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3년 주보

성 김대건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경축 이동 2013년 9월 22일(다해)

모든 2 2021. 7. 22. 01:00

「그리스도의 사랑」 김명숙 사비나. 대전가톨릭 사진가회(2013)

"무엇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갈라놓을 수 있겠습니까?"(로마 8,35)

 

+ 루카복음 9,23-28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말씀의 향기>

 

신앙 생활에도 청춘이 있다. "설렘으로 하느님 만나기" - 이영일 야고보 관저동 보좌

 

  청춘(靑春)은 누구나 듣기만 하여도 가슴이 설레는 말이다. 이런 말이 있다. "망설임과 방황은 청춘의 특징이자, 특권이다. 그만큼 창피한 기억도 많고 실패도 많다. 부끄러움 없는 청춘, 실패 없는 청춘은 청춘이라 이름할 수 없다."(다치바나 다카시,「청춘들에게 고하다!」)

 

  오늘은 '한국 순교자들 대축일'로 교회는 신앙 안에서 가장 부끄럽지 않은 삶을, 신앙생활의 청춘을 사신 순교자들을 기억하고 현양 한다. 순교자들의 죽음이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실패와 좌절이겠지만, 신앙의 눈으로 볼 때는 설렘과 열정이니 이보다 더한 청춘이 어디 있겠는가.

 

  순교자들이야말로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산 사람들이다. 순교자들은 결코 예수님을,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순교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서라도 예수님을 차지했던 사람들이다.

 

  이러한 순교자들 앞에서 우리는 오늘 또 다시  부끄러움을 느낀다. 우리 일상은 순교는 커녕 성호경 긋는 것, 성당 다닌다는 말 한마디조차 부끄러워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세상과 사회 앞에 예수님을 말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전하기를 망설이기 때문이다. 우리 신앙생활에는 가슴 설레는 청춘이 존재하지 않는 듯 하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사람의 아들도 자기의 영광과 아버지와 거룩한 천사들의 영광에 싸여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다."

 

  사실 순교자들이 순교를 택하기까지 얼마나 망설였겠는가. 조롱과 고통의 박해 속에서, 생사의 갈림길 속에서 순교자들 역시 망설이고 방황했으며 창피하고 피하고 싶은 시간들이 있었으리라.

 

  하지만 순교자들은 독서의 바오로 사도처럼 갈림 없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확신을 지니고 있었다. 이 확신 속에 순교자들은 모든 부끄러움을 벗어버릴 수 있었다. 당당히 하느님을 택하고, 신앙을 표현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영원무궁한 복을 누리고 있다.

 

  누구나 청춘을 사는 것을 희망하며 청춘을 살기에 후회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주님의 사랑은 우리의 부끄러움보다 늘 크시다. 그러니 주님의 사랑 속에서 우리 신앙생활의 청춘을 사는 것은 후회 없는 선택이다. 어제는 부끄러웠던 신앙의 결단들이었다면 오늘은 가정에서, 사회에서 크고 작은 것이라 해도 주님을 증언하고 신앙을 표현하며 당당히 살아보자.

 

  어느덧 103위 순교성인들의 삶뿐만 아니라 장차 시복될 하느님의 종 125위의 신앙선조들의 삶은 신앙인들의 청춘에 더욱 힘을 줄 것이다. 시복시성을 위해서도 계속 함께 기도하자.

 

 

청소년 바로보기(43)

 

교회,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어주고 있는가?④

 

  주일학교 여름 신앙캠프는 교사들에게도, 아이들에게도 매우 중요한 경험이 됩니다. 2박 3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지만 주일학교 교육이 1주일에 1번 1시간씩 이루어진다는 것을 생각해볼 때, 2박 3일의 시간은 1년 동안 이루어지는 모든 교리시간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시간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면 캠프는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매우 중요한 신앙 교육의 현장이라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캠프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습니다. 아이들은 이 캠프 기간 동안 자신의 삶의 자리르 떠나게 됩니다. 학교와 집을 떠나 자연으로   들어감으로써 아이들은 그동안 벗어날 수 없었던 모든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하느님께서 지어내신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유롭게 자신을 만나고, 자신의 감정을 살피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청소년의 아이들에게 참으로 중요한 시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이들은 캠프를 통해 그동안 미처 돌보지 못했던 자신의 깊은 마음속의 욕구들을 만나고, 또래의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며 나름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이해받고 수용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캠프가 끝난 뒤 주일학교의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것은 프로그램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바로 이런 역동들이 아이들의 마음을 움직여 놓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캠프 기간동안 교사나 봉사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프로그램의 운영이 아니라, 아이들이 참된 자유 안에서 그동안 미처 돌보지 못했던 자신의 마음속을 만날 수 있게 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캠프가 진행되는 동안 아이들이 선생님들의 통제를 제대로 따르지 않는다고 혼내는 모습을 아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을 위해'자신의 방학마저 포기한 채 캠프를 준비해온 교사들이 정작 캠프 기간 동안 '자신들의 계획'대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아이들을 혼낸다면 그 캠프가 아이들을 위한 캠프일까요? 혹시 '프로그램'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아이들이 도구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성공적인 캠프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잘 짜여진 시간계획에 따라 모든 프로그램이 완벽화게 진행된 캠프가 성공적인 캠프일까요? 프로그램은 좀 허술했더라도 아이들이 행복해 하며 자신을 새롭게 만날 수 있었다면 그것이 성공적인 캠프가 아닐까요? 그런데 캠프 평가회의를 할 때 보면 프로그램 진행상의 문제에만 초점을 두고 아이들의 역동은 잘 다루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프로그램'에 쏠려 있는 우리의 눈을 '아이들'에게 돌리고 그들의 마음을 만나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 교회가 아이들에게 희망이 되어주기 위해 갖추어야 할 가장 중요한 태도입니다.

-오종진 신부. 복수동 주임-

 

 

미사 속 숨은 보화

 

감사송(Pradfatio) 1-명칭과 의미

  이 기도의 라틴어 명칭 "쁘레파씨오(Praefatio)"는 서언, 서문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과거의 미사 경본에는 "감사 서문경"으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의 첫 음절 prae-는 앞을 의미하는데, 이는 단지 시간개념을 표시할 뿐 아니라 장소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Prea-fatio는 감사기도의 서언이나 입문의 의미뿐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와 공동체 앞에서 바치는 감사의 기도라는 의미도 포함됩니다.

  감사송을 바치는 것은 감사기도를 준비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공동체 앞에서 공동체와 함께 하느님께서 주시는 은총을 돌아보며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신앙의 해 특집

가톨릭 교리 해설(36) -김두한 신부.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

 

제3편-제2부-제2장-제4절 : 넷째 계명

 

  넷째 계명은 "부모에게 효도하여라."입니다. 이 계명은 자녀로서 마땅히 드리는 부모 공경과 부모의 자녀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명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심으로써 가정을 세우셨고, 가정의 기본 구조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가정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남녀는 부부 공동체를 이루고, 그 사랑의 결실로 얻은 자녀를 기르며, 가족끼리 서로 헌신과 존중, 감사와 존중을 나눕니다. 특히 그리스도의 가정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과 희망 그리고 사랑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가장 기초적인 신앙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가정을 가정 교회라고 합니다. 가정의 구성원들은 동등한 존엄성을 지니고, 각자의 가정 안에서 책임과 권리와 의무를 가집니다.

 

  자녀들은 자신을 낳고 길러 준 부모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부모의 은혜에 보답해야 합니다. 부모 공경은 참다운 공손과 순종으로 드러납니다. "자녀 여러분, 무슨 일에서나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 마음에 드는 일입니다." (콜로 3,20) 부모 공경은 하느님 공경과 밀접히 연결됩니다. 하느님을 향한 신앙의 첫 열매가 효도입니다. 보이는 부모님을 제대로 공경할 수 없다면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바르게 섬길 수 있겠습니까?

 

  특히 부모의 노후를 정성껏 보살펴 드려야 합니다. 자녀들은 힘닿은 데까지 부모의 노년과 병환 중에, 고독하거나 곤궁한 때에 물질적 정신적인 도움을 드려야 합니다. 또한 부모 공경에는 형제자매들 간에 우애 있게 지내는 것이 포함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부모와 조상들의 기일을 기억하며 기도드리고, 필요하다면  제사를 바쳐야 할 것입니다.

 

  부모는 하느님께 받은 권위와 책임을 가지고 자녀들을 보살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자녀 교육은 부모의 기본적이고도 양도할 수 없는 권리이며 의무입니다. 성장해 가는 자녀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부모의 가치관, 습관, 태도, 생활 방식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생활의 모든 면에서 우선 모범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부모는 자녀들을 '하느님의 자녀'로 보아야 하고, '인격을 갖춘 인간'으로 존중해야 합니다. 부모는 원하는 행동과 선택을 자녀들에게 강요하기보다 그들의 솔직한 생각을 듣고 이해하면서 바른길을 제시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의 신앙생활을 위한 교리교사입니다. 부모는 가정 안에서 자녀들에게 신앙을 전해주고, 그 신앙에 따라 살도록 가르칩니다. 부모가 하는 신앙 교육은 아주 어릴 때부터 가르치고 미사에 함께 참여하는 신앙생활로써 신앙의 올바른 기초를 마련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순교자 성인들께서

흘리신 피

우리의 마음속에

십자가로

거듭나게 하여 주소서.

 

글. 그림 이순구 (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