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0년 주보

사순 제4주일 2010년 3월 14일(다해)

모든 2 2021. 8. 21. 18:15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되찾았다."(루카 15,24)

「되찾은 아들」, Bartolome Esteban Murillo

 

 

+ 루카복음 15,1-3, 11-32

 

<너의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다.>

 

   그때에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 하고 투덜거렸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이, '아버지, 재산 가운데에서 저에게 돌아올 몫을 주십시오.'하고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가산을 나누어 주었다. 며칠 뒤에 작은아들은 자기 것을 모두 챙겨서 먼 고장으로 떠났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방종한 생활을 하며 자기 재산을 허비하였다.

 

   모든 것을 탕진하였을 즈음 그 고장에 심한 기근이 들어, 그가 곤궁에 허덕이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그 고장 주민을 찾아가서 매달렸다. 그 주민은 그를 자기 소유의 들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그는 돼지들이 먹는 열매 꼬투리로라도 배를 채우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아무도 주지 않았다.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 주십시오.'

 

   그리하여 그는 일어나 아버지에게로 갔다. 그가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말하였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종들에게 일렀다. '어서 가장 좋은 옷을 가져다 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우고 발에 신발을 신겨 주어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아라. 먹고 즐기자. 나의 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도로 찾았다.'그리하여 그들은 즐거운 잔치를 벌이기 시작하였다.

 

   그때에 큰아들은 들에 나가 있었다. 그가 집에 가까이 이르러 노래하며 춤추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서 하인 하나를 불러 무슨 일이냐고 묻자. 하인이 그에게 말하였다. '아우님이 오셨습니다. 아우님이 몸성히 돌아오셨다고 하여 아버님이 살진 송아지를 잡으셨습니다.' 큰아들은 화가 나서 들어가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 그를 타이르자, 그가 아버지에게 대답하였다.

'보십시오, 저는 여러 해 동안 종처럼 아버지를 섬기며,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저에게 아버지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 주신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창녀들과 어울려 아버지의 가산을 들어먹은 저 아들이 오니까, 살진 송아지를 잡아 주시는군요, ' 그러자 아버지가 그에게 일렀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

 

 

<말씀의 향기>

 

다시 아버지 품으로... 윤영중 필립보 대사동 보좌

 

  우리들은 지금 재의 수요일부터 시작된 사순시기를 지내고 있습니다. 사순절의 첫날인 재의 수요일에 재를 머리에 얹으며 다음과 같은 말씀을 들었습니다. "사람아,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이 말씀은 바로 흙을 빚어 사람을 지으신 아버지 하느님께 돌아가야 한다는 거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다시 아버지 하느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떠나온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작은아들은 아버지께 자기 몫으로 돌아올 재산을 청하고 그 재산을 챙겨 아버지를 떠나 먼 고장으로 갑니다. 이것은 '당신은 지에 저에게 죽은 사람입니다.'라는 뜻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속에 아버지는 더 이상 살아계시지 않음을 의미했습니다. 왜냐하면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나 받을 유산을 그는 살아계신 아버지께 청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얼마 못가서 작은아들은 아버지께 받은 재산을 방탕한 생활로 모두 탕진하게 됩니다. 게다가 기근까지 들어 그는 굶어죽을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그 순간 분명 아버지가 가장 먼저 떠올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쉽게 아버지께 향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를 버리고 떠나왔다는 죄책감, 게다가 아버지께 받은 재산까지 모두 탕진했다는 죄책감이 그의 발을 아버지께 향하지 못하게 붙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가 돌아갈 곳, 그가 살 곳이라고는 오직 아버지 품뿐이었습니다. 그는 일어나 아버지께 돌아갑니다. 작은이들이 재산을 챙겨 떠난 날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문앞에서 힘없이 걸어오는 작은아들을 금세 알아차리고 그의 고백에는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워주고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열어 줍니다. 아버지에게 오늘은 내 재산을 축낸 못된 아들이 돌아온 날이 아니라 죽었던 아들이 살아난 더없이 기쁜 날이었습니다.

 

  아버지 맘 속에 언제나 작은아들은 사랑하는 아들일 뿐이었습니다. 자기 몫으로 돌아올 재산을 챙겨 떠나갔을 때에도, 그 재산을 다 탕지했을 때에도, 그리고 거지꼴로 다시 돌아왔을 때에도 아버지에게 아들은 그저 언제나 변함없이 사랑하는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바로 이분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바로 이분이 우리의 하느님이십니다. 우리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어도 언제나 사랑하는 아들, 딸로, 우리를 기다리시는 아버지께 우리도 몸을 일으켜 돌아갑시다.

 

 

 

칠레의 지진 피해를 위한 긴급 구호를 요청합니다.

 

 

  + 오소서 성령님, 새로 나게 하소서!

 

  사랑하는 신부님,수도자,형제자매님들,

  희생과 보속을 통한 자선 활동으로 기쁨 충만한 예수님의 부활을 준비하는 은혜로운 사순시기를 살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매스컴을 통하여 계속 보도되고 있는 것처럼 진도 8.8의 강한 지진과 해일이 남미의 칠레에서 발생하였습니다. 아이티의 지진보다 800배의 엄청난 힘을 지닌 자연재해입니다. 이미 800명 이상이 생명을 잃었는데도 그 숫자는 늘어나고 있고, 이재민의 수가 2백만이 된다는 보도입니다.

 

  아이티의 지진에 이어 계속하여 발생하는 자연 재해 앞에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들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닥친 재난 앞에서 인종과 국적을 따지지 않고 큰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구체적으로 돕는 이들에게 예수님께서는 특별한 사랑을 주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웃을 사랑하면서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인간이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면서 창조질서를 보존하는 삶의 지혜를 배우는 은혜로운 기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생명을 잃은 아들과 그들이 가족들,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위하여 특별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교구에서는 사순절 동안 어려운 본당과 자선 활동을 위하여 2차 헌금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미 자선 활동을 위한 "교구 인성 회비"에서 칠레의 지진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하여 미화 50,000달러를 카리타스를 통하여 전달했습니다. 지진으로 큰 피해를 입고 실의에 빠진 어려운 형제들을 구체적으로 돕는 길을 찾아주시고, '칠레 지진피해 돕기" 계좌를 개설하였사오니, 적극적인 협력을 부탁드립니다.

 

칠레 지진 피해 돕기 계좌번호를 안내해 드립니다.

1. 농        협 301-0042-4809-41 대전가톨릭 사회복지회(대전 카리타스 해외원조)

2. 하나은행 654-910014-95204 대전가톨릭사회복지회(대전카리타스 해외원조)

3. 국민은행 740937-01-003670 대전가톨릭 사회복지회(해외)

 

2010년 3월 3일

천주교 대전교구장 주교 유흥식 라자로

 

 

<함께만드는 이야기마당>

 

우리 집에 초대되신 예수님 - 송미숙 글라라. 탄방동 성당

 

  재작년 새터민 홈스테이를 하기 며칠 전에 터진 탈북여성 간첩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러웠다.

  새터민에 대한 주위의 곱지 않은 시선과 편견들은 곧 새터민을 우리 집으로 맞이해야 할 나를 더욱 걱정스럽게 하였다.

  그러나 낯선 나그네를 따뜻이 영접하라셨고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나 다름없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그들을 기쁘게 맞이하기로 하였습니다.

 

  우리 집에 배정된 34세, 46세 두 명의 새터민여성들은 오롯이 자유와 평화를 찾아서 함경북도에서 두만강을 건너 중국, 라오스, 버마를 거쳐 메콩강 수백 킬로미터를 작은 쪽배에 의탁하며 구사일생으로 태국의 치앙마이까지 목숨 건 탈출을 했다고 한다.

 

  마치 영화같은 이야기라 실감나지  않았다.

  마른 몸이 안쓰러워 미역국과 불고기, 나물 몇 종류, 해물요리 등을 정성껏 만들며 준비했으나, 굶주림에 익숙하고 먹지 못한 음식들이라 위장에서 받질 않는다며 잘 먹질 못했다.

 

  저녁을 먹고 대형 마트와 재래시장을 돌며 필요한 물품을 손수 구입해 보는 장보기 체험, 지하철, 버스 등 대중교통수단 이용방법, 현금 인출기 사용법 등을 알려준 후 노래방에서 함께 손을 잡고 춤추며 노래도 불렀다. 북한 여성들이 가무에 능하다더니 과연 그랬다. 쉬지 않고 부르고 춤추고..(다음날, 나는 병이 나 버렸는데..)

 

  두 자매와 이야기를 하며 남한사회에 대해 갖고 있는 잘못된 환상과, 기대, 편견을 바로 잡아주고, 이 곳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구체적이고도 실제적인 방법과 각자 적성에 맞는 직업의 선택에 대해서도 신중하게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신앙을 전하는 일도 잊지 않았다.

 

  다음날, 이별의 아쉬움을 나누며 낯선 사회에 곧 첫발을 디딜 저들이 마치 물가에 내놓인 어린아이 같아서 마음이 아려 왔다.

  새터민 홈스테이에 함께하며 이러한 행사가 일회적으로 끝나지 않길 바라며, 새터민에 대한 따뜻한 손길과 지속적인 관심을 보여주리라 스스로 다짐하였다.

 

 

 

봄은 향기, 봄은 생명

봄은 사랑, 봄은 은혜

봄은 빛, 봄은 힘

 

나는 나를 돌아봄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지요하와 함께 보는 믿음살이 풍경>

 

쓰레기를 버릴 적마다

 

  아파트 로비 게시판에 색다른 게시물이 붙었습니다. '황당 사건, 쓰레기 투척'이라는 큰 활자로 된 제목 밑에 자세한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우리 집이 속한 라인의 2층 이상의 어느 집에서 베란다 창 밖으로 투척한 쓰레기봉투가 1층 베란다 난간에 부딪쳐 피해를 주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사진도 두어 장 붙었는데, "분유통도 보이니 어린아이가 있는 집 같군요."라는 말도 적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젊은 부부? 젊었거나 늙었거나 그런 사람들과 같은 아파트에서 산다는 사실에 묘한 공포감을 맛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차를 가지고 다니다 보면 차창 밖으로 길바닥에 담배꽁초를 버리는 사람들을 무수히 보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을 보노라면, 도대체 부모에게서 뭘 배웠고, 자식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는 사람들인지 더럭 궁금해지곤 하지요. "세상이 온통 쓰레기통인 줄로 안다는 건 자신도 쓰레기라는 표현일 거야." 이런 말을 아내에게 한 적도 있습니다.

 

  아파트 마당 한켠 분리수거 쓰레기통들이 있는 곳에는 음식물 쓰레기통들도 여러 개 있는데, 뚜껑들에는 하나같이 "반드시 이물질(비닐봉지. 패류. 뼈 조각)등을 제거한 후에 배출하셔야 합니다"라는 말이 적혀 있습니다. 그것으로는 효과가 없어 아파트 부녀회에서 "음식물 쓰레기통에 비닐봉지, 조개껍질 등을 버리지 마세요!"라고 쓴 현수막을 설치했지만, 효과가 없기는 마찬가지. 한번은 젊은 여성이 "글을 못 읽는 할머니들이 아무렇게나 버려요."라고 노인들 탓을 했는데, 아파트 미화원 아저씨는 "할머니들은 쓰레기통 안을 들어야보고 버리기 때문에 분리수거를 잘 하는데, 오히려 젊은 사람들이 안 지켜요."라는 말을 하더군요.

 

  언젠가 한번은  옷을 맵시 있게 차려입은 젊은여성이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옷에 닿지 않게 조심하며 들고 와서는 음식물 쓰레기통 안에 그대로 버리고 가다가 내 노친께 걸린 적이 있었지요. "그게 뭐라는 행동이여? 나 같은 늙은이도 쓰레기를 제대로 버릴 줄 아는데, 고등교육을 받았다는 젊은 사람이 그게 뭔 짓이여!" 하지만 그 여성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종종걸음을 치더니 날씬한 승용차에 사분 오르더군요.

 

  요즘엔 쓰레기를 버릴 때마다 노친 생각이 납니다. 노친께서 집에 계시지 않는 지금, 음식물 쓰레기를 버릴 때는 더욱 허전하고 우울해지는 기분입니다.

 

-지요하(소설가. 태안성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