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예수님과 요한의 만남」
+ 루카 복음 1,39-45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인사말을 들을 때 그의 태 안에서 아기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큰 소리로 외쳤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
<말씀의 향기>
성령을 통한 통찰력으로 구원 역사에 참여하라...-연광흠 바오로 연무주임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이루시게 될 구원의 역사 안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는 세례자 요한과 구세주 예수님을 잉태하고 계신 두 어머니의 만남을 봅니다.
엘리사벳은 자신을 방문한 마리아를 보자마자 성령으로 가득 차 큰소리로 외칩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그녀의 외침은 강생신비에 대한 찬송이었고, "당신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는 표현을 서슴지 않고 함으로써 구원의 역사가 구체적으로 다가옴을 기쁨으로 찬미 찬양하고 있습니다. 특히 주님의 어머니"라는 표현을 써가며 상상할 수 없는 놀라운 역사가 마리아라는 한 연약한 여인의 인격 안에서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밝혀주고 있는데..인간의 지성을 뛰어넘는 성령을 통한 이 깨달음은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특별한 은총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성령을 통한 구원의 역사가 연약한 여인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고 그것을 알아보고 찬미할 수 있도록 해 주심 또한 성령을 통해서임을 엿볼 수 있습니다.
또한 구세주 아기예수님의 탄생을 목전에 두고 있는 우리는 마리앙처럼 성령의 이끄심을 감지하고 기뻐하면서 진심으로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나를 제공하고 나누는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성탄을 잘 준비하는 일일 것입니다. 왜냐면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에서 서로에게 펼쳐진 걱정과 체면의 분심들을 뒤로한 채 하느님의 업적을 이야기하며 찬미 찬송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리아와 엘리사벳이 지녔떤 열린 마음과 성령을 통한 통찰력으로 구세주를 알아보고 기뻐할 줄 아는 은총을 감지할 줄 아는 신앙인이 되어 기쁜 성탄을 맞이합시다. 그리고 배려와 나눔으로 사람들에게도 기쁜 소식이 되어주는 뜻깊은 성탄이 되도록 합시다.
<청소년 바로보기(4)>
청소년 이미지에 대한 편견(3)
Margaret Mead의 주장은 청소년 시기의 반사회적인 모습이 유전적으로 결정된 생리학적 요소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회 환경에 의해서 나타나는 모습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후대에 Margaret Mead의 연구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이 나타나긴 했지만,어찌되었던 Margaret Mead 이후,청소년의 불안한 모습이 '원래 그런 녀석들'이 아니라 사회적인 요소가 분명히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죠.
이야기가 좀 무거워진 느낌입니다. 뭐 복잡한 남의 나라 이야기는 달나라로 가서 하기로 하고요. 그렇다면,과연 대한민국의 지나온 역사 안에서 청소년들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인식되어 왔는지에 대해서 말씀을 드려보겠습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2년이 채 되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 나라는 한국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됩니다. 전쟁 직후,국가 차원에서 청소년 정책이랄고 하는 것이 있었겠습니까? 그저 전쟁 고아들 추스르기에도 바쁜 시기를 보내게 되었겠지요. 물론 그것도 YMCA,YWCA,RCY,UNESC,스카우트와 같이 민간 단체와 국외 자선 단체가 중심이 되었떤 것이지요. 1950년대에 정부의 청소년 정책이라고 하는 것은 그저 구휼 정책에 머물러 있었던 시기였다고 할 수가 있습니다.
사실 대한민국 국가 차원에서 청소년 정책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 시기는 1964년부터라고 할수가 있습니다. 이때 국무 총리 산하에 '청소년 보호 대책 위원회'라는 부서가 생겨납니다. 그런데 이부서의 이름이 1977년에도 그나마 '보호'라는 단어마저 빠지고 '청소년 대책 위원회'로 바뀌게 됩니다. 여기서 이 부분은 좀 깊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청소년 정책을 하는 데 있어서 왜 '대책'이라는 말이 붙었던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1977년에 생긴 청소년 대책 위원회는 내무부의 치안국 보안국에서 담당을 하게 됩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이는 그 시대의 상황을 보면 이해가 쉽게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 보는데요, 우선 1964년 이전,그러니까 1960년에 당시 정부의 시각에서 볼 때,우리 나라 청소년들의 심상찮은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바로 4.19 민주주의 혁명이 그것이지요. 이는 독재정책을 펴는 국가의 입장에서 상당히 골치 아픈 문제였던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박정희 군사 독재 정권이 들어선 이후,청소년들의 움직임은 늘 정부를 귀찮게 만드는 모습들로 비춰집니다. 특히 1972년 10월부터 시작되어떤 유신정권은 이에 주기 살기로 반기를 들며 거리로 뛰어나오는 골치 아픈 청소년들에 대해 그나마 '보호'라는 단어도 무의미한 단어가 되어 버렸던 것이지요. 이미 이때부터 매스컴에서는 청소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드러내기 시작합니다.
-박진홍 신부.청소년사목국장-
<미사 속 숨은 보화>
보편지향기도: 네 가지 지향?교회,전 인류,긴급한 필요,지역 공동체
보편지향기도는 개인적인 것을 청하는 기도가 아니라 교회,전 인류,국가,교구,본당,가덩 등 공동체의 은총을 청하며 바치는 기도입니다. 미사 중에는 4가지의 지향을 청하며 기도하는데 첫째 지향은 모든 교회,즉 그리스도의 몸인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를 위한 지향으로 모든 신자,교회 전체,세계의 모든 교회를 위한 기도입니다. 둘째는 전 인류의 구원을 위한 지향으로 아직 그리스도의 신앙을 받아들이지 안은 사람들,모든 민족,국가 등의 평화와 구원을 청하는 기도이고, 셋째는 구체적이고 긴급하게 필요한 일에 대한 지향으로 온갖 어려움으로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마지막으로 본당이나 각종 단체 등의 지역공동체와 그 안에 속해 있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이러한 네 가지 지향으로 기도하는 보편지향기도는 그 표현에 있어서는 자유롭기 때문에 각 공동체에서 자유로게 창작하여 기도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50)김정환 신부 . 내포교회사연구소장
꿀 장사,나무그릇 장사,남는 장사
:이양등,김종륜,허인백
이양등 (베드로) |
경상도 출생 1868년 9월 14일 울산에서 참수 |
김종륜 (루카) |
1819년 충청도 공주 출생 이양등과 함께 순교(49세) |
허인백 (야고보) |
1822년 경상도 김해 출생 이양등과 함께 순교(46세) |
조선시대 박해를 받으며 사는 신자들은 대부분 산골짜기나 물가의 오지에서 생계를 꾸려나갔다. 일반 사람들처럼 버젓한 농토에서 농사를 짓는 신자는 극히 드물었다. 그래서 주로 남들이 천하게 여기는 옹기 굽는 일을 하거나 척박한 땅에서 담배농사를 지어 연명하였다. 이마저도 안 되는 신자들은 다른 적당한 일거리를 찾아야 했다. 울산 죽령의 회장이어떤 이양등(베드로)은 꿀 장사로,함께 순교한 허인백(야고보)은 나무 그릇을 만들어 팔아 생계를 유지하였다. 허인백은 신자가 되기 전에는 김해에서 농사를 짓는 농부였으나 신앙생활을 위해 산속으로 피해 살다보니 당시로써는 천하게 여기던 장사를 하게 되었다.
김종륜(루카)이 생계를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는 모르나 삶의 흔적만 봐도 녹녹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충청도 공주에서출생하여 신자가 된 후 박해를 피해 경상도 상주 멍에목으로,언양 간월을 거쳐 울산 죽령 등 산골짜기로만 이사를 다녔으니 그 생활이 오죽했으랴. 이런 떠돌이 생활 중에 죽령에서 이양등과 허인백을 만나 서로 권면하며 신앙생활을 하다가 체로되어 순교의 길을 갔다.
허인백이 1868년 무지박해 때 경주 포졸에게 체포되는 장면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그는 잡히면서 집안사람들에게,"나는 오늘 가면 영원히 못 돌아온다.나를 위하여 기도해라. 치명하신 바르바라 성녀를 본받아라."고 당부하며 떠났다. 이때 그의 딸이 잡혀가는 아버지에게 버선 한벌을 주니까 허인백이 말하기를 "내가 본디 세상에 올 때 알몸으로 났으니 알몸으로 돌아가야 마땅하다."하며 받지 않았다. 이후 그는 두 동료와 함께 신앙을 고백하고 울산 장대에 있는 형장에 서게 되었다.
형이 집행되기 전에 관례대로 사형주에게 주는 술을 권하자 세 분 모두 잘 받아 마신 후 이양등과 김종륜이 먼저 칼을 받았다. 세 번째로 허인백의 차례가 되자 그가 군사에게 말하기를,"내 머리를 빠리 베고,우리 머리는 각각 분별하여 주시오. 이후에 부활할 육신들이오."라고 하며 자기와 동료들이 영광스럽게 부활할 몸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였다. 그리고는 성호를 그으며 예수 마리아 이름을 부르고는 칼을 받았다.
이분들은 평생 남는 장사를 하다가 생을 마치셨다. 알몸으로 태어나서 꿀도 팔고,나무그릇도 만들어 팔다가 생을 마치셨으니 그것도 남았거니와 부활하여 영원한 생명도 거저 받을 것이니 말이다. 주님의 기도에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라는 말이 저절로 생각난다. 하루하루 주어지는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는 사람은 평생 남는 장사를 하는 셈이다.
그대 오심에
내마음 말게 씻어내고
기쁘하며
노래합니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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