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동 성당 주보 읽기/2012년 주보

대림 제3주일(자선주일) 2012년 12월 17일(다해)

모든 2 2021. 4. 26. 23:49

「자선」유창연 신부님(2012)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요한3,11)

대림시기는 준비와 기다림의 시기입니다. 준비와 기다림 안에는 실천이 숨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누지 못했던 우리의 마음을 이제는 실천해야 할 때입니다.

 

+  루카 복음 3,10-18

 

<저희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때에 군중이 요한에게 물었다. "그러면 저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어라.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

세리들도 세례를 받으러 와서 그에게, "스승님,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자, 요한은 그들에게 "정해진 것보다 더 요구하지 마라."하고 일렀다.

군사들도 그에게 "저희는 또 어떻게 해야 합니까?'하고 묻자,요한은 그들에게 '아무도 강탈하거나 갈취하지 말고 너희 봉급으로 만족하여라."하고 일렀다. 백성은 기대에 차 있었으므로, 모두 마음속으로 요한이 메시아가 아닐까 하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요한은 모든 사람에게 말하였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러나 나보다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이 오신다.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릴 자격조차 없다.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또 손에 키를 드시고 당신의 타작마당을 깨끗이 치우시어,알곡은 당신의 곳간에 모아들이시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 버리실 것이다."

요한은 그 밖에도 여러 가지로 권고하면서 백성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였다.

 

 

<말씀의 향기>

 

"그럼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함께 계신 예수님-조성광 바오로 대전성모병원 기획조정실장

 

  어떤 사람이 직장 상사와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같이 출퇴근하고,운동도 같이하고 술도 같이 마시고 아주 친한 사이가 되었더랍니다. 그런데 사실 직장 상사이기 때문에 참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조금만 잘못해도 꾸지람을 듣고,자신의 의사를 제대로 말하지 못하고, 그 상사의 비유에 맞춰야 하고,매사 일방적으로 자신에게 지시하듯 하는 태도 때문에 불만도 많아져 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느 날 생각을 고쳐먹었습니다. 그 상사 문제로 며칠을 고심하며 기도하던 중에 우연히 본당신부님의 강론 말씀에 힌트를 얻어,그 성사가 우리 중에 계시는 예수님,이웃이 된 예수님이라고 생가학로 한 것입니다. 그날부터 그 상사 안에 계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는 연습을 하기로 했습니다. 또 어렵지만 매일매일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지 얼마 되지 않아서 차츰차츰 그 상사의 좋은 면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즉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 상사가 전과는 달리 많ㅇ 부드러워지고, 의사를 결정할 때도 물어보고 양보하는 일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한 단계 더 나아가서 그 상사 주변의 작은 일에도 신경을 써주고, 심지어 아침에 출근하면서 보온병에 차를 타서 채여주고,더 친절히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생활을 처음에는 그 상사와 편한 관계를 맺을 시작한 것이었지만,차츰차츰 자신에게도 변화가 생겨 그 상사 뿐 아니라 다른 동료들과 또 이웃들게게도 좋은 인상을 심어주고,상냥하게 대하게 되어,나날이 기쁜 생활로 변화도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런 새로운 생활은 바로 그 상사를 통해 발견한 예수님을 얻은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더욱 놀랍게도,무신론자였던 그 상사가 세례 받기로 약속하고 교리를 시작해,지금은 함께 성당에 다니고 있으며,신앙에 대한 대화가 많아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벌써 대림 3주일 '저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이 물음이 묵상의 화두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시러 오셨고,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오는 성탄을 통해 '함께 계신 예수님'을 느끼며 다시 묵상하게 합니다. 우리 안에 계신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 예수님을 기쁘게 맞이하는 것,그것이 바로 대림시기에 우리가 특별히 지향해야 할 일이고,특별히 오늘 자선주일을 맞아 예수님을 사랑하듯 가까운 이웃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 생각해 봅시다.

 

 

<청소년 바로보기(3)>

 

청소년 이미지에 대한 편견(1)

 

  청소년을 공부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구체적으로 청소년(Adolescence)에 관련된 연구가 시작된 시기가 산업 혁명 이후,유럽 사회에서부터라고 합니다.말하자면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 혁명으로 커다란 기계들이 등장을 하기 시작했고,그 기계로부터 일자리를 빼앗긴 노동자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구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더욱이 공장을 운영하는 공장주들에게는 커다란 기계 사이를 왔다 갔다 하며 기계를 조정하기에는 몸집이 작은 어린 노동자들이 더 유리하다고 느끼고 있었습니다. 기계들부터 일자리를 빼앗긴 노동자들은 그렇지 않아도 먹고 살기 힘든 판에 어린 노동자들까지 자신들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에 대해 당연히 그들을 고운 시선으로 보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이 시기에 등장한 공립학교는 경쟁자인 청소년을 제거하기 좋은 이유가 됩니다. 사회에서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준비를 해야 하는 시기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등장을 했겠지요. 하지만 흐르는 물이 고이며 썩듯이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과거 자연스럽게 일정 나이가 되면,일을 하고 수입을 얻어 자신들이 원하는 경제활동을 하고, 또 몸의 성장에 따라 자연스럽게 짝을 만나 성생활을 하던 이들이 일정기간 그런 생활이 유보되었을 때, 일종으 스트레스 현상이 등장을 하게 됩니다.

 

  그러한 사회적 배경 안에서 본격적으로 청소년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자리르 잡기 시작한 것은 1904년 이후라고 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교과서세서 보던 청소년의 '질풍노도'라는 표현이 이때 등장을 하는데요. 청소년 연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미국의 G.Stanley Hall은 그의 ㅈ서 '청소년기'에서 이런 표현을 합니다. '청소년은 질풍과 노도를 경험하고 있는 되페 문제의 원인 제공자'라고요! 그는 청소년의 불안적인 부분에 대해서 연구를 하면서 환경적 요인은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다만 유전적으로 결정된 생리학적 요소를 크게 보며 이런 말을 하게 되는데,이 이론을 근거로 하여 비슷한 연구들이 등장하면서 이것이 마치 당연한 진리처럼 여겨지는 분위기가 만들어집니다. 이들의 연구에 의하면 결국 청소년 시기는 당연히 사회에서 볼때. 부정적인 요소를 가질 수밖에 없는 시긱! '원래 그런 녀석들'의 이미지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분위기에 '그것이 아니다'라는 반기를 드는 학자가 있었으니 그는 1920년 후반기에 등장한 미국의 여성 사회학자 Margaret Mead였습니다. 그녀는 남태평양 사모아 섬에서 원주민을 대상으로 연구를 하던 중,산업혁명 이후 급변한 사회 현상을 경험하지 않은 이들 사이에서는 '청소년의 반사회적인 불안적 요소가 등장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게 됩니다.(계속)

 

-박진홍 신부.청소년사목국장-

 

 

<미사 속 숨은 보화>

 

보편지향기도:

모든이의 구원을 위한 공동체 기도

 

  보편지향기도는 개인적인 지향을 청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이 필요한 모든 세상과 공동체의 지향을 청하기에 보편적이고도 공동체적인 기도입니다. 미사 중에 이 기도를 바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인류구원을 위해 기도하시고 자신을 구원 제물로 봉헌하신 그리스도의 삶과,그분의 이웃 사라에 대한 가르침을 더욱 적극적으로 본받고 실천"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기도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하신 말씀에 대해 기도로 응답"(전례헌장 33항)하는 공동체 기도로서 '믿음으로 받아들인 하느님 말씀에 응답하고 세례 때 받은 사제직무를 수행하면서 하느님께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해기도하는 것"(미사경본 총지침 69항)입니다.

 

 

'하느님의 종' 125위 단상(49)정환 신부 . 내포교회사연구소장

 

김기량(펠릭스 베드로)

-우리 만남은 우연히 아니야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1816년 제주도 함덕 출생
1867년 1월 경상도 통영에서 순교(51세)

1801년 신유박해 때 황사영(알렉시오)의 부인 정난주(마리아)가 제주도로 유배를 간 것을 제외하면 1850년까지 제주도에는 신자가 한명도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사건으로 신자가 생기게 되었으니 난파를 당한 제주도 사람으 배가 홍콩으로 떠내려간 계기가 되었다.

 

  1806년 제주도 함덕리에서 태어난 김기량(펠릭스 베드로)은 배를 이요하여 무역하는 사람이었다. 1857년 2월 보통 때처럼 배를 티고 장사하러 나갔다가 풍랑을 만나 40일 동안 떠밀려 다니다가 중국 광동 해역에까지 이르렀다. 다행히 영국 배를 만났으나 파도와 바람이 너무 세어 김기량만 간실히 영국 배에 매달릴 수 있었고 다른 동료 4명은 떠내려가 버려 생사를 모르게 되었다. 영국 선원들은 김기량을 홍콩으로 데리고 갔는데 참으로 뜻밖에도 그 먼 땅에서 같은 조선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박해가 계속되고 있는 조선에서는 사제를 양성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1855년 세 명의 신학생을 선발하여 말레이시아의 페낭으로 보내 공부를 시켰다. 그 중 이만돌(바울리노)이란 신학생이 열대기후에 적응하지 못해 병을 얻게되자 홍콩으로 보내어 요양을 시키고 있었는데 마침 그때 김기량이 구조되어 왔던 것이다.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김기량은 80일 동안 홍콩에 머물면서 이만돌에게 교리를 배웠고 펠릭스 베드로라는 본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신자가 되어 귀국한 김기량은 고향 제주도로 돌아가 가족들과 그의 사공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제주도에 신앙공동체를 형성하였다. 그는 홍콩을 떠나올 때 당부 받은 것처럼 육지에 있는 교우들과 접촉하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나갔다. 그러던 중 또 한 번 난파를 당해 일본 나가사키까지 떠내려갔는데 거기서도 프랑스 신부님을 만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거센 풍랑 속에서 두 번이나 극적으로 목숨을 건진 김기량이었지만 박해의 풍파는 피해갈 수 없었다.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난 직후 그는 보통 때처럼 무역을 하러 경상도 통영에 나갔다가 신자라른 것이 알려져 체포되었다. 여러 번의 형벌에도 김기량이 배교하지 않자 통영 관자은 '그를 때려죽이라'고 명령하였다. 그럼에도 목숨이 붙어 있자 마침내 1867년 1월 감옥에서 교수형에 처해져 순교하였다.

 

  "우리 만남은 우연히 아니야."라는 노랫말이 생각난다. 신앙은 우연인 것처럼 다가오지만 그것에 맛 들이고 나서 뒤돌아보면 주님의 섭리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우리 모두가

이땅을

사랑하게 하소서

 

글.그림 이순구(베네딕도)