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0년 주보

사순 제2주일 2010년 2월 28일(다해)

모든 2 2021. 8. 21. 11:00

"영광에 싸여 나타난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루카 9,31)

 

「거룩한 변모」, Egino Weinert

 

 

+ 루카 복음 9,28-36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졌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그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의복은 하얗게 번쩍였다. 그리고 두 사람이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영광에 싸여 나타난 그들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을 말하고 있었다.

 

   베드로와 그 동료들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나 예수님의 영광을 보고, 그분과 함께 서 있는 두 사람도 보았다. 그 두 사람이 예수님에게서 떠나려고 할 때에 베드로가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는데 구름이 일더니 그들을 덮었다.

 

   그들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자 제자들은 그만 겁이 났다. 이어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 하는 소리가 났다. 이러한 소리가 울린 뒤에는 예수님만 보였다. 제자들은 침묵을 지켜, 자기들이 본 것을 그때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말씀의 향기>

 

십자가의 영광과 아름다움 - 김선태 안드레아 천안오룡동 보좌

 

  사제로 살아가면서 신자들 앞에서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움을 느낀 적이 많습니다. 사제생활을 통한 저의 신앙생활이 많은 신자들의 신앙에 비해 보잘것 없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성탄을 앞두고 눈이 많이 내렸던 평일 오전미사에 저의 예상을 깨고 몸이 불편하신 많은 어르신들이 미사에 참석하셨습니다.

 

  "할머니,오늘 같은 날은 미사 하루 쉬시지요. 넘어져서 다치시면 큰일 나요."

  예수님은 우리 위해 십자가도 지셨는디유~. 어떻게 미사를 빼먹는데유~~~, 미사오다 다치면 십자가라 생각하쥬우~~."

 

  그 할머니의 모습에서 저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본다면 신앙생활은 참으로 어리석습니다. 몸이 다칠 수도 있으니 위험을 피해 미사 나오기 좋은 날이 더 낫다는 저의 계산이 이분들의 마음 속에  자리 잡은 하느님의 계산법과는 달랐습니다. 세상 속에 살아가는 우리들은 인간적인 시선과 계산으로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부끄럽지만 저는 자주 인간적인 저의 시선과 계산을 위해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곤 합니다. 이는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이런 시선과 계산법으로는 우리가 지금 보내는 사순 시기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수난을 곧 앞두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아주 특별한 모습으로 변모하십니다. 십자가의 수난과 죽음이 길에 앞서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것은 수난과 십자가의 길을 피하지 않고 우리를 위해 짊어지겠다는 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 그 십자가와 죽음 뒤의 영광스러움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것은 우리를 위해 기꺼이 십자가를 지시겠다는 사랑 때문에 미리 영광이 보여 지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희생 없는 부활은 없습니다. 우리의 십자가는 부활을 위한 십자가인 것입니다. 십자가의 희생과 부활은 연결 되어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모든 걸 희생하신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희생의 결과는  영광스러움이었습니다. 주님을 닮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적인 계산으로 타산이 맞지 않는 일이 내 앞에 주어져 십자가를 지어야 할 때가 온다면 기쁘게 지고 가야 하겠습니다. 그 십자가는 우리를 영광스럽게 할 것입니다. 우리의 모습이 아름답게 변해져 갈 것입니다.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시니어 칼럼>

 

건강과 장수를 위한 식생활  -오만진 아가비도. 충남대학교 식품공학과 교수

 

  인간은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어하는 본능적 욕구를 가지고 있으며 행복한 삶에는 건강과 장수가 필수적인 요건이다. 인간의 수명은 구약시대에는 보통 700-900년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나 현대의 시간 개념과 같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 기록으로 확인된 청동기 시대의 인간 수명은 18년, 예수님 시대는 22년, 18세기에는 30년이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과거에 수명이 짧았던 것은 질병 때문이었으며 항생물질의 발견으로 질병이 치료되고 식생활 향상으로 인간의 수명은 늘어나게 되었다.

 

  전 세계의 평균 수명(2006년)을 살펴보면 우리나라 79세, 일본 83세, 미국 78세, 중국 73세, 북한 64세로 우리나라는 세계 20위를 차지하였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장수국의 대열에 끼게 되었으나 출산율은 가임 부부 당 1.2 명으로 세계 최하위를 기록하고 있어 안타까운 현실이다.

 

  누구나 건강과 장수를 위해서 좋은 식품을 찾는다. 그러나 식품이 마치 무슨 약이나 되는 것 같이 잘못 생각하면 정상적인 식생활을 해칠 수  있다. 의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히포크라테스는 이미 2000년 전에 "음식물은 약이다"라는 말로 그 중요성을 강조하였으며 기원전 2세기 경 중국에서 권세를 누린 전시황도 불로장생 약을 찾았지만 49세를 일기로 병사하였다. 이 지구상에는 영양적으로 늙지 않게 하는 식품은 없으며 단지 지연시킬 뿐이다. 우리가 먹는 식품은 무엇이 좋을까 고민하지만 모든 학자들이 권하는 것은 각종 식품으로부터 영양을 균형 있게 섭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현명한 일이라고 한다.

 

  세계적으로 인간의 수명과 관련하여 암과 노화억제에 가장 많은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노화연구의 최고 권위 기관인 미국 국립노화연구소는 장수를 위해서 "영양적으로 균형 잡힌 식사를 하고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것이 최상의 장수약이다."라고 한다. 또한 비타민 C나 E, 베타 케로친 등 황산화제가 풍부한 과일이나 채소를  충분히 섭취하면 몸속의 유해산소가 제거되어 건강하게 장수할 수 있다고 하며 절식이나 소식하면 수명이 20% 이상 늘어난다는 결론을 얻어 적게 먹을 것을 권하고 있다.

 

  모든 이의 행복의 요건은 영육 간에 건강하게 사는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는 신앙생활 열심히 하고 조금 부족하게 먹는 식습관으로 바꾸고 소금도 적게 섭취하여 성인병도 예방하여야 할 것이며 적당하게 운동도 하자. 그럴 때 우리에게 건강하고 즐거운 삶이 찾아올 것이다.

 

<함께 만드는 이야기마당>

 

내 맘 속의 선(善)과 악(惡) - 서종옥 안젤라. 괴정동성당

  제 마음 속엔 늘 선(善)과 악(惡)이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남이 잘 되기를 바라는 선과 나만 잘 되기를 바라는 악, 끝없이 계속 퍼주고픈 선과 하나라도 더 받길 원하는 악, 왜 선과 악은 제 마음을 독차지하려 늘 티격태격 싸움을 하는 것일까요?

 

  왜 악은 착한 선을 못 살게 구는 걸까요?

  모든 이들이 평화롭게 산다면 세상은 더할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지나칠 정도로 커져버린 "혹부리 영감님"의 욕심 때문일까요. 아니면 "놀부"의 심술보 때문일까요? 그것도 아니면 악한 일을 하고도 뉘우침 없이 착한 얼굴로 잘 지내고 있는 가식적인 우리들의 모습 때문일까요? 가만 보면 악은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신종플루"보다 전염성이 더 강한 것 같습니다.

 

  악은 선을 아주 많아 싫어합니다. 선과 친해지려 절대로 애쓰지 않습니다. 악은 선을 경멸하고 빈정대고 멸시합니다. 악은 세상에 남아 있는 선을 모두 없애고 어둠의 검은 세상으로 만들려고 일부러 견디기 힘든 고통을 줍니다. 참기 힘든 고통을 받을 때만 저희들은 울부짖습니다.

 

  "예수님! 어디 계신거예요?" "성모님! 좀 봐 주세요. 저 아주 많이 힘들어요." 하지만 우리의 예수님은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부족한 우리가 악보다는 선을 더 많이 행하려 애쓴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럼 악(惡)이 싫어하는 것은 뭘까요?

  악은 오래 참는 걸 싫어합니다.

  악은 스스로 잘못을 뉘우치는 걸 싫어합니다.

  악은 싸우지 않고 용서하는 걸 싫어합니다.

  악은 서로 도와주는 것을 싫어합니다.

  악은 행복에 겨워 큰 소리로 웃는 걸 싫어합니다.

  악은 자기를 낮추는 겸손을 싫어합니다.

  그리고 악은 세상 모든 이들이 서로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진 것을 함께 나누고 베풀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을 아주 싫어합니다.

 

  많이 힘들겠지만 우리 모두 지금부터 악이 싫어하는 짓만 골라하면 어떨까요? 항상 기쁨과 웃음과 행복이 가득한 세상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하루하루가 됐으면 합니다.

 

 

<지요하의 함께 보는 믿음살이 풍경>

 

별난 기도

 

  언젠가 한번 천안에 있는 한 대학교를 간 일이 있었습니다. 그 대학의 교수 한 분을 만나 인터뷰를 하는 일이었습니다. 약속 시간보다 40분 정도 일찍 도착한 나는 교정의 한 벤치에 앉아 맑은 봄햇살이 쏟아지는 길을 경쾌하게 오가는 수많은 대학생들의 발랄한 모습을 보며 묵주를 손에 쥐었습니다. 그런데 길 가운데에 플라스틱 빈 물병이 하나 떨어져 있었습니다. 그 물병은 학생들의 발길에 채여 한쪽 길가로 이동되었습니다. 그 물병 앞으로 수많은 학생들이 오고 갔습니다. 그냥 지나갈 뿐이었습니다. 학생들은 그 물병을 아예 보지 못하거나, 보아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무심(無心)만이 오갈 뿐이었고, 그 버려진 빈 물병은 누구에게도 상관이 없는 사물이었습니다.

 

  나는 그 빈 물병을 주워 근처 쓰레기통에 버리려고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몇 걸음 떼었다가 도로 벤치에 앉았습니다. 인터뷰할 교수와의 약속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 나는 묵주를 쥐고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하느님, 제가 오늘 이 자리에서 길바닥에 버려진 저 빈 물병을 주어 쓰레기통에 버리는 학생을 보게 해 주십시오. 그런 학생이 제 눈앞에 나타나게 해주십시오. 성모 마리아님,도와 주십시오."

 

  혼자 슬며시 웃음을 머금기도 했습니다. 내가 오늘 참 별난 기도도 다한다는 생각, 이런 기도를 해보기는 처음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어서 웃음을 머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늘 기도는 점점 더 절절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이윽고 약속 시간이 거의 되어 나는 벤치에서 몸을 일으켰습니다. 내 손으로 그 물병을 처리할 생각이었는데, 마지막일 것 같은 한 여학생이 저만치에서 바삐 오고 있었습니다. 일단 몇 걸음 지나쳤던 그 여학생은 뚝 걸음을 멈추더니 되돌아 와서 그 물병을 집어들고 다시 발길을 재촉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 여학생의 뒷모습을 고즈넉이 바라보면서 입 속으로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뇌었습니다. 내 별난 기도를 하느님께서 들어주셨다는 생각이 절로 들더군요.

 

-지요하 (소설가. 태안성당)-

 

 

바람이 있어 물결이 일고

물결을 보고

바람을 알 듯

 

우리는 당신의

믿음을 느낍니다.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