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마태 24,44)
+ 마태오복음. 24,37-44
<너희는 준비하고 깨어 있어라.>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노아 때처럼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홍수 이전 시대에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는 날까지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하면서, 홍수가 닥쳐 모두 휩쓸어 갈 때까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사람의 아들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그때에 두 사람이 들에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두 여자가 맷돌질을 하고 있으면, 하나는 데려가고 하나는 버려둘 것이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어느 날에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밤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깨어 있으면서 도둑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기 때문이다."
<말씀의 향기>
기다림 -서용태 타데오 유성 주임
오늘 대림 제1주일을 맞이하며, 교회는 한 해의 전례주년을 새롭게 시작합니다. 아기 예수님의 성탄과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는 대림시기로 새로운 전례주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새해를 희망으로 맞이하며, 주님께서는 우리를 기다림의 시기로 초대하시고, 또한 새로운 계획과 다짐을 할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제1독서에서 이사야 예언자는 전쟁의 공포와 불안에 시달리던 남부 유다인들에게 희망과 평화를 선포합니다.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집이 서 있는 산으로 밀려들고, 그분의 길을 걷게 되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평화의 시기가 오리라는 이 희망의 말씀은 당시 유다인들뿐만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큰 힘이 됩니다. 비록 우리의 일상은 여러 가지 갈등과 아픔들로 얼룩져 있을지 모르지만, 다시 오실 주님께 대한 믿음으로 이 기다림의 시기를 희망 안에서 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리가 이 기다림의 시기를 어떤 자세로 보내야 하는지 보다 구체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주님을 향한 우리의 기다림이 아무런 준비도 없는 막연한 기다림이어서는 안 됩니다. 마음을 다하여 정성껏 기다림을 준비한 자야 말로 주님의 오심을 기쁨 안에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둠의 행실을 벗어버리고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에 따라, 나에게서 과감히 버려야 할 것은 무엇이며, 동시에 용기 있게 실천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우리 각자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노아의 홍수 이야기를 말씀하시며, 그때가 언제인지 아무도 모르기에, 깨어 있으라고 하십니다. 언제 오실지 모르는 그분을 생각하며 늘 깨어 준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제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자세로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지는 보다 분명해졌습니다. 그분의 나라가 오시리라는 '희망'의 마음으로, 이 세상 것보다는 하늘의 것을 추구하는 자세로, 주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사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떠나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세상 것에 정신이 팔려 주님을 잊었을 때에도 그분은 언제나 그러하시듯,우리 곁에 계시며,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주님을 기다림은, 어찌 보면 우리를 기다리시는 그분께 우리의 발걸음을 향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분을 기다리기에 앞서 이미 나를 기다려주시는 주님을 생각하며 이번 대림시기에는 주님을 오래 기다리게 하지 않겠다고 조용히 다짐해 봅니다.
<지요하와 함께 보는 믿음살이 풍경>
세상을 떠난 이들에 대한 선행
경기도 안양에서 사는 내 누님은 좀 특별한 데가 있습니다. 세상 떠난 이들의 영혼을 생각하는 마음을 항시 지니고 사는 듯싶습니다. 오래전부터 성당 신자들 가운데 상(喪)이 나면 장례 후에 그 영혼을 위해 연미사를 봉헌한다고 했습니다.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가리지 않고 꼭꼭 위령미사를 봉헌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돌아가신 분의 유족에게도 알리지 않고 위령미사를 봉헌하다고 하더군요. 간혹 위령미사 봉헌 사실을 알게 된 유족들이 성당 사무실에 문의를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지만, 예물 봉투에 봉헌자의 이름을 쓰지 않으니, 또 사무장이나 사무원에게 단단히 부탁해 놓기도 해서, 위령미사를 봉헌한 이가 누구인가를 유족이나 다른 신자들이 알게 된 적은 아직 한 번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로 평일에 위령미사를 봉헌하므로 위령 미사 봉헌사실을 모르는 유족들이 더 많은 거라는 말도 하더군요.
도시의 꽤 큰 성당이므로 상도 비교적 자주 날터였습니다. 또 평범한 신자인 누님에게는 아는 신자들보다 모르는 신자들이 더 많을 터였습니다. 아는 이 모르는 이 가리지 않고 상이 날 때마다 위령미사를 봉헌한다면 비용도 만만치 않을 터이니, 나로서는 슬며시 걱정도 되고 늘 수수한 옷차림으로 사는 누님의 촌스런 모습도 떠올리게 되더군요.
세상 떠난 이게게는 위령미사 봉헌이 가장 값진 것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누님의 그런 선행이 가능하겠지만 그것은 누님이 하늘에 쌓는 각별한 공덕이기도 할 터였습니다. 누님이 오래전부터 그런 일을 해오고 있다는 말을 처음 들은 때가 10년은 된 것 같으니, 참으로 많은 영혼들이 누님의 위령미사 봉헌으로 '통공의 은덕'을 입었을 터이고...
그런데 최근 몸이 편치 않으신 노친을 보러 또 한 번 친정을 찾으신 누님은 내게 살며시 이런 말을 하더군요. 노친이 지난해 11월 한 달 동안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해 있을 때 같은 병실 환자 중에 있었지요. 결국 간경화로 운명하고 말았는데, 그분이 가족도 없이 혼자 살아왔던 분이라는 사실을 알고부터 누님은 못내 가슴 아파했지요.. 위령미사를 봉헌해줄 유족이 없는 사실을 무엇보다 안타까워했던 누님은 그를 위해 여러 번 본당에서 위령미사를 봉헌해 왔는데, 얼마 전 호주에서 사는 넷째 딸을 보러 갔다 오면서 돈이 좀 생겼다고, 11월 '위령의 달'을 맞아 수리산성지성당에 가서 안드레아를 위한 일정 기간의 위령미사를 신청하면서 30만 원을 봉헌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지요하(소설가, 태안성당)-
Adiuva me!
나를 도우소서
노아의 배
어디쯤 기어가는 자벌레
Adiuva me!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2011년 대전교구 사목교서
말씀을 선포하는 본당 공동체를 건설합시다.
우리 대전교구 공동체는 은혜로운 교구설정 60주년을 끝내면서 '말씀을 증거하는 삶으로 친교의 교회 건설"을 목표로 5년(2009~2013) 동안의 사목교서를 발표하였습니다. "소공동체가 활발한 친교의 본당 공동체 건설"(2009년)을 실행하고자 "소공동체 봉사자 양성 교육"을 통하여 수많은 소공동체 봉사자들을 양성하였습니다. 지난해(2010) 에는 "말씀을 증거하는 본당 공동체 건설"을 지표로 소공동체 봉사자 교육을 받은 형제자매들이 "순교자 영성 교육"을 통하여 장한 선조들의 믿음과 사랑을 본답으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금년의 사목지표는 "말씀을 선포하는 본당 공동체를 건설하시다."입니다. 이제 친교와 증거의 삶으로 다져진 우리가 복음화의 도구가 되어 공동체마다 복음선포의 꽃을 피워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복음으로 무장된 사람이 이웃을 복음화 시킵니다. 특별히 선교교육을 통하여 새로운 많은 복음의 일꿈들을 양성할 때에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1. 교회의 으뜸사명인 복음 선포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떠나 승천하시기 전 "너희는 온 세사에 가서 모든 피조물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르 16,15)라는 사명을 교회에 맡기셨습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한다고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되지는 않습니다. 나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의무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선포하지 않는다면 나는 참으로 불행할 것입니다."(1 코린 9,16)라는 말씀처럼 교회의 으뜸 사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을 모든 이에게 전하는 일입니다. 선교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이며, 모든 교구와 본당과 기관과 단체의 일이라는 의식이 널리 퍼져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선교는 교회가 이 세상에 살고 있는 개인이나 인류에게 제공하는 첫째가는 봉사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선교사명」 2항 참조)이 세상에서 가장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은 하느님을 모르고 사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을 종종 듣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새로운 삶의 기쁨을 체험하면서 이 세상의 것을 주고받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영원하신 하느님 아버지를 전해주는 일은 가장 귀하고 기쁜 일입니다.
2. 복음 선포의 기초가 되는 소공동체
우리교구가 말씀 안에 친교의 공동체인 소공동체를 건설하는 것은 복음선포의 기초를 세우고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었습니다. 소공동체는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도록 이끌어줍니다. 진지하게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나눔으로써 우리 삶의 자리 한가운데 살아계시는 주님을 만나게 하고 그분의 말씀이 내 삶과 사회 환경을 변화시키게 합니다. 복음이 제시하는 행동과 활동을 통해 우리 믿음과 삶을 일치시켜 줍니다. 그리하여 말씀 안에서 신앙인만이 느낄 수 있는 충만한 기쁨과 행복을 맛보게 하고, 그 좋은 것을 이웃에 전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듭니다.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이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복음으로 무장된 삶을 살면서 자신의 가족은 물론 주위의 친척과 친구들을 교회로 이끌어, 자신의 직장을 "직장 교회"로 만드는 것을 보는 것은 아주 큰 기쁨입니다. 왜냐하면 "현대인은 스승의 말보다 좋은 표양을 주는 사람의 말을 기꺼이 듣습니다. 스승의 말을 듣는다면 스승이 좋은 표양을 주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현대의 복음선교」 41항)
우리 교구는 교구설정 60주년을 맞이하여 성찬례의 삶을 살기 위하여 "한 끼 100원 나눔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한 끼의 식사 때마다 감사하는 마음로 봉헌하는 100원이 배고프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 안에 계신 예수님을 사랑해 드리고 있습니다. 더불어 사회사목국을 중심으로 어려운 이들을 찾아가 봉사하는 "푸드 뱅크"와 " "푸드 마켓"은 가장 가톨릭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큰 호응을 받으며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시설이나 기관을 통하여 소공동체가 협력하여 어려운 이들을 직접 찾아가 돕는 "맞춤형 도움"을 주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으면서도 어떤 도움도 받지 못하는 차상위 계층에 속하는 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또한 평신도 사도직 협의회 주관으로 한 생명 운동이 끊임없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많은 교구민들이 이에 동참하여 장기를 기증하고 헌혈을 하면서 이웃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나누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랑의 실천은 소공동체가 적극 참여하고 나서야 할 복음적인 활동이며 좋은 표양임에 틀림없습니다.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 13,35) 우리가 믿고 따르는 하느님께서 사랑이심을 이웃들에게 전하는 최고의 길은 구체적인 사랑의 삶을 실천하는 행위입니다. 우리 각자와 그리고 우리 공동체는 사랑의 실천과 선교로 몇 사람을 하느님께 인도하였는지 깊이 숙고해 보도록 합시다. 세상의 빛과 소금과 누룩이 되는 삶을 살았다면 항상 우리 주위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따르는 삶의 아름다움을 전해 주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믿음과 행동이 일치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은 최고의 선교사입니다.
3. 복음 선포의 모델인 순교자
우리의 장한 순교자들은 우리 모두가 따라야 할 복음선포의 모델입니다. 나라에서 강력하게 금하는 매우 어려운 여건 속에서 하느님 아버지와 복음을 받아들이면서 마음 안에 큰 변화(회개)가 일어나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복음의 삶을 살기 위하여 모든 이를 형제와 자매로 받아들이면서 사회 속에 팽배하던 양반과 상민이라는 계급을 넘어, 이웃을 사랑하고 돕는데 헌신적이었습니다. 자신을 변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복음의 삶을 통하여 사회가 변화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하느님을 알고 받드는 것이 최고의 가치임을 알고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이웃에게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심문하는 관장 앞에서는 물론이고 죽음의 칼날 앞에서까지 당당하게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여 '나라에서 금하지만 않는다면 나도 당신의 교를 믿고 싶소."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였습니다.
우리 교구 홍주(홍성) 출신의 "하느님의 종"순교자 원시장(베드로,1793)은 55세가 넘어'복음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행동과 의식을 복음대로 변화시켜 주님이 모습을 닮고자 노력하였습니다. "호랑이"라는 별명을 가질 만큼 성격이 사납고 야성적이었던 원시장(베드로)은 신앙을 실천해 나가면서 성격이 변하여 어떠한 일에도 온화함을 보여주었고 복음의 가르침대로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사람들과 나누면서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참으로 놀라운 결실로 나타났습니다. 당시 마을 사람들의 30가구 이상을 입교시켰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 들이고 하느님 백성의 공동체로 태어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한국 천주교회사」상,366-373 참조)
4. 다함께 복음선포 운동의 대열에
사랑하는 대전교구의 사제, 수도자, 형제자매님들,
우리 교구는 한국 교회 초창기부터 신앙을 받아들여 매우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일제 강점기 때까지만 하더라도 전국에서 높은 신자비율의 지역이었습니다.(「교우들에게」 446쪽 참조) 지금은 전국 복음화율 평균 10.1%에 미달하는 7.5%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복음화율을 높이기 위해 우리는 지난 2년 동안 말씀을 중심으로 친교의 공동체를 건설하는 사목에 초점을 맞추면서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소공동체의 삶을 통하여 복음을 선포할 힘을 길렀으며, 새 가족을 맞이할 준비를 해왔습니다. 순교 영성교육으로 복음선포를 위해 몸을 바칠 선교의 일꾼들이 양성되었습니다. 이제 봉사자들이 복음선교육으로 선교의 열정과 실무를 배우고, 모든 소공동체 구성원들과 더불어 복음선포 운동의 대열에 함께할 때가 왔습니다. 모든 본당이 선교운동을 통해 소공동체가 친교의 공동체로 더욱 결속되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선교의 중요성을 새롭게 일깨우며 신앙생활의 변화를 이루는 계기를 만듭시다.
우리 교구가 전개하고자 하는 선교운동의 목표는 신자 1인이 1명의 이웃을 인도하는 것입니다. 다가오는 2012년 성탄까지 6만 명의 형제자매들을 사랑이신 하느님께 인도하도록 합시다. 인간은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될 때에 최고의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우리가 목표하는 선교의 기적을 순교의 피로써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가능합니다. "너희 가운데 두 사람이 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무엇이든 청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19-20)
우리는 이번 선교 목표를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긍정적이고도 확신에 찬 믿음을 가지도록 합시다. 우리가 장한 선조들을 본받아 순교신앙으로 복음을 선포한다면 가능한 일입니다.
어떤 두려움이나 망설임이 없이, 끊임없이 기도와 할 수 있다는 굳센 의지와 강한 믿음으로 함께 나아갑시다. "'하실 수 있으면 ' 이 무슨 말이냐? 믿는 이에게는 모든 거이 가능하다."(마르 9,23): "이 믿음이 약한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마태 14,31): "너희가 기도할 때에 믿고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마태 21,22)
2011년이 우리 대전교구 하느님 백성 모두에게 은혜로운 은총의 해가 되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풍기는 교구가 될 수 있도록 모두 함께 성덕으로 전진하겠다고 다짐합시다.
천주강생 2010년 11월 28일 대림 첫 주일에
+ 유 라자로
천주교 대전 교구장 주교 유흥식 라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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