특별한 일상으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류영근 야고보 신부 로마 유학-

 

 

 

 

모든 만물이

웃음을 터트리듯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그런 날들.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제107차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담화(요약)

 

더욱더 넓은 '우리'를 향하여 함께 걸어 나갑시다

 

 

  한국 교회는 전 세계 교회와 주일을  '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로 정하고 이주민과 난민들을 기억하며 기도합니다. 지난 3월 주교회의 2021년 춘계정기 총회에서는, 9월 마지막 주일이 '이주민'만을 위한 날이 아님을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리고 정치, 경제, 종교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고국을 떠나 정치, 경제, 종교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고국을 떠나 있는 이주민들과 난민들의 어려움을 생각하고,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형제자매이기에 미래를 향하여 그들과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습니다.

 

  한국 교회는 국민과 함께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19(이하 코로나19)의 세계적 유행이라는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자 노력하면서, 아울러 더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고자 노력하면서, 아울러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주 노동자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기울입니다. 왜냐하면 그들도 우리와 똑같은 하느님의 자녀이며, 많은 경우에 우리 사회의 가장 밑바닥에서 어려움과 고통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코로나 19에 가려져 사람들이 기억에서 잊힌 사건들이 있습니다. 섬에서 짐승처럼 부려지다가 탈출한 한 이주 노동자들의 이야기와,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지내다 혹한의 추위에 동사한 캄보디아 여성의 이야기가 그것입니다. 이처럼 열악한 노동 환경과 차별 대우는 수많은 이주 노동자의 건강을 해치고, 때로는 목숨마저 앗아가 버립니다. 우리나라 노동자들도 어려운 현실과 고통 속에 있기는 마찬가지지만 많은 기관과 단체가 그들의 처우 개선을 위하여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받는 이주 노동자들을 대변해 주는 기관이나 단체는 많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저 외국인 이주 노동자라는 이유로 차별받고 배척당하고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당신의 회칙을 인용하며 하신 말씀을 새겨 봅니다. "보건 위기가 지난 뒤에 최악의 반응은 열광적 소비주의와 새로운 형태의 이기적 자기 보호에 더욱더 빠져드는 것입니다. 부디 더 이상 '다른 이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만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모든 형제들」 35항) 이는 더욱더 넓은 '우리'를 지향함으로써 코로나19로 말미암아 오로지 '나'만을 위하고 '자기 나라'만을 위하는 폐쇄적인 편협함에서 벗어나자는 호소입니다.

 

   우리 교회는 가난한 나라에서도 백신 접종이 가능하도록 전 세계 인류와 함께 이 나눔을 실천하였습니다. 이 백신 나눔 운동은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말씀하신 '우리'라는 공동체성을 회복하려는 '형제적 사랑'입니다. 이 '형제적 사랑'으로 이주 노동자들은 물론 난민들을 '우리'안에 초대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나라에서 일하면 생활하고 있는 이주민들과 난민들은 더 이상 남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 시대는 이미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더 넓은 '우리'를 알게 해 주는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이주민과 난민이라는 말에는 다양성이 있고, 이 다양성은 우리를 풍요롭게 하고 성숙하게 합니다. 우리가 이 다양성을 존중할 때, '형제적 사랑'이 실현된 것입니다.

2021년 9월 26일

주교회의 국내이주사목위원회

위원장 정 신 철 주교

 

 

 

탄소중립 어떻게?

 

  우리나라의 전기료는 세계적으로 볼 때 많이 저렴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과거엔 다 아끼며 살 땐 전기료도 역시 가장 눈에 보이는 아낌의 대상이었습니다.

 

  냉장고 문을 열 땐 전기세에 민감한 어머님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고... 만에 하나 사람 없는 방에 전등이라도 켜놓으면 많이 혼나던 어린 시절을 보내서 그런지 절약이라는 습관은 몸에 밴 좋은 냄새 같습니다. 교우 여러분도 이러저러한 추억들을 많이 가지고 계시지요.

  8년 만에 전기세를 인상한다고 합니다.

이하 기사 내용입니다.

 

  물가 상승을 부채질할 우려에도 정부가 4분기 전기요금을 kwh당 3원 올렸다. 에너지 원자재값 상승으로 더는 전기요금을 억누르기 힘들어진 데 따른 조치다. 인위적 요금 동결로 올해 한국전력이 막대한 적자를 본 것도 영향을 미쳤다. 발전연료 가격 상승세와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으로 내년에도 전기요금 인상 압박은 계속될 전망이다.

 

  정부와 한전은 4분기(10~12월) 최종 연료비 조정단가를 전부기(-3원)보다 3.0원 오른 kwh당 0.0원으로 책정했다고 23일 발표했다. 월평균 350 kwh를 사용하는 기구는 매달 최대 1.50원, 500 kwh를 사용하면 1,500원을 더 내게 된다. 전기료 인상은 2013년 11월 이후 약 8년 만이다. 정부는 올해부터 3개월이다 연료비 변동을 전기요금에 반영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다.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그런데 탄소중립을 위해선 전기료 인상은 어쩔 수 없다는 현실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선언하였으며 이것은 기후위기 속 당연히 받아드려야 하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요금에 민감한 건 모든 나라의 사람들이 다 똑같겠죠. 다시 예전의 추억속의 절약생활이 아닌 생활 속 습관화된 절약생활을 하여야겠습니다.

 

  끝으로 생활 속 탄소중립 실천방법에 대해 설명한 사이트를 소개하려 합니다.

기후변화홍보포털 www.gihoo.or.kr 205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