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루카 23,42)
+ 루카 복음. 23,35-43
<주님,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그때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 "이자가 다른 이들을 구원하였으니, 정말 하느님의 메시아, 선택된 이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하며 빈정거렸다.
군사들도 예수님을 조롱하였다. 그들은 예수님께 다가가 신 포도주를 들이대며 말하였다.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이자는 유다인들의 임금이다.'라고 죄명 패가 붙어 있었다.
예수님과 함께 매달린 죄수 하나도, "당신은 메시아가 아니시오? 당신 자신과 우리를 구원해 보시오." 하며 그분을 모독하였다.
그러나 다른 하나는 그를 꾸짖으며 말하였다. "같이 처형을 받는 주제에 너는 하느님이 두렵지도 않으냐? 우리야 당연히 우리가 저지른 짓에 합당한 벌을 받지만, 이분은 아무런 잘못도 하지 않으셨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말씀의 향기>
그리스도왕 대축일 -구일모 베드로 목천 주임-
예수님은 왕이 되셨다. 화려한 왕궁에서 왕이 되신 것이 아니라 고난의 십자가 위에서 왕이 되셨다. 모든 이가 비웃고 야유하는 가운데 "아버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울부짖으시며 어처구니없는 괴로움을 참아 받으시고 왕이 되셨다. 그리고 자신을 못 박는 이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청하시며 왕이 되셨다. 그래서인지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라 제자들을 가르치셨고, 베드로 사도와 많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박해 속에서 복음을 전하다 예수님처럼 십자가에 못 박혔다.
300여 년의 박해가 계속되는 가운데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꿈에서 그리스도를 뵙고 자신이 전쟁에서 이기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줄 것을 약속하였는데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면서 그리스도교에 자유를 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 후 그리스도교는 비교적 순탄한 길을 걸었으나 570년 태어난 무하마드가 이슬람교를 세우면서 혼란의 길을 걷게 되었다.
624년 이슬람 세력을 메카를 상대로 전투를 일으켜 승리하였고,628년 예언자는 비잔틴과 이집트 등 군주들에게 서한을 보내 이슬마에 귀의할 것을 요청했으나 받아 들여지지 않자 계속 전쟁을 일으켜 635년에는 다마스쿠스, 644년에는 이집트를 정복하였으며 644년 페르시아 대부분이 이슬람의 수중에 들어갔다. 계속된 전투로 아시아의 많은 지역은 이슬람화 되었고 1453년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당함으로 이스탄불로 이름이 바뀌고 이스람제국의 심장이 되었다. 루터로 인한 종교 분열 이후 영국, 독일, 스위스 등 많은 나라들이 가톨릭에서 떨어져나가 그리스도교는 혼돈 속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1571년 오스만투르크는 바닷길을 통해 로마로 향했다. 혼돈 속에서 어려움을 겪었고, 1571년 오스만투르크는 바닷길을 통해 로마로 향했다. 비오 5세 교황은 모든 신자들이 묵주기도로 전투를 응원해 주기를 청했고 그 결과 해풍의 방향이 바뀌어 전세가 역전되면서 십자군은 오스만투르크를 물리쳤다.
이처럼 2000년의 역사 속에서 우리 신앙은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고 견디어 왔다. 그 힘은 역시 성부,성자,성령의 이끄시는 힘이고 성모님 기도의 힘 이리라!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지내며 수많은 고난과 죽음으로 전철된 교회 역사를 통해 우리가 어려운 때에도 늘 지켜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살아야겠다. 또한 교회의 역사 속에서 예수님이 왕이 되었던 곳이 고난의 십자가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배추값이 비싸도 사랑 나눔은 멈추지 않습니다.
제6회 '행복가득 사랑의 김장 담그기' 대축제
나는 1,300년 전 한국에서 태어났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흰색과 푸른색 옷을 입고 있었고, 소금방에서 살았답니다. 그래서 모두들 저를 침채라고 불렀습니다. 몇 백 년 동안 살면서 사람들은 저에게 딤채 혹은 짐치라는 새로운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우리나라가 일본과 전쟁을 했던(사람들이 임진왜란이라고들 불렀던 전쟁 같아요) 그 시기엔 저는 문득 예쁘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빨간 고추가 우리나라에 들어왔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예쁜 빨간 옷을 입었습니다. 저는 친구들도 많답니다. 총각이, 갓이네 등등등..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과 함께 살면서 저는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중요한 순간에 저를 찾지요
"아줌마! 여기 김치 더 주세요~"라며..
'행복가득 사랑의 김장 담그기' 대축제가 올해로 6회째를 맞이했습니다. 1,004포기로 시작했던 김장 담그기 축제가 작년에는 4,500포기로 늘었고, 올해에는 5,000포기 정도를 담아 이웃들에게 나누어 드릴 계획입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사랑의 김장담그기 행사날에는 온몸이 꽁꽁 얼어버릴 만큼 날씨가 추웠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김장 담그기 대축일 동안 모든 분들의 따뜻한 온기가 느껴져 마치 열대지방에 온 것 같았습니다. 어려운 이웃들을 위한 나눔에는 날씨도, 몸의 고단함도, 돈도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이 우리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를 새삼 느낄 수 있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6회째를 맞이하는 '행복가득 사랑의 김장 담그기' 대축제는 김장을 담그고 이웃들에게 나누어주는 것뿐만 아니라, 마음과 마음을 전하는 사랑의 메신저가 될 것입니다. 노은동 시장 내의 많은 후원업체들, 인적 물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 기관과 단체들,1,000여 명의 각 본당 자원봉사자들, 평신도협의회 여성연합회, 본당 사회복지 교구협의회, 운전기사사도회, 교구 내 사회복지시설 등 많은 분들의 소중한 도움으로 제6회 '행복 가득 사랑의 김장 담그기'행사를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바쁘시더라도 꼭 참석하셔서 봉사도 하시고, 맛난 김장김치도 맛보시고, 이웃 본당의 형제 자매님들도 만나 친교도 나누시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작은 나눔을 통해 우리의 이웃들이 더욱 따뜻한 겨울을 지낼 수 있도록 제6회 '행복가득 사랑의 김장 담그기' 대축제에 꼭 참석해 주시고, 사랑의 김장 담그기 행사가 아름다운 나눔의 보고로 확 산되어가길 기도드립니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모두, 행복하게 만드는 그런 대축제가 될 수 있도록 많은 분들의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하다."(사도 20,35)
♡ 때 : 2010년 11월 23일(화)~25일(목)
♡ 곳 : 노은동시장 내 대전가톨릭농수산물지원센터
♡ 문의 : 교구 사회사목국 042) 635-5111/농수난물지원센터 042) 822-7986
♡ 김장담그기 행사를 통해 만들어진 김장은 어려운 이웃들에게 모두 전달됩니다.
<함께 만드는 이야기 마당>
"울지 마 톤즈"를 보고 나서-정화림 안젤라 .계룡 성당
마치 순박한 시골 농부마냥 소박한 웃음의 신부님, 하지만 그 분에게서는 사랑이라는 열매를 머금은 향기가 풍겨 나왔다. 인간이 인간에게 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신 이태석 신부님,10명 중 아홉째로 태어나신 신부님은 독학으로 악기를 익히고 어려운 형편임에도 의대를 가셨다.
우리는 초. 중. 고 그리고 대학교 4년을 다딘다. 왜 이렇게 공부를 하는가? 남보다 부유하고 더 잘 살기 위해서 좀 더 안락하고 편안한 생활을 위해서가 대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그분은 달랐다. 모두가 출세의 길이라 여기고 많은 부를 누릴 수 있는 그 길으 ㄹ가지 않으시고 온전히 자신을 내어놓아야 하는 사제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가장 가난한 이들이 살고 있는 아프리카의 톤즈로 가셨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하는 것이 나에게 하는 것이다'라는 말씀을 항상 마음 속에 지니며 그분은 톤즈에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으셨다. 의학적인 지식으로 병에 걸린 사람을 치료하시고, 아무도 돌보지 않던 나환자들을 찾아가서 손수 고름을 짜내시고 치료해 주셨다. 맨발인 그들이 가여워 그들의 발에 딱 맞는 신발을 제작하여 신겨 주셨다. 후에 신부님이 돌아가시고 나환자들은 신부님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으로 눈물 흘리고 가슴 아파했다. 그걸 보는 나도 그들의 마음이 느껴져 뭉클해졌다.
그리고 톤즈 지역은 아직도 부족 간의 전쟁과 잦은 총격전으로 인해 아이들까지도 감정이 메마르고 쉽사리 눈물을 흘리지도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신부님은 그런 메마른 아이드에게 샘물이 되어 주셨다.아이들에게 악기를 가르치고 밴드를 만들어 꿈을 심어 주셨다. 그들이 신부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그 분을 위한 마지막거리 공연을 할 때에도 아무도 그들을 막지 않았다. 공연 몇 주 전에 군인들과의 총격전으로 인해 군중이 모이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지만, 군인들마저도 신부님을 위한 공연을 막지 않았다. 그들도 신부님의 치료를 받고, 신부님의 사랑을 느꼈던 이들이었기 때문이다. 톤즈의 모든 사람들에게 신부님은 시원한 그늘이었고, 기댈 수 있는 버티목이었고, 꽃이 되어 주셨다. 그리고 그들도 그분에게 꽃이 되었다. 아마도 신부님의 조건 없는 사랑이 메마른 그들의 마음을 달래주었을 것이다.
하느님의 아들로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낮은 자들과 함께 그들의 아픔을 씻어 주시고 무겁고 힘겨운 십자가를 지시고 우리를 위해 온전히 희생하신 예수님,난 그런 신부님을 뵈며 예수님이 떠올랐다. 가장 낮은 곳, 톤즈로 가셔서 가난한 그들의 아픔을 씻어주시고 그들에게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가 가슴 깊이 남기고 가신 신부님, 마흔여덟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셨지만 자신이 가지고 계셨던 모든 재능을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온전히 다른 이들을 위해서 베푸셨던 故 이태석 신부님께서는 천국에 가셔서도 그 소박한 웃음을 머금고 조건 없는 사랑으로 우리들을 지켜봐 주실 것이다.
"주님 집에 가자"
오늘을
찬미합니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이충무의 행복 나침반>
입으로 말하는 자 독백일 뿐, 귀로 말하는 자 공감일 뿐...
사랑말 문법
가끔 말하기 싫을 때가 있습니다. 말보다는 눈빛이나 몸짓 하나가 더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으니까요. 이심전심(以心傳心)이란 한자성어 아시죠? 말이 아니라 마음으로 마음을 전하는 것.. 얼핏 생각하면 이처럼 아름답고 깊이 있는 의사소통 방법은 또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말 그 자체가 의미가 없어서가 아니라 말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해 상대방에게 정확한 마음을 전달 할 수 없는 것은 아닐까요? 말을 하지 않는 것보다 말을 제대로 함으로써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정확히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이심전심만큼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요?
사랑을 매번 이심전심이라는 고차원적 의사소통 방법으로 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심전심의 그 짜릿한 마음 교환은 일 년에 단 몇 번이라도 충분히 감동적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 년 내내 그런 식으로 우리를 가슴 속의 사랑을 전하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제대로 하려면 우선 말부터 배워야 합니다. 마치 갓난아기가 처음으로 아빠, 엄마라는 말을 배우는 그 때처럼, 그렇게 사랑의 언어도 새로 배워야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사랑의 언어에는 문법이 없습니다. 배워야 할 교본도 없습니다. 단 하나의 법칙이 있다면 그것은 입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귀를 사용한다는 것일 뿐..
사랑의 언어는 입으로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귀를 여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가만히 귀를 열여 두고 기다리면 마치 의사가 청진길 환자의 심장 소리를 듣는 것처럼, 우리도 상대방의 가슴에 담긴 바람, 그리움, 소망, 걱정의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귀가 아니라 입으로 말을 배우는 사람에겐 공허한 독백의 외침만 남고,입보다 귀를 먼저 사용해 말을 배우는 사람에겐 가슴을 울리는 대화의 메아리가 남습니다. 당신의 언어는 독백입니까 아니면 공감의 메아리입니까?
-이충무 바오로/극작가,건양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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