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3년 주보

연중 제27주일(군인주일) 2013년 10월 6일(다해)

모든 2 2021. 7. 22. 01:45

변윤철 신부(샤갈. 아브라함의 믿음[이사악의 희생],1960-66, 성서 미술관)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 한 믿음이라도 있으면"(루카 17,6)

 

+ 루카 복음 17,5-10

 

<너희가 믿음이 있으면!>

 

   그때에 사도들이 주님께,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주님께서 이르셨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

 

   너희 가운데 누가 밭을 갈거나 양을 치는 종이 있으면, 들에서 돌아오는 그 종에게 '어서 와 식탁에 앉아라.' 하겠느냐? 오히려 '내가 먹을 것을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시는 동안 허리에 띠를 매고 시중을 들어라. 그런 다음에 먹고 마셔라.'하지 않겠느냐? 종이 분부를 받을 대로 하였다고 해서 주인이 그에게 고마워하겠느냐?

 

   이와 같이 너희도 분부를 받은 대로 다 하고 나서,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하고 말하여라."

 

 

<말씀의 향기>

 

군인들을 위하여 기도합시다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해 줄 뜻을 품으십시오(로마 12,17)

-권지훈 베드로 육군 한밭 주임

 

  '군인'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하여 일정한 조직 체계에 소속되어 전투를 수행할 수 있도록 교육, 훈련을 받고, 전시에는 직접 전투에 종사하는 사람입니다. 이렇게 사전적 의미를 보면 군인이라는 직업은 자신의 생명을 생각치 않고 살아가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군인으로서의 삶의 선택은 '징병제'와 '모병제'가 있습니다. 그중에 우리나라의 군제도는 '징병제'에 해당합니다. 이런 제도를 시행하다 보니 많은 젊은이들이 군대라는 곳이 왠지 회피하고 싶은 곳이 되어버린 것이 사실입니다. '군인'이라는 사전적인 의미를 살펴보았듯이 군인의 몫은 그 가치에 있어 너무나도 숭고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말이 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삼베로 만든 수의를 입고 땅에 묻힙니다. 그런데 군대 생활을 하다 죽음을 맞이하면 '전투복'을 입혀 땅에 묻는다고 합니다. 즉, 군인들은 매일같이 죽음의 상징인 전투복을 입고 사랑하는 조국과 가족을 위해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왜 젊은이들은 이 숭고한 일을 피하고자 하는 걸까요? 솔직히 '일'이라는 것은 자신이 원해서 하는 일도 있지만, 누군가에 의해 억지로, 다시 말해 하기 싫음에도 해야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21개월이라는 시간이 원해서가 아니라, 억지로 끌려와 군대라는 울타리에서 사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서 일 것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은 먼저 일에 뛰어들기 전에 겁부터 먹고 시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다시 군대에 들어간 군종신부의 삶이 달갑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덧 6년째 군종에서 사목을 하며, 어리숙했던 많은 병사들이 성숙해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끼게 됩니다. 특히 사회에서 신앙생활을 잠시 쉬었던(?) 병사들이 다시금 성당에 나와 두 손을 모으고 미사참례를 하는 모습을 보면, 마치 돌아온 탕자를 안아주는 아버지의 모습이 제 모습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줍니다. 예전에 어르신 신자 한 분이 제 손을 잡고 하시는 말씀이 "신부님, 제 손주 녀석이 군대에 가서 다시 성당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신부님!" 이었습니다. 이런 어르신의 말씀은 제가 해야 할 일에 대한 뿌듯함과 더 많은  책임감을 심어주었습니다.

 

  군인주일입니다. 이런 뿌듯함과 책임감을 모든 군종사제들이 느끼며 살아갈 수 있도록 특별히 기도를 해주시는 날니다. 모든 국민의 아들들인 병사들이 아무런 사고 없이 주어진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군종사제들이 많은 병사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피울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청소년 바로보기(45)

 

이 시대의 아이들에게 우리 교회는 무엇을 주어야 하는가?①

 

  '고3 수험생의 자아존중감과 스트레스 대처방식 및 학업적 자기 효능감과의 관계' 제 학위 논문의 제목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극심한 학업 스트레스를 받는 아이들이 바로 고3 수험생들입니다. 학교에서 지켜본 바에 의하면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고3이라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어떤 아이들은 아주 사소한 일에도 쉽게 짜증을 내고 불안해하며 적응상의 문제를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이러한 문제를 드러낼 때면 부모님이나 선생님은 문제행동을 바로 잡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하지만 당장의 문제를 해결했다 하더라도 스트레스가 또 쌓이게 되면 그 아이는 똑같은 문제 행동을 다시 드러내고 맙니다. 스트레스를 잠시 덜어냈을 뿐 근복적으로 그 상황을 견뎌낼 수 있는 내적 자원을 채워주지는 못했기 때문이지요. 똑같은 환경 안에서 살아가는데 왜 이런 때도의 차이를 가져오는 근본적인 요인이 자아존중감이라는 것을 검증하고자 했습니다.

 

  검증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 고3이라는 똑같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자아존중감의 정도에 따라 아이들이 경험하는 스트레스의 정도는 아주 분명한 차이를 드러냈습니다. 또 자아존중감이 높은 아이들은 스트레스 상황에서 적극적인 대처방식을 보였고, 이렇게 자아존중감이 높고 스트레스에 적극적인 대처방식을 보인 아이들은 학업적 효능감 또한 높았습니다. 그리고 학업적 효능감이 높은 아이들은 실제 성적도 높았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학업 성취의 결과만을 중시하는 오늘의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큽니다. 누구도 고3 아이들의 스트레스 자체를 없애줄 수는 없지만, 통계적인 검증에서 드러났듯 아이들에게 자아존중감을 키워줄 수 있는 기회가 지속적으로 제공된다면 아이들이  경험하는 스트레스의 강도는 아주 분명하게 줄어들게 됩니다. 또한 자아존중감이 높으며 스트레스 상황에 적극적으로 대처해나갈 수 있게 되고, 그럼으로써 학업적 자기 효능감까지도 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고3이 되면 시간표에서 체육, 인성교육 등의 시간이 사라집니다.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 보면 어느 때보다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이기에 자아존중감을 키우고 스트레스 대처방식을 변화시켜 갈 수 있는 인성 교육의 기회가 더더욱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이런 시간들이 직접적으로 성적을 향상시켜 줄 수는 없지만 아이들이 심리적 안녕감을 느끼며 적응적인 태도를 갖추는 데에 분명한 영향력을 미침으로써 학업적 수행을 더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학교는 이를 충족시켜주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우리 교회에서라도 이런 역할을 해 주어야 하는데 본당의 주일학교 역시 고3을 위한 교육과정이 빠져 있습니다.

-오종진 신부. 복수동 주임-

 

 

미사 속 숨은 보화

 

감사송(Praefatio) 2- 변천과정②

 

  20세기에 이르러 교회는 10개의 기존 감사송에 위령 감사송, 요셉 감사송, 예수 성심 감사송 등을 포함하여 바티칸 공의회 이후 현재 82개의 감사송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감사송의 본질적인 의미에 대해 미사경본 지침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감사는 특히 감사송으로 표현된다. 사제는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 전체의 이름으로 하느님을 찬양하고, 그분의 전 구원 업적, 또는 날, 축일, 시기에 해당하는 신비에 대해 특별히 감사드린다."

  미사경본에 수록된 감사송은 각각의 특성에 맞게 하느님의 영광과 구원업적,특히 그리스도의 구원에 대한 찬양과 감사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신앙의 해 특집

가톨릭 교리 해설(38) - 김두한 신부.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

 

제3편-제2부-제2장-제6절 : 여섯째 계명

 

   여섯째 계명은 "간음하지 마라."입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이 계명을 인간의 성(性) 전체와 관계하여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성 자체에 머물지 않고 왜 우리의 성이 신성하고 소중한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명 안에서 설명하였습니다. 이 소명은 하느님께서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남녀의 결합으로 사랑과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놀라운 선물인 자녀를 출산하여 하느님의 청조능력과 부성(父性)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섯째 계명은 무엇보다도 부부간의 사랑을 보호합니다. 부부생활은 가정생활의 기초가 되고 사회생활의 원동력이 됩니다. 부부 사랑에 있어서 배우자 이외에 다른 사람과의 사랑은 있을 수 없으며, 제3자에 의해 침해되어서도 안됩니다. 이 여섯째 계명은 혼외정사를 금하는 명입니다. 부부의 부정(不貞)을 가리키는 간음은 하느님께서 제정하신 혼인의 뜻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죄입니다. 간음은 배우자의 권리를 침해하고, 혼인의 기초가 되는 부부의 신의를 침해하고, 혼인의 기초가 되는 부부의 신의를 어기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섯째 계명은 성의 본래 목적에 부합하는 정결한 생활을 명합니다. 정결은 성이 인격 안에 훌륭히 통합되어 있고, 그 때문에 육적이며 영적인 존재인 우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내적 일치를 뜻합니다. 성은 인간의 품위에 맞게, 남녀가 온전히 서로 내어주고, 인격 대 인격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섯째 계명은 단지 금지에 대한 조항이 아니라 사랑을 배우고 성에 대한 올바른 관계를 이루기 위한 지침입니다.

 

  정결은 자제력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누구나 성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적 유혹과 충동에서 그 유혹을 따라가느냐 아니면 물리치느냐 하는 선택은 우리에게 달려있습니다. 그래서 이를 절제의 덕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정결한 사람이 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신분에 알맞게 정결한 생활을 하도록 요청받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위해 동정을 지키는 이들은 독신생활로써 정결을 실천하고, 혼인한 사람들은 부부로서 정결을 지킵니다.

 

  정결을 거스르는 죄는 방탕, 자위, 사음(邪淫), 포르노, 매매춘, 강간, 동성애 등이 있습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동성애 행위를 그 자체로 무질서라고 천명해 왔습니다. 그런데 동성연애자들이 스스로 동성에 성향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이 성향은 그들 대부분에서 시련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을 존중하고 동정하며 친절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들에게 어떤 부당한 차별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겨자씨 같은

믿음

새로 나게 하소서

새로 나게 하소서.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