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3년 주보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 경축이동 2013년 7월 7일(다해)

모든 2 2021. 7. 10. 14:03

「증언」 강진영 신부(솔뫼성지)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마태 10,20)

 

 

+ 마태오복음 10,17-22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 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이 너희를 의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이다.

또 너희는 나 때문에 총독들과 임금들 앞에 끌려가,그들과 다른 민족들에게 증언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넘길 때,어떻게 말할까,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무엇을 말해야 할지, 그때에 너희에게 일러 주실 것이다.

사실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안에서 말씀하시는 아버지의 영이시다.

형제가 형제를 넘겨 죽게 하고 아버지가 자식을 그렇게 하며, 자식들도 부모를 거슬러 일어나 죽게 할 것이다.

그리고 너희는 내 이름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말씀의 향기>

 

임자 하느님의 사람으로서의 사제 "주님만이 나의 몫" -김수겸 프란치스코 오산 주임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지어 교회 안에 있는 신자들까지도 하느님과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보다 더 화려하고 편안한 세상을 추구하고 있다. 그 때문에 새로운 신자들은 점점 줄어가고 기존의 신자들마저 교회를 떠나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신앙의 현실 앞에서 교회는 '새로운 복음화'를 통해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 어려움의 해결을 위해 한 사람을 지목한다. 그가 바로 사제라 불리는 사람이다. 사제가 변해야 교회가 변한다고 목소리르 모은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니다. 하느님의 일을 이루어가는 사목의 일선에서 사제가 차지하고 있는 자리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사제가 변해야 한다는 말을 사제가 문제라는 식으로 오해 아닌 오해를 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서에 의하면, 사제는 근본적으로 '하느님께 바쳐진"(민수 3,9) "하느님의 것(민수 3,12)"인 사람이다. 이렇게 사제는 하느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사람들로서 하느님의 일을 어느 누구보다도 애써 고민하고 하느님의 일을 자신에게 사제를 가리켜 "'주님만이 나의 몫'이라고 말한 수 사람"이라고 했다. 곧 사제는 자신의 삶 안에 하느님을 담아내기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놓은 사람이다. 또한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는 교우들을 향한 마지막 회유문에서,하느님을 가리켜 이 세상 모든 것을 차지하고 있는 주인이라는 의미로 '임자'라고 부르며, 자신의 임자이신 하느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그 임자를 향한 삶의 끝에 배교하라고 강요하는 관원들에게 "임금 위에 천주께서 계셔 당신을 공경하기를 명하시니... 아무리 임금의 명이라도 그것이 옳은 일이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말했으며, 순교 직전의 최후 증언으로 "이제 내가 주는 것은 그분을 위해서입니다."라고 고백했다. 이처럼 사제는 자신의 죽음 안에서도 마지막까지 하느님을 찾고 하느님 안에 머무르는 사람이다.

 

  이러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의 삶을 이끌어 가신 임자이신 하느님께서, 오늘날에도 당신의 사제를 성별하여 세우시고 당신의 것으로 쓰시는 한, 임자이신 하느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 놓았던 성 김대건안드레아 사제를 닮은 하느님의 사제가 있는 한, 오늘의 교회는 여전히 희망이 있다.

 

 

청소년 바로보기(32)

 

청소년을 바라보는 교회의 시선

 

  청소년기는 내일을 향한 꿈과 희망을 가슴에 담고, 자신 안에 잠재되어 있는 가능성을 탐색하고 이를 구체화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도전할 수 있는 기회와 자유가 보장된 활력이 넘치는 시기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오늘의 세상은 청소년들을 단순한 소비의 주체로, 이익 추구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거친 경쟁을 이겨낸 소수의 청소년들을 롤모델로 제시하여 주어진 현실을 잘 참고 견뎌내라는 일방적인 메시지를 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발견하고, 자아실현을 위한 탐색과 도전을 해야 할 청소년들이 정작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볼 기회도, 자신 아예 담긴 희망을 제대로 알아볼 기회도 갖지 못한 상태에서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을 갖추기 위해 앞으로만 달려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세상이 요구하는 이런 기대와 기준은 청소년들에게 자신들이 얼마나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존재인지, 자신들이 얼마나 희망으로 가득찬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 줄 수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 교회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지니셨던 인간관,그리스도의 가치관만이 이 시대의 청소년들에게 참된 희망과 삶의 본질적인 가치를 전해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손수 빚어 만드신 하느님의 모상"이기에,"하느님의 영을 간직한 존재"이기에 내가 "나"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존중받고 사랑받기에 충분하다는 것을,꿈을 향해 도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 시기가 참으로 소중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전해줄 때에만 활력을 잃은 청소년들이 되살아날 수 있고, 이런 가치를 전해주는 것은 우리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우리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소중한 사명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자신 안에 담긴 소중한 희망을 미처 발견하지 못한 지쳐있는 청소년들에게 희망과 활력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청소녀들을 바라보는 교회의 시작부터 점검을 해 보아야 합니다. 과연 우리는 청소년들을 희망과 가능성으로 가득찬 소중한 존재로, 아름다운 존재로 바라보고 있을까요? 혹시 마음껏 뛰어놀아야 할 나이에 제대로 놀지도 못한 채 성적의 압박에 시달려야 하는, 능력과 업적을 중시하는 물질문명의 피해자로 그들을 규정짓고 불쌍하고 안타까운 눈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있지는 않을까요? 청소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동정이나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에 대한 지침이 아닙니다. 우리 시대의 청소년들에게는 그리스도께서 사람들을 바라보셨던 바로 그 시선('세상이 너를 무시하고 단죄할지 모르지만, 너는 하느님께는 가장 귀한 존재'라는 시선)과 마음과 마음이 만남으로써 존재 자체가 온전히 수용되어지는 그 경험이 필요합니다.

 

-오종진 신부. 복수동 주임-

 

 

미사 속 숨은 보화

 

감사기도의 전반적 의미와 구성

 

감사기도는 최후만찬 때에 빵과 포도주 잔을 들고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신 그리스도를 본받아 사제가 온 교회와 공동체의 이름으로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령 안에서 성부께 바치는 감사와 찬양과 간청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를 통해 최후만찬 때의 신비가 그대로 재현되며 빵과 포도주는 주님의 몸과 피로 축성되고 성부께 봉헌됩니다.

  감사기도는 최후만찬의 재현이기 때문에 예수님이 말씀이 본질을 이루고 공도체를 위한 요소가 첨가되어, 감사송, 축성 기원, 기념과 봉헌, 성찬 제정과 축성문,일치기원,전구와 마침영광송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신앙의 해 특집

가톨릭 교리 해설(25) - 김두한 신부.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

 

제2편-제2부-제3장-제7절 : 혼인성사

 

  혼인성사는 친교에 봉사하는 두 번째 성사입니다. 친교(親交)는 일상에서 '친밀한 사귐)'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교회의 '친교'는 다른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친교는 라틴어로 '꼬뮤 니오'(commino)입니다. 이 단어는 '꿈뮤니스'(cummunis)라는 형용사에서 온 것으로, '함께'(cum)와 '책임을 다하는'(munis), 두 단어의 합성어라고 합니다. 따라서 친교는 '책임을 함께 다하는 것', '책임을 나누어 완수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친교에 봉사하는 혼인성사는 책임을 함께 다하도록 서로 도와주는 성사입니다. 그렇다면 혼인성사는 '어떠한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줄까요? 혼인성사는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베푸신 사랑에 힘입어, 부부간의 충실하고 헌신적인 사랑으로 '부부 공동체'와 '가정 공동체'를 이루도록 돕습니다. 또한 보모의 사랑과 신앙으로 자녀들이 신앙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결혼은 어느 시대 어느 민족이나 중요한 대사(大事) 중 하나입니다.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셨고(창세 1,27 참조), 남자와 여자가 짝을 이루어 한 몸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혼인의 소명은 우리의 본성에 새겨져 있고,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받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이루는 혼인을 성사의 품위로 들어 높이셨습니다. 따라서 혼인성사로써 부부들의 혼인 생활은 성사 생활이 됩니다. 그러므로 혼인성사를 받은 부부는 그 성사의 유대로 죽기까지 신의를 지키고 사랑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혼인성사는 다른 성사와 달리 부부 스스로 성사를 이룹니다. 혼인예식의 주례자는 사제이지만, 혼인성사의 집전자는 혼인 계약을 맺는 신랑과 신부입니다. 신랑과 신부는 교회 앞에서 다음과 같이 혼인 합의를 주고받습니다. "나는 당신을 아내로 (남편으로) 맞아들여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할 때나 아플 때나 일생 신의를 지키며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할 것을 약속합니다." 이 혼인 합의는 혼인이 성립되는 불가결한 요소입니다.

 

  교회는 신자 남녀들이 혼인성사를 받기를 원합니다. 혼인 예정자는 적어도 혼인하기 1~2개월 전에 본당 신부님과 의논하고 혼인성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먼저,예비부부는 혼인교리를 받아야 합니다. 혼인교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혼인 생활과 혼인 예식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마련된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다른 종교 신자나 비신자와 혼인하는 것을 원칙적으로 금합니다. 하지만 혼이을 해야할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금합니다. 하지만 혼인을 해야할 경우에는 누구나 교회의 관면(관면)을 받아야 합니다. 관면을 받기 위해서는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가톨릭신앙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서약이고, 다른 하나는 앞으로 태어날 자녀들에게 세례를 받게 하고 신앙교육을 시킬 것을 다짐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혼인 전 본당신부님과 꼭 상담하고 관면을 받아 혼인해야 할 것입니다.

 

 

당신의 고귀한

생명

 

들숨과 날숨

이 땅의 순결이여!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함께하는 이야기 마당>

 

 

여숫골 성지에서... 이선 율리안나. 관저1동 성당

 

여숫골에 질펀하게 누워 있는 자리갯돌 앞에 두 무릎 꿇고 고개를 조아렸네

타작마당에서 볏단 패대기쳐 알곡을 털듯

돌 위에 사람을 자리개질쳤다네

주검이 산을 이루고 핏물이 냇물이 되었다는

하느님을 믿는다는 일

주리가 틀리듯 오금이 저려오네

 

산 채로 자리개에 묶여 둠벙에 던져 거꾸로 박힌

그들의 유골은 죽어서도 눕지 못했다네

비가 오면 아직도 혈흔이 살아난다는 돌

사정없이 메치는 자리개질로

머리가 어스러지고 가슴이 바스러져

이름조차 거두고 사라져 간 그들

대대 후손들의 가슴에 결코 죽지 않았네

 

 신앙의 알곡으로 우리의 밥이 되신 영영들이여!

당신들이 목숨 바쳐 뿜어 올린 순교의 피는

온 세상 환히 펼치는 꽃이 되었네

지금도 자리갯돌에서 진둠범에서

'예수 마리아' 외치는 통곡의 소리 환청으로 들려

차마 발길 돌릴 수 없어

여숫골 자리갯돌 앞에 두 무릎 꿇었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