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2년 주보

대림 제2주일(인권주일) 2012년 12월9일(다해)

모든 2 2021. 4. 26. 23:47

「오실 길」홍종렬 .대전가톨릭사진가회(2012)

"너희는 주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여라."(루카 3,4)

 

+ 루카 복음 3,1-6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 제십오년,본시오 빌라도가 유다 총독으로,헤로데가 갈릴래아의 영주로,

그의 동생 필리포스가 이투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지방의 영주로,리사니아스가 아빌레네의 영주로 있을 때,

또 한나스와 카야파가 대사제로 있을 때,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

그리하여 요한은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니며,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이는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말씀의 책에 기록된 그대로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굽은 데는 곧아지고,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말씀의 향기>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주님의 길-홍광철 세례자요한 합덕 주임

 

  메시아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외칩니다. 주님의 길을 마련하기 위해 회개의 세례를 선포합니다.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아."(루카 3,5) 그런데 주님을 바라보고,주님께로 향하기 위해서는 장애되는 것들을 치워야 합니다. 그래서 "너의 내가 서로의 주장을 내세워 만들어진 골짜기'는 회개와 화해로 메워져야 하고,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는 교만과 위선의 산과 언덕들은 모두 낮아져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을 뵐 수 있습니다.그러나 주님 외에 다른 것을 보게 되게 되면 이것은 불가능한 것이 됩니다. 주님만을 바라볼 때 내 옆에 있는 이들의 고통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주님만을 바라볼 때 아무리 나약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를 존중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만을 바라볼 때 "눈이 열려"그가 하느님의 자녀로서 고귀한 품격을 지니고 있으며, 당연히 받아 누려야 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대림 제2일을 인권주일로 지내며 힘없고 나약한 이들의 권리를 찾아주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들의 권리가 소중하게 생각해 달라고 세상에 외칩니다.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만을 바라보게 되면 재물만 보이고,사람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나를 위한 도구로만 보입니다. 자신의 편안함을 생각하고, 자신의 미래만을 바라보기에 주변의 고통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습니다. 누가 약자의 권리를 이야기해도 귀담아 듣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나만 잘 살면 되고, 나의 미래만 보장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눈을 감아 버립니다.

 

  그러나 구런 내 모습을 통해서는 결코 하느님의 영광을 보여줄 수 없습니다. 약자의 권리를 존중해 주지 않고,이기적인 사고방식으로 미래의 불안을 해결하려한다면 결국 재물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결코 하느님의 뜻이 아닙니다. 골짜기를 메울 때 내 것을 내어놓아야지 약자들의 것을 내어놓으라고 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내가 약자들을 도로지 않는다면,세상 사람들은 결코 나를 통해 하느님을 찬양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록 미래가 불완전하다 할지라도 약자의 권리를 존중하고,내 것을 내어놓을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 안에서 하느님의 구원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구원자은 "재물"이 아니라 "바로 주님'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청소년 바로보기(2)

 

청소년 이미지에 대한 편견(1)

 

  예전에 청소년에 관련된 보고서를 준비하면서 길거리로 나가서 아무나 만나는 사람들에게 청소년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적어 달라고 부탁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친절하게도 저마다 자신이 느끼는 이미지를 적어 주었습니다.

 

  그렇게 얻은 자료를 정리하다 보니 간혹 '희망'이나 '행복한 미소'등을 떠올리시는 분들도 계셨지만 거의 대부분의 경우는 '머리에 물을 들인다', '불안하다','질풍노도','사춘기의 신경질적인 반응','미성숙한 행동','자살 충동','시험 스트레스'등의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저는 그걸 가지고 질문지로 만들었었고, 그 질문지를 들고, 일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현재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청소년들에게 질문지를 돌렸습니다. 이 작업은 청소년들에게 '너희들이 정말 그러냐?'라는 질문을 한 셈이었고, 질문지의 답변을 정리하면서 제가 얻은 결론은 '아니오!'라는 답변이었습니다. 저는 다시 그 질문지를 청소년들의 부모들에게 보내서 '당신의 자녀들이 정말 이렇습니까?'라는 질문을 했었고, 수집된 내용을 분석하면서 또 다시 '아니오1'라는 답변을 듣게 되었습니다. 저는 다시 이 질문지를 들고 길거리고 나가서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당신은 과거 청소년 시절에 이러하였습니까?'라는 질문이었습니다. 결론은 '아니오'였습니다.

 

  이러게 수집된 자료를 정리하면서 저는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현재 청소년들도 그렇지 않다고 하고 ,현재 청소년들을 가가이에서 보시는 부모들도 그렇지 않다고 하고, 과거에도 그런 사람이 별로 없다고 한다면,도대체 오늘날 우리 사회에 만연된 청소년에 대한 이 부정적인 이미지의 정체는 무엇일까? 우리는 오늘날 왜 이렇게 청소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크게 가지고 있는 걸까? 저는 오늘날 우리 청소년의 이미지가 청소년이 등장하는 역사적 배경에서,또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의 여러 상황 속에서 참으로 많은 부분이 왜곡되어 있음을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과연 청소년의 이 부정적인 이미지는 어떻게 생긴 것일까요?

 

  우선 용어부터 살펴보자면 고대 사회부터 사용되었던 Youth'라는 단어는 '미성숙'이라는 부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청소년'의 의미는 사실 'Youth'의 의미보다는 'Adolescence'가 더 적합한 표현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이 단어의 어원은 라틴말 '성장하다','성숙에 이르다'라는 의미를 가진 동사 'Adolescere'에서 나온 말인데 이 표현은 근대 이후에 등장하는 단어입니다.(계속)

 

 

-박진홍 신부.청소년사목담당-

 

 

<미사 속 숨은 보화>

 

신앙고백: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과 사도 신경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과 사도 신경은 그리스와 성령께서 참된 하느님이심을 부정하던 이단을 거슬러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참된 하느님이심을 선포했던 "니케이 공의회"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를 통해 그리스도교 신앙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신경이기 때문에 그 내용이 비교적 상세합니다. 또한 사도 신경은 사도들이 전해준 신앙고백이라는 믿음에 따라 사도 신경이라 불립니다. 이 두 신경 모두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창조주 하느님 아버지,그 외아들 그리스도의 강생 구속,성령의 천주성,사도전승의 교회,후세의 삶"등 그리스도교 교리를 주축으로 합니다. 미사 중에 자주 사도신경을 사용하곤 하지만 미사 전례의 공식 신앙고백은 니케아 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입니다.

 

 

'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48)정환 신부 . 내포교회사연구소장

 

Joy,Joy,Joy

:최조이(바르바라),이조이(막달레나),오종례(야고보)

 

최조이
(바르바라)
1790년 경기도 여주 출생
1840년 1월 4일 전주에서 참수(50세)
이조이
(막달레나)
1808년 출생
최조이와 함께 참수(32세)
오종례
(야고보)
1821년 충청도 은진 출생
최조이와 함께 참수(19세)

 

 조선시대 천주교 역사를 보면 '召史'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들이 많이 등장한다. 흔히 '소사'라고 읽는 '召史'는 한자(漢子)의 음과 뜻을 빌려 우리말을 적던 표기법인 이두(吏讀)이므로 '조이'라고 읽어야 맞다. 조이는 과부를 점잖게 부르거나 양민의 아내를 지칭할 때 쓰는 말이라서 엄밀히 말하면 이름이 아니다.

 

  '조이'라 불리는 과부 신자들이 많았던 이유는 세상에서 버림받은 그들에게 천주교 신앙이 삶의 의미를 부여해 주었기 때문이다.죽어도 한 남자에게만 매어있어야 한다는 관습 때문에 재혼도 할 수 없고, 어떤 직업을 가질 수도 없는 처지라서 이래 저래 고달팠다. 게다가,가난하여 혼기를 놓친 총각이 보쌈을 해가서 아내로 삼아도 할 말이 없을 때였으니 그 처지가 오죽했으랴.

 

  이런 처지의 과부들에게 천주교의 가르침은 삶에 의미를 부여해 주었다. <<성경직해 광익>>이라는 책을 보면 이 세상의 가정생활은 금,은,동의 세 등급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결혼하지 않고 동정으로 사는 생활은 금이요.홀아비와 과부가 재혼하지 않고 사는 것은 은이요. 부부생활은 동이라했다. 남편이나 아내가 없는 사람이 오히려 오롯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길 수 있다고 한 바오로 사도의 말씀(1코린 7,25-40)을 이렇게 설명한 것이다. 이런 가르침은 사회에서 버림받은 존재였던 과부로서의 삶에도 큰 의미가 있다고 일깨워 주었기에 신앙생활이 그들에게는 조이(Joy,기쁨)였다.

 

  최조이(바르바라)는 18살에 결혼하였으나 얼마되지 않아 과부가 되었고, 이조이(막달레나)는 15세 때 결혼하여 2년 후 과부가 되었다. 둘은 태어난 곳이 서로 달랐지만 신앙생활을 위해 이곳저곳을 떠돌다 전라도에서 서로 만나 알게 되었고, 1839년 기해박해가 일어나면서 함께 잡혀 전주로 끌려갔다. 거기서 둘은 신앙을 버리지 않아 사형판결을 받고는 오히려 기쁨 속에 순교하였다.(1840년 1월 4일)

 

  같은 날 오종례(야고보)도 함께 순교하였다. 그는 충청도 은진에서 태어나 결혼 직후 전라도로 이사하여 고산에서 살다가 1839년 7월 전주로 잡혀 왔다. 19세의 어린 나이인지라 영장은 "너 같은 어린애는 천주교를 믿지 않겠다고만 하면 즉시 풀어주겠다"고 하였다. 이에 오종례는 "하느님을 섬기고 난 후 제가 어떻게 형벌이 두려워서 그분을 부인 할 수 있겠습니까?"하고 대답하여 그의 신앙을 분명히 밝혔다. 결국 그는 갇혀 있던 이들과 함께 치명(治命):진리를 위해 목숨을 바침)의 길을 갔다.

 

  바오로 사도이 그 유명한 말씀,"주님 안에서 늘 기뻐하십시오. 거듭 말합니다. 기뻐하십시오."(필리4,4)는 그가 감옥에 있을 때 남긴 말이다. 이 말씀과 순교자들의 삶을 보며 참 기쁨은 '어떤 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면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가슴으로

보듬어 주는

따뜻한 그 이름

가족입니다.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