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주심」 강진영 신부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요한 8,11)
+ 요한 복음 8,1-11
<너의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올리브 산으로 가셨다.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서 다시 성전에 가시니 온 백성이 그분께 모여들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앉으셔서 그들을 가르치셨다. 그때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에 세워 놓고,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이 여자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모세는 율법에서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였습니다. 스승님 생각은 어떠하십니까?" 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여 고소할 구실을 만들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몸을 굽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그들이 줄곧 물어 대자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어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그리고 다시 몸을 굽히시어 땅에 무엇인가 쓰셨다.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 마침내 예수님만 남으시고 여자는 가운데에 그대로 서 있었다.
예수님께서 몸을 일으키시고 그 여자에게,"여인아,그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단죄한 자가 아무도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 여자가 "선생님, 아무도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
<말씀의 향기>
하느님의 용서를 받아들이는 복된 순례자 "사순은 용서하는 순교여정-이의철 가밀로 다락골성지 전담
성지에 상주하다 보면 참으로 다양한 순례자들을 보게 되는 은총 속에 머물게 됩니다. 우리네 천주교 신자들이 주를 이루지만, 요즘 들어 점점 늘어나는 개신교 단체 순례객들의 순교 신앙에 대한 열정과 사랑은 감사와 기쁨을 가지게 만듭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한국 순교신앙의 고유한 순례 문화가 그들에게로 전이되는 것은 아닌지 라는 우려와 긴장감도 함께 느끼곤 합니다.
이런 걱정과 감동을 전해준 개신교 공동체가 최근 성지를 방문하였습니다. 장로회 소속 11명의 목사님들로,이분들은 이미 한국의 순교신앙에 대한 1년간의 공부를 마치고, 종강기념으로 도보 성지 순례를 계획하여 사순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에 출발하여 20일 여정(400km)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저희 성지에서는 4일째 밤과, 다음날 이들의 간곡한 부탁으로 사순 제1주일 미사를 함께 봉헌한 뒤, 또다시 수리치골을 통하여 한국 순교 선조들의 거룩한 신앙과 아버지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통해 보여주신 우리 자녀들을 향한 자기양여의 십자가 신비를 묵상하기 위함이라는 목적을 보여주고 유유히 떠났습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이분들을 통해 깊은 감동과 사순을 임하는 또 하나의 진정한 자세, 곧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순례 여정을 통해 현재의 나를 제대로 보는 은총의 선물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간음한 한 여인을 심판하여 죽이겠다고 돌을 집어든 사람들에게 먼저 자신들의 죄를 바라보게 하십니다. 그리고 모든 이가 떠난 후, 홀로 간음한 여인의 죄에 대한 당신의 대속을 통해 그리스도의 우리를 향한 완벽한 사랑을 보여주십니다. 이 모습은 거룩한 은총의 사순시기에 머물러 있는 우리들에게 현재의 내 신앙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더불어 그것을 통해 얻게 되는 우리들의 부족한 허물들인 죄에 대한 값조차도 우리가 치루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몸소 우리를 대신해 짊어져 주신다는 지고지순한 희생의 사랑을 만나게 됩니다. 하지만 이 사랑은 주님께서 당신의 핏자국으로 또다시 우리의 죄를 지우시고 저 십자가 나무에 우리의 죄를 묶어 또다시 당신이 매달리시는 희생의 용서가 스며져 있다는 사실을 분명 알아야 합니다.
결국 사순의 막바지에 머물러 있는 우리 모두는 하느님 아버지의 우리를 향한 이 용서의 신비를 온전히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옛 것을 용서하고 놓아버리는 작업(제1독서) 곧,그리스도께 나아가는데 방해되는 모든 것들을 쓰레기로 버리는 작업(제1독서)을 사순의 거룩한 성사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 이루시어 축복된 예루살렘 성지의 순교 행렬에 함께하시길 두 손 모아 기도합니다.
<청소년 바로 보기(16)>
청소년 신앙 교육의 목표(4)
지난주에 말씀드렸듯이 어린이, 청소년을 위한 교육의 첫 번째 교리 교사는 바로 부모님들입니다. 부모님들이 먼저, 무엇을, 어떤 목적으로 교육해야 하는지에 대한 인식을 하지 않은 채 가정에서 신앙 교육을 한다면, 주일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청소년들의 신앙 교육은 사실상 모래 위에 집을 짓는 모습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한 주일에 한 번, 성당에서 배운 교리, 그것도 한 시간도 채 되지 않는 그 교리가 가정에서의 삶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신앙 교육의 내용이 우리 어린이 청소년들의 마음 안에 자리를 잡을 수 있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 담겨 있는 네 가지 큰 주제들, 다시 말씀드려 신경, 성사, 계명, 기도에 대한 학습 목표를 부모님들이 먼저 인식을 하실 뿐 아니라 먼저 그 삶으로 실천을 하셔야 합니다. 제가 지금부터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은 이 지면을 통해 교리 공부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그걸 가르치는 이유를 간략히 정리해서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첫 번째로 신경 부분을 살펴보면 그 안에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교회, 죽음, 심판, 부활 등에 관한 내용들이 들어 있습니다. 외우고 계신 사도신경의 뜻을 천천히 음미해서 되새겨 보신다면 이해가 되실 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걸 왜 배우는 걸까요? 그저 주일 미사 시간에 응답을 하게 하기 위해서만 교회가 그걸 가르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내용을 다 익힌 다음에 우리들의 마음 안에 남아야 할 그 어떤 것! 그것 때문에 우리는 신경을 배우는 것이죠. 그렇다면 그 남아야 할 그것! 바로 신경 교육의 학습 목표인 그것이 도대체 무엇일까요? 여기서 '우리 마음에 남아야 할 그것!'은 바로 '내가 우리 예수님과 무슨 관계인가? 라는 질문에 답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을 나의 주님, 나의 주인님으로 인식하고 고백하는 것이지요. 성모님께서 가브리엘 천사 앞에서 하셨던 그 말씀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하셨던 그 모범 답안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주님으로 모시기 위한 것입니다. 신경을 배운 우리의 주님으로 모시기 위한 것입니다. 신경을 배운 이가 신경의 삶을 살아가는 모습은 자신이 언제, 어떤 상황을 접한다 하더라도 주님의 뜻을 따를 수 있는 자제에 있습니다. 주인님의 뜻을 무시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반성을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내 마음 한가운데에 나의 삶을 이끌어 가시는 분의 의자가 놓여 있다고 할 때, 과연 그 의자에 누가 앉아 있는지를 반성해 보면, 가끔 우리는 그 자리에 예수님이 아닌 나의 아집과 교만, 나의 자조님이 앉아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발견으로 내가 해야 할 행동을 바로 찾을 수 있게 하는 것, 그것이 신경 교육의 학습 목표인 것이지요.
-박진홍 신부. 청소년사목국장-
<미사 속 숨은 보화>
예물 기도 권고:온 교회가 드리는 제사(성찬례)를 위한 준비
사제는 미사를 위한 예물을 준비하며 상을 차리고 교두들로부터 예물을 봉헌받아 하느님께 바칩니다. 정화 예절까지 모든 준비를 마친 사제는 교우들에게 다음과 같이 기도하고자 권고합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가 바치는 이 제사를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기꺼이 받아주시도록 기도합시다." 이 기도 권고에 본기도나 영성체 후 기도에서처럼 짧게 "기도합시다."라는 권고를 쓰지 않는 것은 "예물 기도"에 대한 권고인 동시에 "감사기도"전체에 대한 권고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 권고는 12세기 이탈리아 미사 경본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였고, 1570년 로마 미사 경본에 수록되어 지금까지 바쳐지고 있습니다.
신앙인의 해 특집
가톨릭 교리 해설(9) - 최동일 신부. 사무처 차장
제2부-제1장-제4단락 : 창조주
성경은 창세기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전한다. 그러나 오늘날 고도로 발전된 과학은 창세기의 창조를 이야기와는 매우 거리가 멀어 보이는 빅뱅 이론이니, 진화론이니 하는 이론으로 세상의 기원과 발전을 설명한다. 이런 과학이론들과 성경의 창조론은 과연 서로 대치되는 것일까?
이스라엘 민족은 자신들의 역사 안에서, 특별히 출애굽 사건을 통해서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보호하시고 구원하신다는 것을 체험하였다. 이런 구원 체험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민족과 만물이 하느님의 뜻에 달려있다는 것과 하느님의 이러한 힘은 바로 그분이 모든 것을 창조한 창조주라는 사실에서 나온다는 신앙으로 이끌었다. 바로 이 신앙을 전하는 것이 성경의 창조 이야기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이처럼 창조신앙은 세상이 언제, 어떻게 기원되었는지를 설명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생겨난 것이 아니라, 구원자인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표현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생겨난 것이다. 창조신앙의 이러한 의미를 명확히 안다면 성경의 창조 이야기가 결코 과학이론들과 상반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조론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는 세상 모든 것이 하느님께 전적으로 속해 있다는 것이다. 우주의 여러 현상들이 진행되어 가는 원리나 형태는 성경의 창조론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 아니라 과학이 전하는 내용이다. 이처럼 성경의 창조론과 세상의 기원에 대한 과학적 이론들은 그 관점 자체가 서로 전혀 다르다. 따라서 성경의 창조론과 과학의 이론들을 서로 대립되는 것으로 여기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것은 올바른 모습이 아니다. 그렇다고 이 둘을 적절히 섞어서 어떤 하나의 기이한 이론으로 만들어내려 하는 것도 옳지 않다. 과학도. 종교도, 그것이 진정으로 참되다면 결코 서로를 적대시하지 않으며 오히려 서로를 존중하고 협력할 것이다. 예를 들어 진화론이라는 과학이론의 발전으로 인해서 우리는 세상 만물이 덜 완전하 것에서 더 완전하 것으로 끊임없이 진화되어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런 과학의 발견은 이런 모든 움직임을 주관하는 절대적인 초월자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확신으로 이끌어주는 것이다.
세상의 기원에 대한 창조론과 과학이론의 설명을 바라보며 우리는 종교와 과학이 결코 서로 대립하고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인정하고 협력해야 하는 관계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는 종교와 과학의 관계의 문제를 넘어서 우리의 신앙과 이성의 관계를 올바로 정립하는 데에 있어서도 반드시 기억해야 할 중요한 부분이다.
마음이 맑고
밝은
아름다운 사람들
글. 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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