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요한 16,15)
「삼위일체」(부분) Albrecht Durer,1511
+ 요한복음 16,12-1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말씀의 향기>
"나는 믿나이다." -여충구 마르코 성남동 주임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유일하신 아버지 하느님을 믿으며, 그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생명을 주시는 주님이신 성령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할 때나 식사를 할 때 무슨 일을 하든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고 십자성호를 긋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할 때나 성삼의 이름으로 한다는 의미입니다.
한 하느님 안에서 성부,성자,그리고 성령의 세 이가 계시는데 모두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교회는 이 가르침을 믿음으로 고백하는데, 삼위일체 신비는 주 그리스도께 받은 계시의 교리이고 하느님의 신적 생명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시는 성부의 사랑, 온전히 의탁하는 성자와 사랑, 성부와 성자를 하나로 일치시키시는 성령의 사랑, 곧 삼위일체의 신비는 사랑의 신비입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하나로 일치시키고 화해와 변화로 이끌어 사람들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알게 만듭니다. 세상 속에 육신을 가진 우리는 상호 표현이란 방법으로 친교에 접근하듯이 하느님 자신을 표현할 때 성부는 당신의 크신 사랑을 성자라는 표현적 존재로 구현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자기 전달은 성서적으로 파견으로 이해되는데 곧 성자와 성령의 파견입니다. 하느님께 보여 주신 사랑의 표현은 우리 삶에서 중요한 지향점이 됩니다. 그 표현은 분명히 나의 삶 안에서 시작될 수 있기 때문에 부부나 형제나 이웃의 관계를 사랑의 일치점으로 이끌어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자라나게 만듭니다.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대로 삼위일체의 신비는 절대적 신비로 이성적으로는 분명히 관철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삼위일체 신비를 이성적으로 이해하려는 자세가 성아우구스티노 말씀대로 어리석은 것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그 사랑의 신비를 구현하며 살아 갈 은총을 간절히 청하면서 겸손한 자세로 하느님이 신비에 "나는 믿나이다."라고 응답하는 것이 참 신앙인의 사세일 것입니다.
대전교구 정의평화위원회 -특별연재 4대강 사업을 말한다.
5. 토건사회의 붕괴와 4대강 위기를 막는 방법
1) 정부는 4대강 사업을 녹색뉴딜사업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1930년대 미국의 뉴딜사업은 정부 주도의 토목 사업에 국한되지 않고 미국사회 전반의 경제사회 시스템을 개혁하기 위한 종합프로그램이었습니다. 토목사업 자체가 실업을 해결하고 경제를 회복시킨다고 보는 것은 매우 과장된 시각입니다. 토목공사 위주로 정부지출을 늘리는 정책은 단기적인 진통제 역할을 할 뿐 결국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낮추고 부채를 늘려 성장기반을 훼손합니다.
정부는 4대강 사업에 투자하는 22조원 중에서 15조 원의 돈을 수자원공사를 통해서 마련한다고 밝혔습니다만, 지금도 엄청난 부채에 시달리는 수자원공사가 이렇게 떠안은 부채는 결국은 국가부채로 남게 됩니다. 결구 4대강에 투자되는 모든 돈은 고스란히 국민의 세금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정부는 22조 원을 투자하면 34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러나 사업비가 같은 22조 원인 판교신도시 공사의 경우에도 일한 사람은 불과 1~2만 명에 불과 했습니다. 오히려 4대강 하천둔치에서 약 1,900만 명의 농지가 사라지면서 농민 2만 5천 명이 일자리와 터전을 잃고 쫓겨났습니다.
2) 이명박 대통령이 한반도 대운하의 모델로 삼은 독일의 라인-마인-도나우 운하로 인해 발생하는 리인강의 후유증은 매우 심각합니다. 첫째는 홍수입니다. 매년 라인강변의 도시가 물에 잠긴다는 뉴스를 듣게 됩니다. 운하가 생기기 이전에는 상류에서 구불구불 흘러 중류로 사흘 걸려 내려오던 홍수 물이, 이제는 반듯한 물길을 타고 단 하루만에 내려옵니다. 둘째는 지하수 고갈입니다. 수로가 직선화되면서 강의 길이가 짧아지고 경사가 급해지니까 물살이 세지고 강바닥이 패여 강의 수면이 8m나 낮아졌습니다. 가의 수면이 낮아 지면 지하수의 수면도 낮아집니다. 우리나라도 보가 건설되는 지역에는 침수현상이 일어나고 있고, 보와 보 사이의 수로구간에서는 이같은 지하수 고갈현상이 우려되는 상황입니다. 지금 독일에서 홍수와 지하수 고갈에서 벗어나기 위해 강의 둑을 헐고 범람지와 습지를 되살리는 자연으로 되돌리자는 재자연화 공사가 한창입니다.
3) 4대강은 하천법상 국가하천으로 이를 대상으로 한 사업은 중앙정부 소관이기 때문에, 국토해양부나 수자원공사가 4대강 사업의 핵심인 준설과 보 건설 공사를 직접 맡고 있습니다.그러나 자방자치단체가 관여하는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강바닥을 파낸 준설토 처리를 지자체가 맡습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준설토 처리를 거부할 경우 4대강의 핵심인 준설 공사는 제동이 걸릴 수 있습니다. 또 광역시도는 상수도사업본부를 두고 먹을 물을 관리합니다. 낙동강에 이어 금강에서도 중금속에 오염된 오니토가 발견되어 식수 재앙을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경우 시도지사는 식수 안전을 내세워 4대강 사업 재검토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습 그대로 4대강이 다시 살아나도록 우리 모두의 간절한 기도, 구체적인 관심과 노력이 필요할 때입니다.
<함께 만드는 이야기 마당>
가위 바위 보 -박영태 아우구스티노.천안성정동 성당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빈손이어야 하며,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기 때문에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라고 하셨다. 똑같은 요르단 강물이 2개의 호수로 흘러가는데 사해에 들어가면 죽음의 물이 되고 갈릴래아 호수로 들어가면 생명의 물이 된다.
왜냐하면 사해는 받기만 하고 흘려 보내지 않으니까 점점 더 농축이 되어 고농도의 염분 때문에 생물이 살 수 없고 악취가 심한 물이 되지만 갈릴래아 호수는 받는 만큼 다시 내보내기 때문에 온갖 생명이 살 수 있는 지상낙원의 물이 된다.
헌혈을 하고 나면 빈둥거리고 있던 인체는 갑자기 긴장하여 부족한 혈액을 보충하기 위해 왕성한 활동을 하게 되어 오히려 신선한 혈액이 많아진다고 한다. 그리고 죽으면 3일 내에 어차피 썩어버릴 장기를 고통 받는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 그들이 새 삶을 살아간다면 얼마나 좋은가?
재산뿐만 아니라 시간도 스케줄이 가득 차 있는 것보다는 여유가 있어야만 취미를 즐길 수 있고 기억도 과거의 일을 잊어버려야만 현실에 충실해져서 행복해진다고 한다. 우리가 가진 모든 물적인 것 즉 자신의 짐,가족,심지어 몸도 잠시 빌렸을 뿐 죽으면 결국 빈손으로 간다. 어차피 공수레 공수거 인생! "가위바위보"를 할 때 항상 빈손을 내는 바보가 되고싶다.
맑은 하늘입니다.
내일도 밝았으면 좋겠습니다.
어둠이 있어야
밝음도 제 빛을 발한다 하지만
그래도 맑았으면 좋겠습니다.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지요하와 함께 보는 믿음살이 풍경>
숫자로도 하느님을 새기지만....
언제부터 생긴 버릇인지는 확실히 모릅니다. 꽤 오래된 습관인 것만은 분명하지 싶습니다. 무슨 일을 할 때 나도 모르게 정해진 숫자에 맞춰 동작이나 행동을 하는 거지요. 등산길의 우물에서 물을 마실 때 세 모금씩 네 번으로 나누어 마시곤 합니다. 그러면 '3 ×4=12', 열두 모금이 됩니다. 3은 삼위일체와 예수님의 죽음에서 부활에 이르는 날수를 생각하게 하고, 4는 사순절과 사계절이며 여러 가지 성경 속 열두 제자를 기억하게 합니다. 그러니까 3과 4와 12의 신앙적 의미들을 가슴에 되새기기 위한 뜻을 물을 그런 식으로 마시는 것이지요.
등산을 하면 적당한 바위에 상체를 부딪히는 동작도 합니다. 복부와 하복부와 등을 번갈아 부딪치는데, 이것도 40번씩 세 번을 하면 120번이 됩니다. 운동기구에 올라 허리 돌리기 운동을 할 때도 그런 식으로 하고, 걷기 운동을 하며 묵주기도를 할 때도 40단이 아니면 4 꿰미를 하려고 의식적으로 신경을 씁니다.
심지어는 장거리 운전을 하며 좋아하는 건빵을 먹을 때도 열두 개나 40개를 세어 꺼내놓고 먹습니다. 아쉬우면 조금 더 먹은 경우도 있지만...
언젠가 이른 아침에 냉장고의 물을 꺼내 마시는데, 아내가 나를 보고 묻더군요. "왜, 물이 너무 차서 그래요?" 그때 나는 무의식 속에서 이루어진 내 행동을 자각하면서, 그 버슬에 내심 감탄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물이 차서 그런 건 아니야, 물 한 컵 정도야 몇 모금으로 다 마실수도 있지만, 나도 모르게 조금씩 숫자에 맞추어 마신 것 같아, "하니, "숫자에 맞추다니요?"라고 물을 것은 당연지사, "세 모금씩 네 번으로... 그럼, 얼마가 되지?" "그럼, 열두 모금이네." "내가 왜 그러는지 아남?" "당신두 차암..."
감탄하는 아내에게 빙굿이 웃어주고 나서, 나는 푸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숫자로까지 하느님을 생각하고 뭔가를 새기며 살지만, 정말로 얼마나 그리스도 신자답게 잘 사는지는 자신할 수 없어, 나도 엉터리일 거야. 놓치거나 미처 챙기지 못하는 제 너무 많아, 생각만 할 뿐 실행하지 못하는 일도 많고..."
-지요하(소설가, 태안성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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