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빵은 어디에?」 오세정 신부
"저희에게는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루카 9,13)
+ 루카복음 9,11-17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하느님 나라에 관하여 말씀해 주시고 필요한 이들에게는 병을 고쳐 주셨다.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열두 제자가 예수님께 다가와 말하였다. "군중을 돌려보내시어, 주변 마을이나 촌락으로 가서 잠자리와 음식을 구하게 하십시오. 우리가 있는 이곳은 황량한 곳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 하시니 제자들은 "저희가 가서 이 모든 백성을 위하여 양식을 사 오지 않는 한, 저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하고 말하였다.
사실 장정만도 오천명 가량이나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대충 쉰 명씩 떼를 지어 자리를 잡게 하여라." 제자들이 그렇게 하여 모두 자리를 잡았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그것들은 축복하신 다음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군중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다.
<말씀의 향기>
사랑의 잔치인 성체성사 "서로를 위한 밥이 됩시다." - 김지성 바오로 천안쌍용2동
오늘은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입니다. 빵과 포도주가 사제의 축성에 의해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되고 그것을 우리 안에 모시는 성체 성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보여주는 사랑의 성사입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전해주듯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한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시고 당신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당신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면서 이 예식을 행하라고 명하십니다. 이에 교회는 계속해서 주님께서 이루신 성체성사를 거행합니다. 이것이 바로 미사입니다. 그러니 미사는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받아먹는 천상 잔치이자 예수님의 사랑을 먹고 마시는 사랑의 잔치입니다.
우리는 성체와 성혈을 통해 주님 사랑을 먹고 마시며 주님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면 성체를 영하는 우리의 삶은 어떠해야 할까요?
먼저 성체와 성혈 안에 예수님께서 현존하심을 믿는 확고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아무리 성체가 우리 영혼의 양식이며 우리를 주님과 하나 되게 한다고 한들 성체를 영하는 사람이 믿음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니 매번 성체를 영할 때마다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사제의 말에 믿음을 다해 '아멘'이라고 응답해야 합니다.
그리고 성체를 영한 우리의 삶이 예수님처럼 변화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 주셨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은 우리의 밥이 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도 예수님처럼 서로를 살리는 밥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에게 밥이 되기 위해서는 자신을 낮추고 섬기는 삶, 자신을 나누고 내어 주는 삶, 너를 살리기 위해 내가 죽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의 능력과 가진 것이 적다는 이유로 자신을 내어놓기를 주저하곤 합니다. 하지만 오늘 복음에서 보여주듯이 오천명이 먹기에 턱없이 부족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도 예수님께 내어놓으면 그들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나 남는 것처럼, 우리도 부족하지만 주님께 내어드리면 주님께서 그것으로 큰 일을 하십니다. 그러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수록 더욱 다른 이들을 위해 주님께 내어드려야 합니다.
성체를 영하는 사람은 반드시 내어 줌과 나문의 삶, 자신을 희생하는 사랑의 삶은 살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희생하는 삶, 내어 주는 삶만이 성체성사의 진정한 본질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체성사는 서로 밥이 되어 주고 섬기는 그곳에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청소년 바로보기(27)
고3! 하느님 사랑 체험의 시기로...
이렇게 표현하면 우리 고3 친구들이 서운해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고3 시기를 보내고 있는 청소년들은 많은 부분에서 면제(?)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하긴 대학 진학이 전 인생을 좌우한다는 인식이 만연되어 있고, 또 그것을 위해 지난 몇 년간을 온 정성을 다해 준비를 해 왔으니, 그 정도의 특혜는 보장되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도 해 봄직합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신앙은 대학진학에 견줄 부분이 아니며, 오히려 고3시기의 신앙이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셔야 합니다. 만약 고3시기로 인하여 신앙을 잃어버리는 것이니까요.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사실 고3시기의 면제(?)가 지난주에도 말씀드렸듯이 96%라고 하는 청년 냉담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능동적인 신앙생활이 그 마음에 자리를 잡지 못한 채,이 시기에 신앙 단절을 체험한 이들은 대학 진학을 하였다 하더라도 신앙생활을 유지하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대학 진학 후, 교회를 찾아 왔다 하더라도 함께했던 친구들이 보이질 않기 때문입니다. 능동적인 신앙생활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친구의 존재는 신앙 생활의 유지에 있어 매우 큰 부분을 차지합니다. '친구들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참 이상한 현상인데오. 우리 나라의 그 수많은 대학들이 우리 사회 안에서 일일이 서열이 매겨져 있다는 것입니다.특별한 기준도 없이 마치 성적으로 등수를 매겨 놓고 친구들 사이의 우열을 가리는 것처럼... 그래서 어느 대학에 다니느냐고 물어보면 부끄러운 사생활을 들추는 것 같은 표정으로 힘들게 대답하는 학생들을 만나는 것이 너무나 흔한 일이 되었습니다. 경쟁과 우열을 가리는데 너무나 익숙한 삶을 살면서 그렇게 힘든 대학에 진학을 하고서도 교회에 오면 자신의 능력이 공개되고 평가받는다는 생각으로 신앙을 멀리하는 이 황당한 상황이 지금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이죠! 이것이 지난 주에 말씀드린 '타 지역으로 진학'이라는 현상과 만나면서 이래도 냉담, 저래도 냉담이라는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교회는 경쟁에서 지친 우리 청소년들을 위로하고 그러한 사회의 경쟁보다 더 근본적인 신앙의 가치를 일깨워 주어야 하는데, 이 해괴망측한 경쟁구도가 평가되는 자리가 교회가 되어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현상이 생기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저는 고3 시기에 신앙의 중요성이 더더욱 강조되어야 한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사회의 평가가 아닌 교회의 사랑을 체험하는 시기! 내가 존재 자체로 사랑을 받고 있구나! 하는 것을 교회를 통해 체험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 이것이 교회가 우리 고3 시기를 체험하는 청소년들에게 해 주어야 할 부분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박진홍. 청소년 사목국장-
미사 속 숨은 보화
새로운 감사 기도문의 특징
1968년부터 도입하여 새롭게 사용된 세 가지의 감사 기도문은 로마 전문에서 부족했던 감사와 찬양의 요소를 강화하였습니다. 감사의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찬양이 기도 전체의 주제를 이룹니다. 또한 기도문과 구조를 단순화하여 쉽제 이해할 수 있으며, 각 양식이 가즌 고유한 특성으로 인해 다양하면서도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수행합니다. 하느님의 구원역사, 하느님 백성인 교회, 성령의 활동 등 각각의 주제와 신학을 간단하고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또한 가톨릭 교회 중심의 구원관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일치를 지향하며 모든 이가 하느님의 백성임을 상기시켜 구원의 보편적 관점을 제시하며 교회가 하나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새로운 감사 기도문의 등장으로 진례가 풍요로워진 것은 물론이고, 사목적으로난 영성적으로 더 넓은 지평을 갖게 되었습니다.
신앙의 해 특집
가톨릭 교리 해설(20) -김두한 신부. 대전가톨릭 대학교 교수
제2편-제2부-제1장-제2절 : 견진성사
우리는 세례 때 하느님의 사랑을 고백하고 신앙생활을 다짐하지만 아직 주님을 온전히 따르기에 미숙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답게 주님의 말씀에 따라 매일 실천하기에 힘과 지혜와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우리를 잘 아시고 예수님께서는 다른 협조자, 곧 성령을 약속하셨습니다. "보호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 주실 것이다."(요한 14,26) 그 약속대로 우리는 견진성사를 통해 성령과 그 은총을 받습니다. 견진성사는 세례 때 서약한 새로운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도록 성령의 특별한 능력을 줍니다. 그래서 견진성사는 세례성사의 은총을 완성하는 성사입니다. 우리는 견지성사로 그리스도와 더욱 굳게 결합하고, 성령의 선물을 풍요롭게 받으며, 교회와 더 완전하게 결합하고 친교를 나눌 수 있습니다.
본래 견진성사는 세례성사와 함께 받았습니다. 그런데 시대가 흐르고 영세자가 많아지면서 점차 세례성사와 분리되어 나중에 받게 되었습니다. 주교님께서 모든 본당의 세례성사를 집번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교님께서는 따로 본당에 방문하셔서 미사 때 견진성사를 집전하십니다. 주교님께서 안수하신 다음 이마에 축성 성유를 바르며 "성령을 주는 인호를 받으십시오!"라고 말씀하시고 우리는 "아멘"으로 응답합니다. 사도 시대부터 안수와 기름 바름(도유)은 하느님의 축복과 은총을 전해주고 성령을 준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이때, 우리는 안수와 기름 바름으로 성령의 인호를 받습니다. 성령의 인호는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속해 있고 하느님께서 보호해 주시겠다는 표지입니다.
우리는 우리 안에서 이미 활동하고 계시는 성령과 그분의 은총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먼저 성령께 마음을 활짝 열고 성령의 도우심을 청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성령의 은총을 청할까 고민하지만 '언제'성령께 의탁해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기도를 시작할 때 (지혜), 성경말씀을 들을 때(통찰), 신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것과 피해야 할 것을 분별할 때(의견), 하느님을 피해야 할 것을 분별할 때(의견),하느님을 섬기고 덕행을 실천하고자 할 때(용기), 믿어야 할 것과 믿지 말아야 할 것을 분별할 때(지식),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용서할 때(공경),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죄를 성찰할 때(경외), 그리고 주님의 은총이 필요한 모든 때에 우리는 성령을 청하고 그분께 우리 자신을 맡겨 들여야 합니다. 분명 성령께서는 놀라운 힘으로 우리를 도와주시고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실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갈라 5,22-23)
이어서 세례성사와 견진성사와 함께 '그리스도교의 입문 성사'인 성체성사를 살펴보겠습니다.
될 것 같지 않은
절망은
희망의 뿌리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이루어집니다.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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