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윤철 신부(갈라 플라치디아의 영묘 모자이크(부분) 이탈리아 라벤나)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루카 9,20)
+ 루카복음 9,18-24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실 때에 제자들도 함께 있었는데, 그분께서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고 물으셨다.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엘리야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옛 예어자 한 분이 다시 살아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시자,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ㄹ라고 엄중하게 분부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이어서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하고 이르셨다.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
<말씀의 향기>
너는 누구냐? "하느님과 일치하기" - 곽상호 사도요한 문화동 주임
오늘은 연중 제12주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물으십니다.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그러자 베드로는 대답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엘리야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고, 옛 예언자 가운데 한 분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여러 가지 설명들을 늘어놓지만, 그 누구도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정확히 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번에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물으십니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은, 지금 자신들과 함께 머물러 계신 분이 어떤 분이신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왜 이들은 군중들과는 달리 예수님을 올바로 알아볼 수가 있었을까요?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예수님과 함께 머무르면서 그분의 말씀을 들었고, 그분의 가르침을 배웠으며, 그분의 삶 전체를 몸으로 느꼈던 것입니다. 이것을 가리켜서 우리는 전례적인 삶을 살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우리의 삶이 전례적으로 물들지 않으면, 다른 말로 우리의 삶이 전례를 중심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우리가 신앙적 선택, 신앙적 삶을 살아야 하는 결정적 순간에, 올바른 선택을 하지 못하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삶이 하느님을 향한 마음, 하느님을 향한 기도의 삶으로 충만되어 있을 때, 우리는 평소의 삶에서 신앙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살아있는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떻게 해야 보다 더 전례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유일한 생명의 길로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신 것은, 십자가의 길은 나를 버리는 길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기적인 삶에서, 세속을 향하는 나의 욕심에서, 게으른 삶에서, 탐욕스러운 삶에서, 나를 버리고 나를 비워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그 안에서 삶의 길을 찾으며, 실제의 삶에서 하느님과 일치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야 우리는 비로소 하느님을 향하는 구원의 삶을 살 수가 있게 되는 것이지요. 우리들의 마음이 채워져야 할 것은 욕심이 아닌 하느님의 말씀이어야 합니다. 나를 하느님의 말씀으로 채움으로 인해 우리는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고, 하느님과 일치된 우리는 평화와 생명의 길을 걸을 수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비로소 나는 누구인가? 하느님 앞에서 선 우리 자신을 바라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청소년 바로보기(30)
수도회와 연계한 청소년 사목의 필요성
저는 우리 교회가 인정하기는 싫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 청소년 위기에 있어서 한 마음으로 함께 손을 잡아야 할 이들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그러면서 공동의 관심을 가져야 하는 교구와 수도회의 연계를 생각해 봅니다. 우리 대전 교구 안에는 특별히 청소년 사목 자체가 카리스마인 살레시오회 공동체가 대전과 태안에 있고, 청소년 교육에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대전에서 성모 여자 고등학교를 운영하는 예수 수도회, 논산에서 센뿔 여자 중고등학교를 운영하는 살트르 바오로 수도회, 천안에서 복자 여자 중고등학교를 운영하는 복자 수도회가 공동체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본당에서 활동하시는 다양한 수도회의 수녀님들도 많은 부분 청소년들과 함께 호흡을 하시고 계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수도자들의 모범은 곧 젊은이들의 성소로 이어지고, 하느님 나라를 위해 투신하는 젊은이들이 늘어날수록 교회가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소명을 이 땅에서 수행해야 할 복음 선포에 힘을 얻을 수가 있는 것이겠지요. 수도회가 교구를 무시하고 청소년 사목을 하기가 어렵듯이 교구 역시 수도회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공동체가 각자의 카리스마를 교회 안에서 조화롭게 표현하고 그 모든 영적인 보물들을 많은 젊은이들이 만날 수 있도록 서로가 협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성소 육성에서야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지만 한편으로 그러한 성소 육성의 배경이 되는 청소년 신앙 교육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시대의 청소년들에게 들려지는 많은 왜곡된 가치들을 바로 잡을 수 있는 길에는 신부님, 수녀님, 수사님들이 영향력 있는 영적인 목소리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이제까지는 우리가 서로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살았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이 청소년 사목의 위기를 공유하는 교회 안의 각 지체들은 마음을 모으고 함께 할 사목을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각각의 수도회 안에서도 우리 사회에서의 청소년을 있는 눈을 가진 청소년 사목의 지도자를 양성해 주기를 바라며, 우리 교구 역시 청소년 심리와 상담, 청소년학을 연구하는 청소년 사목 전문 지도자의 양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교회 안에서 하나의 팀을 구성하고 함께 고민하고 함께 대안을 찾는 그러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지난 몇 년간 대학 사목을 담당하는 신부님께서 대전 교구 내에 있는 선교회와 수도회와 연계해서 했던 많은 작업들이 눈에 띄게 좋은 능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 시대 젊은이들은 다양한 카리스마를 원하고 있다는 생각을 뒤늦게나마 하게 되었고 또한 이러한 모습들이 앞으로 더욱 더 큰 발전을 이루어 가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박진홍 신부. 청소년 사목국장-
미사 속 숨은 보화
감사 기도문 제4양식
네 번째 감사 기도문은 동방 교회의 양식에 가장 가까운 기도입니다. 그러면서도 로마의 전승과도 적절한 균형을 이루고 있어서 일치 양식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전체적인 내용은 하느님의 창조에서 시작하여 종말 재림에 이르기까지 구원역사를 성서적인 언어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내용이 풍부하다는 장점이 있기에, 어느 정도 성경에 대한 지식이 있는 공동체와 함께 미사를 봉헌할 때 바치기 좋은 기도입니다.
제4양식은 감사기도문 전체가 서로 긴밀히 연결된 단일한 기도이기 때문에 다른 감사송을 쓸 수 없습니다. 따라서 고유 감사송이 있는 미사나 장례 미사 등에는 쓰이지 않습니다.
신앙의 해 특집
가톨릭 교리 해설(23) - 김두한 신부.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
제2편 -제2부-제2장-제5절 : 병자성사
우리는 크게 괴롭혀 온 문제들 중에는 질병과 노쇠가 있습니다. 질병 때문에 우리는 자신이 무능과 한계를 체험합니다. 또한 홀로 병고와 죽음의 두려움을 맞서야 할 때, 우리는 세상과 단절되는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낍니다. 이럴 때 우리는 병자성사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고 그리스도인답게 병고를 이겨 낼 수 있는 위로와 용기를 얻으며 치유의 은총을 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선포를 위해 제자들을 파견하실 때, "앓는 이들은 고쳐 주어라."(마태 10,8)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많은 병자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습니다.(마르 6,13 참조) 이와 같이 교회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병자들을 보살피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여러분 가운데에 앓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 사람은 교회의 원로들을 부르십시오. 원로들은 그를 위하여 기도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그에게 기름을 바르십시오. 그러면 믿음의 기도가 그 아픈 사람을 구원하고, 주님께서는 그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또 그가 죄를 지었으면 용서를 받을 것입니다."(야고 5,14-15), 전통적으로 병자성사의 핵심은 사제의 도유(기름 바름)입니다. 사제는 환자에게 안수를 하고 기름을 바르면서 성사의 특별한 은총을 청합니다. 이어서 성체를 영하고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위로와 평화와 용기의 은총을 받습니다. 또한 병자성사는 공동체적인 예식입니다. 가족들과 함께 신자들이 모여 환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기도와 관심으로 환자는 고통을 이겨낼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병자성사는 누가 받는 것일까요? 병자성사는 생명이 위급한 상황에 있는 사람만이 받는 성사가 아닙니다. 병자성사는 중병에 있는 환자, 위험한 수술을 받으려는 환자, 노환으로 쇠진해진 신자들이 받습니다. 그리고 건강이 회복되었다가 다시 중병에 걸리면 다시 병자성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이 예식을 더 이상 종부성사라 부르지 않고 '병자성사'라고 부릅니다.
가족 중에 질병이나 노환으로 고통받는 혼자가 있다면, 의식이 있을 때 사제에게 청하여 병자성사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 환자가 집에 있다면 본당 신부님에게, 병원에 있다면 원목 신부님에게, 두 분이 계시지 않을 경우 그 지역에서 가까운 곳에 계시는 신부님에게 병자성사를 청하면 됩니다. 가정에서 신부님을 모실 때는 미리 상위에 흰 보자기를 덮고 그 위에 십자가, 성수, 촛불을 준비합니다. 필요하면 환자의 영성체를 위해 생수를 함께 준비합니다.
누구나 병이나 노쇠의 고통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께 의지할 수 있습니다. 병자성사를 통해 주님께서 우리 곁에, 그리고 항상 영원히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삶이 때로는
힘들고 아프며
쓸쓸하지만
우리는
주님을 따라갑니다.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 > 2013년 주보'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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