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3년 주보

삼위일체 대축일(청소년 주일)2013년 5월 26일(다해)

모든 2 2021. 7. 6. 20:32

홍정수 신부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 아버지와 은총을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

-교우들과 함께하는 미사중 인사-

 

+ 요한복음 16,12-1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할 말이 아직도 많지만 너희가 지금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분 곧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시고 들으시는 것만 이야기하시며, 또 앞으로 올 일들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나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께서 나에게서 받아 너희에게 알려 주실 것이라고 내가 말하였다."

 

 

<말씀의 향기>

 

청소년 주일의 의미  "청소년 여러분 사랑받고 있나요?" -박진홍 요셉 청소년 사목국장

 

  오늘은 삼위일체 대축일이면서 또한 한국 교회가 정한 청소년 주일이기도 합니다.

  "청소년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들이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야합니다."

  19세기 중반 돈보스코 성인께서 하셨던 이 유명한 말씀은 사랑을 하는 어른들의 자세도 자세지만, 사랑을 체험하는 청소년 당사자의 인식이 얼마나 중요한 부분인지에 대해 생각을 하게 해 줍니다. 오늘날 다양한 청소년 관련 심리학에서 하는 이야기도 이와 같은 맥락을 가지고 있음을 보면서 성인의 예언자적인 안목에 다시 한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됩니다.

 

  우리 한국 교회에서 '청소년 주일'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한 지가 이제 20년이 됩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 교회가 청소년을 위해 정한 이 날의 중요성은 '이 날이 존재한다'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날을 맞이하는 청소년들이 이 날에 대해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가 더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과연 우리 청소년들은 청소년 주일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 걸까요? 또한 그들은 청소년 주일을 기쁨으로 맞이하고, 이 날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얼마나 준비했었던가? 하는 반성도 함께해 봅니다.

 

  그리스도의 진리와 사랑으로 정의와 평화를 주도해 나아가야 하는 교회는 청소년 주일을 정하면서 청소년들을 단순한 피교육자가 아닌 교회의 다른 구성원들과 함께 동등한 구성원으로 보는 시각을 가지고 그들과 함께 손을 잡고 이 세상에서 교회가 해야 할 일을 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합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기 위해서 먼저 선행되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청소년

들의 주도성입니다. 청소년들은 자신이 교회를 통해 알게 된 진리와 사랑을 스스로 내면화시키고, 그것을 자신이 만나는 삶 속에서 주도적으로 판단하고 실천해 나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그러한 청소년들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 주고자 하는 이 청소년 주일의 의미가 있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가정과 학교 등 우리 청소년들이 만나는 세상은 그들을 너무나 오랫동안 수동적인 삶을 살도록 길들여 왔습니다. 그 이유는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시급한 것으로 인식하고 실패를 맛보는 것을 두려워하게 만들어 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교회는  그들을 삼위일체의 친교와 사랑, 그리고 무한한 인내로 끌어 안아야 합니다. 자신이 무슨 실수를 하든 그 존재 자체로 사랑받고 있음을 아는 청소년들은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고도 결국 주도적인 삶을 살아갈 수가 있게 되며 청소년이 청소년다운 삶을 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청소년 바로보기(26)

 

많은 관심이 필요한 대학생 사목

 

  대학생 사목이라고 하면 본당 입장에서는 조금 감이 먼 느낌이 들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청소년들의 전체적인 신앙 성장 과정을 보면 이 문제가 매우 심각한 부분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무슨 이야기냐 하면, 현재 대전교구 교적상의 청년 수에 비해 신앙생활을 하는 청년들의 숫자가 4%에 조금 못 미칩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청년들 중에 96% 이상의 청년들이 교회를 떠난 상황이라는 말씀입니다. 심각하다 못해 끔찍한 미사 참석 청년들의 숫자를 비교하여 계산해 보시면 대략 이런 수치가 나타남을 아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심각한 현상의 이유 중에는 대학입니다. 그런데 이런 심각한 현상의 이유 중에는 대학생 사목 문제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대학에 진학을 하게 되면 많은 경우 타 교구에 있는 학교를 다니게 됩니다. 역기서 이 '타 교구'라고 하는 부분에서 어처구니 없는 현상이 생깁니다. 언젠가 경찰들이 도둑을 잡으러 가다가 관할 구역을 넘어섰다고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바로 그와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현재 대전교구 관할 구역 내에는 42개의 대학이 있습니다. 문제는 대학교 근처에 있는 본당의 입장에서 볼 때, 그들에 대한 관심은 상당부분 떨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방학 때나 또는 졸업을 하고 나면 우리 본당, 우리 교구 신자로 활동할 사람들이 아니니 그다지 관심이 떨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하지만 입장을 바꿔놓고 보면, 우리 교구 출신 청소년들이 타 교구에서도 똑같은 대접을 받고 있다는 것이지요. 고등부시절에 신앙이 튼튼하게 자리잡지 못한 상황에서 대학에 진학한 후, 4년 동안 등한시안 신앙생활은 냉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오늘날 대학생들이 교내에서 신앙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월 2회 이상을 그들과 만나서 돌봐 주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들을 돌볼 일꾼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현재 대전교구 청소년사목국에서 대학생을 담당하시는 신부님은 한 분이신데, 이 신부님 혼자서 쌍코피 터지게 뛰어다녀도 42개의 대학을 다 돌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교구장 주교님의 후속 인사 발려을 통해 각 대학마다 담당 신부님이 정해져 있지만, 본당 사목에 바쁘신 신부님들의 상황에서는 대학교 개강 미사와 종강 미사를 집전해 주시는 것마저 어려움을 겪고 계신 실정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학생 사목의 사각지대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그들 중 대부분은 스스로 본당을 찾아올 만큼 신앙이 튼튼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움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대학생 자녀들의 신앙생활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부탁드리면서 한편으로 우리 본당 관할 구역 내에 대학교가 있다면 그 안에 가톨릭 학생회가 있는지 살펴봐 주시고, 그들에게 본당 활동 차원에서 특별한 관심과 지원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박진홍 신부. 청소년사목국장-

 

 

미사 속 숨은 보화

 

감사 기도문 제1양식(로마 전문)

 

  현재 미사 경본에 쓰이고 있는 4가지의 감사 기도문 중 가장 오래된 제1양식은 누구에 의해 쓰인 것인지는 불분명합니다. 하지만 4세기 말엽부터 고정된 형태였고, 7세기 중엽 그레고리오 교황님에 의해 확정되었습니다.

  이렇게 오랫동안 변치 않은 기도를 개정하기 위해 노력했던 이유는 로마전문이 가진 특징 때문입니다. 로마전문은 산 이와 죽은 이를 위한 전구에 많은 비웅을 두고 있지만 감사와 찬미의 기도는 상대적으로 빈약한 구조입니다. 그 밖에도 내용, 표현, 문채 등이 산만하고, 복잡하여 공동체 기도문으로 많은 결함이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이 기도문이 가진 역사적이고 신학적인 고유한 가치로 인하여 작은 부분들만 개정되어 현재의 감사 기도문 제1 양식으로 정착되었습니다. 이 기도문은 어느 미사에서나 바칠 수 있으며, 특히 사도들과 성인들의 축일 미사에 바치면 좋은 기도문입니다.

 

 

신앙의 해 특집

가톨릭 교리 해설(19)  -김두한 신부. 대전가톨릭대학교 교수

 

제2편-제2부-제1장-제1절 : 세례성사

 

  우리는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교회 공동체에서 서로 친교를 이룹니다. 그래서 세례성사는 그리스도교 생활로 들어가는 첫째 문이며 다른 성사들로 나아가는 길을 여는 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세례를 기억하고 세례성사의 의미를 바로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세례(洗禮)는 '물에 담그다', '물에 잠기게 하다', '물로 씻는다', 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로 '씻음'은 몸의 더러움을 없애고 마음을 정화시키고 죄를 깨끗이 용서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에 '잠김'은 그리스도의 죽음 속에 묻힘을 상징하는데, 그곳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새사람'(2 코린 5,17)으로 나오게 됩니다. 따라서 물은 세례성사의 표징으로,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 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으로 태어나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로마 6,3-4) 모든 죄를 용서받아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에 들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에 참여합니다. 그래서 세례식 때, 사제는 영세자의 이마에 물을 세 번 부으며(또는 물에 잠기며)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그럼, 세례로 우리의 신앙은 완성될까요? 세례는 끝이 아니라 신앙생활의 시작입니다. 세례를 위해 성숙된 신앙이 요구되거나 세례로 신앙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든 어른이든 우리의 신앙은 하느님의 자녀로 성실히 살아갈 수 있도록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예비 신자나 대부모는 "하느님의 교회에 무엇을 청합니까?"라는 질문에 "신앙을 청합니다."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첫째 서간 3장 21절을 보면 "세례는 몸의 때를 씻어 내는 일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힘입어 하느님께 바른 양심을 청하는 일입니다."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세례는 하느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우리의 서약입니다. 세례로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고 새로운 삶을 결심하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아버지 하느님께 대한 효(孝)입니다. 그 효를 가장 잘 보여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셨고 그분의 사랑을 보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며 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해마다 부활 성야에 세례 서약을 새롭게 하면서 하느님을 섬기겠다고 다짐합니다. 세례 서약 갱신으로 마귀와 유혹을 끊어버리고 신앙을 고백하면서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품위를 다시 회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로 성령 안에서 새롭게 태어납니다. 그러나 아직 온전히 그리스도를 따르기에 우리의 신앙이 미숙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신앙을 굳건하게 이끌어줄 성령의 선물도 함께 마련해 주셨습니다. 이제 성령의 은총을 받는 견진성사를 살펴보겠습니다.

 

 

성 삼위일체

우리의 하느님

 

이 땅의 청소년들에게

맑고 밝은 영혼

키우게 하시어

청청한 삶 되게 하소서.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