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0년 주보

대림 제3주일(자선주일) 2010년 12월 12일(가해)

모든 2 2021. 9. 17. 12:23

"여러분도 참고 기다리며 마음을 굳게 가지십시오.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습니다."(야고 5,8)

 

 

+ 마태오 복음 11,2-11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그때에 요한이,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감옥에서 전해 듣고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요한에게 가서 너희가 보고 듣는 것을 전하여라. 눈먼 이들이 보고 다리저는 이들이 제대로 걸으며, 나병 환자들이 깨끗해지고 귀먹은 이들이 들으며, 죽은 이들이 되살아나고 가난한 이들이 복음을 듣는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그들이 떠나가자 예수님께서 요한을 두고 군중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구경하러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드리는 갈대냐?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냐? 고운 옷을 걸친 자들은 왕궁에 있다. 아니라면 무엇을 보러 나갔더냐? 예언자냐?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예언자보다 더 중요한 인물이다.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내가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말씀의 향기>

 

눈(雪)한 송이의 무게  -민병섭 바오로 대전가톨릭대학교 총장

 

  벌써 대림 제3주일,주님이 성탄을 미리 맛보며 그 기쁨을 표시하기 위해 교회의 전례에서는 오늘 장미빛 초를 밝히고 사랑으로 이 세상에 오신 주님을 미리 체험하고 그 기쁨을 이웃들과 나누기를 권면하고 있다. 이처럼 오늘은 믿음 속에서 우리 모두가 함께 기쁨을 나누는 날이다. 그러하기에 입당송에서는  '기뻐하라'고 우리들에게 권하고 있으며, 본기도에서도 '구원의 큰 기쁨을 나누며 즐거운 마음으로 이 큰 축제를 지내게 해 달라'고 주님께 청하고 있다. 또한 독서와 복음에서도 구원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있음을 상기시키며 믿음 속에서 주님을 맞이하는 사람은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고 기쁨과 즐거움이 가득할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는 이 기쁨을 나누는 대림 제3주일을 1984년부터 '자선 주일'로 정해서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서로 나누도록 권고하고 있다. 자선은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고 맞이하는 우리의 참된 모습을 제시하는 것이다. 자선주일을 맞이하여 우리들이 이웃들에게 내미는 작은 사랑의 손길은 이 세상을 더욱 따뜻하게 만들며 사랑으로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의 마음을 바라보게 만들 것이다.

「어느 날 아주 작은 박새가 비둘기에게 물었다. "눈송이의 무게를 알고 있니?" 비둘기가 대답했다. "눈송이의 무게라고? 눈송이에 무슨 무게가 있겠어,허공처럼 전혀 무게가 없겠지." "그렇다면 내 이야기를 들어봐." 박새가 말했다. "눈, 내리는 전나무가지에 앉아 있었어, 할 일도 없고 해서 눈송이 숫자를 세기 시작했지. 가지 위에 쌓이는 눈송이 숫자를 말이야. 눈송이는 정확히 374만 1,952번째 눈송이가 가지에 내려앉으니까 가지가 그만 뚝 부러져 버렸어. 무게가 없는 눈송이 하나가 내려앉았는데 말이야!" 박재의 이야기를 듣고 한참 생각에 잠긴 비둘기가 나지막이 말했다. "'그래, 맞아, 단 한 사람의 손길이 부족한지도 몰라, 세상이 변화하는 데는."」

 

  참으로 그러한 것 같다. 이 세상에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데, 그리고 이웃과 함께 기쁨의 삶을 살기 위해 한 가지가 부족한 것 같다. 바로 우리의 작은 사랑이 손길이 부족한 것이다. 우리가 한 송이의 눈송이가 되어 사랑의 나눔에 동참할 때, 모든 사람들은 우리와 함께 주님의 참 기쁨과 평화를 맛보고 기뻐하게 될 것이다.

 

 

<함께 만드는 이야기 마당>

 

임하시길 기다립니다.  -홍정희 베로니카 . 송촌동 성당

 

  "대림 시기에는 우리 친구들이 무엇을 해야 할까?"

  "착한 일을 해야 해요!"

  아이들의 힘찬 대답이 말문이 콱 막혔다. 교재에 나온 지문을 읽고 난 다음이어도, 아이들은 스스럼이 없었다. 아마 나라면 쭈뼛쭈뼛하며 대답 대신 엷게 웃고 말았을 것이다.

 

  사람마다 성탄 전야는 다르게 다가온다. 친구 한 명은, 성탄 새벽까지 코 삐뚤어지게 술을 마시겠다고 했다. 다른 친구 또한, 연인 혹은 가족과 함께 외식을 하며 보낼 예정이란다. 나는 전야 미사 때 졸지 않기 위해 피로회복제 한 병을 마시기로 했다. 또한 즐거운 시간을 위하여 아끼는 원피스를 입고 미사를 드릴 것이다. 곰곰이 생각하고 생각해 봐도 정말.. 이것뿐이었다!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성탄을 준비하길 원하실까? 동방박사들은 주님을 뵈러 동물 냄새가 가득한 마구간으로 들어갔다. 아기 예수님을 안으려 무릎을 꿇고 앉았다.

 

  갓 탄생하신 예수님께 입 맞추기 위해서라면 몸을 낮출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몸이 불편한 이를 도우러 허리를 굽힌다거나, 이웃에게 인사하려고 고개를 숙이는 것은 참 어려웠다. 하물며 길가에 쓰레기가 뒹굴고 있어도 등을 꼿꼿이 세우고 지나쳐 버리지 않았던가, 네 개의 대림초는 모두 밝혀지길 기다리고 있지만, 내 가슴에는 인공 전구만 간간히 반짝거릴 뿐이었다. 나는 성탄 전야의 화려함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연말연시의 설레는 분위기만 느끼려 했던 것이다.

 

  "그럼 우리가 무슨 착한 일들을 해왔는지 동그라미 쳐볼까?"

 

  아이들은 교재의 착한 일 번호에 서슴없이 동그라미를 그렸다. 동그라미 투성이라며 뿌듯해하는 아이도 있었고, 한 개뿐이라면 시무룩해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속으로 아이들에게 외쳤다.

 

  괜찮아, 선생님은 동그라미 빵 개야!"

  교재에 나온 착한 일마저도 어찌나 생소했던지, 다른 사람이 부탁할 때는 언제나 "예"하고 도와주되, 특히 불평하지 말 것! 내가 말을 하면서도 스스로 너무 찔렸다.

 

  교리시간이 끝나고 텅 빈 교리실을 정리하며 칠판에 쓴 한자를 읽어보았다. 待臨, 임하시길 기다립니다. 예수님의 찾아오심, 머리로만 알고 있던 것은 아니었을지.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45,40)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번번이 지나쳤던 나를 돌아본다. 바쁘단 이유로 불평하며 주변을 돌보지 않았던 나를 돌아본다. 제대로 가꾸지 않은 잡초만 무성한 나의 마음을 돌아본다. 성탄이 되어서야 부를 수 있는 대영광송, 우리가 예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으로 올려드릴 때 당신 아버지께서는 진심으로 기뻐하실 것이다.

 

  나는 흐트러졌던 마음을 곧게 하고 다시 예수님께 고백한다.

 

  '주님, 당신이 임하시길 기다립니다."

 

 

 

 

하루 이틀 사흘

오늘의 마음 내려놓고

새로운 아침을 기다립니다.

 

주님을

기다립니다.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지요하와 함께 보는 믿음살이 풍경>

 

노친도 마음으로 함께하신 '생명평화미사'

 

  지난 10월, 뜻밖의 '실수'가 있었습니다. 전국적으로 독감 예방접종이 실시되었을 때 별 생각 없이 노친을 모시고 태안군민체육관을 갔던 것입니다. 말기 폐암과 임파선암, 게다가 암세포가 전이된 엉덩이뼈는 골절되어 일어서지도 못했던 97세 노친이 기적적으로 완쾌되어 병원생활 8개월 만에 퇴원하신 이후 나는 뭔가를 과신했던 것 같습니다.

 

  예방접종 후 숨이 차고 몹시 힘들어 하시는 노친을 보면서, 의사와 상의도 하지 않고 깊은 고려없이 더빽 예방주사를 맞혀드린 내 우둔한 소치를 크게 자책하며 후회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기적'을 만들었다는 자만심에 빠져 방심을 한 탓이었습니다.

 

  위기감 속에서 다시금 내 나름의 '대체의학'을 적극적으로 시행하게 되었습니다. 11월에 예정되었던 세 건의 단체 나들이 참여도 모두 포기하고, 바깥일을 볼 때도 하루 서너 번씩은 집을 들락거리는 생활을 했습니다. 마침내 노친은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종전보다 더 건강해지신 상태가 되어 며칠 전에는 김장 공사를 거들어주시기도 했습니다.

 

  덕분에 나는 실로 오랜만에 출타를 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세 번이나 단체 나들이 참여를 포기한 사실을 잘 아시는 노친이 적극적으로 출타를 권유한 덕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달 29일 오후 4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거행된 '정의구현 사제단'의 '4대강 사업 중단과 4대강 예산 전액 삭감'을 촉구하는 '생명평화미사'에 참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동안 매일 저녁 7시 같은 장소에서 '생명평화미사'가 거행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한 번도 참례하지 못하여 노상 무거웠던 '죄의식'이 말끔히 해소되는 기분이었습니다.더욱이 서울에서 생활하는 딸아이와 아들 녀석도 함께하여 더욱 고맙고 기쁜 마음이었습니다.

 

  전구 각지에서 오신 100여 명의 사제들 가운데는 우리 대전교구 사제들도 계셔서 반갑고 감사한 마음 컸습니다. 추운 날씨에도 굴하지 않고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하는 500여 명의 교우들 가운데서 다시 한 번 공의로우신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 할 수 있었습니다.

 

  미사 후 낯 모르는 자매님 한 분이 내게 와서 인사를 하며 내 노친의 안부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간의 사정을 말하고, 다시 회복되신 노친 덕분에 내가 서울에 올 수 있었음을 말하니 그 자매님은 "어머, 고마우셔라!" 하며 내 노친께 감사 인사를 전해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고로, 그날의 '생명평화미사'에는 내 노친도 함께하신 샘이었습니다.

 

-지요하(소설가. 태안 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